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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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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 등장하는 러시아 제국으로 소설에서의 행적을 요약하면 중국과 맞먹는 안습국가이자 동네북.

2. 상세

러시아 제국은 극동에서의 부동항 확보와 영토 확대를 위해 이주 정책을 원 역사에서처럼 진행하는 상황이었지만, 조선과 청의 전쟁까지의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극동에서의 정세가 급변, 러시아가 만주로 군대를 진입시키는 시기가 더욱 빨라졌고, 조선과 청의 2차전에서 청이 무기력하게 패하면서, 러시아는 급하게 외몽골을 러시아쪽으로 최대한 당기고 더불어 내몽골까지도 영향력을 투사하면서, 몽골을 빠르게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만들려는 상황이다.

제1차 조청전쟁을 패전으로 청나라의 서태후가 러시아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러시아의 극동본부는 이것을 기회로 만주로 개척민들을 남하시켜 만주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무장한 러시아 개척민들이 만주족들을 공격하면서 횡포를 일삼고 만주족 관료들과의 다툼에서 서태후의 이름으로 지원을 왔다며 계속 남하해온다. 조선인들이 간도를 시작으로 조선인 마을에 공격을하자 조선인들도 반격을 하며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나며 만주족 관료들도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러시아와 조선의 편으로 갈라진다.

더욱이 신강에도 영향력을 투사, 독립국가를 세우도록 지원하면서 영국령 인도, 티베트로의 영향력 확대를 원 역사보다 빠르게 진행시키려는 상황. 그럼에도 조선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만주뿐만 아니라 아예 아무르강 이남인 연해주를 통째로 상실하게 됐다. 물론 가만히 있을 러시아가 아닌 지라 다시 몰려올 게 뻔하다.[1] 다음 전쟁의 시기와 크기는 아마도 시베리아 철도의 부설 여부에 따라 결정될 듯 하다.[2][3] 더해 일본이 내전이 끝난 뒤, 근대화가 성공한다면, 만일의 가능성으로 열강으로 올라가기 위한 디딤돌로 러시아를 택해 캄차카, 쿠릴, 사할린의 일본 할양을 요구하며 러시아 제국과의 일전을 치를 가능성도 염려된다.[4]

물론 러시아 제국에게도 큰 이점이 하나 존재하는데 원역사에서 극동에 투자하고 힘썼던 자본과 산업력 등의 국력을 본토에 쏟을 수 있게 되어 러시아 본토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더 빠르게 진척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라 생각했으나, 차르가 자기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5] 제대로 화가 난 바람에 조선과의 전쟁에 전념[6]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지라 결국 이도 저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당장은 조선의 가장 큰 위협이라 할 수 있는 열강. 그런데, 러시아에게 차관을 대주기로 한 북독일 연방이 현재 거덜나고 혁명으로 공화정이 되어서…

게다가, 보불전쟁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사망으로 총력전으로 전환되면서 넘겨짚고 가야 할 것이 있는데 본래 시베리아 철도는 원 역사에서 1888년 프랑스에게서 거액의 차관으로 우랄산맥까지 뻗어있던 철도를 아시아로까지 연장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보불전쟁 이후의 프랑스는 전쟁에서는 이기더라도 상당한 내통을 겪으며 숨고르기에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부설을 위해 자금과 기술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입장을 표명한 북독일 연방은 보불전쟁의 패배로 제 앞가림조차 힘들어질 게 뻔하다. 이는 곧 다른 나라의 시베리아 철도 투자가 없어지고 순수 러시아의 자본만으로 시베리아 철도를 시공해야 한다는 선택지를 강요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출혈을 각오하고 철도를 까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겠지만, 원 역사에서도 시베리아 철도 부설 비용은 당시 잘 나가던 러시아 제국을 흔들어 버릴 정도였는데 원역사만도 못한 러시아가 자체 자본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거라 보기 힘들다. 게다가 단순히 시베리아 철도만 까는게 전부가 아니라 철도 부설 직후 바로 당장 대한제국과의 전면전을 위해서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만주 방면에 신속히 전개하기 위한 전쟁비용까지 감당해야만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러시아로썬 상당한 외통수인 셈이다. 그리고 북독일 연방이 파리 공방전에서 괴멸 수준으로 패하면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은 더욱더 요원해졌다.

