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雲龍
1539년 8월 6일 ~ 1601년 3월 5일 (향년 61세)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득(而得) → 응현(應見), 호는 겸암(謙菴). 류성룡의 형이다.2. 생애
1539년 8월 6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풍남면 하회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아버지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 1515.1.12. ~ 1573.7.13.)[1]과 어머니 구 안동 김씨(1512.1.26. ~ 1601.8.21.)[2]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3] 아버지 류중영은 1540년(중종 35) 식년 문과에 병과 제23인으로 급제하여[4]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일찍이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경사를 동독함으로서 사문의 촉망을 받았다. 조선 선조 때 음관으로 출사하여 전함사 별좌로 첫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지방관 시절 백성들을 어질게 다스려 존경을 받았다. 1593년(선조 26) 풍기군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