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11:39:19

일본/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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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종교별 현황
2.1. 신토2.2. 불교2.3. 기독교
2.3.1. 역사2.3.2. 침체기2.3.3. 현황2.3.4. 교단별 문화
2.4. 이슬람2.5. 소수민족의 종교2.6. 사이비 문제
3. 기타

1. 개요

일본일본국 헌법에 따라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세속국가이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1] 국가이다.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 종교 기념일이 전혀 없는데 이는 특정 종교 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정교분리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당장 일본 헌법 조항 중 국가는 종교에 일체의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데 종교 기념일이 공휴일이 될 경우 국가에서 특정 종교에 특권을 주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역사적·문화적으로 신토불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길거리에서 쉽게 사찰신사를 찾을 수 있다.

2. 종교별 현황

일본 문부과학성 조사에 의하면 신토가 1억 2천만 이상(거의 100%), 불교 9천만 이상(거의 70%), 그리스도교 150만(1% 내외), 기타 신흥 종교 몇만 명이라는 희한한 결과가 나왔는데, 중복집계 때문에 종교인 숫자가 일본 전체 인구보다 많다. 퓨 리서치 센터에서는 불교 36.2%, 기독교 1.6%, 무종교 57.0%[2]로 보고 있는데, 대부분 일본의 특징적인 종교관(한 종교에 얽매이지 않음) 때문에 정확한 종교 신자 수를 집계하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중복 집계를 해서 전체 인구의 2배 정도 되는 숫자가 나온 결과가 일본의 종교관을 더 잘 나타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문부과학성의 중복집계는 종교시설 방문객 수를 집계한 종교 문화의 참여 여부, 퓨 리서치 센터의 집계는 실질적인 종교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CIA의 월드 팩트북 조사에는 신토와 불교가 모두 70%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2018년 NHK의 조사에서는 무종교 62%, 불교 31%, 신토 3%, 기독교 1%, 기타 1%, 무응답 2%로 나타났다.# 종교시설 방문과 종교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유교문화의 영향이 크지만 절반 이상이 무종교인이고 유교 신자는 소수인 대한민국처럼 신토문화의 영향이 크지만 절반 이상이 무종교인이고 신토 신자는 소수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종교, 특히 불교나 신토 등의 전통종교는 한국처럼 개인마다 선택하는 대상이라기보다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와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쉽게 말해서 한국에서는 종교인과 무종교인이 분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국민이 종교에서 기원한 문화를 따르지만 그것을 종교가 아니라 문화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흔히 일본인은 종교적인 관념이 약하다는 말이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풍속으로 종교를 찾는 이들이 많아 그것이 진지하지 않고 세속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런 점 때문인지 크리스마스 (12월 25일)와 부처님오신날[3] 등 종교적 기념일은 그냥 평일로 넘어간다.

일본의 종교생활은 관념적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는 매우 세속적인 단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인은 태어날 때는 신사[4]에서 축하하고, 결혼식은 교회[5]에서 하고, 죽어서는 에 묻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종교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서브컬처 같은 데에서도 야훼모에화하거나 죽여버리는 등 아무렇게나 소재화하는 일이 많다.[6] 종교를 드러내는 경우도 드문 편이라 나무위키에서는 종교가 기재된 일본인이 매우 적은 편이다. 종교가 밝혀진 일본인은 분류:일본의 종교인 참조.

일본의 종교계에서는 신토불교가 가장 영향력이 크다. 신토는 시치고산성인식, 마을에서 하는 축제(마츠리), 절기별 풍습, 결혼식 등 그 밖의 여러가지 의식에서 일본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교는 장례식이나 묘제에서 큰 영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생활 속 템플스테이(슈쿠보), 대처승 등이 일본 불교의 밑거름이다. 염불과 참선 수행도 비교적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 있으며 관습적인 탁발승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다.

