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4 10:18:32

팔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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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oPw4su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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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alx

고대 트라키아다키아 지방에서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는 도검. 팔스, 펄스라고도 읽는다.

2. 상세

칼날의 형태가 재현품들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처럼 칼끝이 밖으로 휘어지고 그 면에 칼날이 있는것이 특징이다. 이 특징을 보아 농사용 이나 공구가, 무기로 발전하면서 나타난 무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실제로도 후대에 나타난 워 사이드와 같이 무기화된 낫과 상당히 유사하게 생겼다 덤으로 칼이 길수록 동양의 검들을 연상케한다. 낫놓고 팔크스 모양도 모른다

보통은 양손검 형태가 가장 유명하지만 시카(Sica)라고 불리는 한손검의 형태도 존재했으며, 손잡이가 긴 언월도같이 생긴것도 있다.

롬파이아(Rhomphaia)라는 유사한 무기도 존재했는데, 보통 팔크스는 다키아에서, 롬파이아는 트라키아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차이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개 롬파이아보다 팔크스의 곡률이 더 높았다고 한다. 현대 매체에서는 롬파이아를 팔크스보다 더 위력이 높은 무기로 묘사하나[1], 두 무기 모두 표준화된게 아니고 곡률이나 크기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둘을 완벽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2]

다키아 전쟁 당시를 기점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당대의 묘사에 따르면 팔크스는 로마군의 스쿠툼이 일격에 쪼개질 정도의 위력이었다고 하며, 갑옷도 쉽게 뚫려버린데다가, 끝이 휘어져 있어 스쿠툼으로 막더라도 방패가 걸레짝이 되거나, 휘어진 날 부분이 안쪽으로 들어와 상해를 입을 수도 있었으며, 휘어진 날을 갈고리처럼 이용해 상대의 방패를 끌어당기기도 했었다고 한다.[3]

5현제 중 한 명인 트라야누스는 다키아인들을 심대한 위협으로 생각했고, 다키아 원정을 준비하면서 팔과 다리를 보호하는 장구를 추가로 생산해 병사들을 중무장시켰다. 갑옷은 손쉽게 뚫어버리고 스쿠툼마저 쪼갤 수 있는 팔크스의 위력에 이러한 장구들이 얼마나 높은 방어력을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원정은 성공적으로 끝나 다키아는 로마에 병합되었고 이후로 팔크스의 인상적인 활약상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방패를 쪼개버렸다는 워낙 인상적인 이야기를 남긴 무기인데다가, 그 독특한 형상 때문에 다키아 하면 대부분 이 무기를 떠올리며, 매체등에서도 다키아를 묘사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다만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들도 있는데, 실제 다키아 왕국이 로마군을 상대로 선전했던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팔크스의 존재가 아닌, 다키아군의 이례적인 선진성에 기반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시 다키아는 금은 및 철광이 풍부한 지역이었고, 덕분에 야만족의 왕국치고는 이례적인 정도로 무장의 질이 높았다. 당시의 야만족들은 철제 갑옷은 커녕, 철제 무기조차 제대로 보급하지 못해서 몽둥이를 쓰거나, 로마에게서 약탈한 무기나 전사들의 사비로 충당하며 싸웠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4] 게다가 무작정 돌격이 아닌, 체계적인 군기와 전술을 갖추고 있었던 것도 한 원인이 된다. 즉 다키아의 선전은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이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이지. 팔크스 하나 때문만은 아닌것.

또한 로마군은 적의 무기를 모방하고 습득하는 특성이 있었음에도 팔크스는 훗날 바랑인 친위대가 이와 비슷한 롬파이아를 사용했던걸 제외하면 사용한 기록이 존재하지가 않는데, 이는 로마군이 개개인의 무력을 중요하시하는 '전사'집단이 아닌 전우들과의 협동심, 진영 유지를 중요시하는 '군인'이였기 때문이다. 굳이 로마군에서는 방어력이 떨어지고 진영을 붕괴시킬수도 있는 팔크스를 채택할 이유가 없었던 것.

