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23:33:59

미안해 스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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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표지 리커버판

1. 개요2. 줄거리
2.1. 상세2.2. 결말
3. 등장인물4. 평가5. 작가의 말6. 미디어 믹스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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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소설. 저자는 하야시 미키.[1] 원제는 いじめ14歳のMessage(괴롭힘 14세의 메시지).

제18회 팔레트노벨 대상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2] 작가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집단괴롭힘을 당한 경험에 기초해 쓰여진 소설이다[3]. 2020년 리커버판이 나왔다.

이 작품이 유명한 이유는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이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죽어버리는 결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청소년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이 죽는 건 꽤나 금기시되는 전개인데 그 금기를 깨버린 작품이라는 점이 특이사항이다.

2. 줄거리

시작은 누군가의 메시지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스이카는 여자중학교의 2학년 학생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반의 리더격인 요코가 치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조용히 학교생활을 보내던 치카는 갑자기 반에서 무시당하며 쓰레기 취급받게 된다. 스이카는 처음에는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으나, 용기를 내어 치카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하자 곧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도와줬던 치카마저 스이카를 괴롭히는 데 동참하고…….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던 와중, 어느 날 밤에 유리에라는 시각장애인 소녀를 만나게 된다. 유리에는 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잃고 실명하게 된 것. 스이카는 이런 유리에와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용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요코 일당의 괴롭힘은 집요해져만 가고, 결국 점점 심해지는 괴롭힘을 참다 못한 스이카는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마는데……

2.1. 상세

스이카가 의식불명에 빠졌을 때 치카가 용기를 내어 스이카의 부모님과 야마이 씨에게 스이카가 자살 기도를 하게 된 원인이 요코 일당의 괴롭힘이라는 것을 실토하고,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말해준 스이카에게 고마워하고 있었으나 스이카를 도와주면 다시 괴롭힘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그러지 못했다고 고백한다.[4] 그리고 요코 일당의 괴롭힘에 더 이상 주눅들지 않고, 반 친구들에게도 "스이카를 자살로 내몬 것은 바로 우리들"이라고 당당하게 말함으로써 반 친구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성공한다. 스이카의 영혼은 처음에 치카가 괴롭힘을 당할때 자기도 그냥 지켜보기만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자신들 도와주지 않았던 치카를 원망했던 일을 반성한다.

그리고 유리에도 고백을 하는데, 스이카가 유리에와 만난 그날 사실 유리에는 자살을 하러 가던 길이었다. 스이카 덕분에 살 용기를 얻었다는 슬픈 얘기. 또 야마이 씨가 치카를 감싸준 이유는 예전에 나쁜 행위를 목격하고도 끝내 그것을 밝히지 못했던 것 때문이라고 한다.

2.2. 결말

스이카의 부모님, 치카, 유리에는 스이카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여러 곳을 돌아보던 스이카의 영혼 역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죽기 싫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스이카는 죽게 된다.

스이카 사후, 스이카의 각막은 유리에에게 이식되고, 시력을 회복한 유리에는 스이카네 집에서 살게 된다.[5]

1년 후, 요코 일당은 새로운 전학생을 괴롭히기 시작하나 1년 전의 그 일을 계기로 학생들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괴롭힘은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6]

그리고 스이카의 영혼은 부모님과 유리에가 자신을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집단괴롭힘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죽지 말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뒤 하늘나라로 떠난다.

3. 등장인물

  • 타치야마 스이카: 주인공. '요코 그룹'과 함께 치카를 괴롭혔으나 치카 괴롭힘을 만류하고부터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 치카: 스이카의 클래스메이트. 말수가 적고 살짝 겉도는 탓에 괴롭힘을 당했으나, 괴롭힘의 대상이 스이카가 된 후부터는 자기도 괴롭힘에 가담하게 된다.
  • 요코: '요코 그룹'의 리더로 괴롭힘의 주동자. 세력있는 의원의 딸이라고 한다. 만악의 근원.[7] 하지만 스이카의 영혼을 통해서, 그리고 엔딩에서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이 나오므로 사후에 요코 그룹 맴버들과[8] 그룹의 리더인 요코의 운명은 영원히 지옥에서 처벌을 받게 될 것을 알려주고 있다..
  • 유리에: 시각장애인 소녀. 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잃고 실명해서 아버지의 친구분인 키무라 의사가 돌봐주고 있다. 스이카에게 용기를 주지만...
  • 야마이 씨: 기자.

