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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암 Siam | |
근대 시대, 문화 중심 외교 위주 | |
문명 특성 | |
<keepall> 잇사라팝 (Itsaraphab) | 독립 세력과 우호 관계 맺기보다 많은 도이수텝 건설 시 |
특유 유닛 | |
창 번 (Chang Beun) | 시암 특유 원거리 유닛입니다. 원거리 전투력이 향상되었고 이동력이 +1 증가했습니다. 공격 후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우파라자 (Uparat) | 1회의 사용 횟수를 보유한 위인입니다. 우호 관계를 맺은 독립 세력이 있을 때 도시에서만 양성할 수 있으며, 특정 우파라자를 무작위로 얻습니다. 각 우파라자는 한 번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파라자는 양성할 때마다 비용이 증가합니다. |
특유 시설 | |
방 (Bang) |
1. 개요
문명 7의 오리지널 등장 문명으로, 태국을 배경으로 하였다.시암 제국
시암은 영국의 인도 식민지 확장과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영유권 주장 사이에서 탄생한 국가입니다. 라오스, 란나, 말레이의 일부를 서서히 통합하면서 식민 통치를 적용했고, 서구의 규범을 받아들는 동시에 고유의 불교 전통을 유지하는 줄타기에 성공하여 오늘날의 태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시암은 영국의 인도 식민지 확장과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영유권 주장 사이에서 탄생한 국가입니다. 라오스, 란나, 말레이의 일부를 서서히 통합하면서 식민 통치를 적용했고, 서구의 규범을 받아들는 동시에 고유의 불교 전통을 유지하는 줄타기에 성공하여 오늘날의 태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2. 역사적 배경
-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 과거의 신민과 노예들은 14세기에 크메르 제국의 잿더미에서 다양한 새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이(Tai)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Tai'라는 단어는 큰 언어군을 나타냅니다. 타이족에는 태국과 라오스의 주류 민족과 중국(좡족), 베트남(흑타이족), 인도(나가족), 미얀마(샴족)의 소수민족과 태국 내의 타이족(Thai)이 아닌 소수민족(콘므앙, 루 등)이 포함됩니다.
태국은 오늘날에도 강력한 군대, 영향력 있는 군주제, 상당한 관료 중산층과 더불어 지역 내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를 유지하는 혼성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타이(Tai)는 소승불교, 지배자의 명성과 신성한 도시 계획을 중심으로 건설된 도시 국가인 므앙, '인도식' 권력, 높은 수준의 문해율 등 태국과 몇 가지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따라서 타이 도시 국가는 치앙마이, 루앙프라방, 수코타이, 아유타야와 같은 느슨한 형태로 일어섰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정치 체제는 지역 세력으로 응집했습니다. 아유타야는 '타이(Thai)' 지역, 치앙마이는 '란나' 지역, 루앙프라방은 '라오' 지역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각 도시 국가는 사람뿐 아니라 명성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동남아에서는 땅보다 사람이 중요했으나, 명예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국가들은 이러한 분쟁을 통해 숙련된 장인들을 포획하고 신성한 유물을 훔치기 위해 싸웠습니다. 예를 들어 시암의 가장 신성한 유물인 에메랄드 불상은 치앙마이에서 발견되어 라오스의 비엔티안으로 옮겨졌으며, 방콕 기반 군대가 비엔티안을 약탈할 때 도난당했습니다.
