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2 12:53:55

문대탄

파일:413595_311481_540.jpg
<colbgcolor=#009946><colcolor=#fff> 이름 문대탄(文大彈)
본관 남평 문씨[1][2]
출생 1939년[3] 1월 20일
전라남도 제주도 대정면 하모리
(現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4]
사망 2023년 5월 18일 (향년 84세)
제주특별자치도
학력 대전고등학교[5] (졸업 / 36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공군 중위 예편
최종 당적

[[우리공화당(2020년)|
파일:우리공화당 흰색 로고타입.svg
]]
경력 동아일보 기자
제주신문 상임논설위원
우리공화당 20대 대선 후보 조원진 후원회장
우리공화당 상임법률고문

1. 개요2. 생애3. 여담4. 소속 정당5.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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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총선 출마자 중에 재산신고액 1위였다고 한다.

2. 생애

1939년 1월 20일 전라남도 제주도 대정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서 아버지 문달현(文達賢, 1903 ~ 1973. 5. 18)과 어머니 제주 양씨(1905 ~ 1961. 6. 13)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36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우리공화당 소속이므로 이름이 "문재인 대통령 탄핵"에서 따와서 개명이라도 한 건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6], 원래부터 쓰던 본명이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으나 박정희10월 유신에 항거하여 기자직을 내려놓고 고향인 제주로 낙향했다.[7] 이후 제주신문에 입사하여 상임논설위원을 지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본인의 현수막에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문대탄 찍으면 문죄인 끝장낸다라고 써놓아 공개적으로 비난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 출마한 같은 당 후보 유세 영상을 참고하면 저 문구(후보 이름만 바꿔놨다.)는 그냥 정당 차원의 캐치프라이즈이자 정당 차원의 논란으로 여겨진다.

지역방송국 후보대담에서는 제주 신공항 건설을 '토지재벌을 배불리고 지역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사업'이라 강하게 비판하였다. 역사관 부분의 경우, 4.3 사건을 둘러싼 항쟁론을 비판하며 사건의 시초를 '해방정국의 혼란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지고' 이를 구실로 '남로당이 폭동을 벌인 것'이라 분명히 하고, 토벌대의 잔혹한 토벌과 무장대의 만행을 들어 제주도민이 수난을 당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2023년 5월 18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장지는 서부시립묘지다.

3. 여담

4. 소속 정당

<rowcolor=#ffffff> 소속 기간 비고


파일:우리공화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9 - 2020 정계 입문


[[자유공화당|
파일:자유공화당 흰색 로고타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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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합당[12]


[[우리공화당(2020년)|
파일:우리공화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 2023 당명 변경
작고

5.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제주 제주 갑

[[우리공화당(2020년)|
파일:우리공화당 흰색 로고타입.svg
]]
773 (0.61%) 낙선 (5위)

[1] 순질공파-경숙공-영해부사공-망제공파 34세 대(大) 항렬.[2] 남평문씨 인터넷대동보에 따르면, 문대탄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문대림과 고조부가 문이욱(文以郁, ? ~ ?. 1. 18)으로 같아 서로 8촌 지간임이 확인된다. 문대림의 증조부 문두추(文斗樞)는 문대탄의 증조부 문두칠(文斗七, 1856 ~ 1938. 5. 29)의 동생이다.[3] 남평문씨 인터넷대동보에는 1941년생으로 등재돼 있다.[4] #[5] #[6] 거기다가 한자까지 같아서 헷갈릴 수도 있다.(在寅 統領 劾) 재밌는 사실은 8촌 동생인 문대림친문으로 분류된다는 점. 전통사회에서 8촌은 가까운 사이인데다 특히 제주도는 섬 지역이라는 특성상 집성촌이 꽤 오래 남아있었기에 육지에 비해 더욱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다.[7] 이것만 보면 친박 정당에 입당하는 것이 심히 아이러니해보이지만 이규택, 서청원, 조갑제 등 반독재 언론인의 길을 걷다가 민주화와 박근혜 정계 입문을 거쳐 친박 성향으로 돌아선 사례가 꽤 많이 있다. 본인은 이때의 행적에 대해 유신은 나라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언론의 자유가 없는 상황에서 기자로 일하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낙향했다고 설명했다.[8] 한양대학교 법학과(96학번)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7기 수료.[9]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1기 수료.[10] 한양대학교 법학과(98학번)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42기 수료.[11]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제6회 변호사시험 합격.[12] 자유통일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