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arita Louis-Dreyfus
1962년 7월 1일 ~ ([age(1962-07-01)]세)
1. 개요
러시아 태생의 스위스 국적을 가진 억만장자이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전 구단주.2. 생애
소련의 상트페테르부르크[1]에서 태어나 7살 때 열차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화학공학자였던 할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 이후 당시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한참이던 러시아를 18살 때 떠나 스위스에 정착해 무역회사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삶을 바꿔 놓은 운명적인 만남은 그녀가 27살이던 1989년에 일어났다. 취리히에서 런던으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미국의 ADM, 번지(Bunge), 카길(Cargill)과 함께 세계 곡물 시장을 지배하는 ABCD라 불리며 곡물 메이저를 이루고 있는 프랑스 루이 드레퓌스 컴퍼니의 회장이던 로베르 루이 드레퓌스 회장을 만났고 둘 사이에서 사랑에 빠진지 3년 후 둘은 결혼에 골인해 자녀를 셋이나 낳았다. 허나 2009년에 남편 로베르 루이 드레퓌스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삶의 방식을 바꿔야 했다. 재벌 총수의 아내에서 그 스스로 남편의 뒤를 이어 루이 드레퓌스를 이끄는 재벌 총수가 된 것.루이 드레퓌스 컴퍼니는 곡물 메이저로 전세계 농작물을 중개할 뿐만 아니라, 비철금속,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 등의 에너지 분야, 상업용 건물과 리조트 등의 부동산 분야 등에도 손을 대는 거대 재벌이다. 2015년 기준 연매출이 550억 달러이고, 시가 총액이 200억 달러에 육박한다. 덕분에 마르가리타는 프랑스 부자 순위 7위, 프랑스 여자 부자 순위로는 로레알 그룹의 릴리안 베탕쿠르에 이어 2위에 랭크되고 있다.
2.1. 구단주 시절
2009년 남편 로베르 루이드레퓌스[2]가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재산을 아내인 마르가리타가 상속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마르세유의 구단주가 되었다. 그래도 꾸준히 구단에 지원을 해주는게 뒤늦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공교롭게도 로베르의 사후 1년 만에 마르세유는 19년 만의 리그앙 우승을 달성, 챔스에서도 상당히 선전하는 등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그 당시 활약했던 주축 선수들을 줄줄이 다른 구단으로 팔아버리게 하였는데, 구단에 들어온 유망주들도 빅 클럽으로 다시 떠나고 주전급 선수들도 줄어들면서 점점 스쿼드의 빈약화가 이루어졌다. 물론 마르세유의 상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단순히 마르세유의 재정에 문제가 있어서 마르세유가 주축 선수들을 다 팔아제끼는구나 싶겠지만, 사실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구단주였기에 재정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즉, 마르가리타 그녀 자체가 축구에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기 때문에 마르세유가 처참하게 몰락하고 만것이다. 그녀가 구단주가 되기 전에는 그녀의 남편 로베르가 구단주였는데, 그는 전직 아디다스의 CEO였으며 CEO였을 당시인 1996년에 승부조작으로 인해 2부 리그로 떨어진 마르세유를 사들이면서 구단주가 되었다. 축구와 마르세유에 대단한 애정을 가진 그는 아낌없이 마르세유를 지원하였으며, 그 결과 마르세유를 2부 리그에서 승격시키더니 그의 전폭적인 지지는 마르세유를 다시금 강호로 도약 해주는 발판이 되었다. 관심이 있으니 그만큼 투자를 하게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적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게 될 수 있었던 것. 그렇지만 로베르 사후 마르세유가 아내에게로 넘어 갔고, 이 결과로 재정에 문제가 없었던 마르세유는 투자가 줄어들자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결국 2009-10 시즌에 리그 우승을 끝으로 아직 통산 리그 10회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였고, 그렇게 로베르의 공백이 점점 느껴지면서 6년 간 끊임 없이 성적이 곤두박질 치고만다.그래도 그 동안은 꾸역꾸역 버티기라도 했지만 15-16 시즌은 그냥 몰락하고 말았다. FA가 되자 스완지로 떠난 앙드레 아예우를 시작으로, 모렐은 라이벌 리옹으로, 지냑은
그리고 34라운드까지 8승 16무 10패를 거두며 승률이 25%까지 내려앉고 말았다. 이것은 1999/2000 시즌 이후로 처음[3]이며, 리그에서 가장 무승부가 많다는 점도 불안요소로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강등권과의 승점차는 단 6점, 자칫하면 22년만에 2부리그에서 뛰게 되는 치욕을 받게 생겼다.
