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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미키

S.J.
바오로 미키
パウロ三木 | Paul Miki
파일:uo8ikb6rylhb1.jpg
<colbgcolor=#488ca8,#488ca8><colcolor=#000000,#000000> 출생 1564년[1]
일본 도쿠시마
사망 1597년 2월 5일 (향년 34-35세)
일본 나가사키
직업 수도자
가족 아버지 미키 한다유
종교 가톨릭
소속 예수회
시복 1627년 9월 14일
교황 우르바노 8세
시성 1862년 6월 8일
교황 비오 9세
축일 2월 6일
상징물 종려나무, 십자가,
1. 개요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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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가톨릭 수도자, 선교사, 그리고 순교자

예수회 소속의 수도자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에 의해 순교한 일본 26위 성인 중 한 명이다.

1564년경 오사카근처 도쿠시마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20세 무렵에 아즈치야마의 예수회 소신학교에 입학했으며 1585년 졸업과 동시에 예수회에 입회, 수사로서 수련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신빙성 있는 자료에 의하면 그는 아마도 일본 최초의 가톨릭 수도자일것으로 추측된다. 1588년에는 아버지가 전사하였고 수사로서 첫 서원을 발하였다.

일단 그는 서품받지 않은 평수사였으나 선교사제와 주교를 따라다니며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전교 교리교사로서도 활동했다. 설교를 하기도 했다. 불교승려들과도 자주 토론을 벌였으며 자신의 저술로 많은 불교 신자를 개종시키기까지 했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금교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1590년 발리냐노 신부가 히데요시를 방문한 이후로는 조용히 조심스럽게 전교를 진행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1596년 작은형제회 회원들이 교토지방 미야코 인근에서 성당과 수도원과 병원을 짓는 등 공공연하게 활동을 하자 히데요시는 정치적 부담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 쯤 성 바오로 미키 성인은 사제품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사제품을 받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1596년 12월 9일, 이들은 오사카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1월 1일 미야코로 이송되어 투옥되게 된다. 이 박해로 게이한 지방에서 작은형제회의 신부와 수사 6명, 재속 3회 회원 일본인 15명, 예수회 수사 3명 등 모두 24명이 체포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1597년 1월 3일 광장으로 끌려나와 나가사키까지 혹한 속에서 걸어갔다.

그들은 2월 5일에 나가사키 근교 우라카미라는 교우촌에서 2명의 예수회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다. 같은 날 성인은 동료들과 함께 나가사키 해안 근처의 니시자카라는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33~34세 정도였다. 이들 26위의 성인은 1627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복자가 되고 1862년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어 일본 26위 성인이 되게 되었다.

2. 관련 문서




[1] 1569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