4. 평가

개요 문단에서 주인공이 죽는다고 대놓고 스포일러를 했지만 이 '주인공이 죽는다'는 결말 때문에 당시 팔레트노벨 심사위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보통 아동/청소년 대상 작품은 주인공이 살아나는 등의 밝고 희망찬 결말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은 빈번하게 있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나마 스이카가 천국으로 가고 만악의 근원들은 언젠가는 팔열지옥들에 가게 된다는 것이 위로 포인트.

팔레트노벨상 선정위원단의 말
  • 기타지마 다카시(喜多 嶋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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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돌림은 이미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작가의 경험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해도, '집단 따돌림'은 이미 모든 학교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그 현장에서 직접 아파하고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난 한 소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왕따의 현장'을 담은 생생한 보고서라고 생각해도 좋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모두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마음이 복잡해져 깊은 생각에 빠졌다.
'왜 우리는 이런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가. 왜 이 지경까지 돼버렸는가.'
물론 내가 어렸을 때도 따돌림은 있었다. 분명 편 가르기가 있었고, 튀는 애와 그렇지 못한 애가 있었다. 존재감이 강한 애와 존재감이 거의 없어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애가 있었다. 심술궂긴 했지만 이렇게 지독하지는 않았다. 좀 더 단순했고, 어쩌면 정말 가벼운 장난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아이는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 아이들 사회가 이렇게 우울해졌다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사회가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따돌림'이라는 문제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은근한 따돌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대학교로, 직장으로, 노인사회로 아니면 가족 간으로 번질 수도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때 그 아버지가 회사에서 똑같이 그런 아픔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확실히 병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현상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경고이다.

그러니 진심으로 부탁한다. 이 책을 아이에게만 권하지 말고 어른들도 직접 읽기를. 그리고 함께 모여서 서로의 마음을 나눠보기를. 분명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나나우미 카온(七海 花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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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는 것은, 그리고 산다는 것은.

죽어버린 것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쯤이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로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나 역시 그랬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청소년들이 읽는 책은 비교적 착하다. 온갖 고난을 겪던 주인공도 어느 순간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자살하거나 혼자 쓸쓸히 죽어버리는 내용은 드물다. 설사 죽을 만큼 괴로워서 자살을 결심했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어떻게든 상황이 바뀐다. 다시 용기를 내서 살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니 청소년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는다는 건 꽤나 금기시된 전개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오랜 시간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다가 어느 날 스르륵 이 세상을 저버린다. 이러한 전개는 책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팔레트노벨상' 심사위원단은 이 소설을 놓고 여러 번 회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라는 결말 대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택하는 어린 생명들이 있는데 과연 아름다운 결말만을 보여주는 게 옳을까.

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죽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아이들이 있는데 언제까지나 눈 가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어느 날 문득 사라져버리는 상황, 이 납득하기 힘든 현실과 그로 인한 충격. 남은 가족들의 슬픔과 치유할 수 없는 상처······.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든 살고 싶어진다.

겨우 열네 살밖에 안 됐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죽음과 삶의 의미를 절실하게 풀어놓았다.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세상은 냉혹하지만 그녀는 그 틈에서도 따뜻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삶의 축복'과 '새로운 희망'을 전해준다.
  • 와카바야시 마키(若林眞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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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메시지가 세상 곳곳에 닿을 수 있다면.

가슴이 아팠다. 아프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제18회 팔레트노벨상 최종심사에 올라온 작품. 이 소설은 한 소녀의 진심 어린 고백이자 뜨거운 외침이었다. 원고 가득 적혀 있는 가냘픈 글씨체. 고백하건대 결코 뛰어난 문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긴박감과 절심함에 압도됐다.