아유타야는 1600년대에 등장했으며 타이(Tai) 국가 중에 가장 강력했습니다. 한때 이 국제적인 도시에는 그리스 총독이 있었고, 상당한 규모의 포르투갈인과 일본인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 즈음에 캄보디아는 과거의 껍데기에 불과했으나... 미얀마(버마)는 강력했습니다. 미얀마는 아유타야를 덮쳐 그 부를 약탈했고, 타이(Thai) 사람들은 남쪽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난민들은 달아난 지역인 톤부리에서 왕국을 세웠지만, 곧 새로운 왕조에 의해 전복되었습니다. 이번 왕조는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이 새로 창립된 도시는 1782년에 영광스러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끄룽 텝 마하나콘 아몬 라따나꼬신 마힌타라 유타야 마하딜록 폽 노파랏 랏차타니 부리롬 우돔랏차니웻 마하사탄 아몬 피만 아와딴 사팃 사카타띠야 윗사누깜 쁘라싯'입니다. 해석하면 '천사의 도시, 불멸하는 위대한 도시, 아홉 개 보석의 장엄한 도시, 왕의 자리, 왕궁의 도시, 화신의 고향, 인드라의 명령을 받아 비슈바카르만이 세운 도시'가 되지만, 대부분의 태국인은 단순히 천사의 도시 끄룽 텝이라고 부릅니다. 외국인들은 이곳에 '방콕'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붙였습니다.
짜끄리 왕조의 라마 왕은 시암, 즉 라따나꼬신을 통합하고 중앙 왕국의 이름을 따서 시암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짜끄리 왕조의 왕들은 공격적으로 확장을 시작하여 미얀마의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 남쪽의 무슬림 국가와 북동부의 라오스 국가를 포함하여 이웃 국가의 영토를 새롭게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시암은 여전히 명성, 아름다움, 수도의 영광을 중심으로 한 만다라 국가였습니다. 만다라 철학에서는 아름다운 이웃 국가와 그 사람들을 제국의 가장자리에 머물게 두는 것보다 수도로 완전히 이식하는 것을 더 좋은 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끄룽 텝은 성장하고 또 성장했습니다.
1824년에서 1851년 사이에 프랑스와 영국이 이 지역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둘 다 시암이라는 경품을 원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암이 이전에 벌였던 정복의 대가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라오스인 반란군은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저항한 끝에 시암에 진압되었으며, 라마 3세는 파랑(유럽인)에 대한 정책을 분명히 했습니다. 시암의 이익을 위해 유럽의 혁신을 연구해야 하지만, 집착하거나 숭배해서는 안 된다.
라마 4세는 이러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비록 병으로 불구가 되었지만, 그는 현명한 불교학자이자 과학자였고 역사가였습니다. 라마 4세는 개혁을 시행하여 지역 사회에 헌신하는 이전의 소승불교보다는 군주제에 충성할 새로운 통합 종파, 불교 승려가 기묘하게도 가톨릭교 사제처럼 보이는 종파를 만들었습니다. 라마 4세는 수코타이의 폐허를 밝혀냈고, 그곳에서 태국이 절대 군주제를 통한 정당한 통치를 할 만한 선례를 '발견'했습니다. 라마 4세는 유럽의 과학도 연구했고 남부 지방에서 예측된 일식을 관찰하기 위해 대탐험을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라마 4세는 야만적인 왕이 아니라 유럽인들과 대등한 계몽된 군주된 자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무너져가는 청 제국에 비해 돋보였으며, 일본의 메이지 덴노와 동맹을 맺기도 했습니다.
라마 5세, 쭐랄롱꼰은 다음 왕이자 틀림없이 가장 위대한 태국의 군주였습니다. 그는 종교가 아닌 국정으로 관심을 돌렸고, 이때가 시암의 절정기였습니다. 현재 신으로 추앙받는 쭐랄롱꼰은 트램 노선을 설치하고, 합리적인 도시 계획을 세우고 거대한 관료제를 만들며 방콕을 현대화했습니다.
