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로저 카모이스 Roger Camoys | |
출생 | 1406년 | |
잉글랜드 왕국 서식스주 브로드워터 | ||
사망 | 1473년 | |
잉글랜드 왕국 칼레 | ||
아버지 | 토머스 카모이스 | |
어머니 | 엘리자베스 모티머 | |
아내 | 이사벨라, 이자벨 드 보누아 | |
직위 | 가스코뉴 세네샬, 카모이스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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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보르도 공방전을 이끌었으며, 장미 전쟁에 참여했다가 처형되었다.2. 생애
1406년경 잉글랜드 왕국 서식스주 브로드워터에서 카모이스 남작 토머스 카모이스와 제3대 마치 백작 에드먼드 모티머의 딸인 엘리자베스 모티머의 차남로 태어났다. 1427년경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436년 2차 칼레 공방전에서 포르트 드 불로뉴 다리를 사수하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선량공 필리프가 이끄는 부르고뉴군으로부터 칼레를 지켜내는 데 기여했다. 1443년 모종의 전투에 참여했다가 프랑스군에 사로잡혔다. 그의 아내 이사벨라는 남편의 몸값을 마련하는 데 곤경을 겪었고, 런던 시는 그녀를 돕기 위해 연간 40파운드의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의했다.이후 풀려난 뒤 잉글랜드로 돌아간 그는 1452년 존 탈보트의 가스코뉴 원정에 참여해 프랑스군에 점령되었던 보르도 등 서부 가스코뉴 일대를 탈환하는 데 기여했다. 1453년 7월 17일 카스티용 전투에서 존 탈보트가 전사하고 많은 잉글랜드군이 전사했지만, 그는 살아남은 병력을 규합해 보르도로 귀환했다. 1453년 9월 12일 가스코뉴의 세네샬로 추대된 뒤 프랑스군의 공세로부터 보르도를 지키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잉글랜드 왕실이 임명한 보르도 시장 헨리 레트퍼드와 함께 보르도, 리부른, 케딜락, 블랑크포르 요새의 방어를 조직했고, 프랑스와 협상을 벌이면서 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가능한 끌려 했다.
그 후 보르도를 포위한 프랑스군을 상대로 3개월간 악전고투했지만, 원군이 끝내 오지 않자 결국 10월 19일에 무기와 물품을 가지고 잉글랜드로 안전하게 돌아가는 조건하에 보르도를 넘겼다. 그렇게 잉글랜드로 돌아간 그는 1455년 장미 전쟁이 발발하자 헨리 6세에게 대적하는 솔즈베리 백작 리처드 네빌에게 맞서 싸우다가 생포되어 칼레로 보내졌다. 1473년, 헨리 6세를 꺾고 잉글랜드 국왕에 등극한 에드워드 4세는 칼레 지하 감옥에 오랫동안 수감되었던 그를 처형했다.
그는 혈통을 알 수 없는 이사벨라와 처음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했다. 1448년 교황청의 허락을 받고 정부였던 이자벨 드 보누아와 재혼했지만 역시 아이를 낳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