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06:36:12

마이태 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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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현대의 장효3. 청대의 마이태 약희4. 작중 행적
4.1. 현대4.2. 8패륵부에서4.3. 어전 궁녀가 되다4.4. 첫번째 출새4.5. 두번째 출새4.6. 8황자와의 연애4.7. 완의국에 가다4.8. 어전으로 돌아오다4.9. 황제의 여인이 되어4.10. 떠나는 사람들4.11. 임신하다4.12. 유산하다4.13. 명혜의 자살4.14. 출궁하다4.15. 마이태 약희의 최후4.16. 다시, 현대
5. 특징6. 기타

1. 소개

보보경심의 주인공. 배우는 류시시.

2. 현대의 장효

이름은 장효. 25살의 회계사.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이다. 드라마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으나, 원작 소설의 설정을 참고하자면 중학생 때까지 신장 지방에서 자라다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베이징에서 교직을 얻어 가족과 함께 베이징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베이징대학 출신으로 보이고,[1] 베이징에서의 공부가 끝난 후에는 선전에서 직장을 구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고등학생 때는 학교 수석이었다고.

3. 청대의 마이태 약희

강희제 43년 기준 13살 나이의 만주족 귀족 소녀 마이태 약희(馬爾泰 若曦, 1691 ~ 1725).[2]

마이태 약희의 아버지는 서북에서 주둔하고 있는 마이태 장군으로 정2품 총병의 벼슬을 지내고 있고, 어머니는 약희를 낳고 일찍 돌아가셨다. 유일한 동복 언니로는 8황자 윤사의 측복진인 마이태 약란이 있다. 부친의 관직이나, 언니가 황자의 첫 번째 측복진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상당한 명문가 출신이고, 특히 부친 마이태 장군의 명성은 대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극 중에서는 단 한 번도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마이태 장군의 군영 사람들은 모두 기마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 약희에게 무례하게 시비를 걸던 사람도 그녀가 마이태 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을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 떨면서 용서를 구한다. 태자가 그녀를 측복진으로 달라고 한 것도, 몽골인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유가 가장 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마이태 장군이 자신의 기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신분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황실을 제외한 청나라 신분계층의 맨 꼭대기층에 있다고 보면 된다.

청나라에서 귀족 사이의 신분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결정되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다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한족[3]보다는 만주족과 몽골족을 더 높은 신분으로 여겼다. 또한 집안이 유서깊은 명문가, 세도가, 혹은 황실과 연결된 종친 가문인지도 중요했다. 같은 만주족, 혹은 같은 몽골족이라도 그다지 세력이 강한 가문이 아니면 그저 한족 상류층보다 높은 대접을 받는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4] 아버지나 오빠, 즉 가문의 남자들이 얼마나 높은 관직을 지내는지도 중요하고 가장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정실 부인이어야 했다. 만주족은 전통적으로 어머니의 신분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 마이태 약희는 이 중 단 하나도 결격 사유가 없다.

1. 일단 만주족 귀족 가문 출신이다.

2. 경성에서도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정도의 명문가 출신이다.[5] 또한 동복 언니가 차기 유력 황제 후보인 8황자의 첫번째 측복진이니[6][7] 황실과도 관련이 있는 집안이다.

3. 약희의 아버지는 정2품 총병 벼슬을 지내는 현직 장군이다.

4. 돌아가신 약희의 어머니는 첩이 아닌 정실부인이었다.[8]

명문가이자 세도가인 만주족 귀족 집안의 적출로 태어났고, 동복 언니는 차기 유력 황제 후보인 8황자의 측복진이며, 아버지는 정2품 장군이다. 또한 자신은 몽골의 소완과이가 왕에게 수양딸로 인정받았고, 황제가 직접 혼사를 내려주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황제에게 총애를 받는다. 그야말로 청나라 상위 1%, 로열패밀리의 일원인 셈. 실제 청나라 수녀선발에서는 이러한 신분의 여성이라면 황제의 후궁이나 황자들의 비빈이 되지, 픽션처럼 궁녀가 되어 일할 가능성은 없었다.

만약 약희가 정식으로 옹정제의 측복진이나 후궁이 되었다면 바로 비 이상의 품계를 받았을 확률이 높다. 신분상으로 따지자면 옹정제의 후비들 중에 황후 오라나랍씨 외에는 약희의 마이태 가문을 넘어서지 못한다. 옹정제의 후궁들 중 돈숙황귀비 연씨는 벼락출세한 포의집안이고[9], 희비 뉴호록씨는 청대 제일의 명문가 뉴호록 가문 출신이었지만[10] 아버지가 하위 관료여서[11] 약희에 비하면 신분이 미약하고, 제비 이씨는 애초에 시첩 출신인데다 그녀의 부친이 제비가 측복진이 되고나서야 벼슬길에 오를 정도로 한미한 가문 출신이다.(...) 나머지 후궁들도 대부분 이름만 남은 가문이거나 포의 출신이니 약희와는 당연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4. 작중 행적

4.1. 현대

바람을 피운 남자친구 황제[12]와 싸우다가, 고압선이 널려 있는 공사장의 인부와 시비가 붙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부의 물병을 탁 치게 되는데, 이 물병이 날아가 전기 사고를 일으켰다. 그 순간 그녀는 차에 치여 날아가 전광판에 부딪혔고 그 전광판에서 상당한 스케일로 감전이 되었다.불꽃이 팡팡 터졌다 한마디로 불운하게도 교통사고와 감전사고를 동시에 당하면서(...) 청나라 강희제 43년으로 타임슬립하게 되었다. 참고로 원작소설에서는 그냥 퇴근길에 달려오는 차를 못 보고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타임슬립한 것으로 나온다.

4.2. 8패륵부에서

눈을 떠보니 청나라 강희제 43년, 그녀는 16살[13]만주족 귀족 소녀 마이태 약희가 되어 있었고, 얼떨결에 마이태 약희의 삶을 살게 되었다.