태국의 관료제는 국가의 생활 방식을 바꾼 복잡한 시스템이었습니다. 태국 봉건 제도인 사끄디나에서 공작과 왕자는 일본이나 유럽처럼 고정된 영토의 영주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이 귀족들은 중앙 권력에 봉사했습니다. 군주국은 스스로를 큰 바퀴라는 뜻의 '짜끄리'라고 불렀습니다. 영주는 왕의 가문이 임명한 자였으며, 사람들은 종종 딸을 왕의 하렘에 보내 왕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급 영주가 많았습니다. 영토를 받지 못한 영주는 (독일 제국의 관료제를 본뜬) 관료제에서 일했을 것이며, 이 관료제는 엄청난 비율로 팽창했지만, 막대한 생산성을 유지했습니다. 쭐랄롱꼰은 봉건제 군대가 아닌 직업 군대를 창설하고, 노예 제도와 군주에게 엎드려 절하는 관행을 폐지했으며, 서양 복식을 채택(선택적으로)하는 등, 시암을 유럽 모델 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적어도 언뜻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파사드 아래에는 여전히 인도 모델 내에서 작동하는 신성한 신왕의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두 모델은 섞였습니다.
시암 말기에는 원래부터 태국의 전통이었던 것처럼 서구 양식을 채택하는 방식의 마이클 허츠펠드가 시암의 '비밀식민주의'라고 부르는 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라마 6세는 태국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타이(Thai)'라는 용어를 계급이 아닌 소수 민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더 나은 삶을 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중산층이 가장 그랬습니다. 1932년 인민당은 라마 7세에게 퇴위를 강요했고 헌법을 채택했지만, 시암을 태국 공화국(왕정은 엄밀히 말하면 입헌 군주국이 되지만, 군주제는 20세기에 중요한 위치로 복귀합니다)으로 선포하기에는 조금 모자랐습니다. 태국 피분송크람 정부는 부분적으로는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영토를 탈취하기 위한 구실로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일본에 접근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무렵, 인민당파는 정부와는 반대 목적을 지닌 작전으로 연합군에게 일본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시암(현재 태국)이 분쟁으로 인한 처벌을 피할 탈출구를 마련했습니다.
3. 고유 요소
3.1. 문명 특성
<keepall> 잇사라팝 Itsaraphab |
독립 세력과 우호 관계 맺기보다 많은 도이수텝 건설 시 |
3.2. 특유 유닛
3.2.1. 창 번
<keepall> 창 번 Chang Beun | ||||||
| ||||||
능력치 | ||||||
<rowcolor=#fff> 근접 전투력 | 원거리 전투력 | 포격 전투력 | ||||
<rowcolor=#fff> 35 → 40 → 45 | 50 → 55 → 60 | 35 → 40 → 45 | ||||
<rowcolor=#fff> 범위 | 이동력 | 시야 | ||||
<rowcolor=#fff> 2 | 3 | 2 | ||||
비용 | ||||||
<rowcolor=#fff> 생산 비용 | 구매 비용 | 유지 비용 | ||||
<rowcolor=#fff> 270 → 320 → 380 | 1080 → 1280 → 1520 | 4 → 4 → 5 | ||||
{{{#!wiki style="margin: 0 -11.25px -5px; min-height: 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중세와 근대 초기의 유타하티라는 시암 전쟁 코끼리는 기사와 군주가 타고 다른 왕들과 창(파이크) 대결을 벌이던 왕실의 군마였습니다. 하지만 총이 등장한 후 코끼리는 탱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유타하티'라는 고어를 사용하는 대신 '기관총 코끼리'를 단순히 '총을 장착한 코끼리' 또는 '창 번’으로 번역했습니다. 50~100kg의 하우다 장착 회전포는 근대 초기 태국/버마(미얀마) 전쟁의 특징이었습니다. 코끼리는 정글과 강을 가로질러 조용히 이동할 수 있기에 엔진이 달린 탱크에 비해 어느 정도 유리합니다. 또한 이 거대한 동물은 말이나 다른 살아있는 탈것은 견딜 수 없는 총알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코끼리는 하우 분쟁(1865~1890년)과 같이 험준한 지형에서 기동성이 필요한 전쟁에 배치되었습니다. |
유닛 특성 | |||||
시암 특유 1~3티어 원거리 유닛입니다. 원거리 전투력이 향상되었고 공격 후 이동할 수 있습니다. | |||||
다음을 대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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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우파라자