만물에 있다고 믿는 일본인들은 아직도 정월이면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1000년이 넘은 축제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이 파괴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일본에서 유일신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맨 처음 도입되던 센코쿠 시대에 잠깐 널리 퍼지다가 말고 에도 시대 이후로는 철저한 박해의 대상이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로도 2차대전 시기까지 공공연하고 간헐적인 박해가 심하여 기독교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고리야쿠(ご利益)라 해서 한국 이상으로 기복을 밝히는 경향이 매우 강하며, 이것이 마네키네코에도 반영되어 있다.

2.1. 신토

신토 문서와 국가신토, 신사(신토) 문서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신토는 불교를 흡수하면서 체계화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불교와 신토는 사실상 하나나 다름없는 상태이다. 즉, 인도에서 새로운 신들이 유입된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일본 제국 시절에는 서양의 그리스도교를 모델로 하여 신토를 체계화하고 국가 사상으로 삼아 국민교육을 하였는데, 이렇게 일본의 근대 민족주의에 알맞게 가공된 형태의 신토를 국가신토라 한다.

일본인들 중에서는 신토를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인들은 신토의 관습이나 신념을 따르더라도 이를 종교라는 개념보다는 그냥 문화나 생활 풍습이라고 보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로는 패전 이전에 국가신토를 교육하면서 그리스도교 등 다른 종교들과 비교하여 신토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신토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교육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정교분리와 관련해 정치적으로 가장 큰 논란이 되는 부분 중 하나가 신토에 대한 정부, 정치인들의 취급이다. 현대 일본은 국교가 없는 정교분리 국가라지만, 전통적으로 천황은 신토의 사상이나 교리와도 큰 관련을 맺으므로 일본 황실과 관련된 행사는 신토와 엮이게 마련이다. 나라에서 황실과 엮인 신토 행사를 벌이는데 이게 정교분리 위반이 아니냐는 것. 2019년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식에서도 이 문제가 이슈가 된 바 있다. 아울러 일본 정치인들, 특히 일본 총리를 비롯한 내각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시 일본국 헌법에서 규정한 정교분리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자주 이슈화됐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정교분리 원칙 위반 논란

2.2. 불교

일본불교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문화편에서 인용한 학자 가토 슈이치(加藤周一)[7]의 말대로 "일본이 불교화 된 것이 아니라, 불교가 일본화 되었다"고 보는 편이 낫다. 물론 현지화는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일본에서의 불교는 특히 심하다.

1868년 메이지 유신과 동시에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 숭신억불(崇神抑佛), 폐불훼석(廃仏毀釈) 정책으로 일본 불교계는 한동안 위축되었다. 이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서세동진(西勢東進), 탈아입구의 광풍 속에서 일본 불교계는 동양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주 아이콘 불교 문화를 수호할 일로 절치부심하게 됐다.

일본 불교는 개산조사(開山祖師)를 중심으로 모든 활동이 이뤄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석가모니보다는 해당 사찰의 주직(住職)[8] 또는 소속 종파의 개산조사를 중심으로 한 것이 일본 불교의 특징이다. 때문에 부처님을 모신 법당보다 개산조사를 모신 전각이 월등히 큰 경우도 적지 않다. 나가노현의 유명 사찰인 젠코지(善光寺) 법주(法主) 스카스카사 스님은 "일본 불교계는 크게 나누어 보면 13개의 종파가 있으며, 젠코지는 천태종정토종의 이종(二宗)의 사원이 부처님 전에 봉사하고 있다." 하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일본 불교는 과거 한국의 유교처럼 사상적, 교육적인 부분에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이 불교의 종교적 부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일본의 불교는 유교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기도 했다.

일본 불교계의 ‘통일된 기구’나 문화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음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전일본불교협회와 전일본승니법단(全日本僧尼法團)이 구성되었긴 하지만 친목단체 이상은 결코 아니다. 전일본불교협회 회장을 역임한 이야바야시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은 "주요 종파별로 회장직을 순번으로 맡고 있다."라고 밝혔다.

