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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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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리리
| Lili
파일:lilipanda.png
출생 1992년 9월 3일 ([age(1992-09-03)]세)
중국 쓰촨성 청두시 청두(成都) 자이언트판다 번식 연구기지
거주지 중국 쓰촨성 청두시 청두(成都) 자이언트판다 번식 연구기지[1]
성별 암컷
고유번호 387
자이언트판다
가족 부친 촨촨(川川) , 모친 칭칭(庆庆)
쌍둥이 여동생 야야(娅娅)
장녀 얄리(雅莉) 차녀 웬리(文莉) 삼녀 아일리(艾莉)[2]
장남 오레오(奥利奥)[3][4]
사육 담당 강철원[5]

1. 개요2. 생애
2.1.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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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리(莉莉)는 암컷 판다이다. 1994년 최초로 대한민국에 온 자이언트판다로서, 4년간 대한민국에서 사육되다가 1999년 2월 중국으로 돌아갔다. 판다 고유번호는 387번.

2. 생애

1992년 9월 3일 아빠 촨촨(川川) ,엄마 칭칭(庆庆)의 쌍둥이딸로 태어났다. 쌍둥이 자매는 야야이다.

1993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은 한국에 양국 우의의 상징으로 판다 임대를 허가했고 1994년 9월 23일 수컷 밍밍과 함께 당시 용인자연농원 (현재 에버랜드)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해 10월 8일부터 판다월드에서 일반공개가 시작되어, 대한민국 국민들도 판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때도 강철원이 사육을 담당하였다. 당시 영상

이때도 자연농원 판다월드 개장은 매우 성대했으며, 마침 방한중이었던 리펑 중국 총리내외도 방문했을 정도로 중국측도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당시도 판다월드는 하루 2시간 밖에 개장을 안했지만 하루에 만명 이상이 찾아올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강철원 사육사를 비롯한 자연농원 측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판다를 번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다. 1996년 5월 31일에는 판다 결혼식까지 열어주었다. 1995년 중앙일보 기사 판다결혼식(MBC) 1996년 5월 31일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밍밍이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었기에 번식에 실패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판다의 호르몬 농도 변화로 발정기를 알아내 적시에 교미를 시키는 방법이 개발된 것은 1997년이었다. 중국 판다 보호 당국은 판다보호를 위해 연구를 시작한지 거의 10년이 다 된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판다에게 채혈 훈련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사육판다는 이렇게 수시로 채혈할 수 있게 되었다.[6] 강철원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에는 리리와 밍밍의 건강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관찰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호르몬 변화를 감지해 발정기에만 합사시키는 아이바오, 러바오와는 달리 당시에는 밍밍과 리리를 한 우리에서 키우며 서로 교미하기를 기다리는 원시적인 방법을 썼다. 이런 사육방법은 당시에 외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나, 판다들은 아무리 암수라도 동거를 싫어하기에 난투극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현재는 단독사육이 기본이다. 하물며 밍밍과 리리는 모두 여자이니 새끼가 생길리가 없었고, 난데없는 동거생활에는둘 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잦은 병치레를 했다고 한다.[7]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임대료가 부담되고,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하는 판에 거액의 임대료를 계속 내는게 옳으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여론에 부담된 에버랜드 측은 중국측에 판다 임대 종료를 통보했고, 계약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5년만인 1999년 2월 중국으로 돌아가서 청두 동물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강철원의 회고에 의하면 배웅하는 사람은 강사육사 혼자뿐이었고, 판다들은 겨울에 쓸쓸하게 대한민국을 떠났다고 한다.[8]

중국으로 돌아가서 2001년 짝짓기를 하고 잉태했는데, 쌍둥이(선선, 아오아오)를 출산했으나 둘다 바로 폐사해버렸다. 2004년, 2007년 모두 임신했으나 이때도 출산에 이르지 못하고 유산하든지 사산했다.

이렇게 계속 출산에 실패했지만, 2009년 시도에서는 쌍둥이 암컷 얄리(雅莉)와 웬리(文莉)를 출산했다. 이 판다들은 쓰촨성 대지진이후 출산한 첫번째 판다라고 한다. 이후 2011년에는 암컷 아일리(艾莉)를 출산했고, 2012년에는 수컷 오레오(奥利奥)를 출산했다. 중국 판다 보호 당국은 리리의 모성애가 매우 강한 것에 착안하여, 오레오뿐만 아니라 비슷한 연배의 아기 판다들인 먀오먀오(淼淼), 청솽(成双), 청두이(成对), 위안룬(圆润)을 리리에게 돌보게 했고, 리리는 훌륭하게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다른 네 마리 판다를 키우는 임무를 완수해서 나름 유명한 판다개체가 되었다. 상하이의 팬클럽에서 생일축하를 해주러 청두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2016년 24세에 청두동물원 근무에서 은퇴했고 일반공개를 종료했다.