<keepall> 우파라자 Upara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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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 | ||||||
<rowcolor=#fff> 이동력 | 시야 | |||||
<rowcolor=#fff> 3 | 1 | |||||
비용 | ||||||
<rowcolor=#fff> 생산 비용 | 구매 비용 | 유지 비용 | ||||
<rowcolor=#fff> 290~ | 1160~ | 0 | ||||
{{{#!wiki style="margin: 0 -11.25px -5px; min-height: 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시암의 우파라자는 국가의 2인자이자 왕위 계승자로 추정되는 총독이었습니다. 이 전통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수입된 이 직책은 15세기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나레수안 왕자가 아버지로부터 우파라자로 임명되었을 때 왕이 자신의 궁전 앞에 궁전을 지어주었기 때문에 우파라자의 역할은 왕나(앞 궁전)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파라자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왕의 동생이 맡았으며, 왕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추정 상속인(때로는 공동 통치자)으로 활동했습니다. 현대 시암에서는 우파라자가 자체 군대를 지휘하는 등 그 지위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1874~1875년에는 국왕과 왕궁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어 잠시 무력 위기가 발생했고, 그 결과 우파라자 직책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그 자리는 왕세자의 역할로 대체되었습니다. |
유닛 특성 | |||||
1회의 사용 횟수를 보유한 위인입니다. 우호 관계를 맺은 독립 세력이 있을 때만 도시에서 생산할 수 있으며, 특정 우파라자를 무작위로 얻습니다. 각 우파라자는 한 번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파라자는 양성할 때마다 비용이 증가합니다. | |||||
등장 우파라자 목록 | |||||
다라 라스미 |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에서 활성화합니다. 도시가 플레이어가 통치하는 마을로 바뀝니다. | ||||
쁘리디 | 특수지구에서 활성화합니다.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마다 도시 | ||||
삭디폰라셉 | 열대 지형에서 활성화합니다. | ||||
세나누락 | 사령관 위에서 활성화합니다.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마다 지휘 반경 내 유닛 | ||||
와치라웃 | 특수지구에서 활성화합니다.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마다 도시 | ||||
위차이찬 | 독립 세력 위에서 활성화합니다. 이 독립 세력은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가 됩니다. | ||||
이타라선톤 | 특수지구에서 활성화합니다. 즉시 기념 행사가 발생합니다. | ||||
차크라봉세 | 궁전에서 활성화합니다. 즉시 | ||||
피분 | 특수지구에서 활성화합니다.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마다 도시 | ||||
핀클라오 | 특수지구에서 활성화합니다.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마다 도시 |
3.3. 특유 시설
3.3.1. 방
방 Ba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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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1.25px -5px; min-height: 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방콕' 같은 지명에서 '방(bang)'은 태국 중부에 있는 수상 기반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방은 운하망 외부에 지어진 복합 단지인 '바안(baan)'과는 다릅니다. 일 년 중 특정 시기에 육지가 물로 변하는 지형인 태국과 같은 환경에서 수상 기반의 공동체는 특히 도로가 물에 잠겼을 때, 그리고 많은 짐을 운반할 수 있는 건 물소뿐이었을 때 물건을 쉽게 운송하고 비교적 빠른 형태의 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방에는 종종 중앙 불교 사원과 중앙 운하 및 기본 관개망, 그리고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커뮤니티 센터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운하(khlong)는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불교 승려는 이곳에서 탁발을 했고, 그 위에 시장이 열렸으며, 주민들은 주로 물을 타고 이곳을 오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방은 콘크리트와 자동차에 추월당했지만, 콘크리트 건물 뒤에서 방의 조용하고 느린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시설 상세 | |