처음에는 열네 살 어린 소녀가 집단 따돌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선택했다는 데 꽤 놀랐다. 하지만 곧 열네 살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비통한 외침에 저절로 가슴이 아렸다.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복잡해서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순수했던 마음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세상의 때가 묻더라도 깨끗한 마음의 한귀퉁이는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착한 일도 해보고 싶고,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불쑥 생기는 것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남도 소중하게 대접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마음만 잘 간직한다면 집단 따돌림 같은 건 싹 다 사라져버릴 것이다.

집단 따돌림, 그것은 사실 단순한 문제다.

'살면서 해도 되는 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 단지 이 두 가지만 잘 구분하면 된다. 결코 복잡하지 않다. 그럼애도 집단 속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이 간단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지.

이번 작품은 꽤나 생생하다. 가슴 아픈 내용을 꾸미지 않고 얘기한다. 물론 선정위원단 사이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논의가 여러 번 이루어졌다. 그러나 결국 이 작품이 특별하며, 실제로 특별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책을 읽다 보면 그러한 마음이 이해될 것이다.

이 책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이 책이 말하는 메시지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마음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이번 기회에 생각해보길 바란다.

한국어로 번역한 번역본의 번역가인 김은희 번역가는 이런 말은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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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열네 살의 현실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누군가에게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싱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느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럴 때 선생님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도움은 무엇일까?

내 단짝이었던 친구가 갑자기 모든 아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받는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때로는 나쁜 상황이 나쁜 행동을 만들고, 나쁜 마음을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그런 괴로움과 고민,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다.
따돌림받는 아이, 따돌림에 가담해버린 아이, 나쁜 짓인 줄 알지만 괴롭히는 걸 멈출 수 없는 아이, 혹은 죄책감도 없이 남을 괴롭히는 아이, 다음 표적이 된 아이, 그리고 결국 죽음을 선택한 아이.
누구나 이 중 하나의 입장에 설 수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리트머스 시험지 하나를 갖다 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열네 살 어린 소녀가 썼지만 최초로 제18회 팔레트노벨상 특별사을 수상했다. 나이가 어린 만큼 문장도 어리고 구성도 약하지만 '재미있다, 재미없다' '문장력이 있다, 없다'로 이 작품을 논하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된 어른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학창시절의 절규가 눈물겹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중학교 농구부에서도 똑같은 일을 겪었던 어린 작가가 경험을 바탕으로 비통한 일상을 섬세하게 그렸다. 상처도, 아픔도, 절망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렇기에 감탄을 자아내는 문장은 아니어도 마음을 움직일 만큼 강렬하다. 이 같은 생동감은 책을 읽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아, 이건 소설이었지!'라는 말을 중얼거리게 할 정도다. 학교 내 집단 따돌림이 심각한 일본에서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상영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어린 작가가 동세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절대 집단 따돌림에 지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자기 자신을 잃지 말 것.'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피해자, 방관자, 가담자, 고통받는 부모님, 외면하는 선생님······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인격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고,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또한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이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의 인생을 좋은 쪽으로 바꿔놓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5. 작가의 말

작가인 하야시 미키는 책이 끝나고 '작가의 말'부분에 자신이 책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적었다. 작가는 작중에서 나오는 스이카가 들었던 폭언은 모두 실제로 자신이 왕따를 당했을 때 들었던 것이며 자신도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좋은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던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왕따 피해자에게는 위로의 말을 가해자한테는 해당 행동을 멈출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 작가의 말 ]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아무도 새벽에 이를 수 없다.

아직도 그런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의 이야기.
싫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땅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숨이 가쁘다. 슬픈 표정을 지으며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어른들의 말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은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가 된다는 걸 왜 모르는지. 남의 마음에 겨누었던 창끝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그러니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마음에 상처 내는 짓은 그만두기를 바란다.