잘생긴 판다로 유명했기 때문에 2018년에는 청두 동물원의 스폰서인 한 화장품회사의 홍보대사를 맡았다.

2022년 청두 판다 번식기지로 옮겨 여생을 보내고 있다. 2024년 32살인데, 사람의 나이로 치면 100살이 넘는 나이라고 한다. 2024년 4월 17일 근황#1 #2

2.1. 기타

  • 강철원 사육사가 2016년 러바오, 아이바오를 인수하러 중국에 갔을 때 18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9] 당시 청두 동물원에 있던 리리가 강철원 사육사를 알아봤다고 한다. 이 당시 리리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거의 70대에 가까운 나이였다. 이 때문에 중국 관계자들이 강철원은 과연 판다 아버지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감탄을 했다고 한다. 중국 판다 보호 당국은 특정 사육사와 특정 개체가 지나치게 가까워져서 야성을 잃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담당 사육사를 순환근무시키기 때문에, 아마도 한국에서 4년간 돌본 강사육사가 리리를 가장 오래 담당했을 것이며, 더구나 막 사춘기를 벗어난 시절 담당했기 때문에 헤어진지 오래였어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 굉장히 말년복을 받은 판다인데, 어렸을 때 유산과 사산을 많이 했지만, 암컷으로서 자손도 많이 남기고 (4마리), 이름도 알려져 팬클럽도 있는데다가, 31살이라는 나이로 장수하고 있다. 게다가 장년의 나이이지만 청년기의 판다같다는 평을 많이 받을 정도로 동안이다.
  • 한국에 같이 왔던 수컷 밍밍(중국명 촨싱<川星>)은 이후 암컷으로 판정되었다. 중국 측도 10살이 다된 2001년 이후에야 제대로 된 성별을 알았다고 한다. 밍밍은 1992년 7월 18일생으로 충칭동물원에서 태어났고, 판다 고유번호는 385번이다. 밍밍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특히 간이 나빠서 한국에 근무할 때부터 계속 중국의 수의사들이 자연농원에 출장와서 밍밍의 건강을 돌봤을 정도였다. 밍밍의 질병과 치료에 대한 과정이 논문으로 발표되었을 정도로 병을 달고 살았다. #一例大熊猫肝功能障碍的诊断与治疗(판다의 간기능 장애의 진단 및 치료 사례). 밍밍은 귀국후 잠시 판다기지에 머물렀다가, 다시 고향인 충칭동물원에 2002년부터 근무하기 시작했고 2006년부터 충칭동물원측은 숫놈 룽싱과 짝짓기를 시도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았은지 번식도 못하고 2015년 조기은퇴하여 쓰촨으로 돌아가 두장옌 기지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2016년 초반에 폐사하였다. 판다피아 밍밍 정보
  • 리리는 특별한 모성으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리리의 엄마 칭칭(1984-2023)이 13마리를 낳을 정도로 다산판다이자 39세까지 생존한 초장수 판다였기 때문에 엄마로부터 유전된 것으로 보인다. 칭칭은 그 딸 야야(1990~)와 함께 출산수 13마리의 최대출산 기록을 세운 판다이다.


[1] 1994년부터 1998년 2월까지(약 4년) 대한민국 에버랜드에서 거주하였다.[2] 허화의 쌍둥이 여동생 허예를 양육했다.[3] 유명한 과자 중 하나인 오레오 맞다. 이름은 미국의 변호사 레베카 레비치의 아이디어로, 판다의 무늬가 오레오 과자와 비슷한데다, 판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라 생각하여 그리스어로 아름답다는 의미를 가진 오레오를 붙힌 것이라 한다.#[4] 2012년 7월 28일 출생으로, 러바오와 생년월일이 같다.[5] 한국 체류 기간(1994.10 ~ 1999.02) 동안[6] 에버랜드가 배포한 유튜브를 보면 푸바오도 계속 이렇게 훈련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방법 이전에는, 맹수인 판다의 채혈을 위해서는 마취밖에 방법이 없었다.[7] 판다 생태에 대한 연구가 거의 안되어 있던 시기인 1970-80년대에 외국으로 나간 판다들도 대부분 이렇게 같이 살다가 스트레스 때문에 몇년 안에 모두 폐사하곤 했다.[8] 1999년 판다가 떠나고 판다월드가 없어진 사실조차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나 그밖의 뉴스 아카이브에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쓸쓸하게 떠났다.[9] 당시 관계자들과 함께 중국에 체류 하였을 때 리리가 청두 동물원에 있다는 사실을 전달 받아 해당 동물원에 방문하였다. 이때 리리는 방사장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강철원 사육사가 이름을 부르자 갑자기 사육사를 향해 뚜벅뚜벅 오더니 알아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