불교학자 마쓰오 겐지는 일본인 대중들이 승려를 어떻게 이미지하는지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승려란 "승려의 아들로 태어나 에 살면서 불교를 공부하고, 삭발하고 법명을 받고 나서는, 승복을 입고서 장례의식을 비롯하여 종교 의례를 하는 사람"이다. 일본인에게 승려는 장례의식을 주관하는 사람, 그리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사찰은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다.[9] 이러한 정리는 일본 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주(州)에서 촌(村)에 이르기까지 절이 거의 반이나 되고, 머리를 깎고 절에서 사는 자가 평민보다 배는 된다.
《노송당 - 일본행록가장》

한국과 반대로 승려가 '직업'으로서 꽤 흔한데다 결혼해서 아내를 둘 수도 있고 아이도 가질 수 있는 대처승[10]이 많으므로, 앞서 말한 종교인의 세습문제나 과세라든가[11] 비리 문제, 금전 강요 문제, 승려 적체 문제[12] 같은 종교 부패 현상 역시 불교에서 불거지는 경향이 흔하다. NHK 조사에 의하면, 불교의 가르침을 신뢰하는 사람은 일본 인구의 90%로 나왔다.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는 높다. 그러나 "사찰을 믿을 수 있느냐"는 설문에는 30%, "승려를 믿을 수 있느냐"는 설문에는 10%만이 긍정적이었다. 일본에서는 평소에 회사원 등으로 일하며 승려를 부업으로 삼는 재가승들도 흔하고, 신토의 알바 무녀처럼 일본 불교에는 알바 승려도 존재한다.

물론 여기에는 불교에 대한 비판이 일부 들어 있다. 일각에서는 승려를 가리켜 "부모에게 물려받은 절에서 장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소 불교 폄하적인 듯한 발언이기는 해도, 특히 장례식으로 먹고 산다는 말은 일본인의 불교관을 상당 부분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 사찰 어딜 가든 뒷마당에는 상당한 규모의 납골 묘원이 있다. 스님이지만, 수행자로서보다는 생계가 거의 보장된 하나의 직업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그 못지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불교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고도의 철학 체계라기보다는 죽음을 정화하는 주술적 체계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일본식 대승 불교에서 유독 강조되는 말법 사상의 영향도 있었다. 말법 시대가 되어 육신의 번뇌가 강하게 지배하는 현세에서는 불교 수행을 하더라도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우므로, 죽어서 육체의 영향을 덜 받아 마음이 한결 맑아진 중음(antarabhava)의 상태에서 불교 승려들이 읊어주는 불경을 듣고 이해해서 극락왕생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정토종 쪽에서 특히 강하다.

일본의 대처승들은 대개 남편이 승려이고 아내가 일반인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드물게 아내가 승려이거나 부부 모두 승려인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종파마다 육식, 장발, 대처 등을 허용하는지 여부가 다르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는 대다수의 불교 종파가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지만, 두발자유는 정토진종(浄土真宗)이라는 종파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다. 선종밀교 계통 종파들은 한국과 중국처럼 삭발 규율을 유지한다. 육식의 경우 본인이 주지로 기거하는 사찰에서만 가능하고, 집단 연수 기간 중에는 일시적으로 채식만 해야 한다.

승려 양성과정도 각 종단에 속한 대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일반인이 승려가 되려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뒤 불교학과에 있는 승려 양성 코스를 거쳐야 한다. 승가 교육 커리큘럼 자체부터 한국과 무척 다르므로 일본에는 '행자승'에 해당하는 계급이 없고, '도쿠도시키'(得度式)라 부르는 삭발 수계식이 끝나면 바로 정식으로 승복과 가사를 착용할 수 있다. 다만 정토진종이나 밀교 계열의 경우 장삼 자체의 색상으로 계급을 구별한다.