나는 열네 살에 이 책을 썼다.
여름방학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6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단순하다.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부모님들이 이 책을 읽고 '집단 따돌림'의 심각성에 대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잘못된 현실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왕따 때문에 많이 힘들었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 막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소문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소문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마키 말이야, 중학교 선배한테 찍혔대. 같이 다니다가는 우리도 찍히고 말걸?'
근거 없는 소문이 소리 없이 퍼졌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열세 살이다. 어린 마음에 공포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서서히 외톨이가 되었다. 단짝 친구들도 점점 나를 멀리했고 새로운 아이들은 처음부터 내게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다.
선배에게 직접 맞거나 욕을 들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런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늘어나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친구들은 나를 무시하고 먼발치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거리고 험담했다. 그 위력은 정말 대단해서 나는 금세 전교의 왕따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학교에서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오는 날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도대체 왜,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 걸까. 혼란스러웠다. 나쁜 상황은 여전히 계속됐고 마음은 점점 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직접 무슨 말이라도 들었다면 대책이라도 세울 텐데······.
하루하루가 정말 괴로웠다.
친구들이 점점 싫어졌고 이런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선생님들이 미웠다.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며 칭얼거렸다. 학교에 안 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 일어나는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실을 털어놓는다면 분명 나보다 더 슬퍼하실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부모님께 말하더라도 그 후 별다른 해결책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어질 아이들의 복수가 무서웠으니까.
그러나 부모님은 달랐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이 내 이상한 점들을 하나둘 눈여겨보고 계셨다.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불렀다.
"미키, 요즘 무슨 일 있니? 얼굴이 너무 어두워. 잘 웃지도 않고. 괜찮으니까 엄마에게 다 말해봐, 응?"
나는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욱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괴로운 마음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그러자 엄마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네 엄마야. 엄마는 엄마로서 실격당하고 싶지 않단다."
그 말을 듣고 나 역시 펑펑 울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에게마저 진실을 숨겼다는 것에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엄마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해주어서, 부모님이 그렇게 나를 사랑해줘서 행복했다.

그날부터 나는 사흘동안 학교를 쉬었다.
'등교 거부'
생각했던 것처럼 엄청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사흘 동안 머리를 텅 비우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물론 부모님도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자 비로소 담임선생님이 입을 여셨다.
애들에게 나에 대한 일을 물어보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고 들었다. 반 아이가 나중에 그 말을 전해주었다.
선생님께서 어떤 식으로 말씀하셨는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그 소문이 어떻게 자취를 감췄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사흘 후,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 후에는 한두 명씩 아이들이 인사를 건넸고, 말을 걸었고, 나와 함께 등교하고 싶다는 아이까지 생겼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자 그때까지 죽고 싶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마리야, 그땐 정말 고마웠어.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그냥 학교가 싫어서 쭉 쉬는 건 좋지 않다고. 그건 도망치는 행동이니까. 그러나 만약 열심히 살기 위해서, 혹은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왔던 자신에게 조금 쉬는 기회를 주는 거라면 괜찮다. 도망치는 시간으로 삼지 말고 다시 일어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자신에 대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게 선택한 길이라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결코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다시 꿋꿋하게 학교를 다니든 전학을 가든 검정고시를 보든 괴롭히는 아이와 크게 한번 맞짱을 뜨든······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어떤 길이든 스스로 선택했다면 결코 후회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휴식의 기간이 필요하다. 치유의 시간인 셈이다.
그런데 왕따의 공포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나 했더니 이번엔 중학교였다.
괴롭힘은 끝난 게 아니었다. 나를 헐뜯으며 뒤에서 나쁜 소문을 퍼뜨린 애가 나랑 같은 중학교에 간 것이었다. 게다가 같은 농구부에 들었다. 그 애는 이제 정면에 나서서 나를 괴롭혔다. 꼭 요코처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대상을 점찍어 놓고 끝없이 괴롭히면서 히죽거리는 타입이었다.
그 시간은 초등학교 때보다 더 힘들었다. 무시당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지독한 욕설과 험담이 이어졌다. 농구부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소리쳤다.
"우리 팀은 세명 뿐인데 이상한 애가 한 명 더 있어!"
옆을 지나가면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며 '우웩!'하고 토하는 시늉을 했다.

