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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조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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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星食品 (MYOJO FOODS CO.,LTD.)

1. 개요2. 역사3.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의 식품회사. 닛신에 인수되어 2006년부터 닛신식품 홀딩스 산하에 있다. 브라질에서도 일본계 브라질인의 정착 영향으로 1965년부터 상파울루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제조 및 판매를 하기 시작했고, 이 영향으로 브라질에서는 라면을 '묘조(Miojo)'라고 부르며 상표의 보통명사화가 되어 자리잡은 상태이다.

삼양식품에게 인스턴트 라면의 기술을 제공해준 일본 라면회사가 바로 이 기업이다.

2. 역사

1949년 쿄와상회(協和商会)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창사 직후 1950년대에는 식량청 위탁 건면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밀이 모자라서 매출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1952년 6월, 밀 통제가 해제되었지만, 이제는 소비자에 직접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되었다.

1954년, 건면의 이동식 자동건조장치를 개발. 이시하라 요타로(石原米太郎)의 기술공개론(技術公開論)에 감명을 받은 탓도 있고 하여, 해당 장치를 특허를 걸지 않고 공개했다.

1960년, 도쿄식품의 지원 하에 즉석라멘을 개발하였으나, 발표회에서 실패한 탓에 도쿄식품의 유통루트를 잃고 독자적으로 판매한다. 닛신식품의 치킨라멘은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붓는 방식이었으나, 위 발표회의 실패에 착안하여 냄비에 끓여먹는 방식을 소개한다. 明星味付ラーメン은 최초의 원형면 즉석라멘이다.

1961년 3월에는 전국 인스턴트 라멘 콩쿠르에서 식량청 장관상을 수상한다.

1961년 최초의 컵라멘을 가마쿠라에서 시험 판매 하나, 컵의 내유성에 문제가 있어서 상품화는 좌절. 닛신 컵누들에 "시판 컵라멘 1호"를 내주게 된다. 당시에는 동결건조같은 기술이 없었던 것도 한 이유이다.

1962년 최초로 면과 양념을 분리한 스프 별도 묘조라멘(スープ付・明星ラーメン)을 판매. 기존에는 면에 양념을 해두었기 때문에 한 종류의 맛밖에 낼 수 없었지만, 이 기술로 다양한 배리에이션의 맛을 낼 수 있게 되었다. 明星味付ラーメン은 단종하고 묘조라멘으로 회사의 중심을 옮긴다.

이 시기에 닛신식품이 주도한 즉석 라멘 특허 분쟁이 발발. 라멘의 기반 특허를 손에 쥔 닛신이 15개 이상의 특허를 가지고 모든 식품회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기한 스프 별도 묘조라멘을 개발하는데는 특허 분쟁의 회피도 한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있다.

1963년, 묘조라멘의 기술을 삼양식품(당시 삼양제유)[1]에 전달했다.# 라면 공장 라인을 깔기 위해 제면기를 찾다가, 우에다제면(上田麺機)의 사장 우에다 키사부로(上田喜三郎)가 "장비만 사서는 안된다. 기술도 사야 한다." 며 묘조식품을 소개했다. 삼양에 기술을 전수해준 이유는 1년 전 이탈리아의 '파스타 리치'에게 파스타 기술을 무상으로 받은 은혜를 자신도 남에게 갚았다는 설, 상기한 즉석 라멘 업계의 특허 분쟁에 질렸다는 설, 한국전쟁의 이익을 봤기 때문에 민간외교의 일환으로 했다는 설#, 기업 이미지 증대 등 장기적 사업 관점에서 그랬다는 설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되지만 정확한 이유는 사장 본인만이 알 것이다.[2] 결과적으로 장비값 27,000달러를 제하고 로열티 무료로 기술이전을 해주었다.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바로 삼양라면이다.

1964년, 식량청의 화해권고 하에 특허분쟁을 끝내고, "일본라멘공업협회"에 닛신식품 창업주 안도 모모후쿠가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1966년, 칸다 오가와마치의 수향원(粋香苑)이라는 라멘가게의 맛을 모티브로 묘조챠루멘라(明星チャルメラ)를 출시했다.

1969년, 비유탕면 묘조중면을 발매했다.

1973년 1월 6일 묘조식품을 설립했던 오쿠이 키요즈미(奥井清澄, 1922~1973)가 사망했다.

1974년, 컵라멘 커플리나를 출시하나 불발로 끝났다.

1981년, 복귀한 초기 설립자 중 한명인 야하라 마사모토의 주도로 중화삼매 시리즈를 발표. 고급화를 시도하여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당시의 일반적인 봉지라멘이 60엔인데 250엔이라는 프리미엄 라멘을 투입한 것이다.

1982년, 닛신식품은 묘조식품의 '퀵원'이 중간보지구조(中間保持構造)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걸었으며, 이것은 1983년 10월 화해로 마무리된다.

1986년, 삼양식품에서 OEM으로 봉지라멘을 수입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1987년, 1000엔의 신중화삼매 시리즈를 발표하나, 묘조식품을 기다리는건 버블붕괴였다.

2003년, 설립자의 가족인 오쿠이 가족은 스틸 파트너스에 지분 10.2%를 매각한다. 무라카미 펀드도 스틸 파트너스에 지분을 매각했고, 이를 통해 스틸 파트너스는 지분 23.1%를 확보했다.

2004년, 첫 적자를 낸다. 거품경제 붕괴와 미국 진출 실패가 원인이라고 한다.

2006년, 스틸 파트너스가 경영진에 주식 매각을 요청하나 이를 거부. 이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선언했다. 그러자 닛신식품은 묘조식품의 백기사를 자처했고, 이에 닛신식품이 스틸 파트너스보다 높은 가격에 지분을 사들였다. 이에 스틸 파트너스도 보유 지분을 닛신에 넘기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후 닛신식품 홀딩스의 자회사로 존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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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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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술이전의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 일본 묘조식품과 한국 삼양식품을 중심으로


[1] 1965년에 삼양식품으로 변경.[2] 묘조 식품의 창업자 오쿠이 키요즈미(奥井清澄, 1922~1973)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묘조식품 초기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나 오쿠이에 의한 자서전이 존재하지 않아 자료 확보에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