요구 조건 | |
생산 비용 | |
입지 조건 | 깊은 강 타일 |
시설 산출 | |
시설 효과 | 타일에서 창고 보너스를 제거하지 않음 시대를 초월함 |
3.4. 특유 사회 제도
3.4.1. 아홉 보석
아홉 보석 Nine Gems | ||
"천사의 도시, 불멸자의 위대한 도시, 아홉 보석의 웅장한 도시, 왕의 자리, 신의 집." - 방콕의 이름 | ||
{{{#!wiki style="margin: 0 -11.25px -5px; min-height: 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아홉 보석 또는 나와랏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복과 건강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는 특정한 일련의 보석이라기보다 태양은 루비, 달은 진주, 금성은 다이아몬드와 연관 짓는 등 보석과 행성 사이의 연관성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19세기 후반(그리고 실제로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우주적인 힘을 물질적 형태로 활용하고자 했던 시암이 후원한 왕실 및 상류층 점성술 체계를 가리킵니다. 초기 동남아시아에서 힌두교는 군주의 카리스마를 확립하고 배양하는 핵심 수단이었습니다. 힌두교가 소승불교에 자리를 내주면서도 길일에 도시를 세우고, 왕은 여전히 복을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아홉 보석을 비롯한 신성한 징표, 상징과 과거의 군주를 새긴 부적을 사용하는 등, 힌두교 의식 중 많은 부분이 여전히 태국 생활, 특히 상류층 사이에서의 특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방콕의 공식 명칭조차도 '인드라의 요청으로 지어진 천상의 도시, 아홉 보석의 집'이라고 번역되는 부분이 있고, '보석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라따나꼬신이라는 왕실 섬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
사회 제도 상세 | |
요구 문화 | |
선행 사회 제도 | - |
후속 사회 제도 | 만다라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
사회 제도 숙련도 | |
요구 문화 |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3.4.2. 만다라
만다라 Mandala | ||
"우주는 무한한 수의 태양과 무한한 수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세계의 중심에는 메루산이 있다." - 차오프라야 티파코라웡 | ||
{{{#!wiki style="margin: 0 -11.25px -5px; min-height: 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만다라는 원입니다. 물론, 정치 체제로서의 만다라는 원형의 정치적 영역으로, 카리스마와 힘의 결합을 통해 지방을 끌어들이는 권력의 광채입니다. 이는 19세기 중반 이전 동남아시아의 정치 체제를 요약한 것입니다. 당시 동남아시아 정치 체제는 경쟁하는 권력 영역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국경 없는 왕국이었습니다. 이러한 토지와 영주권에 대한 개념은 유럽의 권력 개념, 특히 베스트팔렌 이후와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오늘날에는 한 국가가 국경까지만 완전한 권한을 지니며 국경 너머에는 권한이 없지만, 과거에는 중앙에서 밝게 빛나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감소하는 식으로 권한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갔습니다. 라오스, 캄보디아, 샨 주, 란나(치앙마이)와 같이 만다라 사이에 끼어 있는 국가는 각 잠재적 중심국에 약간의 조공을 바칠 수도 있고, 그 자체로 작은 만다라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체제를 '은하 정치'라고 불렀습니다. 별이 행성을 끌어당기듯, 각 행성도 자신의 위성을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 체제로서의 만다라는 식민주의와 함께 끝을 맞이했습니다. 시암과 영국은 버마의 새로운 영국령과 국경에 있는 시암 종속국 사이의 경계를 어디로 할 것인지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영국은 뚜렷한 국경을 정하려고 한 반면 시암은 적만이 국경을 주장할 수 있으며 영국과는 적대 관계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암은 곧 강대국 간의 알력다툼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파악했습니다. 시암은 19세기 후반 대부분을 근소하게나마 자국 통치하에 있던 과거 독립 국가들을 확고하고 정해진 국경이 있는 왕국의 일부로 전환하며 보냈습니다. |