그렇다.
소설에 썼던 그 폭언들은 예전에 아이들이 내게 쏟아부었던 말들이다.
한번 상처 입었던 마음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는 법이다. 나는 그 지독한 일들을 겪으면서 뉴스에도 보도하고는 '집단 따돌림'에 대해서 생각했다. 단순히 장난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일에 대해서.
그 아이들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괴롭혔다. 특별히 상대를 정해놓지 않고 그때 그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새로운 타깃으로 삼았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괴롭힘은 너무나 커다란 고통이었다.
괴롭힘을 당하던 애들 가운데 부모님께 그 사실을 말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또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참았다. 일단 혼자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견뎌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에서 나는 진정한 친구 한 명을 만났다.
그 아이는 용감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오히려 선생님께 혼날 때도 있었다. 따돌림을 받다 보면 자주 정신을 놓고 있거나 해야 할 일을 못하기도 하니까. 그럴 때도 그 앙는 날 기다려주었다. 선생님과 면담을 하느라 늦게 집에 갈 때도 먼저 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그 친구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내가 당했던 모든 일에 대해 그 친구는 자기 일처럼 화를 내고 분노하고 슬퍼했다.
난 그 친구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나를 다독여준 친구들 리에, 지이, 유리, 후지에게 모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담임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선생님께서는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나를 대신해 아이들을 혼내주고 내 일에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해주셨다.
"그렇게 괴로우면 농구부를 그만두면 되잖아. 깊이 생각할 필요 없어. 지금은 그곳이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그 시간은 네 인생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거란다."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난 어깨의 힘을 뺄 수 있었다. 괴로웠던 나날을 극복할 수 있었다. 좋은 친구들과 가족, 선생님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모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로 고맙다고. 여러분이 저를 다시 살려냈다고.

또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내게서 등을 돌렸던 친구 두 명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 애들은 2년이나 지났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때 잘못된 소문만 믿고 너를 모른 척했던 일을 용서해주길 바란다고.
나는 그런 친구들이 있었던 덕분에 힘들었던 과거를 극복하고 무사히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후로 괜찮은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가고 싶었던 GLAY의 콘서트도 갔다.
물론 힘들었던 그 시간을 함께했던 부모님, 친구들과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난 무척 행복하다.
물론 아직도 크고 작은 다툼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아주 잠깐일 뿐이다. 게다가 그때마다 나는 전보다 더욱 강해진 나를 발견하다.
'예전 일도 극복했는데 뭘, 괜찮아.'
그런 자신감이 뒷걸음질 치는 나를 뒤에서 붙들어준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 책도 쓸 수 있었다.
난 지금도 그때 도망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몇 번씩이나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러니 지금 힘들고 괴로워도 최악의 길로 도망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지금의 경험을 잘 이겨내면 그것은 분명 나중에 힘이 될 테니까. 강인한 사람을 만들어 주는 힘 말이다. 모두 스이카처럼 후회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당신이 누군가를 괴롭히려고 한다면,
제발, 제발 그만두라고.
내일도 안 돼, 지금 당장 그만둬!

나 역시 예전에는 내가 당하기 싫어서 다른 애를 희생양으로 삼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정말 힘들었다. 당장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매일 매일 나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괴로운 마음을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남을 괴롭히는 게 고통스러워서, 그러는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학교에도 가기 싫었으니까.
부모님은 내 말에 크게 화를 내셨다.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짓을 왜 남에게 하냐고.
그때 부모님이 호되게 꾸짖어준 것이 고마웠다.
누군가가 날 혼내주기를, 내 행동을 바로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나는 부모님의 말슴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쉽게 잊어버리기 쉬운 말.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훈을.
그때 난 매일 후회했다. 따돌림당하는 것만큼이나 하루 하루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니까 나처럼 후회하길 원치 않는다면 지금 당장 못된 행동을 그만두길 바란다. 친구들을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이제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으로부터, 주위로부터 도망치지 말라고.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 그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또래의 학생들, 앞으로 미래를 짊어지고 갈 어린 학생들,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른들, 그리고 선생님들. 부디 이 책을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자신을, 주위를 넓게 바라보고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이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과 이 책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분들,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2월의 마지막 날
하야시 미키

6. 미디어 믹스

애니메이션화 되었다. 성우진은 다음과 같다.[9]

7. 기타

단순히 작가가 자신의 집단괴롭힘 경험을 기초로 해서 쓴 소설이지만, 자세히 보면 의외로 사회 비판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1999년작이지만 지금 봐도 그럭저럭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보일 정도.