한편, 보불전쟁의 양상이 역전되면서 자신들과 함께 폴란드의 독립을 찍어누르고 있던 프로이센이 휘청거리기 시작하자 이로 인한 폴란드 인들의 준동을 걱정하던 러시아는 아시아 방면에서 대한제국과 대결하는 걸 포기하고 유럽 쪽에 집중하는 걸로 방향을 선회하기로 가닥을 잡았...는데, 영국이 중국에서 친 초대형사고를 수습하느라 양면 전선을 유지할 수 없던 대한제국에서 몽골 내전을 내몽고 주도의 통일로 마무리하는 대신에 위구르를 가지라고 휴전을 제의하나 위구르와 비교할 수 없는 만주, 정확히는 만주의 부동항을 욕심내던 러시아에서 확전은 아니어도 지금처럼 몽골 내전을 유지하기로 한다. 그리고 프랑스 제국과 프로이센 간의 라인란트 공방전이 진행되는 동안, 동 프로이센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프로이센을 도와 프랑스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작중 시점인 1871년이면 본격적으로 발칸 방면으로의 진출이 시작되지 않은 탓에 원 역사에서 발칸 반도의 이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우방이었던 프로이센과 맞서던 것을 뒤집은 셈.

라인 공방전에서 프랑스에게 돌파당하며 힘이 부친 오스트리아의 요청에 따라 동프로이센에 주둔시켰던 병력을 북독일 일대로 서진, 하노버를 점령한 프랑스군에 맞서 프로이센군, 오스트리아군과 함께 대치하며 지리한 시간을 보내지만, 오스트리아군과 50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여 전열을 편성, 참호선 곳곳에 개틀링 토치카를 지은 프랑스군을 향해 거름이 되라며 진군시킨다. 러시아가 여기에 어느 정도의 병력을 증원했는가는 상세불명이지만 그 이전에도 라인란트를 방어하는 프로이센에 적지않은 러시아군을 지원했다 하니 이로서 러시아도 양면전선 유지는 어려워질 듯 하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는 세르비아 포함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독립을 위해 오-러 동맹 측에 붙으려고 해서 발칸 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참호전을 이미 겪을 대로 겪은 프로이센 참모본부의 만류에도 이를 무시한 오-러 연합군의 대가는 당연히 대참패. 이후, 병력을 수습하고 전선을 뒤로 물린다. 한편으로는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티베트인들의 협력을 받고 태평천국을 지원하고 중화제국과 협력하게 지원한다. 또한, 자국 관료로 보이는 이와 함께 청의 고위직이나 입을 법한 옷을 입은 이를 태평천국과 중화제국의 협상장에 보낸다.

그러나 프랑스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날뛰기 시작한 폴란드 독립군을 누르기 위해 점차 독일 전선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게 되고, 발칸 반도 등 유럽에 전력을 집중하고 싶은 러시아는 대한제국에게 화평의 사자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천명대전 직전에 대한제국이 먼저 화평을 맺자고 할 때는 그렇게 무시하고 깔보며 거절하더니,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아무 조건 없이 그냥 화친하자는 뻔뻔한 태도로 나와서 질리게 만든다. 러시아가 지금도 자신들을 여전히 깔보고 무시하고 있다고 인식한 대한제국은 그대로 그 제의를 묵살해버리고, 만주와 몽골 출신들로 구성된 3만의 기병대를 동원하여 러시아 침공을 개시한다.

이후 천명대전에서 승리한 이형은 주력을 극동 러시아로 전진시키고, 그 동안 너무 쉬운 전쟁만 해서 자신들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반역모의를 한 몽골 부족장들 및 그 세력을 중앙아시아에 쏟아붓는다. 제대로 된 근대 기병전술은 커녕 몽골 제국 시절의 전쟁 전략조차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들은 한바탕 날뛴 뒤, 겨울과 그들에게 약탈당한 현지인들의 저항,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입은 러시아군에게 괴멸되어 몽골의 반역 분자가 일소된다.