사회 제도 상세 | |
요구 문화 | |
선행 사회 제도 | 아홉 보석 |
후속 사회 제도 | 스리윌라이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
사회 제도 숙련도 | |
요구 문화 |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3.4.3. 스리윌라이
스리윌라이 Sriwilai | ||
"모든 나라의 사람들아. 열두 방언을 쓰는 사람들아. 모두 와서 이 도시의 그늘에 서도록 하라." - 나라이 대왕 | ||
{{{#!wiki style="margin: 0 -11.25px -5px; min-height: 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태국어 '스리윌라이(sriwilai)'는 '문명(Civilization)'이라는 단어를 직역한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외래어가 그렇듯 태국어에서의 스리윌라이는 영어와 쓰임새가 다릅니다. 식민지 세력이 동남아시아에서 입지를 넓혀가면서 시암의 상류층은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식민지 개척자들의 방식과 형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빈랑나무 열매를 씹는 것에 대한 조치 같은 적절한 공공 행동과 공공 복장(1940년대 태국의 군사 통치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 태국 전통 복장이 태국 문화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선언함), 교육 및 지식의 출처에 관한 칙령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실존적 위협이 되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시암이 어느 정도 동등한 존재로 보이게 하려는 매우 실질적인 정치적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버마, 그리고 라오스의 군주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스리윌라이'를 문화 코드로 채택한 것은 잠재적 종속국이 아닌 동료 식민지 세력으로서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단어의 철자 자체는 20세기 초 시암에서 민족주의 의식을 구축하기 위한 지적 작업을 반영합니다. '스리윌라이'는 영어에서 차용한 단어지만, '시(si)' 대신 '스리(sri)'로 표기하는 등, 그 문자와 철자는 산스크리트 외래어를 연상시킵니다. 즉, 이 한 단어로 시암은 과거 산스크리트 문명의 계승자이자 새로운 현대 유럽식 국가라는 이미지를 통합하여 보여주는 셈입니다. 이 전략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시암은 처음에는 영국, 이후에는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직접 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
사회 제도 상세 | |
요구 문화 | |
선행 사회 제도 | 만다라 |
후속 사회 제도 | - |
잠금 해제 | - |
사회 제도 효과 | |
사회 제도 숙련도 | |
요구 문화 | |
잠금 해제 | - |
사회 제도 효과 |
3.5. 전통
<keepall> 국유철도 금 생산 건물의 |
<keepall> 므앙 각 동맹 도시 국가당 |
<keepall> 사끄디나 우리 문명이 종주국인 도시 국가 하나당 도시에서 |
<keepall> 프라테사랏 도시 국가와의 외교 활동 시작에 드는 |
4. 운영
5. 도시 목록
- 도시 목록 [ 펼치기 · 접기 ]
- ★은 수도.
- ★ 크룽텝
- 크룽스리아유타야
- 논타부리
- 나콘시탐마랏
- 나콘차이시
- 치앙마이
- 라차부리
- 차층사오
- 찬타나부리
- 촌부리
- 핏사눌록
- 꼬랏
- 나콘사완
- 펫차부리
- 송클라
- 푸켓
- 우본랏차타니
- 부리람
- 프라친부리
- 탁
- 펫차분
- 차이야품
- 치앙라이
- 사라부리
- 피찟
- 나콘나욕
- 사무트프라칸
- 수판부리
- 우타이타니
- 깜펭펫
- 콘깬
- 사콘나콘
- 깔라신
- 르이
- 춤폰
- 뜨랑
6. 연관 지도자
7. 연관 불가사의
8. 연관 자연 환경 명칭
9. BGM
원곡은 태국의 민요인 '바나나를 먹은 박쥐(Kang Kao Kin Kluay)'이다.
10. 스플래시 아트
시대가 종료할 때 각 길의 유산 달성 시, 문명의 스플래시 아트와 함께 각 유산에 따라 나오는 나레이션이 달라진다.10.1. 문화 황금기 달성 시
10.2. 군사 황금기 달성 시
10.3. 과학 황금기 달성 시
10.4. 경제 황금기 달성 시
11. 여담
- 방콕의 타이어 실제 명칭은 약칭 끄룽 텝인데, 그걸 반영해서 수도도 끄룽 텝으로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