마이태 약희는 재녀 선발을 앞두고, 8황자의 측복진 마이태 약란에게 예법을 배우기 위해, 8황자 저택에 와있었지만, 의문의 추락 사고로 인해[14] 수일 동안 정신을 잃은 상황이었는데, 약희의 몸 속에 현대인 장효가 들어가게 된 것. 당연히 현대인인 장효는 청나라의 문물이나 예법 등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모두가 "추락 사고로 인해 머리를 다쳐 약희가 모든 기억을 잃었다" 라고 여겨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시녀 교혜와 함께 몰래 대책란 거리에 갔다가 처음으로 4황자를 만났다. 달려오는 4황자의 말과 부딪혀 사고를 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말이 그녀를 건너 뛰어 무사했다. 그리고 몰래 나가버린 그녀 때문에 하인들은 치도곤을 당했다. 평소 약란 자매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적복진 곽락라 명혜가 이를 트집 잡아 약희 대신 약란을 벌주려 하자 약희가 이를 말리려다 곽락라 명혜에 맞서서 대응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싸움이 붙자 약란이 몸을 던져 말렸는데, 명혜가 약란을 발로 차버리자 열 받은 약희가 명혜를 밀어버렸고, 명혜가 의자에 이마를 부딪혀 피가 났다. 이때 자신을 위해 명혜를 밀어버린 그녀를 보고 감동한 약란은 자신은 언제든 네 편이라며 다정하게 얘기해주자, 자신을 동생으로 착각하고 있는 약란에게 미안한 나머지 "사실 난 예전의 약희가 아니다." 라고 고백하지만... 약란은 "맞아, 예전과 달라. 이젠 철도 들고 다 컸지." 라고 말하는 바람에 무다무다.

이후 현대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그녀는 다시 외출하여 달려오는 두 말 앞에서 눈을 감고 섰지만 말이 바로 앞에서 멈춰서는 바람에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말의 주인은 바로 4황자와 13황자. 두 사람은 약희를 8패륵부로 바래다주었고, 4황자는 약희에게 "네 목숨은 내가 살렸으니 내 허락 없이는 죽을 생각 마라" 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 후 10황자와 허물없이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10황자는 그녀에게 자신의 생일잔치를 맡기고 싶어서 8황자에게 측복진 약란의 집에서 생일잔치를 열어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잔치 도중 10황자를 슬쩍 불러내 자신이 직접 종이학 등으로 예쁘게 꾸민 정자에서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러주어 10황자를 감동시켰다. 그렇게 생일잔치는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가 했으나...

정자에서 나오던 중 우연히 외나무 다리 위에서 명옥과 마주치게 되었고, 가정교육 드립을 치는 명옥과 치고 박고 싸우다가, 박치기까지 하고 함께 물에 빠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금방 구조되지만, 약란이 약희를 챙긴 다음에 명옥에게도 괜찮냐고 묻지만, 명옥이 약란을 밀치고 계속 성질을 부리고 징징대자 "닥쳐!"를 시전하여 울음을 그치게 했다. 이때 황자들의 눈은 당황과 놀라움으로 가득 찼고, 태자는 "죽기살기 13랑(13황자)과 성격이 똑같군."이라는 말을 남겼다. 덕분에 죽기살기 13매(妹)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장난기 많은 10황자와 14황자가 이 별명으로 약희를 놀리기도 했다. "약희 너 덕분에 13황자는 언제 여동생이 생겼냐며 놀림받고 있다~" 라는 식으로.

이 일로 부마부에서 난리가 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8황자의 수습으로 잘 마무리 되었지만,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약란은, 평소에는 그렇게나 상냥했던 모습과 달리 동생을 거의 투명인간 취급할 정도였다.[15] 약희가 "세상에 남겨진 유일한 가족이 언니 뿐이야... 난 그런 언니 덕분에 의지가 되니, 제발 나를 용서해줘... 정말 나에겐 언니 뿐이야..." 라고 울면서 애원하자 함께 눈물을 흘리며 화를 풀었다.

어느 덧 중추절 연회가 열렸고, 10황자 생일잔치 사건으로 이미 유명세를 탄 그녀는 강희제의 황명에 따라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강희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왜 성군인지 대답해보라는 강희제에게 시[16]를 읊어 답했고, 강희제는 은 많이 들어봤지만 약희의 발언은 신선하고 식견이 대단하다며 크게 흡족해하고 상까지 내려주었다. 그리고 이 날 밤, 강희제는 10황자에게 곽락라 명옥과 혼인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억지로 이를 받아들이는 10황자를 보고 가장 존귀한 황자조차 가장 귀중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8패륵부에 돌아오자마자 미친 듯이 달리다 8황자에 의해 기절한다.[17] 시간이 흘러 10황자의 혼인날이 되었고, 13황자와 함께 나와서 술을 취하도록 마시다가 13황자에게 자신은 사실 3백년 후의 사람이라고 고백한다[18]

이후 수녀 선발 직전, 약희는 8황자에게서 결혼 전, 즐겁게 말을 타던 약란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봉혈옥 팔찌를 준비했지만 주지 못했다는 말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니 절대 빼지 말라며, 약란에게 주지 못했던 봉혈옥 팔찌를 선물받는다.

4.3. 어전 궁녀가 되다

어느덧 수녀 선발이 다가왔고, 강희 44년 결국 어전 궁녀가 되었다. 중추절 연회에서 강희제의 마음에 드는 바람에 후궁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으나 8황자, 4황자, 14황자의 노력[19] 덕분에 궁녀로 빠질 수 있었다. 원래는 양비나 덕비 처소의 궁녀가 되었다가 일찌감치 출궁하는 것이 황자들의 계획이었지만, 도중에 명혜가 끼어드는 바람에 혜비까지 나서서[20] 약희를 자신의 처소 궁녀로 달라고 하자, 후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전으로 보내졌다. 사실 약희 신분 정도 되면 아무리 황자와 후궁들이 힘을 썼다고 해도 후궁이나 황족의 복진이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나, 스토리 진행을 위해 일단 궁녀가 된 것 같다(...)[21]

여러 황자들의 걱정과는 달리, 어전 궁녀로서 상당히 빠른 적응을 보여주었다. 칭찬이 인색하다는 태감총관 이덕전에게도 두터운 신임을 받고, 빠르게 봉차반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하지만 특유의 솔직함은 여전하여 늦게까지 정무에 전념하는 강희제에게 “이만 쉬고 내일하세요.” 라고 감히 황제에게 아뢴다(...)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뜻으로 받아들이는지 파악을 못 하다가 주위 궁녀와 태감들이 기겁하면서 황제에게 엎드리는 모습을 보고 뒤늦게야 상황파악을 한다. 다행히 강희제는 잔소리하던 열째 공주 같다며 그녀 말대로 쉬러 가고, 이덕전 역시 개선장군을 보는 것 같았다며 그녀를 칭찬해준다.