오랫동안 일본의 승려들은 상류층인데다 돈이 많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실제로도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황족이나 귀족들이 닌나지(仁和寺) 등의 절로 출가해서 주지승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일본어에는 '보즈마루모케'(坊主丸儲け)[13]라는 관용구가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현대에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 단가(檀家)[14] 신도들이 감소하고 있어, 제사에 의존해 왔던 불교는 큰 경영난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승려들이 수시로 돈 이야기를 해서 신도들에게 더욱 거부감을 준다고 한다. 몇몇 승려들은 도시의 거대한 빌딩에 납골당을 짓거나 묘원을 건설하지만, 역시 팔리지 않아 빚을 안기도 한다.

그래도 이러나 저러나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된 뒤로 불교는 일본의 사회 문화 전반에 상당히 뿌리내렸다. 일본인들에게 현세의 종교는 신토이며, 내세의 종교는 불교이다. 일본불교와 신토와의 관계는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지만 서로 티격태격했던 한편 영향을 주거니 받기도 하였다. 그 결과 신불습합이라고 불리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15]

여러모로 일본에서 메이저한 종교로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일본 불교의 주요 종파는 진언종과 정토종이며, 황벽종[16] 등 소수 종파도 있다. 이 외에 불교 계통의 신흥종교인 창가학회도 나름대로 영향력이 강하다. 의외로 선종은 상대적으로 교세가 약하다.

불교계 대학으로는 고마자와대학, 류코쿠대학,[17] 다이쇼대학, 교토여자대학 등이 있다.

2.3. 기독교

기독교의 세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으로 약한 국가들 중 하나다. 16세기에 가톨릭[18], 19세기 개항 이후에 개신교가 전파되었지만 에도 막부일본 제국 당국의 박해[19], 토착 다신교로 인한 외래 유일신 종교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특성과 일본인 특유의 권하는 것도 거절당하는 것도 굉장히 창피스러워 하는 문화로 인해 선교가 힘들어 여전히 비주류이다. 세계적인 인지도 때문에 소설, 영화 등에서는 꽤 등장하는 편이나 신자의 숫자 자체는 적다. 기독교 종파는 개신교가톨릭의 비율은 비슷하고 정교회는 마이너하다. 1억 2800만 명 가량 되는 일본 전체 인구의 1%에 못 미치는 수치다. 홋카이도오키나와현은 기독교인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3% 정도로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20] 또한 센고쿠시대부터, 에도막부 시대엔 데지마를 통해 유일하게 서양과 교역한 나가사키현의 경우는 가톨릭의 영향으로 현 인구의 4% 가량이 가톨릭 신자이다.[21]

일본의 기독교 인구 비율은 1% 정도이며, 중국의 기독교 인구가 최소 2억명이 넘어 13%를 넘는다는 점과 한국의 기독교 인구 비율은 20%를 훌쩍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은 수치이다. 심지어 중국이 국가 무신론을 내세우며 종교를 탄압하는 국가임을 감안하면 중국의 기독교 인구가 종교탄압국가 치곤 많고, 반면 일본은 종교의 자유가 상당히 잘 보장된 국가인데도 기독교 인구가 유난히 극소수 수준이다. 오죽하면 일본은 전교에 기독교인이 단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상당히 많을 정도.

2.3.1. 역사

일본의 기독교 역사는 1549년 8월 15일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고시마에 도착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예수회가 기획한 일본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아우구스티노회선교사들이 인도필리핀 등지에서 잇달아 입국하면서 일본 선교를 위한 열기가 고조되었다. 이 수도회들은 각지에 수많은 성당, 수도원, 학교, 병원 등을 건설했고, 선교 65년 만인 1614년에는 성직자 150명, 신자 65만 명이 되었다. 선교사들은 기독교화한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마저 기독교화해 최종적으로는 동북아 전체를 복음화하는 원대한 소망을 구상했을 정도였고[22], 선교사들에게는 일본 선교의 성공이 더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호기가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기독교 전래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이 문단을 참고해보자. 아무튼 일본 기독교(특히 가톨릭) 전래의 역사가 생각보다 긴 것([age(1549-08-15)]년) 때문인지 교황청에서는 일본을 전교 지역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 가톨릭은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관할이 아닌 주교성 관할이다.

