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4:57:42

르네 슈나이더

<colbgcolor=#0032a9><colcolor=#fff> 르네 슈나이더 셰로
René Schneider Chereau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출생 1913년 12월 31일
칠레 콘셉시온
사망 1970년 10월 25일 (향년 56세)
칠레 산티아고
학력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육군사관학교 (졸업)
군사 경력
복무 기간 칠레 육군
1930년 ~ 1970년
최종계급 대장(General de Ejécito)

1. 개요2. 생애3. 슈나이더 독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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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레의 군인.

2. 생애

1913년 칠레의 콘셉시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빅토르 슈나이더(Víctor Schneider)는 독일계 칠레인으로, 어머니 엘리사 셰로 로베르(Elisa Chereau Robert)는 프랑스계 이민자의 후손이었다.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30년 소위로 임관했다. 1941부터 1944년까지 훈련교관으로 복무했고 이후 중위로 제2보병연대에서 복무했다. 1951년 소령으로 진급했다. 1953년 워싱턴 D.C.로 파견되었다. 1956년 육군사관학교로 복귀하고 1957년 중령이 되었다.

1963년 칠레 제18보병연대의 연대장으로 복무했으며 1967년 육군사관학교장을 지냈고 1968년 준장으로 진급했다. 1969년 세르히오 카스티요 아란기스 육군참모총장이 사임하면서 당시 대통령인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에 의해 후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1969년 당시 칠레에서는 로베르토 비오가 10월 21일 쿠데타를 기획하고 있었고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 이후로는 살바도르 아옌데에 대한 쿠데타도 기획하고 있었다.

비오는 그 일환으로 슈나이더에 대한 납치를 기도했는데 10월 16일과 10월 19일 납치시도를 벌였고 10월 22일 세 번째 납치 시도에서 비오를 따르는 군인들이 슈나이더를 습격했다. 슈나이더는 이 과정에서 총상을 여러 차례 맞았고 군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총상이 심해져서 10월 25일 사망했다.

3. 슈나이더 독트린

르네 슈나이더는 1970년 7월 23일 참모총장 회의에서 군대가 정치 시스템의 정기적인 작동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며, 방어 목적 외의 다른 목적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반역죄에 해당한다며 군부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강조하는 슈나이더 독트린을 발표하기도 했다. 슈나이더 독트린은 10월 25일 슈나이더의 죽음 이후 카를로스 프라츠가 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영향을 끼쳤고 아옌데는 슈나이더 독트린을 군부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카를로스 프라츠는 1973년 사임했고 그의 후임으로 당시 육군참모차장이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