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고 유스케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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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
마사고 유스케 真砂勇介 / Yūsuke Masago | |
생년월일 | 1994년 5월 4일 ([age(1994-05-04)]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교토부 교토시 |
출신학교 | 교토부립 니시죠 고등학교 |
신체 | 185cm, 86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12년 드래프트 4순위 |
소속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3~2022) 히타치 제작소 야구단 (2023~) |
히간테스 데 카롤리나 (201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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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국적의 외야수. 중국계 일본인이다.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부모님은 중국 출신으로, 유스케는 교토 시립 무코시마 후지노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연식 야구를 시작했다.교토부립 니시죠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봄여름 모두 고시엔 구장에서의 전국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고교 통산 52홈런이라는 타격이 눈도장을 찍었는지, 2012년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4순째로 지명되었다. 계약금 500만엔, 연봉은 약 4000만엔이라는 조건으로 입단했다. 처음 배정 받은 등번호는 64번.
2.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13년에는 주로 3군전에 출전했다. 8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3 2홈런 32타점 8도루으로 준수한 활약을 했고, .2군리그로 올라가서 8경기에 출전했지만 10타석 무안타로 전에 있던 페이스는 못 보여주었다.2014년에는 2군에서만 99경기 타율 .244 2홈런 18타점 6도루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시범경기 도중인 3월부터 프로 입성 후 처음으로 1군에 합류했다.3월 4일의 고시엔 구장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7회초 안도 유야를 상대로 적시 2루타를 때려내며 첫 안타 첫 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다음 5일에 2군으로 돌아오고 1군 복귀를 이루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2016년에는 2군 올스타전에 선발되었다. 2군 리그 공식전 90경기에 출전했다. 시즌 첫 규정 타석에 진입했고 리그 5위인 타율 .295, 7홈런, 44타점, 18도루를 기록했지만 1군에는 콜업되지 못 했다. 시즌 종료 후에 개최된 U-23 월드컵에서는, 일본 야구 대표팀의 4번 타자로서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대회 에서난 31타수 타율 .387 12안타 4홈런 14타점으로 홈런은 1위, 타점은 공동 2위 기록이라는 성적을 남기고 MVP로 뽑혔다. 외야수 부문의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었다.
2017년에는 작년 대회의 기대가 컸지만 캠프에서 밀리며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7월 26일 골절로 이탈한 우치카와 세이이치를 대신해 1군 선수 등록되었다. 그 후 7월 30일에 9번 우익수로 기용되며 드디어 1군 공식전 첫 출장을 스타팅 멤버로 출전했다. 결과는 3타석 무안타로 끝났지만, 8월 3일의 오릭스전에서는 5회초에 솔로 홈런을 때려내며 프로 첫 안타·첫 타점·첫 홈런을 장식했다. 1군 공식전에 9경기 출장 중, 오른쪽 어깨의 이상이 있어서 8월 16일에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에는 1군에서의 출장 기회는 없었다. 2군 공식전에서는 92경기에 출전해 규정 타석에는 진입했지만 타율 .216, 8홈런, 29타점, 16도루의 성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18년에는 1군 공식전 출전은 고작 한 경기에 그쳤다. 2군 공식전에서는 78경기 출장에 타율 0.275, 9홈런, 31타점, 9도루로 선전했다. 시즌 후에는 푸에르토리코 윈터 리그에서 뛰며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
2019년에는 야나기타 유키의 이탈로 1군으로 올라갔다. 6월 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자신의 첫 결승타를 기록했다. 1군 공식전에는 12경기에 출장해 타율 .143 2군에서는 107경기 출장에 타율 .253 5홈런 32타점 26도루를 기록하며 2군 도루왕을 수상했다.
2020년은 8월 26일 1군에 올라가며 대수비나 대주자로 기욕되며 41타석에서 타율 .314의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10월 18일에는 3년만에 라쿠텐 이글스 상대로 1군 무대 홈런을 기록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치바 롯데 마린스를 상대로 11월 15일 2차전에 대수비로 출장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일본 시리즈에서, 11월 22일에는 대주자로 출장했고, 9회초에는 안타도 기록한다.
2021년에는 개막 1군 로스터에 드디어 입성했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대수비나 대주자로 나왔고 타석도 적었다. 2021년에는 자신의 커리어 최다 출장인 79경기, 타율 .254 1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4월 5일 1군에 올라갔다. 평소와 같이 대주자나 대수비에서 출장이 많아, 타격에서 보여준거 없이 4월 22일에 등록이 말소되었다. 결국 쭉 2군에서만 있었고 2군에서 71경기에 타율 .310 8홈런 38타점 8도루를 기록했다. 이후 1군을 조금씩 왔다갔다 했지만 10월 17일 결국 방출되었다.
2.3. 히타치 제작소 야구단
방출된 후 12 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을 봤지만 오퍼는 없었고, 사회인이나 클럽 팀으로부터 권유를 받고 2022년 12월 1일자로 히타치 제작소 경식 야구부에 입단했다.2.4. 국가대표 경력
2.4.1. 2016 WBSC U-23 야구 월드컵
일본 야구 대표팀의 4번 타자로서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대회 에서난 31타수 타율 .387 12안타 4홈런 14타점으로 홈런은 1위, 타점은 공동 2위 기록이라는 성적을 남기고 MVP로 뽑혔다. 외야수 부문의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었다.
2.4.2.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아버지의 국적인 중국 대표팀으로 출전한다.3. 플레이 스타일
고교 통산 52홈런을 기록할 만큼 장타력이 좋고 2군 통산 105도루로 발도 빠른 선수인 호타준족 선수이다. 다만 1군과 2군 성적을 비교하면 전형적인 2군 본즈다.4. 여담
전술했듯이 부모님은 중국 출신으로, 일본으로 이민 왔다. 외가에서 일본계 잔류 고아 집안이라 귀국을 결심했다는 일본발 사연과, 할아버지가 전쟁 고아 출신이라고 하는 중국발 사연을 종합해 보건대, 유스케의 외할아버지가 잔류 고아 출신이라 일본에 재정착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일본 국적이지만, 아버지는 이주 후에도 중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1] 어머니나 형은 일본어를 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일본어를 거의 못 하고 막상 자신도 중국어를 못 하니까 아버지와 대화를 하려면 일본어도 중국어도 할 줄 아는 다른 가족들에게 통역을 구했다.[1] 애초에 중국 태생이어도 일본계였던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 쪽은 부모가 잔류고아라는 말이 전혀 없고, 본인도 일본어를 못 한다는 점에서 토종 중국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