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방송공사 | ||
BBC SPORT | ||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매튜 업슨 Matthew Upson | |
본명 | 매튜 제임스 업슨 Matthew James Upson | |
출생 | 1979년 4월 18일 ([age(1979-04-18)]세) | |
잉글랜드 서퍽주 아이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5cm / 체중 72kg | |
직업 | 축구선수 (센터백 / 은퇴) 방송인 | |
소속 | 선수 | 입스위치 타운 (~1994 / 유스) 루턴 타운 (1994~1996 / 유스) 루턴 타운 (1996~1997) 아스날 FC (1997~2003) → 노팅엄 포레스트 (2000 / 임대) → 크리스탈 팰리스 (2001 / 임대) → 레딩 FC (2002) 버밍엄 시티 (2003~2007)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07~2011) 스토크 시티 (2011~2013) →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2013 / 임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2013~2014) 레스터 시티 FC (2014~2015) 밀턴킨스 던스 (2015~2016) |
방송인 | 영국방송공사 (축구해설가) | |
국가대표 | 21경기 2골 (잉글랜드 / 2003~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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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2. 클럽 경력
2.1. 경력 초기
잉글랜드 서퍽주의 아이라는 지역에서 태어난 업슨은 입스위치 타운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센터백 자리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여러 선수[1]들을 발굴해낸 테리 웨슬리를 따라 루턴 타운으로 팀을 옮기게 된다. 1996년, 프로계약을 채결한 뒤 8월에 로더럼 유나이티드와의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경기에서 후반 43분에 교체출전하며 프로데뷔 무대를 밟는다.2.2. 아스날 FC
1997년 5월, 루턴에서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받은 업슨은 당시 만 17세의 선수에게는 파격적인 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통해 아스날 FC로 이적한다. 허나 당시 아스날 1군 센터백라인은 '미스터 아스날' 토니 애덤스와 스티브 볼드 그리고 마틴 키언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풋내기 업슨이 들어갈 자리는 당연히 없었다. 1997-98 시즌, 팀은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업슨은 5경기 출전에 그쳐 출전미달로 인해 메달을 수여받지 못한다. 설상가상 1999년에는 전방 십자인대 부상을 입으며 1년간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하게 된다. 부상에서 회복 후 2000년에 노팅엄 포레스트로 2001년에는 크리스탈 팰리스로 임대를 다녀왔고, 그 사이에 아스날 1군경기에 몇차례 출전하기도 했다.2001-02 시즌 업슨은 지속적인 임대생활을 청산하고 처음으로 아스널에서 풀타임 시즌을 맞게 된다. 시즌 초부터 로테이션멤버로 자리 잡은 그는 시즌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출전 기회를 쌓으며 순조로운 거너스의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이듬해 2월, 다리가 부서지는 큰 부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만다. 이후 팀은 리그와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으로 더블을 이룩한다. 업슨은 부상 이전까지 총 22경기에 출전했으며, 14경기의 프리미어리그 출전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메달을 수여받으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부상에서 회복한 2002년 9월, 3개월의 단기 임대로 레딩 FC에 합류한다. 그리고 10일 풋볼 리그 컵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프로 통산 첫 득점을 기록했지만 1:3 패배로 빛이 바랬다.
임대에서 돌아온 이후 업슨은 솔 캠벨과 콜로 투레의 합류로 인해 1군에서 입지가 크게 좁아지면서 이듬해 1월에 버밍엄 시티로 이적한다.
2.3. 버밍엄 시티
2003년 1월, 약 100만~3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버밍엄에 합류한 업슨은 후반기에 리그 14경기에 출전하며 오자마자 자리를 잡았고, 계속해서 팀의 주전으로 뛰었다. 이후 강등권 탈출싸움이 한창이던 2006년 2월, 친정팀 아스날전 이후 다리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고, 업슨의 공백에 치명타를 입은 팀은 끝끝내 18위를 기록하고 EFL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한다. 회복 이후에는 2부리그에서 복귀전을 가졌으며, 12월 2일 플리머스 아가일과의 리그 경기에서는 팀의 3골 중 1골을 책임지며 3: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2.4.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든든했던 해머스의 캡틴이자 방패였던 업슨 |
2007년 1월 18일, 1부리그의 웨스트햄이 업슨에게 이적료 400만 파운드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며칠 뒤 200만 파운드를 얹은 600만 파운드에 2차 제안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적시장 마지막날이 돼서야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되었고 600만 파운드[2]의 이적료와 계악기간 4년 6개월에 이적을 채결한다. 이후 업슨의 이적을 두고 당시 버밍엄의 감독이었던 스티브 브루스는 그를 팔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했으나[3] 보드진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2월 3일, 업슨은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서며 첫 경기를 치렀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 종아리 부상으로 교체아웃 되었고, 1달 뒤 2007년 3월 4일 업튼 파크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의 복귀전에서 11분 만에 또 다시 부상으로 아웃되며 홈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결국 2006-07 시즌에는 이 두 경기 출전을 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7-08 시즌부터 업슨을 부상을 훌훌 털고 주전으로 활약하게 된다. 8월 16일, 위건과의 개막전에서 처음으로 풀타임 경기를 소화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후방을 든든히 수호하며 9위로 마감하는데 기여한다.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삼사자군단에서도 레귤러 멤버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다음 시즌에는 그의 등번호였던 6번이 클럽과 대표팀의 레전드 수비수였던 바비 무어의 등번호로 영구결번 처리가 됨에 따라 15번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새 등번호를 달고 맞이한 시즌에도 여전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시즌을 마치고 루카스 닐이 팀을 떠남으로서 주장직을 이어받으나, 팀은 어려운 시즌을 보냈고 본인도 답답한 수비진을 이끄느라 개고생을 한다.