그러던 와중 태자가 횡령 사건으로 탄핵을 받는 일이 벌어졌고, 10황자는 태자를 옹호하는 4황자에게 태클을 걸었다. 그녀는 미래의 황제가 될 4황자에게 10황자가 밉보일 것을 우려하여 10황자에게 일부러 차를 엎질러 10황자의 말을 중단시켰다. 덕분에 1달 치 월급을 빼앗겼다(...) 그리고 자신은 순전히 10황자를 위해 한 행동이었는데, 다른 황자들에게는 4황자를 도우려고 했던 것으로 보여졌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게 되었다.

4.4. 첫번째 출새

한편, 그녀는 강희제를 따라 첫번째 출새[22]를 가게 되었다. 이 때 직접 디자인한 아름답고 독특한 찻잔을 준비하여 강희제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고, 말타는 것을 배우도록 허락받았으며 엄청난 은자까지 하사받았다. 강희제는 기마술이 뛰어난 니만 장군을 스승으로 보내주었는데, 니만의 수업이 불만족스럽자 대신 13황자에게 기마 수업을 청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뜻밖에 나타난 것은 13황자가 아닌 4황자였고,[23] 엄청나게 빡센 수업 이후 다시는 4황자와 말을 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24] 다음날 13황자는 오늘은 꼭 자신이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역시나 나타난 것은 4황자였다.[25] 그리고 이 날 밤 4황자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 4황자는 약희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다음날 13황자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는 4황자와 13황자에게 자신이 4황자를 좋아한다는 오해를 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몹시 심란해했다.

첫 번째 출새가 끝나고 태자는 폐위되고 구금되었는데, 이 때 진중한 태도를 보여 또다시 이덕전의 신뢰를 받았다.[26] 한편 8황자에게서는 작교선(鵲橋仙)[27] 시가 적힌 서신을 받았고, 4황자로부터는 향기가 나는 목란 목걸이를 선물받았다. 이 때 황제의 의중을 묻기 위해 8황자당이 자신을 찾아오자,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다만 폐하는 2황자를 아낀다는 사실만은 꼭 기억하라는 조언을 해주었고, 똑같이 자신을 찾아와 황제가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보는 4황자에게는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이 와중에 대신들이 8황자를 차기 태자로 추천하여 강희제가 극도로 분노하는 바람에 8황자가 작위를 빼앗기고 위기에 처하자, 다른 궁녀와 내관들이 눈치를 보며 자신을 외면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녀는 8황자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강희제에게 호소했고, 결국 태자는 복위되고 8황자의 작위는 복원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4.5. 두번째 출새

그리고 두 번째 출새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민민 공주에게 기마를 배우다 위험에 처하지만 다행히 8황자에 의해 구조되었다. 14황자가 8황자에게 경성의 사정[28]을 전하기 위해 몰래 찾아오자 그를 8황자와 만나게 도와주기도 했다. 이를 태자에게 들킬 뻔했지만, 민민 공주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14황자를 탈출시켰다.[29]

4.6. 8황자와의 연애

이 두 번째 출새에서 8황자와 깊은 사랑에 빠졌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그녀는 8황자에게 황위를 포기해달라고 부탁했지만 8황자는 황위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고 그녀는 고민에 빠진다.

궁으로 돌아온 뒤, 명혜의 아들 홍왕과 함께 입궁한 곽락라 자매를 만나 대립하면서 명혜가 홍왕을 이용해 언니 약란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았고, 8황자에게 따졌다.[30]

그리고 양비의 궁에서 약란을 만난 뒤, 약란은 약희가 8황자의 측실이 되면 서로 자주 볼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약희는 만약 8황자의 측실이 되면 자신은 여러 여자들과 다퉈야하고 그 중 한명은 자신의 친언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적복진과 자신이 대립할 때마다 매번 8황자가 과연 자신을 편들지 고민하다가, 8황자를 만나서 마지막으로 황위를 포기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지만, 8황자는 역시나 거절했고, 결국 4황자와 그를 따르는 대신들[31]을 조심하라는 말만 남기고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돌아오던 길에 넘어져 다리를 다쳤고, 4황자와 13황자의 도움을 받아 궁에 돌아왔다.

새해가 되었고, 모든 것을 정리하기 위해 4황자와 8황자에게 각각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쓰고 지금까지 받은 선물들을 모두 동봉하여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어느날, 연꽃을 바라보다가 4황자를 만났고, 그와 함께 4황자의 배를 타고 대륙의 발cg가 가득한 연꽃이 가득한 연못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세 번째 출새가 다가왔다. 세 번째 출새는 4, 8, 9, 13, 14황자가 모두 참석했는데, 지난 출새에서 14황자와 함께 민민을 속인 전적이 있는지라 이것이 들통날 것을 우려하여 가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가게 되었고 민민에게 사실을 들키고 말았다. 크게 화가 난 민민은 자신과 경주를 해서 이기면 눈감아주고 아니면 사실대로 이르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민민을 이기기 위해 뾰족한 머리장식으로 말을 사정없이 찔렀고 결국 경주에서 이겼다. 목숨을 건 그녀의 태도와 13황자의 중재 덕분에 다행히 민민은 화를 풀었다.

