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4 16:49:54

조지 W. 롬니

파일:미시간 주지사기.png
미시간 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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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대 미시간 주지사
조지 윌켄 롬니
George Wilcken Romney
파일:George_W._Romney_official_portrait.jpg
출생
1907년 7월 8일
멕시코 치와와 콜로니아두블란
사망
1995년 7월 26일 (향년 88세)
미국 미시간주 블룸필드 힐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정당

학력 대학 중퇴[1]
가족 배우자 레노어 라파운트
슬하 2남 2녀
종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1. 개요2. 생애3. 정치 활동4. 선거 이력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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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미시간 주지사를 역임했다. 소속 정당은 공화당이고,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밋 롬니의 아버지다. 중도파로서 록펠러 공화당원 중 한 명이었다.

2. 생애

조부 때부터 몰몬교를 믿은 몰몬교 집안이다. 조부는 초기 몰몬교에서 교리로 허용하던 일부다처제를 시행해서 부인이 5명이었다. 그러다가 연방정부에서 일부일처제가 법제화되어 범법자가 될 위기에 처하자 멕시코로 탈출하였다. 조지 롬니는 멕시코의 몰몬교 공동체에서 태어났고 1910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자 가족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롬니는 젊었을 때 영국으로 2년간 선교여행을 다녀왔고 일생동안 여러 대학교에 다녔지만 졸업하지는 않았다.

1939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이주하여 자동차산업에 발들였는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 자동차협회 수석대변인을 맡아서 전시동원체제 생산협정을 맺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전쟁 후인 1948년 내쉬-켈비네이터라는 자동차회사에 스카우트되었고 1954년 내쉬-캘비네이터가 허드슨과 합병해서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이 생기자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였다. 조지 롬니 회장 재임기에 이 회사는 1950년대 내내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거의 신경쓰지 않던 컴팩트카 시장을 선점, 공략하며 Big3로 꼽히는 제네럴 모터스, 포드 모터 컴퍼니, 크라이슬러에 이어 미국 자동차산업 4위 기업이 되었고 롬니가 1962년 미시간 주지사에 도전하면서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3. 정치 활동

조지 롬니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고위직인 멜기세덱 신권 성임자가 되는데[2] 1944년부터 미시간 디트로이트 지부의 관리감독자가 되었다. 지부의 신도들은 처음에는 롬니의 집에서 가정방문 예배를 할 수 있을 만큼 적었지만 롬니가 지부를 이끌게 된 후에는 디트로이트 지부가 오대호 주변의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3천명정도로 불어났다.

1950년대에는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미시간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이 매우 커진다. 그는 1950년대에 디트로이트 연합 재단의 이사가 되고 디트로이트 아동 병원 이사회에서도 활동했다. 1956년 미시간 주 공립학교 개선위원회 회장을 역임하여 연방정부 차원의 관심을 받았으며 1959년 시티즌 포 미시간이라는 민권단체를 설립해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미시간 주 헌법을 발전된 상태로 고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는데 이 활동을 위해서 롬니는 공화당에 입당하고 1959년 전당대회에 참석한다.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인사들의 푸시를 받아 1960년 상원의원 선거를 고려하기도 했었지만 고사하고 여러 종교지도자들을 모아놓은 공정선거협의회 위원장과 미시간주 헌법개정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한다.[3]

1962년 미시간 주지사 선거에 입후보하여 민주당의 현역 주지사 스웨인슨 후보를 이기고 주지사가 되었다. 주법에 따라 2년마다 선거를 치렀는데 인기가 대단해서 민주당 후보들을 30만표차 이상으로 이겼다. 자동차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서 조지 롬니 재임기는 미시간주의 황금기로 꼽힌다. 이렇게 3선을 하고 196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1964년 대선에선 지나치게 강경한 것으로 여겨졌던 베리 골드워터가 후보가 되는것을 막기위해 마치 트럼프가 후보가 되는것을 막으려던 아들내미마냥 고군분투했으나 실패한다.

파일:Romney_Great_for_'68.jpg[4]

1968년 대선에서 롬니는 베트남 전쟁 반대 후보로 초반 닉슨을 제치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등 유력한 대권주자로 여겨졌으나 자신이 과거 베트남 전쟁을 지지한 것으로 드러나며 논란을 일으켰다. 롬니는 이를 해명한답시고 "정보기관과 군부가 나를 세뇌해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도록 만들었다"라는 우스꽝스러운 발언을 했고, 이로 인해 지지율이 대폭 하락해 중도사퇴한다. 이후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주택장관을 지내다가 닉슨이 재선에 성공한 뒤 2기 행정부에 참여하지 않고 물러난다.

닉슨 행정부 시절에는 장관을 지내긴 했지만 닉슨과 사이가 나빠서 실질적인 권력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닉슨은 롬니 뒷담화를 자주 했고, 그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아들과 마찬가지로 공화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조지 롬니 시절에는 공화당 내에서 본인과 같은 록펠러 공화당이 건재하던 시절이라 주 교육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흑인민권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아들보다 훨씬 중도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62 미국 주지사 선거 미시간

1,420,086 (51.36%) 당선 (1위) 초선
1964 미국 주지사 선거 1,764,355 (55.87%) 재선
1966 미국 주지사 선거 1,490,430 (60.54%) 3선[5]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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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대학을 다녔지만 졸업하지는 않았다.[2] 세례를 받은 18세 이상의 인원은 최고 의결기구인 70인회의 회의를 참관할 수 있는데 성임자는 70인회 외부 인원이지만 의결권이 있으며 타인에게 세례를 줄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다.[3] 이때 활동으로 1963년 헌법을 개정하여 1968년 선거부터 2년제이던 주지사 임기를 4년으로 늘렸다.[4] 롬니의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포스터.[5] 1969.1.22. 미국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