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대 일본 최고층 마천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e0000> 1890년~1895년 | <colbgcolor=#e6e6e6,#2d2f34> 료운카쿠 | 52 m / 12층 1890년 완공 | 도쿄도 다이토구 |
1895년~1923년 | 아사쿠사 화력 발전소 | 66 m / ?층 1895년 완공 | 도쿄도 다이토구 | |
1926년~1964년 | 센쥬 화력 발전소 | 83.82 m / ?층 1926년 완공 | 도쿄도 아다치구 | |
1964년 8월 | 일본 국회의사당 | 65 m / 9층 1936년 완공 | 도쿄도 치요다구 | |
1964년~1968년 | 호텔 뉴 오타니 도쿄 | 72 m / 17층 1964년 완공 | 도쿄도 치요다구 | |
1968년~1970년 | 카스미가세키 빌딩 | 156 m / 36층 1968년 완공 | 도쿄도 치요다구 | |
1970년~1971년 | 도쿄 세계무역센터 | 163 m / 40층 1970년 완공 | 도쿄도 미나토구 | |
1971년~1974년 | 게이오 플라자 호텔 | 178 m / 47층 1971년 완공 | 도쿄도 신주쿠구 | |
1974년 | 신주쿠 스미토모 빌딩 | 210 m / 52층 1974년 완공 | 도쿄도 신주쿠구 | |
1974년~1978년 | 신주쿠 미쓰이 빌딩 | 225 m / 55층 1974년 완공 | 도쿄도 신주쿠구 | |
1978년~1991년 | 선샤인 60 | 240 m / 60층 1978년 완공 | 도쿄도 도시마구 | |
1991년~1993년 | 도쿄도청 | 243 m / 48층 1991년 완공 | 도쿄도 신주쿠구 | |
1993년~2014년 |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 296 m / 70층 1993년 완공 |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
2014년~2023년 | 아베노하루카스 | 300 m / 60층 2014년 완공 | 오사카부 아베노구 | |
2023년~ | 아자부다이 힐스 | 325 m / 64층 2023년 완공 | 도쿄도 미나토구 | |
2027년~(예정) | | 390 m / 63층 2027년 예정 | 도쿄도 치요다구 |
<colbgcolor=#808080><colcolor=#fff> 료운카쿠 능운각 | |
위치 | 일본 도쿄 다이토구 아사쿠사 |
완공 | 1890년 11월 11일 |
파괴 | 1923년 (다이쇼 시대) |
건축가 | William K. Burton1856~1899 |
용도 | 8층까지는 수입품 판매점, 9층부터는 전망대 |
[clearfix]
1. 개요
료운카쿠(일본어: 凌雲閣) 료운카쿠는 일본 도쿄 아사쿠사 공원에 있었던 전망대였다. 1890년 메이지 시대 때 준공되어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되었으나,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반쯤 무너져 결국 철거되었다. '능운각'이란 이름은 '구름을 능가할 정도로 높다'는 의미다.총 12층으로 구성된 건물이어서 '아사쿠사 12층'(浅草十二階)이라고도 불렀으며, 완공 당시에는 10층 이상의 건물이 드물었기 때문에 '십이층'(十二階)이라고만 부르기도 했다. 또 일본 최초로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2. 역사
1880년대 말, 메이지 20년대에 접어들던 일본에서는 높은 곳의 전망을 앞세운 망루 건축이 유행을 끌게 되면서, 1889년에는 오사카의 일본식 정원인 '유라쿠엔'(有楽園)에 9층짜리 료운가쿠(凌雲閣)가 처음 세워졌고, 이듬해 1890년에는 수도 도쿄에 똑같은 이름의 전망탑이 세워지게 되었다.오늘날 료운카쿠 부지 일대는 아사쿠사 6구지구에 속해 건축물 건설 시 고도 제한을 받지만, 당시에는 아사쿠사 공원 바깥 동네인 '센조쿠초'(千束町)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아사쿠사 공원이 속한 제6구에서 적용되는 건물고도 제한에는 걸리지 않고 높게 지어도 상관이 없었다.
| |
<colbgcolor=#808080> 붕괴 전의 모습 | <colbgcolor=#808080> 붕괴 후의 모습 |
3. 정보
료운카쿠의 높이는 완공 당시만 해도 220척(66.7m)로 알려졌으나, 1921년 지진재해예방 조사위원회가 다시 조사한 결과 피뢰침까지 합한 높이가 173척으로 측정됐다. 다만 일본건축학회 정회원인 호리구치 진키치(堀口甚吉)가 196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해당 재조사 결과에 천장내부의 10~15척(약 3~4.5m), 입구 돌계단 높이 2척(약 0.6m), 피뢰침 높이 12척(3.6m)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자적하고, 거기에 건물 기초바닥 높이인 20척(약 6m)까지 더하면 당초 알려진 220척이 맞다고 밝히고 있다. 내부면적은 37평(122.31m2)이었으며, 10층까지는 벽돌구조, 11층과 12층은 목조였다고 한다.1층은 입구로 쓰였고 2층부터 7층까지는 수입물품 판매점(점포수 46곳), 8층은 휴게실, 10층에서 12층은 전망실이었다. 1층부터 8층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으나 개업 당일부터 고장이 빈발하면서 1891년 5월에는 사용이 중지되고, 시공을 맡았던 도쿄전등과의 소송전이 진행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손님을 확보하기 위해 오르막 계단 벽면에 화류계에서 발탁된 게이샤들의 사진을 붙여 일본 최초의 미인대회인 '동경백미인'(東京百美人) 전이 열리기도 했다. 11층에는 5000촉(燭)의 아크등 2개가 걸렸으며, 이밖에도 각 층의 내부에는 3개의 전등을 두어 176개의 창을 통해 빛을 발했다. 10층에서 12층까지의 전망실에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료운카쿠의 입장료는 어른은 8전, 아이는 4전이었다(1전은 지금의 약 100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