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raité de ParisTreaty of Paris
역사상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Paris)에서 체결된 여러 조약들을 지칭한다.
2. 내용
- 1229년 파리 조약: 툴루즈의 레몽 7세와 프랑스 왕국의 루이 9세 간에 맺은 조약. 알비 십자군의 종결을 지지하고 레몽의 딸과 루이의 형제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레몽은 자신의 영지 북부 랑그도크를 루이 9세에게 양도했다.
- 1259년 파리 조약: 프랑스 왕국의 루이 9세와 잉글랜드 왕국의 헨리 3세 간에 맺은 조약.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전쟁을 종결하고 플랜태저넷 왕조의 프랑스 내 영토 문제를 해결한 조약. 헨리 3세가 루이 9세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다하는 것을 조건으로 가스코뉴와 앙주의 일부를 영지로 하는 것이 인정되었다. 후에 프랑스의 카페 왕조가 단절되자 잉글랜드 왕은 모계를 통한 계승권을 주장하며 백년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 1303년 파리 조약: 프랑스 왕국의 필리프 4세와 잉글랜드 왕국의 에드워드 1세 간에 맺은 조약. 가스코뉴를 놓고 맺은 조약으로 이 조약의 결과 필리프 4세의 딸과 에드워드 1세의 아들(에드워드 2세)이 결혼을 했다.
- 1323년 파리 조약: 플랑드르 백작 루이 1세
- 1355년 파리 조약: 사보이아 백국의 아메데오 6세와 프랑스 왕국의 샤를 5세 간에 맺은 조약.
- 1623년 파리 조약: 프랑스 왕국, 사보이아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이 맺은 조약. 세 나라가 손을 잡고 발텔리나에서 스페인의 세력을 몰아내기로 했다.
- 1657년 파리 조약: 프랑스 왕국과 잉글랜드 연방이 동맹을 맺고 스페인에 대항하기 위해 맺은 조약.
- 1763년 파리 조약: 그레이트브리튼 왕국&포르투갈 왕국과 프랑스 왕국&스페인 간에 맺은 조약으로 유럽에서 벌어졌던 7년 전쟁과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프렌치 인디언 전쟁 등에 대한 강화 조약. 프랑스와 스페인은 전쟁 와중 점령한 영국과 포르투갈의 영토를 모두 반환하였고 영국은 프랑스에게 과들루프, 마르티니크, 세인트루시아, 세네갈를 반환하는 조건으로 프랑스는 캐나다와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도미니카, 그레나다, 토바고 섬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인정하였다. 또한 프랑스는 퐁디셰리 등 소수의 무역 거점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인도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루이지애나를 미시시피 강을 경계로 해서 강 동쪽은 영국에게, 강 서쪽은 스페인에게 할양하였다.[1] 스페인은 영국에게서 필리핀과 쿠바를 반환받는 조건으로 플로리다와 벨리즈를 양도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는 뉴펀들랜드 근해의 어업권을 얻었고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가톨릭 신앙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 1783년 파리 조약: 미국 독립전쟁 결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여 미시시피 강 동쪽을 미국의 영토로 인정하고 7년 전쟁의 결과 스페인에게서 얻은 플로리다를 스페인에게 반환했다.
- 1796년 파리 조약: 제1차 대프랑스 동맹 기간 동안 프랑스 제1공화국과 사르데냐 왕국간에 맺은 조약. 몬테노테 전투와 몬도비 전투에서 패배한 사르데냐 왕국은 대프랑스 동맹에서 탈퇴하고 프랑스와 정전 협정을 맺었다.
- 1810년 파리 조약: 프랑스 제1제국과 스웨덴이 맺은 조약으로 양국은 화해를 하고 스웨덴은 대륙봉쇄령에 참여하게 되었다.
- 1814년 파리 조약: 프랑스와 제6차 대프랑스 동맹(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스웨덴, 포르투갈 왕국, 프로이센 왕국, 사르데냐 왕국) 간에 맺은 조약.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고 프랑스는 루이 18세가 즉위하여 부르봉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 1815년 파리 조약: 나폴레옹이 복위했다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후 다시 맺어진 조약으로 2차 파리 조약이라고도 한다. 프랑스의 영토는 1790년의 국경선으로 축소되었고 7억 프랑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으며 최장 5년간 동맹군의 프랑스 주둔을 인정하는 동시에 주둔 경비까지 지불하게 되었다. 파리 조약의 결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간에 신성 동맹이 결성되었다.