이 출새에서는 민민이 13황자에 대한 마음을 접도록 달래고 설득했다. 대신 민민이 13황자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춤이 가장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송별회를 준비했고, 강희제와 몽골 왕야 그리고 뭇 황자들의 감탄을 받았다. 그리고 소완과이가 왕에게 문제의 옥패를 선물받았다. 이 옥패는 민민의 죽은 쌍둥이 언니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 옥패를 받는다는 것은 곧 소완과이가 왕이 그녀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이 때문에 몽골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던 태자는 강희제에게 그녀를 자신의 측복진으로 내려달라는 청을 올렸고,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크게 충격을 받아 기절하고 앓아눕게 되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4황자와 8황자는 손을 잡았고, 4황자는 8황자에게 태자의 비리가 적힌 장부를 건네고 8황자는 명혜의 외삼촌 진국공 경희왕에게 도움을 청해 태자가 무관들을 규합해 파벌을 결성했다는 사실을 고변하도록 했다. 덕분에 태자와의 혼인 얘기는 없던 일이 되었고, 그녀는 4황자에게 자신과 혼인해달라고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니 몸조리나 잘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14황자에게는 봉혈옥팔찌를 건네며 8황자에게 돌려주라고 부탁했고, 아내 곽락라 명옥과 크게 다투고 이혼하겠다고 소란을 피우는 10황자에게는 자신과 명옥을 각각 자주 먹지 못해 동경했지만 사실은 별로 맛없는 과일사탕과 평소에 곧잘 먹어 소중함을 몰랐지만 사실은 가장 좋아하는 연꽃떡에 빗대어 설득했다. 최종적으로 명상부마가 폐하를 알현했으니 이제 명옥은 부마부로 돌아가거나 페르시아 왕자에게 재가할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해주어 10황자 부부를 확실히 화해시켰고 명옥의 호감을 샀다. 한편, 본인은 4황자의 진실함을 확인하며 마음을 열었고,[32] 8황자에 관해서는 그가 그동안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33] 크게 실망하여 완전히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4황자에게만 특별히 소금푸딩(...)을 만들어주는 장난을 치는 등 점점 4황자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8년 만에 13황자와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기도 했다.

그리곤,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안녀엉~이 되는가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강희 51년, 8황자가 계략을 꾸며 4황자가 태자를 모함하고 파벌을 결성한 것처럼 보이게 한 바람에, 강희제가 격노한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4황자를 위해 13황자는 모든 것은 자신 혼자 꾸민 일이라며 자신을 희생했고, 양봉협도에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런 13황자를 위해 그녀는 강희제에게 기녀 녹무를 13황자에게 보내 시중들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강희제는 냉정하게 등을 돌렸고, 그녀는 13황자를 위해 빗속에서 내내 어화원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달려온 4황자와 함께 비를 맞으며 서로의 진심을 확인했다. 이 장면은 보보경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부분. 그녀는 끝내 쓰러지고 말았고, 14황자가 나서서 강희제에게 녹무를 보내주라는 청을 올리고 8황자당까지 빗속에서 무릎을 꿇은 덕에 결국 사면되고 녹무는 13황자를 시중들게 되었다. 그리고 태의에게서 류머티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여러 사건들이 터지면서 태자는 끝내 폐위되었고, 8황자 역시 강희제의 미움을 사 내쳐졌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조심하며 시간을 보냈다.

4.7. 완의국에 가다

강희제는 혼기가 찬 그녀를 14황자와 맺어주려 했다. 14황자는 약희와 나이가 꼭 맞는 황자였고, 잘생기고 유능한 귀공자이자 당시 강희제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으니 강희제로서는 약희를 위해 각별히 마음을 쓴 것. 하지만 약희는 강희제의 명에 불복하여 황명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진노한 강희제는 그녀에게 곤장 20대를 치고 황궁의 세탁소 역할을 하는 완의국으로 보내라는 명을 내렸다.

그렇게 그녀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완의국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빨래를 했고, 완의국 태감 장천영에게는 추행도 당할 뻔했다. 게다가 같이 사는 완의국 궁녀 염평과 춘도 등에게 도둑질까지 당했고, 약희가 비녀가 없어짐을 알고 돌려달라고 하였으나, 염평이 목란 비녀를 내던지는 바람에 목란 비녀는 부러져버렸다.(후에 4황자가 다시 같은것을 선물로 다시 준다)
그나마 황자들과 옥단, 왕희 등이 완의국 사람들에게 미리 얘기를 해놓거나 귀한 연고[34]를 주는 등 이래저래 도움을 주어 그 정도였지,[35] 아니었으면 더욱 처참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13황자와 녹무의 아기에게 부모의 기쁨이 되라는 뜻을 담아 승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4.8. 어전으로 돌아오다

긴 시간이 흘러, 어느덧 강희 61년 11월이 되었고 그녀의 나이는 34세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크게 쇠약해진 강희제는 그녀가 만들어준 음식을 그리워했고, 덕분에 그녀는 다시 어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결국 강희제는 세상을 떠났다.

4.9. 황제의 여인이 되어

강희제 사후, 4황자는 황위에 올랐다. 그녀는 일주일 간 감금당했다가, 옹정제 등극이 마무리되자 돌아와 양심전에 머무르게 되었다. 양심전에서 그녀는 옹정제의 힘이 되어 주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연비의 패를 뒤집는 옹정제를 보면서 질투를 했다가 다시 화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태의로부터 앞으로 10년 정도만 보장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4.10. 떠나는 사람들

그러다 녹무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녀는 13황자를 위해 녹무는 명사 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부모에게 효심을 다하기 위해 떠난 것이라는 거짓말[36]을 해주고 승환을 궁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사랑하는 언니 약란 또한 병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약란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향인 사막과 죽은 연인 청산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죽은 뒤에도 애신각라에서 자신을 놔주지 않을까봐 걱정하자, 그녀는 언니를 위해 8황자에게 이혼해달라고 간청했다. 덕분에 약란은 이혼서를 품에 안고 행복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고, 이후 약란은 8황자와 이혼해서 애신각라의 담장을 빠져나와 서북으로 보내져서 사랑했던 청산과 합장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약희는 약란이 마지막 순간에 이혼장을 품에 안은 채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은 걸 보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은 한편, 녹무가 자살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굉장히 크게 슬퍼했다.

