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2-02 21:51:36

로버트 앤더슨

<colbgcolor=#003458><colcolor=#fff> 로버트 앤더슨
Robert Anderson
파일:1000143956.jpg
출생 1805년 6월 14일
켄터키주 루이빌
사망 1871년 10월 26일 (향년 66세)
프랑스 제3공화국 니스
학력 육군사관학교
복무 미국 육군
복무 기간 1825년 ~ 1863년
최종 계급 준장[1]
참전 인디언 전쟁
미국-멕시코 전쟁
남북전쟁
묘지 웨스트포인트 국립묘지

1. 개요2. 생애

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리처드 앤더슨 시니어의 아들로 태어났다. 1825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제3포병연대에 배치되었고 주콜롬비아대사인 형 리처드 앤더슨 주니어의 주재무관으로 있기도 했다. 1832년 블랙호크족과의 전쟁 당시 일리노이 의용군을 지휘했다. 1833년 중위로 진급하고 제2차 세미놀 전쟁 당시 윈필드 스콧의 참모로 있었다.

1841년 대위로 진급하고 멕시코 전쟁에서 세로고르도 전투, 베라크루스 포위전, 몰리노델레이 전투에 참가했다. 몰리노델레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고 전시계급 소령으로 진급했다. 1848년 포트 프레블에 배치되었고 1851년 포병 교리에 대해 연구했다. 1855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트렌턴의 국영철강공장 감독관으로 4년간 일했다. 1859년 소령으로 진급하고 제1포병연대에 배치되었다.

1860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섬터에 있는 찰스턴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 해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연방을 탈퇴하자 인근 요새인 섬터 요새의 지휘관이 되어 최전방을 경계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섬터 요새는 최초의 전투가 펼쳐졌다. 포격전위주로 전개되었고 큰 사상자 없이 하루 만에 항복하게 된다.

섬터 요새에서 저항으로 북군의 영웅이 되어 전시계급 준장으로 진급했다. 모병관으로 많은 병사들을 모집했으며 켄터키군관구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켄터키는 당시 중립 주였고 앤더슨 역시 군관구사령관으로 활동이 소극적이여서 5개월만에 해임되었다. 1863년 포트 애덤스의 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제대했다.

1865년 전쟁이 끝나자 에드윈 스탠턴의 명에 따라 군복을 입고 섬터 요새로 돌아와 국기를 계양했다. 육군사관학교동문회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1869년 저택을 팔고 프랑스로 이주했다. 1871년 프랑스에서 사망했으며 시신은 육군사관학교 내 묘지에 안장되었다.


[1] 전시계급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