2008-09 시즌, 아스날과의 약 12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리턴 루머가 돌았다.[4]
결국 2010-11 시즌에는 시즌 내내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팀과 선수 모두 챔피언십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업슨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난다.
2.5. 스토크 시티
자유계약 상태였던 업슨은 2011년 8월 9일, 스토크 시티와 2년 계약을 채결한다. 팀이 UEFA 유로파 리그에 참가하는 것이 스토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업슨은 홈구장인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FC 툰과의 유로파 리그 예선 2차전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데뷔골까지 기록하며 팀의 4:1 승리를 이끌며 본선 진출을 도왔다.
그러나 스토크에서는 로버트 후트와 라이언 쇼크로스의 백업으로 나서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주로 유로파 리그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으며, 리그 경기는 14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유로파 리그에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이며 팀의 역사적인 32강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었다.[5] 또한 이듬해 2월 26일, 26라운드 스완지 시티전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고 단단한 수비를 선보이며 맨오브더매치급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2.6. 이후
2012-13 시즌 스토크에서 리그 1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던 업슨은 2013년 1월에 챔피언십의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으로 임대를 떠난다. 브라이튼에서는 후반기 동안 주전으로 활약했고, 시즌 종료 후 스토크에서 방출되자 이내 브라이튼과 계약을 채결한다. 그리고 2013-14 시즌 동안 절륜한 수비력으로 브라이튼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이후 레스터 시티 FC와 밀턴킨스 던스을 거쳐 2016년,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독일전에서 추격골을 넣는 업슨 |
이후 그는 2008년 2월 6일 웸블리에서 열리는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를 앞두고 파비오 카펠로의 첫 잉글랜드 스쿼드에 승선했다. 그리고 경기 당일날 선발 라인업에 당당히 이름에 올리며 리오 퍼디난드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2:1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10월에는 존 테리의 부상으로 카자흐스탄과의 월드컵 예선경기에 선발로 출장했다. 11월 19일에는 독일과의 친선전에서 대표팀 첫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남아공에서 개최된 2010년 월드컵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생애 첫 월드컵을 맞이한 그는 슬로베니아와의 3차전에서 본선 첫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16강전에서 독일을 만나 2:0으로 지던 전반 37분, 제라드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으로 추격골을 성공시키며 다시 한번 독일을 상대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득점에 무색하게도 램파드의 슛이 골라인을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심으로 취소되고 이후엔 맨탈이 나가버렸는지 잉글랜드는 후반에 들어서자 토마스 뮐러에게 멀티골을 얻어맞으며 1:4의 굴욕적인 패배를 당함과 동시에 월드컵을 조기 마감해야 했다.
이후 업슨은 떨어진 기량과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표팀과 멀어졌다.
4.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BBC의 축구 패널로 종종 출연하고 있다.5. 기록
5.1. 출전 기록
<rowcolor=#ffffff> 대표팀 | 출전 | 득점 | 도움 |
잉글랜드 U-18 | 9 | 0 | 0 |
잉글랜드 U-21 | 12 | 2 | 0 |
잉글랜드 | 21 | 2 | 0 |
5.2. 대회 기록
- 아스날 FC (1997~2003)
- 프리미어리그 : 2001-02
- FA 커뮤니티 실드 : 2002
5.3. 개인 수상
- 브라이튼 올해의 선수 : 2013-14
[1] 리처드 라이트, 키어런 다이어, 톰 허들스톤 등[2] 경기 출전수에 따라 750만 파운드까지 오를 수 있다.[3] 당시 버밍엄은 승격 경쟁 중이었기 때문에 업슨의 잔류는 무조건적으로 필요했다. 다행히도 업슨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팀은 우승을 차지하며 1부리그에 승격하게 된다.[4] Arsenal To Double the Matthew Upson Mistake for £12 Million: Deal or No Deal?[5] 32강에서 발렌시아 CF를 만나 총합 스코어 0:2로 패하면서 대회를 마무리한다.
분류
- 1979년 출생
- 1996년 데뷔
- 2016년 은퇴
- 서퍽주 출신 인물
- 잉글랜드의 남자 축구 선수
- 아스날 FC/은퇴, 이적
- 노팅엄 포레스트 FC/은퇴, 이적
- 크리스탈 팰리스 FC/은퇴, 이적
- 레딩 FC/은퇴, 이적
- 버밍엄 시티 FC/은퇴, 이적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스토크 시티 FC/은퇴, 이적
-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은퇴, 이적
- 레스터 시티 FC/은퇴, 이적
- 밀턴킨스 던스 FC/은퇴, 이적
-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잉글랜드의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
- 1997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말레이시아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