그렇게 약희는 약란의 죽음 후로 앓아눕지만 승환이 찾아오자 웃고, 옹정재와 초야를 치르며 기운을 차리는 듯 했지만, 장막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는 이유로 8황자가 벌을 받자, 옹정제와 대립하고 한동안 서먹하게 지냈지만 13황자 등의 노력으로 다시 화해했다. 그러나 강희제의 유언을 들은 이덕전이 옹정제가 준 독을 반강제로 마시고 자진했고, 자신을 추행했던 장천영은 혀와 손이 잘리고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고, 결국에는 오랜 시간 서로 의지하고 지내온 옥단까지 팽형에 처해지자,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극도로 멘붕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4.11. 임신하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약희는 자신이 임신 2개월째라는 사실을 들었고, 옥단이 자신에게 남긴 피로 쓴 유서를 보고, 아는 글자도 얼마 없다고 했던 옥단이 일부러 자신을 속인데다 사실은 9황자의 스파이였다는 사실도 들었지만, 그래도 옥단이 자신에게 진심이었을 거라고 믿으며 옹정제에 대한 마음을 풀지 않았다. 옹정제가 후궁의 직위와 봉호를 내리려 했지만 받으려들지도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을 찾아온 명혜에게 그간 벌어진 모든 불행한 상황을 자신이 초래했다는 사실[37]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에 아이까지 유산되고 불임 판정을 받는다.

4.12. 유산하다

이후 슬픔을 달래주는 옹정제에게 마음을 풀고 함께 다정하게 산책을 하기도 한다. 이때 옹정제에게 자신이 약희가 아니라 현대의 장효라는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옹정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4.13. 명혜의 자살

그러나 약희의 유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옹정제가 8황자에게 명혜와의 이혼을 명한다. 하지만 8황자는 그럴 순 없다고 거절하고, 이 일이 황명을 거역한 일이 되어 버리자 다시 한번 난리가 난다. 결국 8황자를 위해 명혜가 스스로 간청해 이혼당하고, 이후 명혜는 스스로 자신의 친정으로 돌아갔는데, 그 소식을 들은 약희는 8황자에게 "그녀에게 8황자님이 전부인데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이다" 라며 약희는 13황자, 8황자와 같이 명혜의 친정에 가지만 결국 명혜의 자살을 목격한다.

명혜의 죽음에 울부짖던 8황자는 그 자리에서 약희에게 "그저 말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이제 만족하냐" 라며 약희를 탓하자, "약희는 그 말 몇 마디에 유산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한다" 라고 반박하는 13황자의 말을 듣고 자신이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약희는 황궁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13황자와 같이 타는데, 약희가 "내가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냐" 라고 묻자, 13황자는 "니가 사실을 알게 되면 견디기 힘들어할까봐, 황형과 나만 알고 있을려고 했다" 라고 말한다. 약희는 담담하게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으니 괜찮다" 라고 말한다. 이어 약희는 "예전에는 사는 게 힘들지, 죽는 건 쉽다고 생각했는데 죽는 순간에 그녀가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라고 말하자, 13황자는 "8황자, 9황자, 10황자 사이의 갈등은 조정 일 때문에 생긴 대립이니 황형은 이 싸움에 너를 끌어들이지 않을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들이 너를 끌어들이려고 한 거야. 황형의 행동도 이해되고 화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라고 말하며 탄식하자, 약희는 "다들 잘못한 것도 없다는데 그럼 누가 잘못한거냐" 라고 묻자, 13황자는 한탄한다.

얼마 뒤, 명옥이 자신을 찾아와서 옹정제의 핍박에 용서하실 수 없다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말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명옥을 보면서 깊은 괴로움에 휩싸였다.

4.14. 출궁하다

결국 그녀는 옹정제를 찾아가 과거 자신이 8황자에게 4황자를 조심하라고 말했다며, 이 모든 불행은 자기 탓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14황자에게 선황의 성지[38]를 이용해 자신이 출궁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옹정제는 어떻게든 넘어가려 했으나 8황자까지 나서서 과거 약희와 자신이 어떤 관계였는지[39] 세세하게 말하자 분노했고 결국 그녀는 뜻대로 출궁하여 14황자 측복진으로 가게 되었다.

출궁하는 날, 약희는 마지막으로 옹정제의 얼굴을 한번만 보고 가려고 기다리지만 결국 옹정제는 나오지 않는다. 8황자가 약희를 배웅하러 오자, 약희는 자신을 위해 나서준 8황자와 서로 안으며, 8황자는 "다 잊고 잘 살아라" 라고 말한다.

4.15. 마이태 약희의 최후

14황자 측복진이 된 약희는 단체 식사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버리는 등, 제멋대로 행동하는 한편 모든 것을 빼앗기고 괴로워하는 14황자의 울분을 들어주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옹정제에게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썼지만, 14황자가 옹정제와 그녀의 글씨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새로 봉투를 만든 바람에, 옹정제는 그녀의 편지인지 모르고 외면했다. 결국 옹정제가 답장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자, 그녀는 옹정제가 자신을 여전히 자신을 증오한다고 오해하고 절망했고, 결국 죽음을 준비하며 마지막으로 삶을 정리했다. 그리고 14황자와 함께 복숭아꽃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줄 것을 당부하고,[40][41] "다음 생에도 날 기억해줄거지?" 라는 14황자의 질문에 약희는 "당신들 전부를 잊어버릴 거에요. 과거를 모두 잊고 잘 살아야해요" 라고 말하며 그대로 14황자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4.16. 다시, 현대



깨어나보니 그녀는 다시 현대의 장효로 돌아와 있었다. 돌아온 그녀는 황자들의 말로를 검색했고, 마이태 약희도 검색해보았지만 그녀 본인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남산 박물관에서 열린 청나라 황궁 문물 전시회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이 그려진 그림[42]을 보고 자신이 정말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4황자와 똑같이 생긴 남자를 만났고, 눈물을 흘리며 바라본다. 4황자를 닮은 이가 그녀에게 다가오지만 장효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그는 머쓱해하며 발길을 돌린다. 장효는 그 순간까지도 그를 바라보기만 하는데, 4황자를 닮은 이가 시선을 느끼고 그녀를 다시 보려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안경을 벗으며 그의 얼굴을 눈물 속에 감춰버리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난다.[43]

