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미엥지모제(폴란드어: Międzymorze, 라틴어: Intermarium)는 폴란드 제2공화국의 지도자인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제안한 지정학적 연합 구상이다. 엄밀히 말하면 폴란드-리투아니아 멸망부터 폴란드 제2공화국 성립 때까지 비슷한 개념이 여러 차례 나타났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인의 정체성을 가졌던 피우수트스키가 고안한 미엥지모제의 구상이 제일 유명하다.이 개념은 발트해와 흑해 사이의 국가들이 연합하여 독립을 유지하고, 강대국인 독일과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자는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구상은 군사 동맹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경제적·정치적 협력을 강화하여 자주적인 중·동유럽 블록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폴란드의 주도권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2. 역사적 배경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유산
미엥지모제의 사상적 뿌리는 16세기~18세기에 존재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이 연방은 오늘날의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라트비아 등을 포함하는 강력한 다민족 국가였다. 하지만 18세기 말에 주변국(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되며 사라졌다. 피우수트스키는 이 연방의 유산을 이어받아 영감을 받은 새로운 형태의 지역 연합을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동유럽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면서 중·동유럽에 여러 독립국가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강대국의 위협을 받았으며, 자국의 생존을 위해 협력할 필요성이 있었다. 피우수트스키는 이를 기회로 삼아 발트해-흑해 연합을 구상하게 된다.
- 폴란드-소비에트 전쟁(1919~1921)과 미엥지모제 구상의 시도
소련은 서쪽으로 확장을 시도했고, 이에 맞서 폴란드는 소련을 견제할 동맹을 구축하려 했다. 피우수트스키는 특히 우크라이나를 폴란드의 완충국으로 삼아 러시아로부터 분리하려 했으나, 1921년 소련과의 리가 조약(Treaty of Riga)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독립이 좌절되면서 미엥지모제 구상도 큰 타격을 받았다.
3. 미엥지모제의 핵심 개념
- 안보 협력: 중·동유럽 국가들이 연합하여 러시아(소련)와 독일의 위협을 공동으로 방어
- 경제 연합: 독립적인 경제 블록을 형성하여 강대국의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려 함
- 민족 자결: 각 민족의 독립과 자치권을 존중하는 연합 모델
4. 구상에 포함된 국가들
피우수트스키는 다음 국가들이 연합체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핀란드 (일부 논의에서 언급되었으나 핵심 후보국은 아님)
그러나 각국은 폴란드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우려와 자국의 독립 노선 유지를 이유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5. 실패 원인
각국의 이해관계 충돌: 예를 들어,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와의 국경 분쟁(빌뉴스 지역 문제)으로 인해 협력할 의사가 없었다.- 폴란드 중심주의에 대한 반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은 이 구상을 자국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 소련과 독일의 강력한 반대: 소련과 독일은 이 구상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여 견제했다.
- 서유럽 강대국들의 미온적 태도: 영국과 프랑스는 소련을 견제하는 대신 독일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동유럽 지역 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6. 현대적 의미
미엥지모제 구상은 오늘날에도 중·동유럽 국가들의 지역 협력 모델로 언급된다. 특히, NATO와 EU 내에서 비셰그라드 그룹(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같은 협력체가 등장하면서 미엥지모제의 일부 요소가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최근에는 폴란드가 중심이 되어 "삼해 이니셔티브"(Three Seas Initiative, 2015~현재)라는 경제·에너지 협력체를 추진하면서 미엥지모제와 유사한 개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회 이니셔티브의 회원국은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에스토니아, 그리스,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고, 준 회원국이 우크라이나, 몰도바이기 때문이다.
7. 평가
미엥지모제는 폴란드의 지정학적 현실과 독립적인 중·동유럽을 꿈꾸던 피우수트스키의 이상을 반영한 구상이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개념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으며, 중·동유럽 협력의 역사적 뿌리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현대 학계에서는 피우수트스키의 미엥지모제 개념은 당시 정국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동유럽 각국들이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세력의 균형추가 될 만큼의 연대를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서로 반목한 결과 2차대전의 철저한 피해자로 전락하는 결과를 불렀다는 점에서 타당성은 있었다고 평한다.8. 관련 개념
- 프로메테우스주의: 소련 내 소수 민족을 지원하여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폴란드의 전략
- 비셰그라드 그룹: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간의 지역 협력체
- 삼해 이니셔티브: 발트해, 아드리아해, 흑해를 연결하는 현대적 경제 협력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