- 1856년 파리 조약: 크림 전쟁 이후 맺어진 조약으로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사르데냐 왕국, 프랑스 제2제국,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이 체결한 조약. 흑해 일대가 중립 지역으로 선포되었고 신성동맹국끼리 적대했기 때문에 빈 체제가 사실상 소멸하게 되었다. 또한 사략선을 불법화하여 개인 선박의 상선 약탈이 금지되면서 해적들이 급격히 약화되었다.[2]
- 1883년 파리 협약: 산업재산권 보호에 관한 파리 협약. 정식 명칭은 공업소유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으로 특허권, 실용신안권, 상표권 등을 포함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 5월 4일 조약 제707호로 발효되었으며, 지식재산권 보호를 국제적으로 규정한 첫 협약이다.
- 1898년 파리 조약: 미국-스페인 전쟁의 강화 조약.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등을 차지하였고, 스페인의 관할인 쿠바 도독령은 해체되어 쿠바 공화국으로 명목상 독립하였으나 실질적으론 미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스페인은 대부분의 해외식민지를 상실하면서 대항해시대부터 이어온 스페인 제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미국은 태평양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게 되었다.
- 1900년 파리 조약: 스페인과 프랑스 제3공화국 사이에 맺은 조약.
- 1919년 파리 강화 회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질서 안정을 위해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다.
- 1947년 파리 조약: 연합국 21개국과 예전 추축국인 이탈리아, 루마니아 왕국,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헝가리 제2공화국과 추축국과 같이 소련에 대항했던 핀란드 사이에 체결된 조약. 5국은 각각 군비를 제한받게 되었고 배상금을 부과 받았으며 이탈리아는 해외 식민지를 모두 상실함과 동시에 프랑스와 유고슬라비아에게 영토의 일부를 할양했다. 핀란드는 소련에 영토의 일부를 할양했고 헝가리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영토의 일부를 할양했다.
- 1951년 파리 조약: 프랑스 제4공화국,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간에 맺은 조약. 유럽연합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가 성립되었다.
- 1973년 파리 조약: 베트남 전쟁 종결을 위하여 베트남 민주 공화국, 베트남 공화국, 미국 사이에 맺은 평화 협정. 당시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베트남에서 발을 빼고 싶어했는데 철수 과정을 보기 좋게 하려고[3] 핵무기로 협박을 해서 북베트남을 끌어들여 조약을 맺는다. 이후 미국은 베트남에서 소수의 병력만[4]을 남기고 베트남에서 철수했는데 그 순간을 노린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전면침공과 게릴라전 재개를 감행하고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베트콩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조약은 휴짓조각이 되었다. 이 모습에 닉슨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는 베트남에 다시 병력을 파견하여 남베트남을 지키려고 했으나 전쟁에 지친 미국 국민들과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고 대신 자국민 및 우방국민 탈출 계획 프리퀀트 윈드 작전을 실행했다. 1976년 남북은 통일되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구 남베트남 분리주의자들은 이를 조약 위반으로 보고 재분단을 주장하고 있다.
[1] 조약 원문에는 강 동쪽만 영국에게 넘기고 미시시피 강 서쪽의 영토는 프랑스령으로 유지한다고 적혀있으나 강 서쪽의 루이지애나가 스페인에게 넘어간 것은 파리 조약 1년전인 1762년 프랑스와 스페인이 비밀리에 맺은 퐁텐블로 조약을 통해 확정된 상황이었다. 북미 전역에서 패하면서 프랑스는 캐나다를 영국에 빼앗길 것이 사실상 확실해진 상황에서 계속해서 대륙의 식민지를 유지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하고 동맹 유지 차원에서 스페인에게 넘긴 것이다.[2] 사략선들이 규제를 어기고 사실상의 해적선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3] 미국이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면 안되니까.[4] 대사관 경비병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