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7:28:34

바그라트 1세(타오-클라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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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라티온 왕조
아쇼트 1세 바그라트 1세 아다르나세 2세 과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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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클라제티 공국 제2대 공작
ბაგრატ | 바그라트 1세
제호 한국어 바그라트 1세
조지아어 ბაგრატ
라틴어 Bagrat I
출생 미상
사망 876년 (향년 불명)
재위 기간 830년 ~ 876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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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오-클라제티 공국 제2대 공작.

2. 생애

타오-클라제티 초대 공작 아쇼트 1세의 아들이다. 동생으로 후임 공작이 되는 아다르나세 2세과람이 있었다. 830년 아버지가 피살된 뒤, 동생들과 함께 남겨진 영지를 분할 통치했다. 10세기의 조지아 역사가 게오르기 메르추리는 그가 형제 아다르나세와 과람의 동의를 얻어 공작을 칭했다고 기술했다. 그가 실제로 소유한 땅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데, 아바도 타오와 클라제티의 일부를 다스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중앙 이베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아랍인, 압하지야인, 카케티인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그러던 842년, 아바스 왕조의 캅카스 총독 무하마드 이븐 칼리드가 이끄는 아랍 원정대에 합류하여 반란을 일으킨 트빌리시의 에미르 사하크 이븐 이스마일과 카케티인에 맞서싸웠다. 칼리드는 원정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이베리아 카르틀리의 왕자로 선임했다. 그러나 원정은 실패로 끝났고, 그는 사하크와 화해해야 했다.

853년 부가 알 카바르가 이끄는 두 번째 원정에 참여해 트빌리시를 점령하고 에미르를 처형하는 데 한 몫 거들었다. 그는 이 공적으로 중앙 이베리아를 잠시 점령했지만, 압하지야인들이 곧 쳐들어와서 그를 물어냈다. 한편, 그는 수도사 그리골 칸즈텔리가 칸즈테에 수도원을 세우는 데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샤트베르디 및 이쉬카니 수도원 건설을 도왔다. 그는 아르메니아 왕자 숨바트 8세 바그라투니의 딸과 결혼하여 장남 다비트 1세, 차남 아다르나세, 삼남 아쇼트를 낳았다. 이중 장남 다비트 1세가 876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타오 공작으로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