그러나 동서 분열 이후 로마군은 훨씬 유동적이고 기동력을 요구하는 전장에 맞춰 바뀌었기 때문에 바랑인 친위대가 롬파이아를 쓰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3. 대중매체에서

다키아하면 자동으로 떠올리게 되는 아이덴티티이다 보니 다키아가 등장하는 매체에서는 거의 항상 등장하는 무기다. 다만 다키아 자체가 그다지 인지도가 높은 국가가 아니다보니, 등장하는 매체의 수는 많지는 않은 편. 등장한다면 대부분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무기로 등장하나, 이를 사용하는 병사들이 갑옷 등을 갖추지 않고 헐벗은 채로 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어력 없이 공격에만 몰빵하는 병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1. 다잉 라이트

확장팩 DLC인 The Following에서 대낫(Scythe)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아이콘 UI도 대낫의 형상이라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은편. 게임상에선 카타나와 함께 최강의 근접무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2. 토탈 워 시리즈

3.2.1. 로마: 토탈 워

팔크스병이 존재하며 다키아와 트라키아 팩션이 공유하는 병과다.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만 갑옷을 입지 않은데다 웃통까지 벗고 있어 방어력이 전무하며 특히 원거리 무기에는 우수수 녹아내리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소속된 두 팩션 모두가 전체적으로 병종 풀이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플레이 시 쓸만한 몇 안되는 병과이다. 특히 최약체인 다키아의 경우 쓸만한 병종이 전무해서 오로지 이 유닛만으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한다.

3.2.2. 토탈 워: 로마2

전작과 달리 다키아에 해당하는 게타이 팩션은 팔크스를, 트라키아에 해당하는 오드리시아 왕국은 롬파이아를 사용한다. 팔크스병의 경우 명성에 비해 활용도가 낮은 편인데 갑옷을 전혀 입지 않아 투사무기에 취약하고 사기도 낮은 편인데다 근접 전투력 역시 낮은 생존성 때문에 돌격보너스 빼면 신뢰하기 어려워 정면 힘싸움보다는 측후면을 노리는 충격보병으로서 운용해야 한다. 반면 롬파이아를 사용하는 트라키아 전사대와 귀족병은 갑옷을 입고 방패도 갖추고 있어 정면대결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애초에 게타이는 강력한 중무장 보병진이 있기 때문에 팔크스병은 보조병과에 가깝지만, 보병진이 전무하다시피 한 오드리시아의 경우 롬파이아 병과를 주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팩션 간 컨셉 차이가 있는 셈. 하지만 게타이 역시 플레이 해보면 중보병진이 강하긴 해도 전부 창병이라 2% 부족하기 때문에 팔크스병은 필수로 운용해줘야 하는 병과가 된다.

3.2.3. 토탈 워: 아틸라

로마 2의 확장팩(?)이라는 별명답게 여기에서는 트라키아 지방에서 시작하는 (동, 서)고트족이 사용하며, 단순히 웃통 벗고(...) 돌격만 하는 팔크스 보병과 달리 좀더 생존력이 높은 트라키아 전사대와 타 팩션의 최정예 보병과도 버금가는 뛰어난 사기와 전투력을 가진 트라키아 서약병들도 이를 사용한다. 사르마티아 문화권 팩션인 알란도 대부분의 근접보병이 팔크스를 사용한다.

전작과는 달리 롬파이아는 등장하지 않는다.

3.3.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

바타니아 팩션이 사용하는 양손검으로 등장. 팔크스병이 들고 있으며, 숙련 팔크스병은 폴암으로 등장한 롬파이아를 사용한다. 바타니아 자체는 다키아보다는 켈트족이나 픽트족을 모티브로 한 국가이지만, 동시에 게르만족이나 다키아 등 여러 야만인들의 특성 또한 짬뽕되어있는 팩션인고로 팔크스와 롬파이아 또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가상의 세계관이므로 어느 정도 고증이 희생되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속도는 무난하지만 위에서 나온것처럼 특유의 똥파워를 자랑하는 무기이다. 특히 폴암버전은 말타고 사용하면 적들의 머리를 제대로 수확할수있다.


[1] 대표적인 예로 토탈워: 로마 2가 있다.[2] 현대에 와서 기술자가 재현한 롬파이아 중에서는 그 크기와 길이에서 무려 일본의 쌍수도인 오오타치에 필적할 만큼 크고 긴 종류도 있다. 다만 저렇게 크고 긴 롬파이아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절, 실제로 트라키아인들이 사용했을 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3] 당시 로마군이 팔크스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던 부위는 오른팔인데, 이는 다키아인들이 방패 옆으로 노출된 글라디우스를 든 오른팔을 집중적으로 노렸던 것. 또한 당시 로마군은 전술 특성상 딱히 팔 보호대를 차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막심했다. 팔크스의 막강한 화력에 치를 떤 트라야누스 시기의 로마군은 마치 그리스 호플리테스가 재림하기라도 한 듯 다시금 팔목 보호대와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해 방어력을 보강했을 정도였다. 다만 이런 보호장구는 다키아 원정이 종료된 뒤로는 다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비용 대비 방어 효과 문제부터 기동성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시 폐지된 듯 하다.[4] 게르만족은 물론, 사슬 갑옷을 널리 사용한 켈트족조차 갑옷 보급률이 생각보다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