같은 시기 연해주를 침공하여 블라디보스톡 공격을 준비하던 대한제국군에게 중원을 정복한 전쟁 영웅인 황제가 직접 지휘하는 군대가 패배했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거의 저항 없이 연해주를 점령한 상황이 내륙으로 유인한 뒤, 늘어진 보급선을 끊어 몽골군을 괴멸시킨 러시아군의 중앙아시아 방면 전략과 유사하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따라서 블라디보스톡을 포위하고 병력을 집중시키며 보급선을 확보하는 것으로 전술이 변경되었다. 실제로는 500명도 안 되는 남녀노소로 구성된 민병 밖에 없던 러시아 극동본부는 결국 시민들의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며 항복, 블라디보스톡은 해삼위로 개명되어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는 이형과 러시아 극동사령부가 밀약을 체결한 결과였다. 반 대한제국 성향의 몽골족들을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방면 승전을 위한 희생양으로 받는 대가로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톡 일대를 제공한 것. 그럼에도 대한제국군은 러시아군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강해진 상태. 이는 러시아가 너무 약해질 경우 통합 아시아를 이룩하려고 하는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수장인 대한에 영국의 그 악랄한 견제가 집중될 것을 견제한 이형의 전략이기도 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면서 러시아령 폴란드를 자유폴란드군에게 빼앗기는 피해와 함께 손을 대지 못하는데, 이유는 철도가 워낙 미비한 나머지 보급선을 이을 수가 없어서라고. 그러면서 차르가 전비 조달 때문에 부르주아나 은행, 유력귀족, 대지주, 심지어는 유대인 등에게 거액의 빚을 지게 되어 채무를 갚느라 고생길이 열려버렸다.

종전협정이 다음 전쟁을 위한 시간끌기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전비를 조달하고 전력을 유럽에 집중하기 위해서인지 러시아 제국 전권대사인 알렉산드르 대공은 자신을 찾아온 박규수 총리에게 캄차카 반도를 얼마에 살 거냐고 물으면서 거래를 제안하는데, 아직 젊은 탓에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알렉산드르 대공이 박규수 총리에게 말려들면서 예니세이 강 동쪽의 모든 극동 영토까지 패키지로 묶어서 900만 달러에 매각하는 조건으로 캄차카 조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협상을 마친 알렉산드르 대공과 그의 측근으로 기용된 미하일 체르나예프와의 대화를 통해 캄차카 조약의 조건이 미리 상정된 수준 내에서 체결됐다는 게 밝혀진다. 이형을 한 번 겪어본 체르나예프를 통해 협상을 위한 최적의 수준을 정한 걸 보면 그 정도로 유럽 방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는 예기.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 제국이 오-헝(신성 로마) 제국과의 밀약을 체결하고 폴란드 수복과 발칸 반도 진출을 꾀하는 건 육지와 해양 양면의 팽창을 통해 유럽에서의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7]

천우신조인지 독일의 파산으로 인해 서유럽 금융공황이 터지면서 협상국의 주력인 영국과 프랑스가 자국 안정화를 위해 본국으로 병력들을 귀환시킨 덕분에 동맹국인 오-헝 제국이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을 완성하고, 자국 또한 후방에서 칼을 갈며 준비한 병력을 동원, 환호성을 지르며 폴란드 침공을 개시, 한 달도 채 안 돼 재점령에 성공한 뒤, 여세를 몰아 종전 협정에서 발칸 소국들의 독립을 관철시키며 북해와 지중해 양쪽을 통해 대양으로 진출할 교두보 확보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생각인지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이 된 오-헝 제국과 공동으로 유럽대륙 횡단철도를 부설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공표한 건 덤.

그렇지만,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벨기에 사태에 대한 런던 내각의 대책회의를 다루는 부분에서 러시아가 발칸 소국들을 윽박지르며 지중해로의 진출을 꾀한다는 서술이 나온 걸 보면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폴란드에서의 통치를 통해 배운 게 없는지 똑같이 강압적인 태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가 '러시아'하고 있는데, 푸틴 치하의 러시아와 시진핑 치하의 레드 차이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면 이상한 게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스톡홀름에서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와의 교섭에 나선 오-헝 제국 재상 겸 외무장관인 귤라 안드라시의 생각을 통해 신생 독립국들의 정권 수립과 군대 양성 지원을 명분으로 10만의 대병력을 발칸 반도 지역에 주둔시키면서 종속국화 내지 합병을 노리는 모양새로 묘사되고 있다.

