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08:17:50

루이스 월트

제12대 미합중국 해병대부사령관
루이스 월트
Lewis Walt
파일:1000041737.jpg
본명 루이스 윌리엄 월트
Lewis William Walt
출생 1913년 2월 16일
미국 캔자스주 와바운시 카운티
사망 1989년 3월 26일 (향년 76세)
미국 미시시피주 걸프포트
복무 콜로라도 주방위군
미합중국 해병대
최종 계급 대장
복무 기간 1930 ~ 1936(주방위군)
1936 ~ 1971
학력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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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캔자스주 와바운시 카운티에서 태어났고 콜로라도주 포트 콜린스에서 성장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해 학군단에 입단하고 레슬링부, 미식축구부 주장을 역임했다. 1930년 졸업하고 콜로라도 주방위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6년 뒤 해병대교육단에 입교해 해병 소위로 임관해 샌디에이고에 있는 제6해병연대 기관총 소대장으로 임무를 시작했다.

이후 상하이, 샌디에이고, 괌, 마리아나 제도에서 복무했으며 1941년 대위로 진급했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미합중국 해병레이더스 제1대대에 자원해 A중대장으로 부임해 사모아에 도착 후 훈련을 받고 툴라기 섬에 상륙해 전투를 치러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제5해병연대 2대대 중대장으로 임명되어 과달카날 전역에 참가했고 1942년 9월 소령으로 진급했다. 1달 뒤 전투 중 총상을 입었지만 전투를 지휘해 공을 세워 중령으로 진급했다.

1943년 글로스터 곶 전투에서 3대대장으로 치열했던 전투였던 아오기리 능선 전투에서 공을 세워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지휘관이였던 르무엘 셰퍼드는 그의 공을 기려 아오기리 능선에서 월트 능선으로 이름을 바꿨다. 1944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있는 해군병원에서 요양하다가 태평양 전선에 복귀했고 펠렐리우 전투에서 전투를 치렀다. 야습을 감행해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며 두 번째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해병대교육단에서 교관을 맡던 중 종전을 맞이했다.

1947년 캠프 펜들턴에서 작전참모를 맡았고 괌에서 복무하다가 상륙학교 전술교관을 맡았다. 이후 작전참모를 맡다가 1951년 대령으로 진급했다. 1952년 11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있던 한국으로 왔고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장에 임명되어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전투이후 치열한 전투를 치른 네바다 전초 전투[1]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훈공장, 동성훈장, 은성훈장과 한국의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해병대교육단에서 복무하다가 국방전쟁대학를 수료했고 합동참모본부에서 복무했다. 1962년 준장으로 진급했고 제2해병사단 부사단장으로 복무했으며 해병대교육단 상륙군연구센터에 재직했다.

1965년 소장으로 진급 후 베트남 전쟁당시 제3상륙군 제3사단장으로 남베트남에 투입되었으며 남베트남군 제1군단의 고문단장으로 있었다. 1년 뒤 중장으로 진급했다. 계속 베트남에서 복무하며 전투를 치르고 전술발전에 기여하며 해군수훈장을 수여받았다.

1968년 해병대사령부로 옮겼고 1969년 4월 대장으로 진급했다. 2달 뒤 해병대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타이완을 방문해 방어태세를 확인했다. 1971년 퇴역했다. 퇴역 후 마약밀매 조사를 담당하는 부서어 있었으며 회고록을 작성하다가 1989년 사망했다.


[1] 군마인 레클리스가 활약한 전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