5. 특징

보기 드문 미인이라고 한다. 황자들의 평에 따르면 기품이 남다르고 미모가 빼어나다고. 숱하게 미인들을 봐왔을 황자들이 이렇게 평할 정도이니 정말 미인인 듯하다. 원작 소설에서는 장효 본인도 '자매가 둘다 이렇게 미인이라면 분명 어머니도 미인이셨을텐데, 일찍 돌아가신 것이 정말 아쉽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약희가 먼저 고른 장신구를 나중에 온 명옥이 사겠다고 하자 주저없이 양보하고 보석가게를 떠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직후 명옥은 이겼다고 기뻐하긴 커녕 "자기는 예뻐서 이런 걸로 안 꾸며도 된다 이거지?" 라는 반응을 보이며 불쾌해했다. 나중에는 둘의 사이가 좋아지지만 이땐 아직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거릴 때인데 약희에게 감정이 안 좋은 사람 입장에서도 미모는 부정하지 못할 정도의 미인. 사실, 그 많은 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만 봐도 대단한 미인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엄청나게 다재다능한 먼치킨이다. 특히 뭔가 디자인하고 꾸미는 데는 그야말로 탁월한 재능이 있는 듯. 각 인물들 특성에 맞게 직접 디자인한 찻잔은 강희제가 크게 흡족해 할 정도의 고퀄이었고, 민민 공주와 함께 준비한 연회는 강희제, 황자들(심지어 까칠한 9황자까지도), 몽골 왕야들 모두를 감탄시켰다. 양비를 위해 손수건의 꽃 문양을 그려주기도 했는데, 양비가 만족한 것은 물론 언니 약란 역시 감탄했다.

원작소설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그림을 배운데다 입궐 후에는 별다른 놀거리가 없어 계속 그림을 그리다보니 실력이 늘었다고. 자수 솜씨도 뛰어나다고 한다. 온 궁 안에 칭찬이 자자하다고. 또 차를 올리는 것이 담당인 만큼 당연히 차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다. 요리도 잘한다. 평생 최고급 요리만 먹어왔을 강희제까지 크게 만족시킬 정도이다. 물론 청나라 때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현대 요리 레시피를 많이 알고 있다는 이점이 있긴 하다.

그 외 10황자의 생일날 다들 깜짝 놀랄 만큼 예쁘게 꾸민 것으로 보아서는 화장 실력도 뛰어난 것 같다. 그리고 제기도 매우 잘 찬다. 현대인에게는 익숙지 않을 화분저[44]를 신고도 놀라운 제기차기 실력을 선보인다. 원작소설의 설정에 따르면 어렸을 때는 춤도 매우 잘 추었다고 한다.

머리도 상당히 좋은 편인데, 처음에 청대로 왔을 때는 옛 언어나 글씨에 익숙지 않아 거의 문맹 수준이었지만 어느새 책도 많이 읽고 시도 곧잘 읊게 되었고, 황자들과 겨뤄도 지지 않을 만큼 상당히 풍부한 학식을 자랑하게 되었다. 사실 청대에 와서 새롭게 배운 지식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현대의 장효가 초엘리트이다보니[45] 원래 옛 고사 등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성품 자체는 매우 선량한 편이다.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황자들을 걱정하는 것은 물론,[46] 자신을 완의국으로 보내 고생시킨 강희제에게도 앙심을 품지 않는다. 나중에는 자신과 언니를 괴롭혔던 명혜 역시 걱정해주고 그녀의 사랑에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심지어 완의국에서 자신을 추행한 장천영까지 죽을 죄는 아니었다면서 생각해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든지 쉽게 용서해주고 좋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9황자는 예외. 현대로 돌아온 뒤 강희제의 여러 황자들의 결말을 검색해보다가 9황자의 비참한 말로[47]를 보고도 슬퍼하거나 동정하긴 커녕 피식 웃기만 했다. 녹무가 자살하는데 큰 원인을 제공한 13황자의 측복진은 멱살을 잡아 "자식만 없었다면 넌 벌써 죽었어!" 라며 밀쳐버리기도.

현대인답게 만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본인은 명문 귀족이면서도 거리낌없이 기녀 녹무와 어울리고, 자기 밑의 궁녀 옥단과 운향에게도 그냥 이름을 부르라고 얘기한다. 또 현대인답게 자유를 매우 중시한다. 문제는 이 때문에 가끔씩 말실수를 하여 곤욕을 치르기도 하는데, 황자들끼리와 있었을 때 황제를 그 사람이라고 칭하다가 8황자에게 "다시는 그런 대역무도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크게 혼났다.[48] 게다가 한창 일을 하고 있는 황제에게 "오늘은 이만 하시고, 쉬시죠?"라고 하다가 어전 태감인 이덕전이 화들짝 놀라서 엎드리자 자기가 비로소 무슨 말을 했는지 눈치채고 같이 엎드려서 빌었다. 다행히 황제가 10째 딸의 잔소리 같다고 즐거워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혀 잘리고 끝나는 게 기적이 될 정도로 큰 실수였다.[49]

굉장히 세심하다. 황자들의 기호를 모두 파악하는가 하면, 기침을 하고 속열이 있는 강희제를 위해 은행잎을 섞은 차를 올려 강희제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장효였던 시절과 약희였던 시절 모두 생일이 똑같은 날인데, 공교롭게도 옥단도 그런 약희와 생일이 같다.

사실 드라마와 소설을 비교하였을 때 약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설판이 훨씬 더 계산적인 모습이 많이 비춰진다는 것이다.

다만 드라마와 달리 소설판에서 약희는 제3자의 시선에서 지켜보고, 계산적으로 행동하긴 해도, 황자들을 도우려는 등 오지랖 넓고 유유부단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6. 기타

보보경심과 옹정황제의 여인을 둘다 본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순원황후인식되기도 한다. 둘다 옹정제 평생의 사랑이자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연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순원황후가 약희라고 치면 옹정황제의 여인의 옹정제가 보여주는 순원에 대한 지독한 집착도 납득이 되는 면이 있다. 은근히 공통점도 많은데... 두 사람 모두 학식이 풍부하고 시를 곧잘 읊는 등 수준 높은 대화가 가능했고, 옹정제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준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둘 다 아름다운 춤으로 옹정제의 기억 속에 남았고,[50] 홍매화와 관련이 있었다. 아이를 안타깝게 잃었다는 것도 비슷하고, 옹정제로부터 양지옥으로 조각한 목걸이를 선물받았다는 것도 공통점.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위키 항목 작성은 곽락라 명혜덕비에 밀려서 3번째로 작성되었다.

