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인.2. 생애
1929년 5월 15일에 출생했다.1969년 8월,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을 거쳐 황해북도 책임비서에 임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73년 4월, 황해북도 인민위원장 겸임이 확인되었고, 9월에 황북 책임비서에서 해임, 1973년 10월, 로동신문 책임주필에 임명되었다. 부총리로 조동된 정준기의 후임으로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로동신문 책임주필 임명에 따라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장도 겸하였으며 1975년 1월에 이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다가 1975년 12월 10일, 로동신문 책임주필에서 해임되어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이라크 대사로 파견되었다. 이때 김기남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으로 보인다. 1980년 2월 24일, 사담 후세인과 작별방문을 가진 후에 귀국, 1980년 7월에 청진시 인민위원장 임명이 확인되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청진시 인민위원장 자격으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1982년 4월, 최고인민회의 7기 1차 회의에서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다. 1983년 4월, 최고인민회의 7기 3차 회의에서 부주석으로 조동된 림춘추의 후임으로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에 임명,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3년 9월, 김일대 장의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1984년 1월, 최고인민회의 7기 3차 회의에서 김이훈에게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 자리를 물려주고 소환되었다.
하지만 다른 직무를 받았는지 1984년 11월, 김만금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5년 11월 19일, 정치국-중앙인민위원회 연합회의에서 다시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86년 4월, 천세봉 장의위원을 지냈다. #
하지만 1986년, 8기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탈락, 지창익에게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 자리를 물려주고 해임되었다. 이후 김일성 장의위원, 오진우 장의위원에도 탈락한 것을 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서도 확실히 소환되었다.
이후 조선-코스타리카 친선협회 위원장 등 명예직을 지내다가 2000년 3월 21일에 조용히 사망, 애국렬사릉에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