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4:48:11

러셀 A. 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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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미합중국 제43대 전쟁장관
러셀 A. 앨저
Russell A. Alger
파일:1000011071.jpg
본명 러셀 알렉산더 앨저
Russell Alexander Alger
출생 1836년 2월 27일
오하이오 라피엣 타운십
사망 1907년 1월 24일 (향년 70세)
워싱턴 D.C.
재임기간 제20대 미시간 주지사
1902년 9월 27일 ~ 1907년 1월 24일
제45대 전쟁장관
1897년 3월 5일 ~ 1899년 8월 1일
서명
파일:Signature_of_Russell_Alexander_Alger_(1836–190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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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학력 리치필드 대학교
복무 미합중국 육군
1861년 ~ 1864년
최종 계급 대령 (미합중국 육군)
주요 참전 남북 전쟁 }}}}}}}}}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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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2. 생애

오하이오주 라피엣 타운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적은 임금을 받고 이웃집의 잡역부로 생계를 유지했다. 형제자매들이 성장해 일을 시작하자 비로소 학업을 시작해 리치필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법조계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후 클리블랜드,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로 이주했고 법조계에서 목제 사업으로 전향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북군으로 사병으로 입대했고 제2미시간기병연대 소속이 되었다. 3년 후 소령으로 진급했고 분빌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생포되었으나 당일 탈출에 성공했다. 중령으로 진급 후 게티즈버그 전투에 참가해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휘하의 참모로 활동했다. 도합 66번의 전투에 참가해 전시계급 준장까지 올라갔고 1864년 제대했다.

전후 휴런 호수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제재소에 집중했고 세력이 커져 미시간주를 넘어 전주에 인지도가 생겼다. 이에 별명이 "제재 남작"이였고 재력과 명성을 바탕으로 공화당 소속으로 1884년 미시간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1897년 전쟁장관에 임명되어 미국-스페인 전쟁당시 활동했으나 쿠바 원정당시 군납계약한 육가공 업체 아머사의 염장고기에서 식중독이 발생해 많은 비전투손실이 발생하자 언론의 비판을 받았고 결국 1899년 사임했다.

이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고 1907년 사망했다.

3. 여담

  • 미시간주의 앨저 카운티와 앨저[1]는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같은주의 블랙리버, 링컨에 있는 앨저 스트리트, 그랜드래피즈의 구역 앨저하이츠 역시 그의 이름에서 영향을 받았다.
  • 리버티선 SS 러셀 A. 앨저의 건조가 계획되어 있었으나 취소되었다.


[1] 앨저 카운티가 아니라 어러낵 카운티에 위치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