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의 도시 Mobile 모빌 | |||
시기(市旗) | 문장(紋章) | ||
지역 | 앨라배마주 모빌 카운티 | ||
면적 | 180.07 sq mi (466.39 km2) | ||
인구 | 187,041명 | ||
시장 | 샌디 스팁슨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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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앨라배마 주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며 앨라배마 주 내에서 유일하게 항구에 면한 도시이기도 하다. 멕시코 만 북쪽의 모빌 강과 모빌 만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시절부터 프랑스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주요 교역창구로 크게 성장, 미국에서 아홉번째로 큰 요새가 위치할 정도였다.
모빌이라는 이름은 주변에 살고 있던 모빌라 족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이후 프랑스는 이곳에 루이 요새(Fort Louis de la Louisiane)를 세우고 루이지애나의 지배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파리조약(1763) 체결 이후 프랑스는 이곳을 영국에 내주게 되었으며, 이후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의 동맹으로 참전한 스페인이 이곳을 빼앗아 카를로타 요새(Fortaleza Carlota)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1812년 미영전쟁때 미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미시시피의 일부로 간주되었다가 1817년 앨라배마로 편입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항만 개발로 일자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에 의해 번영하게 된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이 있은 후 조선 및 철강 생산이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급부상하며 모빌의 경제는 점점 더 번성했다. 2차 세계대전중엔 전시생산기지로써 역할를 수행하였다. 전국에서 리버티선을 건조하는 18곳 중 한군데였고 이와 더불어 급유선인 T2-탱커를 비롯해 군수선, 구축함, 소해함 등을 생산하였다. 전후 1940년대 후반, 방위산업의 감소세로 조선소에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해 전후 경제로의 전환은 어려워졌다. 1969년 미국 국방부의 결정에 의해 브룩리 공군기지가 폐쇄되었으며, 이는 모빌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 폐쇄로 인해 도시에서 10%의 실직이 발생했다. 산업 구조조정과 관련된 여러 요인들로 말미암아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경제적 불황이 이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음으로써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주거환경도 악화되어 인구는 감소하였다. 이때부터 도시인구는 정체돼 현재 20만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해안도시 답게 기후가 굉장히 온화해서 1월 평균기온도 10.2℃나 된다. 서귀포시의 1월 평균보다 3℃ 이상 높으니 눈 구경 자체를 못한다.
2005년 8월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수백만 달러의 피해를 입어 걸프 해안 도시의 많은 부분을 손상시켰다. 특히 3m가 넘는 폭풍 해일이 발생해 시내가 범람하고 도시의 동부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배경지이다.
미국에서 하이힐이 금지된 도시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