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문봉성(文奉成) |
일본식 성명 | 岩本福吉 |
이명 | 문수성(文壽成) |
본관 | 남평 문씨[1] |
생몰 | 1921년 8월 9일[2] ~ 1948년 8월 24일[3] |
출생지 |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 |
사망지 | 경상북도 문경시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문봉성은 1921년 8월 9일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에서 아버지 문순호(文順鎬)의 8남 4녀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하여 경기도 경성부 삼청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 거주하였다. 그는 1939년 중동학교를 재학하던 중 민족의식이 투철한 영어 교사 김광섭[4]의 지도를 받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김경동(金敬東)의 소개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가했던 권오직(權五稷)을 알게 되었고, 1940년 6월 24부터 25일까지 김경동, 김재수(金在洙) 등과 더불어 서울 수하동에 거주하는 고택림(高澤林)의 집에서 민족의식 보전운동을 위해 독립에 힘쓸 것을 결의했다. 그들은 동지 포섭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교양 함양을 통해 조국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려고 노력했다.그러나 1940년 10월 22일 이 일이 발각되면서 경성부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고#, 문봉성은 1942년 9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4년 2월 29일 석방된 후에도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48년 8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문봉성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