보보경심 한국 리메이크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는 이름이 해수로 로컬라이징되고, 8황자의 부인과의 관계도 친언니에서 육촌 언니로 바뀌었다. 아이유가 연기한다.

[1] 원작소설에 원명원 근처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는 대목이 있고, 애초에 장효라는 인물 자체가 작가 본인을 모델로 하여 만든 인물이다. 위구르 출신으로 베이징에서 공부하고 선전에서 직장을 구했다는 설정은 사실 작가의 인생 그대로다. 특히 작가는 베이징대에서도 최고 명문인 경영대학(광화관리학원) 출신으로, 본작의 마이태 약희도 작가의 자기투영+회계사라는 직업상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2] 청나라 시대 양광총독(兩廣總督)을 역임했던 관원 구왈갸 마르타이(ᡤᡡᠸᠠᠯᡤᡳᠶᠠ ᠮᠠᡵᡨᠠᡳ, 瓜爾佳 馬爾泰, ? ~ 1748)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름으로 보인다.[3] 한족계 상류층 중에서는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과거시험 등을 통해 뒤늦게 권력을 얻은 이들보다는 청나라 초기에 일찍 청나라에 투항한 한족의 후손들이 더 높은 신분으로 여겨졌다. 전자 중에서도 팔기군 소속인 한족이 팔기군 소속이 아닌 한족보다 더 높은 신분으로 여겨졌다.[4] 당장 보보경심과 같은 시대를 다룬 사극 옹정황제의 여인만 보더라도 둘 다 귀족 집안의 딸인데 한 명은 유서깊은 명문가의 딸이라는 이유로 더 높은 품계로 입궁한다. 그리고 청나라의 만주족과 몽골족 중에서도 청나라 건국 이전마냥 변방에서 기마민족으로 살아가던 하층민들은 웬만한 한족 상류층보다도 더욱 낮은 대접을 받았다.[5] 약희를 몰라보고 희롱하던 남자가 마이태 장군님의 따님이다 라는 말만 듣고도 벌벌 떨며 사죄하고, 10황자의 적복진 곽락라 명옥이 "마이태 집안 사람들은 다 기마술이 출중하다던데~" 라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절대로 한미한 가문은 아니다.[6] 애초에 황자의 측복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측복진을 우리나라의 첩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청나라 황자의 적복진은 대게 어머니를 공주 혹은 격격으로 둔 종실녀들을 위주로 뽑았고 측복진들은 8기 귀족 여자들 사이에서 뽑았다. 측복진은 적복진보다 지위가 낮기는 하지만 엄연히 부인이며 정식 혼례를 거쳐 왕부에 들어오게 된다. 우리나라 개념의 첩은 서복진 혹은 격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청나라 귀족들 중에서도 신분 최상위층에 있는 집안만이 황자에게 딸을 부인의 자격으로 시집보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1측복진은 측복진들 중 서열이 가장 높고 그 지위가 적복진에 버금간다. 만약 8황자가 황위에 올랐다면 약란은 즉시 귀비로 봉해졌을 것이다.[7] 사실 옹정제의 측복진들은 대부분 그렇게 뛰어난 신분이 아니었다. 돈숙황귀비 연씨는 아예 포의 출신으로 벼락출세했다가 그마저도 금방 망해버렸고, 제비 이씨의 부친은 사실상 후궁인 딸 제비 덕에 관직에 오른 것이다. 나머지도 거의 포의 출신이다.[8] 작중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약희가 새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아 통제가 어려워져서 경성에 있는 언니 약란에게 보냈다는 언급이 있는데, 만약 약란와 약희 자매의 어머니가 첩이었다면 굳이 새어머니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 원래 정실부인이었던 자매의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새로 정실부인을 얻었기 때문에 새어머니라는 표현을 쓴 것.[9] 포의는 쉽게 말하자면 청 황실의 가노라고 보면 된다. (황제 직속인 상삼기 포의와 지위가 높은 종실에 속하는 하오기로 나뉘며 여러 작품에서 노비라고 표현하나 여엿한 귀족이다.) 돈숙황귀비의 아버지인 연하령이 벼슬에 오르며 한군기 양황기로 편입되었다.[10] 강희제의 두번째 황후 효소인황후가 바로 이 뉴호록 가문 출신이다.[11] 뉴호록 액역도의 방계일 뿐이였고 조상들의 능력도 변변치 않아 권력있는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12] 여담으로 이 역을 맡은 사람은 바로 적인걸, 삼국기밀의 주연으로 얼굴을 알린 마천우.[13] 소설에선 13살이다[14] 시녀 교혜의 말과 어렴풋이 남아있는 약희의 기억에 의하면 곽락라 명옥이 의도적으로 계단에서 약희를 밀어버린 것으로 추측된다.[15] 자신을 위해 나선 동생에게 매정해 보일 수 있겠지만, 명옥은 왕의 손녀이기에 잘못하면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약희에게 성질 좀 죽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 사실 곽락라 자매는 마이태 자매보다 신분이 한 단계 높다. 곽락라 자매는 왕족이고 마이태 자매는 명문가 규수일 뿐이며, 명혜는 적복진이며 약란은 그 아래인 측복진이다. 게다가 약희는 재녀 선발을 목적으로 약란의 시가에 와 있는 건데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고 정실의 동생과 쌈박질을 한 것이니 태자와 8황자의 중재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었다.[16] "진시황한무제는 문예가 부족하고, 당태종과 송태조는 문학이 못 미치며, 천하제일의 영웅 칭기즈 칸은 독수리 사냥밖에 모른다. 천하의 풍류인을 찾으려면 오늘을 보아야 하리." 마오쩌둥이 쓴 시 심원춘설(沁園春雪)이다.[17] 그리고 그 후에 강희제를 가르켜서 그 사람이라는 말을 하여 어지간한 일로는 약희에게 화를 안 내는 8황자마저도 격노하여 "두 번 다시 그따위 대역무도한 소리를 입에 담지 마라!" 라고 입을 틀어막듯이 움켜쥐면서 혼낼 정도다.[18] 약희 본인은 진지하게 한 말이지만 13황자는 약희가 술 취해서 한 말이라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했다(...)[19] 8황자는 양비에게, 4황자와 14황자는 덕비에게 찾아가 약희를 궁녀로 빼달라고 했다[20] 명혜의 오빠가 혜비의 아들과 함께 공부했었기 때문에 혜비 쪽에 연줄이 있었다. 