스이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담임 선생님, 스이카가 자살 기도를 했을 때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10] 침묵했던 선생님들, 스이카가 등교 거부를 했을때 스이카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학교로 내 몬 그녀의 부모님 등. 그나마 스이카의 부모님은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지만 선생님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11]

책 가장 뒷부분 '마지막 쪽지'에서 사후세계의 스이카가 이 책을 읽는 독자중 죽을 만큼 힘든 이들에게 전하는 편지가 있다. "너는 나처럼 자살만은 하지 않았음 좋겠어",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다면 내가 니 곁에 있어줄게 그러니 힘내는 거야" 라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혼자라고 느끼며 마음이 힘들고 위로받고 싶은 이들이 많이 보는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실존인물을 넘어 소설 주인공마저도 그대를 응원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 편지의 전문 ]
>있잖아.
나 이제 괜찮아.
소중한 사람들을 통해서 용기와 씩씩함, 따듯함 마음씨를 배웠으니까.

그러니 너도 용기를 내야 해.
절대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 말 것.
한동안은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잠깐 행복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가장 잘못된 선택이고,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짓이야.
난 너무 늦게 깨달았어._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돼.
절대로.
내 목소리가 귀에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를 믿어줘.

물론 일시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뒤에는 살아 있을 때의 몇 배, 몇 십 배나 더 큰 고통에 울게 될 거야.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될 거야.
그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플 거야.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 몸부림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해.
살아서 땅에 두 발을 굳게 딛고 있어야 해.
살아서 힘을 내는 거야.

등교거부든 뭐든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용기가 있다면 자신을 '쉬게 할 용기'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힘을 내.
난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존경스러워.
자신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법이야.
죽는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
이것만은 분명해.

그래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면 내 말을 떠올려봐.
홀로 괴로움을 견뎌야 한다면,
아직도 그런 시간이 수없이 많이 남아 있다면,
그땐 나를 기억해줘.
나, 스이카가 네 곁에 있을게.
내가 너의 유리에가 될게.
그러니까 힘내자.
사는 게 힘들기만 하다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되뇌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부탁하고 싶어.

삶의 스위치를 너무 일찍 꺼 버린 나를 대신해서 아주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왜 태어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말을 기억해줘.
결국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다는 것을······.


[1] 1982년 일본 오카야마현 출신.[2] 팔레트노벨상은 일본 출판사 쇼가쿠칸이 주회하는 소년문학상이다.# 특이한 점은 이 한 권의 소설을 위해 특별상을 제정했다고 한다.[3] 주인공 스이카의 이름 첫글자인 彗는 작가인 하야시 미키(林慧樹)의 이름 첫글자인 慧에서 心자만 뺀 것이다.[4] 이때 치카는 격노한 스이카의 어머니한테 맞을 뻔 했다.[5] 원래는 더 이상 키무라 선생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복지 시설로 가려고 했지만, 스이카의 부모님이 유리에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6] 하지만 스이카의 영혼을 통해, 그리고 엔딩에서 사후세계가 있다는것이 나오므로 요코와 그녀의 일당들은 모두 사후에 사후세계에서, 또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은 확실히 확인사살 되었다.[7] 스이카가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에도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소리를 하며 폭소했다.[8] 치카는 갱생했으니 사후에 받을 벌이 리더인 요코와 다른 요코 그룹 맴버들에 비하면 그나마 덜 고통스럽고 덜 무거울것이다.[9] 출처: 문화청 미디어예술 데이터베이스[10] 요코는 세력있는 의원의 딸이었으며, 교사의 방관이 스이카의 자살 기도에 일조했다는 것이 알려졌을 경우 학교의 이미지가 추락할 게 뻔했다.[11] 이를 무시한 선생님들도 사후세계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 확인사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