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 Matthias Erzberger | |
출생 | 1875년 9월 20일 |
독일 제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부텐하우젠 | |
사망 | 1921년 8월 26일 (향년 45세) |
바이마르 공화국 바덴 | |
국적 | [[독일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바이마르 공화국 |
신체 | NNNcm, NNkg, 혈액형 |
가족 | 이름 (관계) |
학력 | 학교명 학부명 (학과명 / 재학 여부) |
종교 | 종교 |
직업 | 작가, 정치인 |
소속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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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과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에 기여한 평화파 정치인이다.2. 생애
뷔르템베르크의 수공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기자로서 활동했다. 1903년에 가톨릭 민주파 성향의 독일 중앙당의 당원으로 들어가고, 독일 국회의원으로 선출된다. 식민주의 전문가였으나 식민주의에 반대했고,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부르크프리덴[1] 정권의 일원으로서 활동했다.1917년에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로마로 건너가지만, 오히려 전쟁이 독일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1918년 11월 7일부터 평화파로 전향한 뒤 막시밀리안 폰 바덴 정부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정부 밑에서 종전안을 추진한다.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하지만 1918년 당시 대표단 수장으로서 휴전협정에 서명한 점에 더하여, 종전 이후 종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에르츠베르거는 패전의 얼굴마담이 되어버렸고, 이는 독일 국수주의자들에게 원망을 사는 결과를 낳았다.[2] 결국 1921년 8월 26일에 바덴 공화국(Republik Baden)[3]의 바트 페터슈탈 그리스바흐(Bad Peterstal-Griesbach)에서 민족주의 단체인 "게르만 기사단(Germanenorden)"의 일원에 의해 암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