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만주키치 2012-20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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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챔피언스리그 결승 첫 득점 당시 | |
소속팀 | <colbgcolor=#ffffff,#191919>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
등번호 | 9 |
기록 | |
| 54경기 33득점 9도움 |
20경기 6득점 4도움 | |
| 9경기 7득점 1도움 |
| 2경기 1득점 |
| 1경기 |
| 2경기 1득점 |
합산 성적 | |
88경기 44득점 18도움 |
1. 개요
마리오 만주키치의 FC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이다.2. 이적
유로 2012에서 3골을 넣는 등 대박을 친 덕인지, 분데스리가의 No.1 클럽인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등번호도 간판 스트라이커의 번호인 9번을 받았다.3.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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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에 펼쳐진 슈퍼컵 경기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선발출전하여 4-2-3-1 전형으로 나섰고, 도르트문트는 대부분의 전력이 출장했다. 도르트문트의 효율적인 전방압박에 고전했으나 프랑크 리베리의 환상적인 롱패스를 만주키치가 놓치지않고 선제골로 연결한데다[1] 역습 상황에서 아르연 로번의 역습으로 뮐러가 추가골을 넣으면서 순식간에 2대0이 되며 승부가 갈렸다. 후반전에 레반도프스키의 땅볼슛으로 만회골을 넣었으나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끝내 바이에른은 도르트문트 전 5연패의 사슬을 끊은 중요한 2대1 승리를 챙기며 유프 하인케스 감독 부임 후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8월 20일 포칼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4대0 승리를 이끌었으며, 5일 뒤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는 SpVgg 그로이터 퓌르트를 상대로 1대0으로 앞서던 상황에 로번의 활약에 헤더로 팀의 두 번째 골을 집어넣었다. 팀도 3:0 승리를 거두었다.
9월 3일에 펼쳐진 리그 2라운드 슈투트가르트전에서는 팀이 3대1로 앞선채로 전반을 마친 상황에서 후반전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사카이의 삽질을 크로스가 뺏어내었고 이것이 만주키치의 추가골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6:1이라는 무자비한 스코어로 승리를 거두었다.
9월 15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3라운드 마인츠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시작하자마자 주장 필립 람이 상대 진영에서 뺏은 공을 토마스 뮐러에게 연결했고, 뮐러의 크로스를 만주키치가 받아먹으며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팀도 3대0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만주키치는 뮌헨 소속으로 첫 5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달성했다.[2]
9월 26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5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는 1:0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후반 12분 세르단 샤키리가 나우두와의 경합을 이겨내고 왼쪽측면을 뚫으며 만주키치가 헤더 골을 만들었고, 불과 8분 뒤 필립 람의 크로스에 이어 만주키치가 또 헤더 골을 넣었다.
9월 29일에 펼쳐진 리그 6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에서는 단테의 헤더 골이 애매한 옵사이드 판정에 취소되고 리베리의 슛이 골대를 때리는 등 똥줄타는 경기를 하다가 후반 막판 구스타보가 환상적인 칩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켰고, 불과 2분 뒤 상대 코너킥 상황에서 환상적인 팀워크 역습의 진수를 보여주며 만주키치가 추가골을 기록, 2대0으로 승리했다.
이후 10월 20일에 열린 리그 8라운드 경기에서 슈퍼컵에서의 선제골과 흡사하게 리베리의 아웃프런트 패스를 만주키치가 슬라이딩 골로 연결시키며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5대0 완승을 이끌어내었다.
11월 17일에 펼쳐진 리그 12라운드 뉘른베르크전에서 선발출전하여 시작하자마자 환상적인 팀플레이에 이은 토니 크로스의 패스를 만주키치가 받아먹으며 선제골을 넣은데다 경기내내 압도하지만, 마르쿠스 폴너의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중거리슛이 시야가 가려진 노이어가 뒤늦게 대처하려다 어이없이 먹히며 무재배를 거두고 말았다.
후반기 첫 경기였던 2013년 1월 19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18라운드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와의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하여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기분좋게 후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어서 리그 19라운드, 20라운드 경기에서 각각 1골과 2골을 기록하면서 후반기 첫 리그 3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는 등 전반기 막판에 주춤하던 득점 페이스가 다시 불이 붙고 있는 중이다.