이후 차르를 비롯해 러시아 정계는 내실을 다지려했으나[8] 황태자인 알렉산드르 대공과 군부의 주장[9]을 받아들여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1년만에 오스만 제국에게 성전을 선포하며 이스탄불(옛이름: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물론 차르는 러시아의 내정상황을 잘 알기에 최소한 흑해를 확보하는 것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문제는...여기도 기병연대에게 모르핀과 보드카를 빨게 하고 기병돌격을 시켰다는 것.[10] 거기에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성전을 주장하니, 흥분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오스만 제국군대는 박살이 나고 만다. 더불어 불가리아세르비아를 비롯한 발칸 소국들에게도 참전을 꼬드긴다.

이스탄불(옛이름: 콘스탄티노플)로의 진격은 콘스탄티노플 주변의 요새지대에서 프랑스의 물자를 지원받은 오스만 제국의 반격으로 잠시 멈추게 되지만 그리스를 침공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고 영국이 개입하는 상황 덕분에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한다. 하지만 프랑스가 개입을 하고 본국의 재정 문제 때문에 결국 콘스탄티노플 탈환에는 실패한다. 그러나 런던에서 열린 종전협정에서 반년만에 아르메니아와 그 주변을 비롯한 많은 영토와 16억 4천만 불에 이르는 막대한 배상금[11]을 얻고 흑해에서 재해권을 차지하는 등 전쟁의 승자가 된다. 그러나 조기종전을 목적으로 물량전을 선보이면서 추가로 정예병 2~3만 명을 잃어버린데다가 막대한 배상금도 간신히 러시아 재정에 숨을 돌릴 정도였으니 피로스의 승리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동방으로 눈을 돌리면서 그 동안 누적된 피해로 인해 일단 대한제국에게 자신들이 판매한 영토를 다시 사겠다고 제안을 한다. 당연하지만 고종은 사신의 눈 앞에서 친서를 찢어버리며 거부의사를 밝힌다.

이후 시베리아로 간 알렉산드르 황태자가 1만의 군사를 이끌고 페르시아로 진출한다. 일단 영국과 대립을 하나, 황태자가 사고를 친 것이기에 당연히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의 중재를 받아들여서 황태자와 군사 1만을 철수시키고, 페르시아의 주권과 항구조차권 외의 이권들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암스테르담에서 영국과 조약을 맺는다. 단기적으로는 페르시아를 세력권에 편입하며 이득을 취했으나, 자유주의 계열의 모든 열강이 신정일치 전제국가 러시아 제국의 팽창을 심각하게 경계하게 되었다.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을 제외한 모든 서구 국가들이 영국을 지원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외교적으로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그러는 동안 시베리아에서는 대한제국과의 교전이 벌어졌으며 대한제국의 관대한 조건으로 위신의 손상은 적었다.

하지만 페르시아에서의 분쟁을 계기로 발칸 신생국들과 아프리카 분할 문제로 모인 열강들의 회의에서 영국과 대립이 생기고, 다시 한번 프랑스와 영국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여담으로, 현재 가장 대한제국과 적대적인 열강이지만, 동시에 대한제국과 범아시아 조약기구쪽의 국민감정은 딱히 이렇다할 적대감은 없는 해괴한 입장에 있다. 사실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적대한 것은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으로 타 열강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서'인 부분이 크고, 범아시아 조약기구 입장에서는 러시아에게 국가적으로 원수진 일은 없다보니 이렇게 됐다. 물론 러시아가 전쟁을 걸기는 했지만, 영국이 중국 지역에 벌인 깽판들과 비교하면 딱히 깽판이라 할 수준은 아니고, 그 전쟁도 결국 대한제국이 승리해서 역으로 뜯어냈으니까. 다만 어디까지나 '국가적인 레벨'에서일 뿐 한성근을 비롯하여 전선에서 직접 싸워서 피를 본 일선 병사들은 당연히 이를 갈고 있다.

내부적인 문제점들이 계속 쌓이고 싸이면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동맹국들과 적대국들이 참전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무대가 된다.