결국 리그 홈경기때 홈 팬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맹비난했다. "집에나 가서 밥이나 해라, 이 아줌마!"라는 뜻.[4]
그러나 귀신 같이 2승 2무를 거두면서 13위로 도약, 중위권에 안착하면서 강등은 면하게 됐다.
투자는 안하고 비싸게 팔 궁리만 하는 무능한 보드진 때문에 마르세유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선수들까지 전 소속팀에서 엄청 못한 선수들만 임대 등으로 영입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시즌도 두 자릿수 순위에 머무를 예정이다.[5]
풋볼 매니저에서 이 사람이 엄청난 확률로 구단을 그냥 팔아버린다. 선수 영입도 더럽게 못하는 편. 하지만 구단을 인수하려는 사업가들이 실패를 연달아서 하기에 보는 사람을 눈물짓게 한다.
그리고 2016년 8월 구단주 직에서 사임했다. 프랭크 맥코트라는 미국 사업가에게 구단주 자리가 넘어갔다.[6] 결국 그의 구단주 시절 행적은, 사실상 마르세유의 팬들에게 베르나르 타피에 이은 마르세유의 최대 금지어로 남아버렸다.[7][8]
3. 여담
- 1997년생 아들인 키릴은 잉글랜드 풋볼리그의 승인을 받아 2021년 2월 18일에 정식으로 선덜랜드 AFC의 주주가 되었다. 어머니와는 달리 태생부터 축구광이라 투자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하고 있는 모양. 선덜랜드의 지분을 구입하게 된 계기부터 자신이 인수를 할만한 여러 구단을 물색하다가 선덜랜드 AFC의 축구단 역사에 매료가 되어서 선택한 것이였고, 자신의 어머니가 축구단을 지나치게 비즈니스적으로 대하는 것을 싫어해서 본인이 직접 축구단을 운영하고 싶은 욕심이 강했다고 한다. 다만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지분 인수 이후 서포터들 사이에서 말이 좀 나오기도 했었는데, 이에 대해 키릴 본인이 직접 서포터들에게 사과하고 본인이 구단의 의장직을 수행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뒤 EFL 챔피언십으로 팀을 재승격시키는 성과 등을 보여준 후에는 민심이 상당히 좋아진 편이다.
4. 관련 문서
[1] 당시는 레닌그라드.[2] 미국의 여배우 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가 그의 7촌 조카이다. 로베르의 할아버지가 줄리아의 증조할아버지의 형이다.[3] 이땐 리그 앙의 참가팀 수가 18팀이라서 34라운드가 최종라운드 였다. 이 시즌에 마르세유가 거둔 성적이 9승 15무 10패로 승률이 25% 밖에 안 됐다. 그럼에도 강등은 안된 이유가 강등권 팀인 낭시와 승점이 같았으나 득실에서 겨우 앞서 다행히 최악의 사태만은 면할 수가 있었다.[4] 결국 구단주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200여명의 팬들은 경찰들의 강제 해산조치로 흩어졌다.[5] 떠난 선수들로는 주전 골키퍼인 망당다, 수비 중심 은쿨루, 그나마 공격에서 사람 구실 해주던비추아이가 떠나버렸는데 이를 매우기 위해 스완지에서 삽을 푸던 고미스 등 그저그런 선수들만 영입했다.[6] 이혼 소송에 따른 구단 지분 문제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잠시나마 거지 구단으로 만들어놓으며 금지어로 등극하고 나갔던 그 분 맞다.[7] 구단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남편과는 다르게 마르가리타는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보니 투자를 안하고 투자도 줄어들게 되면서 마르세유가 빌빌 거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선수들도 팔아버리고 팀의 영구결번의 주인인 마티유 발부에나도 못 잡는 등 무능한 보드진 때문에 팀을 나락으로 떨어트려 버렸다. 결국 리그 홈경기 때 홈팬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맹비난했을 정도로 마르세유 팬들에겐 금지어 확정.[8] 반면 타피는 구단에 거액을 투자하여 챔스 우승까지 이끄는 공적이 있지만 승부조작으로 그 좋던 명성을 날려버려 금지어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