명혜는 약희가 강희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게 되면 자신들보다 신분이 고귀해질까봐 두려워 다른 황자들이 부탁해놓은 것을 모르고 혜비까지 끌어들이는 트롤짓을 시전한다.[21] 궁녀에는 상삼기 포의 출신들이 주로 선발된다. 약희는 포의 출신도 아니고, 엄연히 명문가의 기녀(旗女)이니 당연히 궁녀는 될 수 없다. 일종의 드라마적 허용.[22] 국경에서 벗어난 변경 지역으로 출타하는 것.[23] 태자가 13황자를 불러서 13황자 대신 4황자가 온 것이다.[24] 하지만 약희와는 달리 4황자는 약희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13황자에게 승마를 해보면 사람의 성정을 알 수 있다며, 약희는 신중하고 침착하지만 한편 위험도 불사하는 용기를 타고났다고 얘기했다.[25] 민민 공주가 13황자에게 양 빼앗기 놀이를 하자고 부탁하는 바람에 4황자가 또 다시 온 것이다.[26] 어전 궁녀들끼리 누가 새로운 태자가 될것인가에 대해 떠드는 것을 본 약희가 "우리들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 라며 한 소리 했는데, 이 장면을 목격한 이덕전이 진중하다며 더욱 예뻐하게 되었다.[27] 송나라 시인 진관(秦觀)의 시. 옹정황제의 여인에서도 등장했다.“견우는 그리움을 전하려 기나긴 은하수를 건너나니, 가을밤 한 번의 만남이 무수한 밤보다 나아라. (중략) 우리 사랑이 영원하다면 매일 만나지 않아도 되리.”[28]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실시되었고 8황자의 사람들이 제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29] 민민에게 14황자를 자신의 정인으로 속였다. 마침 민민은 13황자를 깊이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에 민감했던 터라 열정적으로 그녀를 도와주었다(...)[30] 이 상황을 본 4황자는 강아지 3마리가 싸우는 모습을 향낭에 그려 약희에게 선물한다. 하하, 개판이네.[31] 오사도, 융과다, 연갱요, 전경문, 이위. 사실 오사도는 드라마에만 나오는 사람이었고(...) 전경문은 전경문이 아니라 전문경이었다. 약희가 잘못 기억한 것.[32] 4황자에게 황위를 원하냐고 떠보았는데, 4황자는 솔직하게 원한다고 대답했고, 서로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33] 14황자가 말해주었다.[34] 이것도 염평과 춘도 등이 연고에 고추가루를 넣어 못쓰게 만들었다[35] 물론 도움도 있었지만 약희도 이미 황궁생활 9단이었던지라, 괴롭히는 무리들은 자기가 알아서 잘 처리하여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36] 13황자를 위해 그냥 지어낸 말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 말 자체는 사실이었다.[37] 8황자에게 4황자 일당을 조심하라고 했던 말이 화근이 된 것. 이 말을 듣고 8황자가 4황자를 공격했고, 이로 인해 죄 없는 13황자가 10년간 감금 당했으며, 결과적으로 옹정제는 8황자당을 극도로 증오하게 되었다.[38] 마이태 약희를 14황자 측복진으로 봉한다는 성지였다.[39]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고, 생사를 함께하고 백년해로 하자고 맹세한 사이였다고 말한다.[40] 드라마에선 이 유언이 받아들여졌으나 원작의 옹정제는 들어주지 않았다. 옹정제만 들어갈 수 있는 방에 약희가 생전에 쓰던 물건들을 보관해두고 옹정제가 때때로 들렀다가곤 했다. 과로사로 죽기 직전까지.[41] 민민공주에게 한 거짓말이 들통나 승마경쟁을 했을 때 말 엉덩이에 꽂아넣은 비녀(그 사건 이후 14황자가 간직하고 있었는데 옹정제가 얄짤없이 압수해왔다)도 있었다.[42] 강희제 및 여러 황자들에게 푸딩을 올리던 상황이 그려져 있었다. 4황자에게 소금푸딩을 올렸던 바로 그 때.[43] 원작은 약희가 죽은 후 장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안 나온다.[44] 청나라 만주족들이 신었던 신발. 굽이 신발 바닥 한가운데에 달려 있었다.[45]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베이징대학 출신인 작가가 자신을 모델로 만든 인물이다.[46] 걱정하는 정도가 지나쳐 시청자들로부터 오지랖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이다.[47] 옹정제에 의해 황자 작위를 박탈당하고 가족들과 함께 황실 족보에서도 제명당했으며 일가 식솔들까지 죄다 노비로 전락하고 자신도 대동보에 유폐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여, 하루하루 죽는 날만 기다리다가 약희의 사후 그녀의 부탁으로 찾아온 13황자가 독약과 함께 전해준 옥단의 혈서를 보고 자신이 옥단을 죽음으로 몰고간 걸 후회하며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자신에게 보란듯이 옥단의 혈서를 남겨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스럽게 만든 약희에 대해 옹정제는 몸만 괴롭혀서, 죽일 뿐이지만 약희는 후회로 가득 차서 괴로운 죽음을 맞게 하니 옹정제보다 더 독하고 잔인하다고 평한 건 덤 . 8황자도 모든 걸 잃고 자살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명혜와의 인연을 내세에서도 이어가겠다고 다짐한 뒤 미련없이 조용히 죽은 걸 생각하면 9황자의 최후가 더욱 비참해보인다.[48] 사실 언제나 약희에게 호의적이었던 8황자가 약희에게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이다.[49] 만약 장효의 영혼이 강희제 치세와 옹정제 치세를 살아간 약희가 아니라 건륭제 치세의 청나라 여인에게 깃들었다면, 건륭제가 지나친 문자의 옥으로 악명을 떨친 폭군이었음을 감안할 때 비슷한 말을 했다가 끔찍한 꼴을 당했을 수도 있다.[50] 순원황후와 달리 약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민민의 춤을 기획하기만 했지만, 4황자는 민민을 보며 약희의 춤을 상상했고 죽을 때도 약희의 춤을 상상하며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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