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1.4px" | 베네벤토 공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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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uald I | ||
생몰년도 | 미상 ~ 687년경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지 | 베네벤토 | |
재위 기간 | 662년경 - 687년경 |
1. 개요
베네벤토 공국 6대 공작.2. 행적
베네벤토 공작 그리말트와 이타(Itt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랑고바르드 여인의 아들이다. 662년 아버지가 고데페르트와 페르타리트 형제를 몰아내고 랑고바르드 왕국의 국왕이 되었을 때 베레벤토 공작에 선임되었다. 663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스 2세가 이탈리아 전역을 재정복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강력한 군대를 이탈리아 남부에 상륙했다. 그는 베네벤토 공국의 지배를 받는 풀리아로 진군해 로무알트를 격파하고 베네벤토를 포위했다. 그리말트는 즉시 아들을 구하고자 출격했고, 콘스탄스 2세는 살레르노 인근의 포리노 전투에서 패배하고 나폴리로 후퇴했다.671년 그리말트가 사망한 뒤 그리말트와 고데페르트의 누이 테오도타의 아들인 가리발트가 랑고바르트 국왕이 되었다. 그러나 재위 3개월 만에 왕국에 돌아온 페르타리트에게 축출되었다. 로무알트는 이복 동생을 몰아낸 페르타리트와 맞서기보다는 타협하기로 하고, 자신이 무제한의 자치권을 누리는 걸 용인받는 대신 그리발트가 생전에 포로로 잡아뒀던 페르타리트의 아내 로델린다와 아들 쿠닝페르트를 랑고바르트 왕실이 있는 파비아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이후 판노니아에서 벌어진 권력 쟁탈전에서 밀려나 이탈리아로 망명한 불가르족 또는 아바르족인 알제코(Alzeco)에게 목초지를 주고 가스탈트(Gastald: 특정 지역에서 민사, 군사 및 사법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관료)에 선임하는 대가로 군사적 지원을 얻어냈고, 이를 토대로 타란토와 브린디시 공략에 성공했다.
로무알트는 프리울리 공작 루푸스의 딸인 테우데라다(Theuderada)와 결혼하여 세 아들 그리말트 2세, 기술프 1세, 아르치스를 낳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테우데라다는 바르바투스 주교와 함께 많은 랑고바르드인들에게 가톨릭을 전파했다. 로무알트 본인은 가톨릭 신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반 가톨릭 정책을 벌이지 않았다. 681년 사망한 뒤 큰아들 그리말트 2세가 베네벤토 공작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