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7 21:45:48

료운카쿠


파일:일본 국기.svg
역대 일본 최고층 마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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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0000> 1890년~1895년 <colbgcolor=#e6e6e6,#2d2f34> 료운카쿠 52 m / 12층
1890년 완공
도쿄도 다이토구
1895년~1923년 아사쿠사 화력 발전소 66 m / ?층
1895년 완공
도쿄도 다이토구
1926년~1964년 센쥬 화력 발전소 83.82 m / ?층
1926년 완공
도쿄도 아다치구
1964년 8월 일본 국회의사당 65 m / 9층
1936년 완공
도쿄도 치요다구
1964년~1968년 호텔 뉴 오타니 도쿄 72 m / 17층
1964년 완공
도쿄도 치요다구
1968년~1970년 카스미가세키 빌딩 156 m / 36층
1968년 완공
도쿄도 치요다구
1970년~1971년 도쿄 세계무역센터 163 m / 40층
1970년 완공
도쿄도 미나토구
1971년~1974년 게이오 플라자 호텔 178 m / 47층
1971년 완공
도쿄도 신주쿠구
1974년 신주쿠 스미토모 빌딩 210 m / 52층
1974년 완공
도쿄도 신주쿠구
1974년~1978년 신주쿠 미쓰이 빌딩 225 m / 55층
1974년 완공
도쿄도 신주쿠구
1978년~1991년 선샤인 60 240 m / 60층
1978년 완공
도쿄도 도시마구
1991년~1993년 도쿄도청 243 m / 48층
1991년 완공
도쿄도 신주쿠구
1993년~2014년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296 m / 70층
1993년 완공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2014년~2023년 아베노하루카스 300 m / 60층
2014년 완공
오사카부 아베노구
2023년~ 아자부다이 힐스 325 m / 64층
2023년 완공
도쿄도 미나토구
2027년~(예정) 토치타워 390 m / 63층
2027년 예정
도쿄도 치요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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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8080><colcolor=#fff> 료운카쿠
능운각
파일:료운카쿠 사진.jpg
위치 일본 도쿄 다이토구 아사쿠사
완공 1890년 11월 11일
파괴 1923년 (다이쇼 시대)
건축가 William K. Burton1856~1899
용도 8층까지는 수입품 판매점, 9층부터는 전망대

1. 개요2. 역사3.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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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료운카쿠(일본어: 凌雲閣) 료운카쿠는 일본 도쿄 아사쿠사 공원에 있었던 전망대였다. 1890년 메이지 시대 때 준공되어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되었으나,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반쯤 무너져 결국 철거되었다. '능운각'이란 이름은 '구름을 능가할 정도로 높다'는 의미다.

총 12층으로 구성된 건물이어서 '아사쿠사 12층'(浅草十二階)이라고도 불렀으며, 완공 당시에는 10층 이상의 건물이 드물었기 때문에 '십이층'(十二階)이라고만 부르기도 했다. 또 일본 최초로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2. 역사

1880년대 말, 메이지 20년대에 접어들던 일본에서는 높은 곳의 전망을 앞세운 망루 건축이 유행을 끌게 되면서, 1889년에는 오사카의 일본식 정원인 '유라쿠엔'(有楽園)에 9층짜리 료운가쿠(凌雲閣)가 처음 세워졌고, 이듬해 1890년에는 수도 도쿄에 똑같은 이름의 전망탑이 세워지게 되었다.

오늘날 료운카쿠 부지 일대는 아사쿠사 6구지구에 속해 건축물 건설 시 고도 제한을 받지만, 당시에는 아사쿠사 공원 바깥 동네인 '센조쿠초'(千束町)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아사쿠사 공원이 속한 제6구에서 적용되는 건물고도 제한에는 걸리지 않고 높게 지어도 상관이 없었다.
파일:료운카쿠 붕괴 전 사진.jpg 파일:료운카쿠 붕괴 사진.jpg
<colbgcolor=#808080> 붕괴 전의 모습 <colbgcolor=#808080> 붕괴 후의 모습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으로 료운카쿠의 8층 윗부분이 무너지고 화재도 발생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진 발생 당시 료운카쿠 꼭대기에는 열두세명 정도 되는 관람객이 있었는데, 근처 지상에 있던 후쿠스케 버선집 간판에 걸려 간신히 살아난 한 명을 빼고는 모두 붕괴에 휘말려 즉사했다. 이미 경영난으로 휘청이던 상황에서 복구하는 것은 버거웠기 때문에 재건은 포기하였고, 1923년 9월 23일 아카바네 공병대의 지원으로 두 차례에 걸쳐 폭파 해체됐다.

3. 정보

료운카쿠의 높이는 완공 당시만 해도 220척(66.7m)로 알려졌으나, 1921년 지진재해예방 조사위원회가 다시 조사한 결과 피뢰침까지 합한 높이가 173척으로 측정됐다. 다만 일본건축학회 정회원인 호리구치 진키치(堀口甚吉)가 196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해당 재조사 결과에 천장내부의 10~15척(약 3~4.5m), 입구 돌계단 높이 2척(약 0.6m), 피뢰침 높이 12척(3.6m)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자적하고, 거기에 건물 기초바닥 높이인 20척(약 6m)까지 더하면 당초 알려진 220척이 맞다고 밝히고 있다. 내부면적은 37평(122.31m2)이었으며, 10층까지는 벽돌구조, 11층과 12층은 목조였다고 한다.

1층은 입구로 쓰였고 2층부터 7층까지는 수입물품 판매점(점포수 46곳), 8층은 휴게실, 10층에서 12층은 전망실이었다. 1층부터 8층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으나 개업 당일부터 고장이 빈발하면서 1891년 5월에는 사용이 중지되고, 시공을 맡았던 도쿄전등과의 소송전이 진행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손님을 확보하기 위해 오르막 계단 벽면에 화류계에서 발탁된 게이샤들의 사진을 붙여 일본 최초의 미인대회인 '동경백미인'(東京百美人) 전이 열리기도 했다. 11층에는 5000촉(燭)의 아크등 2개가 걸렸으며, 이밖에도 각 층의 내부에는 3개의 전등을 두어 176개의 창을 통해 빛을 발했다. 10층에서 12층까지의 전망실에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료운카쿠의 입장료는 어른은 8전, 아이는 4전이었다(1전은 지금의 약 100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