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3:57:47

말레보 페레이라

<colbgcolor=#C0C0C0><colcolor=#fff> 마리오 오스카 페레이라
Mario Oscar Ferreyra
파일:말레보 페레이라.jpg
출생 1945년 6월 17일
아르헨티나 투쿠만 크루즈 알타 부서
사망 2008년 11월 21일 (향년 64세)
아르헨티나 투쿠만 산안드레스
국적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별명 말레보
가족 4명의 자녀
직업 경찰서장
1. 개요2. 생애3. 라구나 데 로블스 살인 사건4. 나중의 삶과 죽음

[clearfix]

1. 개요

아르헨티나의 前 경찰서장. 아르헨티나에서 자살 생중계를 한 인물이다.[1]

2. 생애

1945년 6월 17일투쿠만 크루즈 알타 부서에서 태어난 말레보는 평범한 유년기를 보내다 18세에 경찰직을 하기 시작했다. 작고 여린 몸 때문에 경찰에 못 들어갈 뻔 했지만, 친척들의 도움으로 경찰직을 시작할 수 있었다.

1973년에는 페론주의 청년단 15명과 싸웠고 그로 인해 평생 지속되는 상처를 얻었다.

1975년에는 몬토네로스 게릴라 세력 소속의 일원인 주안 카를로스 알소가라이(Juan Carlos Alsogaray)와 일대일로 싸우다가 그를 FN FAL 소총으로 살해했다

군부독재 시절, 상급자에 의해 무분별한 총기 사용한 혐의로 고발되어 2년 5개월간 정직을 당했다.[2]

1986년, 민주주의 회복 후, 엔리퀴에 프로드 코레아(Enrique Prode Correa)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1987년, 경찰 강도과의 수장이였을때 범죄 가족 2명이 사망한, 산 미구엘 데 투쿠만 시로 향하는 북쪽 접근로 쪽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에 연류 되었다.

1988년에는 다니엘 카리조(Daniel Carrizo)를 살해와 고문을 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1990년 1월에는 수사국장으로 임명 됐다.

3. 라구나 데 로블스 살인 사건

1991년 10월 10일, 투쿠만 북부 시골 지역인 '라구나 데 로블스'에서 범죄자로 추정되는 세 사람[3]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페레이라는 이들이 모두 무장 충돌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같은 해 11월, 말레보는 다른 고위직 간부들을 공금 남용 혐의로 고발했지만, 다음날에 간부들이 그를 해고시켰다.

나중에 말레보는 앞서 서술한 살인 사건에서 3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12월 9일에 다른 경찰관 8명과 함께 재판에 넘겼다

재판은 1993년 11월 26일에 시작됐고 12월 14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말레보는 자신이 숨겨둔 수류탄을 거내들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자폭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나서 그 법원을 탈출했다.

말레보가 법원을 탈출한지 79일 후 그는 인근 산에서 연방군에게 체포당했다. 체포를 당하면서 말레보는 "나는 내 목숨을 끊을 뻔 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20년 형을 받았지만 감옥에서 더 빨리 풀려났다.[4]

4. 나중의 삶과 죽음

말레보는 자신의 고향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산안드레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2008년, 더러운 전쟁 중에서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범죄 때문에 기소되었다.

11월 21일에는 국립 헌병대가 말레보를 체포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파견되었다. 말레보는 오전 7시경, 그의 급수탑에 올라가고 헌병대와 크로니카 TV(Crónica TV)의 기자카메라맨이 그를 뒤따라갔다.

오전 7시 20분경, 인터뷰 중에서 말레보는 또 다시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말했다. 기자자살도 할 수 있냐고 묻자 한니발 바르카처럼 자살할 것이라고 답했다.[5]
[ 펼치기 · 접기 ]
파일:마리오 오스카 페레이라.jpg
자살 직전의 말레보 페레이라
오전 7시 27분, 카메라가 잠시 다른 곳을 촬영할때 말레보는 자신의 권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에 쏘고[묘사주의] 이 장면은 전국으로 송출됐다.


[1] 아르헨티나 최초의 자살 생중계는 아니다. 아르헨티나 최초의 자살 생중계를 한 인물은 마티아스 벨로이다.[2] 더러운 전쟁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남미의 나치'라고 불릴 정도로 극악무도했는데, 그런 군사정권에서도 정직을 당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안 봐도 뻔하다.[3] 조세 메넨데즈(José Menéndez), 휴고 베라(Hugo Vera), 그리고 리카르도 안드라다(Ricardo Andrada).[4] 왜냐하면 당시 투쿠만의 주지사인 안토니오 도밍고 부시(Antonio Domingo Bussi)가 페레이라를 좋아했었기 때문이다.[5]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말레보의 유언은 "안녕 마리아(말레보의 연인)."이다.[묘사주의] 카메라를 옆으로 돌리는 동시에 총을 쏘며 옆으로 기울고 버드 드와이어처럼 코피를 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