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1:07

문성호(독립운동가)

파일:문성호.jpg
[1]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성여(聖汝)
본관 남평 문씨[2]
출생 1872년 2월 13일
경기도 지평현 하서면 상현리
(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중원리 상현마을)
사망 1949년 4월 29일
경기도 양평군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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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문성호는 1872년 2월 13일 경기도 지평현 하서면 상현리(현 양평군 용문면 중원리 상현마을)의 양반가에서 아버지 문창(文昶)[3]과 어머니 홍천 피씨(洪川 皮氏) 피상순(皮相純)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초 경기도 경성부 서린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린동) 영흥관에서 동지들과 함께 3·1독립선언식의 후속 조치를 취하여 만세운동의 열기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음을 합의하고 애원서라는 제목 하의 ‘조선 독립은 2천만 동포의 요구다. 우리들은 손병희 등의 후계자로써 조선 독립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취지의 선전 문서를 작성한 뒤 이를 여러 장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그리고 3월 12일 보신각 앞에서 수백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애원서를 낭독하고, 문성호가 선두에서 서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의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미결 구류일수 12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고# 이튿날인 7일 서대문형무소에 입소하여 옥고를 치렀다.

1920년 3월 9일 만기출옥#한 후 양평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9년 4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문성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1919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2] 순질공파-월천군 빈(彬)파 27세 호(鎬) 항렬.[3] 자 규선(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