2013년 2월 17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22라운드 볼프스부르크 원정 경기에서도 한 골을 집어넣으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현재까지를 기준으로 바이에른의 주전 공격수로서, 리그에서 총 19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하면서 분데스리가 득점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팀의 승점 15점차의 독주 질주에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3] 게다가 이 상승세를 아스날과의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 3-1 관광을 보내주면서 제대로 증명했다. 만주키치 본인도 선발로 출전해 후반 막판 람의 크로스를 환상적인 뒷발 칩샷으로 원더골로 넣으면서 선전했다.
골을 결정짓는 능력이나 파워는 경쟁자 고메스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연계, 전방 압박과 수비 가담, 포스트플레이로 바이에른의 물 흐르는 듯한 공격 전개의 숨은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유벤투스전 만주키치의 퍼포먼스는 인구에 회자되는 퍼포먼스이다. 이 당시 빌드업의 핵심인 피를로와 보누치를 만주키치가 몸싸움과 기민한 압박능력을 통해서 삭제시키는 퍼포먼스는 두 말할 필요없이 꼭 봐야 하는 퍼포먼스일 정도다.
팀은 역대급 시즌을 보내 트레블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5월 26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전반전에서는 거센 압박에 의해 공을 거의 잡아보지 못했으나 후반전 로벤의 어시스트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챔스 우승에 기여했다.[4]
여담으로 마르크 판보멀이 나간 후 깡있는 선수가 부족해서[5] 상대팀과 분위기가 거칠어지면 온순해졌던 바이에른이 만주키치의 합류 후 몸싸움이 생기거나 분위기가 가열되어도 기싸움에서 안밀리는 중. 비슷한 역할을 해주는 제롬 보아텡과 마누엘 노이어의 활약(?)도 한몫했다.
4. 2013-14 시즌
펩 과르디올라 체제 초기에서는 결장하는 일이 잦아지며 불화설이나 팀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나, 교체 투입될 때마다 골을 기록해주자 펩도 최근에는 만주키치를 다시 잘 쓰고 있다. 뮐러, 괴체 제로톱이 큰 효과를 못봤기 때문이기도 하다.하비 마르티네스와 데이비드 알라바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빠진채로 치러진 함부르크 SV와의 전반기 16라운드에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수비적인 전술과 라소가-주아-판더바르트 라인의 역습에 고전했으나, 전반 막판에 토니 크로스의 킬패스 - 하피냐의 침투 - 마리오 만주키치의 헤더 마무리로 선제골, 티아고 알칸타라의 패스를 받은 마리오 괴체가 단 두번의 터치로 기습적인 추가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가져왔다. 라소가가 추격골을 넣긴 하지만 후반 막판 교체투입된 신예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가 좋은 활약을 펼쳐주며 세르단 샤키리의 쐐기골까지 만들어내며 3대1로 승리했고, 무패행진은 41경기로 늘어났다.
전반기를 14승 2무, 승점 44점 단독선두로 헤업스트마이스터(Der Herbstmeister)에 등극한 채 마무리하는데 성공했으며, 15라운드까지 승점 4점차로 추격하던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홈에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패하며 2위와 승점 7점차를 벌린 채로 제법 안정적으로 선두자리를 지켰다.
해가 지나 2014년 1월 5일에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보스만 룰을 통해 영입이 확정되면서 만주키치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으나, 만주키치 측은 바이에른에 남아서 경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선 레반도프스키가 낫냐, 만주키치가 낫냐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또 여러 명문 구단에서 만주키치에 대한 링크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FC 바이에른 뮌헨의 입장에선 뛰어난 공격자원이 합류하게 되면서 다양한 공격루트를 가지는 것은 반가워할 일이다.
지난 시즌 못지않게 좋은 득점력을 보여주며 현재 12골로 분데스리가 득점랭킹 3위에 랭크되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홈 경기에서는 발재간으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며 쐐기골을 넣는 등 발밑 결정력도 꽤 좋아졌다. 함부르크 SV와의 포칼 8강에서는 이적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0 대승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바이에른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만주키치의 머리만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4월 5일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53경기 무패행진이 깨짐과 더불어, 분데스리가 무패우승도 실패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경기에서는 토니 크로스를 아래로 내리고 양쪽 풀백을 모조리 올리는 2-4-4-에 가까운 포메이션으로 공격으로 몰아붙였으나 1차전과 비슷하게 전반내내 답답한 모습만 보여주고 역습만 허용하는 모습이었다. 후반전에도 코너킥을 연이어 허용하더니 후반 12분 파트리스 에브라가 반대편에서 넘어온 볼을 강력한 논스톱중거리로 연결하며 포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것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꼴이 되고 말았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로베리의 돌파 후 크로스로 마리오 만주키치가 거짓말같은 동점골을 만들어냈고, 또다시 9분 만에 로베리 조합의 활약끝에 토마스 뮐러가 귀중한 역전골을 뿜어냈다. 그리고 로벤이 그나마 남은 원정골의 불안감마저 깔끔하게 없애버리는 개인기골을 넣으며 3대1로 멀찌감찌 앞서갔다. 맨유는 결국 치차리토, 야누자이등 공격자원들을 대거 투입시켰으나 별다른 기회를 만들지 못했고, 바이에른은 3년 연속 4강진출에 성공하며 2년 연속 트레블에 한걸음 다가섰다.