결국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은 붕괴되었으나, 현실의 소비에트 러시아가 아닌 러시아 민주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혁명 이후 폴란드를 독립시키고 민중에게 땅을 분배하는등 내실을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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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을 치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게,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유럽 본토의 확장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온 나라로써, 극동은 2순위 정도다. 원역사에서 사회주의 시대였던 소련 때도 핀란드를 차지하기 위해 일전을 벌였고, 독일의 패망 이후 동유럽에 괴뢰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대규모의 소련군을 잔류시킨 원 역사에서의 예가 있다. 극동에서의 전쟁을 다시 벌임으로써의 이익이 손해를 덮지 못한다면 안 할 가능성이 큰 상황.[2] 다만 현상황을 보면 시베리아 철도가 부설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왜나하면 시베리아 철도는 러시아 제국의 부동항에 대한 욕망 때문에 만들어진 철도 노선이기 때문. 멀리 떨어진 연해주에나마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를 얻은 러시아 제국이 유럽의 본토와의 연결을 위해 러시아 본토에서도 드물었던 철도를 프랑스에서 거액의 차관을 구해와 만든 게 바로 시베리아 철도다. 헌데, 작중 상황은 시베리아 철도를 만든 이유인 극동 주요 거점들인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를 상실해버린 상태로 이로 인해 아예 러시아의 부설 동기 자체가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시베리아 철도 부설은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라는 점이다. 시베리아 철도는 러시아 제국이 전 국력을 기울여야 했던 사업이었다. 오죽하면 '시베리아 철도에 사용된 자원을 유럽권 지역의 근대화에 더 쏟았다면 역사적인 결과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는말이 있을 정도. 게다가 원 역사에서 프랑스의 차관으로 공사를 했었던 점과 작중 극동의 친프랑스 국가인 조선의 존재를 감안하면,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를 만들 의욕이 있더라도 자금을 구하는 것부터가 어려울듯. 그리고 이러한 악조건들을 극복하고 시베리아 철도를 부설한다 하더라도 만주와 연해주를 상실했기에 구간을 캄차카로 크게 우회해야만 해서 비효율적이다.[3] 몽골에는 아직 영향력이 있으니 크게 상관 없을지도. 시베리아 횡단철도 문서 참고.[4] 막부가 원역사에선 이미 18세기부터 아이누족을 빌미로 사할린, 쿠릴에는 영향력을 크게 미쳐놓은 상황.[5] 조러전쟁의 패배 원인으로 미국이 대놓고 편을 든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미국에서는 러시아에게도 참호를 판다거나 하는 제안을 했었고, 무엇보다도 개틀링을 조선에만 팔았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미국에서 러시아에게 무기를 팔려고 하니까 스스로 거부했던 건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 대놓고 배신했다고 열이 오른 상황.[6] 결국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있는 시베리아 철도 준설을 결정한다. 전쟁을 목표로 한 철도가 될듯하다.[7] 물론, 이 방법은 발칸 지역의 민심이 러시아에게서 돌아서면 그 전까지 쌓아올린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단점이지만, 슬라브인들이 많이 있는 발칸 반도의 특성상 러시아 제국에겐 범슬라브주의를 주창하여 민심을 얻는다는 방법이 있다. 때문에 온전히 자국의 것으로 시작할 수 있으나 맨 땅에 헤딩하듯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여 모든 인프라와 인구를 만들어야 하는 극동 개척보다는 어느 정도 인구와 인프라가 갖춰진 발칸 반도로의 진출이 부동항 확보에 유리한만큼 러시아 제국으로서는 당연히 후자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듯.[8] 여러 전쟁으로 사망자만 100만명이 넘어간 상황에다가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갚아야하고 재정과 물자도 바닥난 상황이다.[9] 영국은 대공황의 피해복구에 정신없고, 프랑스는 아프리카 정복에 몰두하는 중이며, 신성 로마 제국은 동맹관계로 직접적인 개입 불가, 그리고 오스만 제국은 장교들에게 월급을 못 줄 정도로 대공황의 피해에 허덕이는 중.[10] 정확히는 보드카에 미미한 효과가 돌 정도의 마약을 타서 먹였다.[11] 물론 이는 발칸의 참전국들에게 돌아가는 배상금을 합한 액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