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5-26 12:04:53

마리 당티에르



1. 개요2. 생애


Marie Dentière (1495 ~ 1561)

1. 개요

프랑스 투르네[1] 귀족 가문 출신의 여성 종교 개혁가[2]

2. 생애

아우구스티누스 수녀원에서 활동하던 그녀는 마르틴 루터가 교회와 대적할 즈음에 개신교로 개종하고 수녀로서의 직위를 포기하여 수도원을 나왔다. 그녀는 스트라스부르로 피신하고, 그 곳에서 시몽 로베르와 혼인하여 5명의 자녀를 두었다.

마리 당티에르는 장 칼뱅이 있는 제네바로 향하였는데, 5년 후인 1533년에 시몽 로베르가 사망하였다. 마리 당티에르는 제네바에서 활동하던 중에 기욤 파렐과 함께 일하던 앙투안 프로망과 혼인하였다.

당티에르는 여성의 몸으로 선술집이나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여성의 설교를 인정하던 장 칼뱅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설교를 하는 당티에르와 갈등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티에르는 여성들에게 차별을 극복하여 목소리를 낼 것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그녀가 남긴 소책자 <편지>에는 그녀의 사상과 주장이 담겨있다.
[1] 현재 벨기에 도시[2] 관점에 따라서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