분데스리가 33라운드까지 18골로 도르트문트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득점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마지막 경기인 34라운드에서 2골을 꽂아넣으며 최종 득점 순위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펩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이 컵 대회 결승에서 밝혀졌는데, 펩이 결승 직전에 만주키치를 선발에서 제외하자 빡친 만주키치는 라커룸에 있던 짐 몽땅 싸들고 국대에 복귀했다고 한다. 구단 측에서 그냥 결승 제외를 통보한 것도 아니고 "다음 클럽에서 행운을 빈다"라는 말까지 하며 제외를 통보해서 만주키치가 제대로 열받은 듯. 게다가 다음 시즌 바이에른에 합류하는 레반도프스키에게 자신의 등번호까지 뺏긴 걸 알고 유니폼을 내동댕이쳤다는 기사도 났다. 이미 바이에른 동료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한 것으로 보아 사실상 팀을 떠나는 것이 확실시된다.[6]
결국 레반도프스키의 이적의 희생양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가는 것이다 보니 만주키치가 떠나는 것에 대해 펩을 원망하는 바이에른 팬들도 상당하다. 그럴 만한 것이 그리 비싸지 않은 돈으로 바이에른으로 이적해 성실한 플레이로 사랑받으며 2년동안 그야말로 팀의 전성기의 큰 축을 담당한 스트라이커이기 때문. 12-13, 13-14 두 시즌간 트레블을 포함해 8개의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70여 경기에 출전해 40골 넘게 때려박았다. 거기에 성실한 공중볼 다툼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전방 압박, 연계 플레이까지 수준급으로 해줬다. 그런 만주키치를 레반도프스키의 합류 때문에 등 떠밀듯 보내야 한다니 팬들도 보드진과 과르디올라를 원망하는 게 당연지사다. 물론 레반도프스키가 이후 8년 동안 뮌헨에서 미친 활약을 보여주어 이제 이런 원망은 없지만...
5. 평가
짧지만 매우 강한 임팩트를 남기고 떠났다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선수였다. 비록 후임자가 너무나도 강력한 인상을 남기어 종종 그의 업적이 묻히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주키치는 이 팀에서의 최초의 트레블에 활약한 1대 스트라이커라는 점에서 2시즌간의 선수 생활에도 불구 팀의 레전드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그의 강점은 큰 경기에서 드러났으며 도르트문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의 선제골은 길이 기억될 것이다.[1] 뮌헨 이적 후 공식 경기 데뷔전에서 데뷔골이다.[2] 리그 3경기 연속 득점이다.[3] 물론 12~13시즌 바이에른의 질풍 같은 독주의 가장 큰 요인은 상식을 초월하는 우주방어 덕분이다. 11월 24일부터 2월 17일까지 약 3달동안의 리그 경기 10경기에서 겨우 2실점이다. 2월 17일 기준 22경기에서 7실점, 특히 원정경기 10경기에 1실점을 기록중이다. 물론 공격력도 고메스가 거의 후보로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최강급이다.[4] 여담으로 너무 기쁜 나머지 목에 걸고 있던 금메달을 잃어버렸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의 금메달을 분실한 걸 깨닫자 울상이 되었다. 깨알같이 주워서 주는 리베리는 덤.[5] 리베리가 있긴 하지만 자주 부상당하는데다 몸싸움이 부족한 부분도 있다.[6] 펩이 원래 바르사 시절부터 그와 불화 있는 선수치고 뒤끝 좋게 떠나는 선수가 없었다. 한번 전술상으로 눈밖에 난 선수는 결국 끝까지 불화를 겪다 이적하곤 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무엘 에투, 야야 투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