그러나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린 금교령(禁敎令)을 기점으로 활기를 띄던 일본 가톨릭 교회를 철두철미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불교로 개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가톨릭 신자(키리시탄)들은 카쿠레키리시탄이 되어 숨어서 몰래 신앙을 유지했다. 막부는 데라우케(寺請)[23] 및 단가(檀家)[24] 제도를 실시해서 모든 백성들이 의무적으로 불자로 등록하게 했고, 사찰에 주민등록증 개념과 비슷한 불자 증명서인 종문개장을 발급할 권한을 부여했으며[25], 후미에로 숨은 키리시탄들을 잡아내 배교시키려 하며 선교사의 입국을 철저히 막았다.[26] 한 번 꺾인 선교열은 도쿠가와 막부말인 1846년 파리 외방전교회가 일본 선교 계획을 재수립하기까지 259년 동안 일본 가톨릭교회를 침묵 속에 놓아두었다.[27] 결국 3세기 가까운 박해[28]는 일본 가톨릭교회의 폭발적인 증가력과 동아시아 선교의 교두보라는 2가지 역할을 빼앗았다. 그 결과 선교 4세기 동안의 교세 증가율은 선교 활동 초기에 비해서조차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교육·의료·사회 복지를 축으로 하는 일본 가톨릭교회의 사목적 노력에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0년대에도 여전해서 가톨릭 인구는 95만명 정도라고 한다.[29]

개신교의 경우 매슈 페리흑선내항을 기점으로 일본이 개항되자 다른 개신 종파들도 일본에 유입되었다. 개신교1859년미국에서 성공회 선교사 존 리긴스(John Liggins)와 채닝 윌리엄스(Channing Williams)가 일본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한다. 한국 개신교가 그랬듯, 일본 개신교 선교사들도 직접적인 선교 뿐만 아니라 학교를 세우고 의료기관을 세우는 등의 활동을 통해 교세를 확대해 나갔다. 2010년대에 개신교는 약 43만명쯤 된다.[30]

정교회1861년러시아 정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이반 카삿킨(Иван Касаткин)[31]이 일본에 입국하면서 전래되었다. 1912년, 니콜라이 주교의 안식 당시 약 3만여명의 신자가 소속되어 가톨릭에 버금가는 규모로 급속히 성장했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로부터의 지원이 축소되고, 소비에트와의 협력을 견제한 일본 군부의 탄압으로 러시아인 관구장주교 세르기 티호미로프(Сергий Тихомиров)가 체포되는 등 외압으로 인해 교세가 축소되었다. 또한, 태평양전쟁 패전 후 개신교나 가톨릭이 어느 정도 교세를 확대해가던 시기에 GHQ의 명령으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미국대교구 관리하에 놓이는 일이 생겼고, 이로 인해 교단이 미국파와 러시아파로 분열되는 등 교세를 회복할 기회를 놓쳤다.

2014년 기준으로 신자 수는 약 1만명이며, 일본 전역에 60여 개의 성당 및 공소가 있다.[32] 수도원은 2018년 말 경에 시즈오카현 아지로(網代)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2019년 7월 폐쇄된 상황이다. 한편 일본 정교회 소속이 아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직할 성당이 2곳과 루마니아 정교회 소속 성당이 도쿄도내에,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청 산하의 수도원 1곳이 치바현에 소재한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소속의 선교회도 활동 중이다.

비칼케돈파 교회인 콥트 정교회의 경우, 에티오피아, 이집트 출신 거주민들의 요청으로 2004년에 처음 일본에 들어와 이집트인 사제가 사목활동을 이어왔다. 2016년 7월 18일 교토부 기즈가와 시에 일본 내 최초의 성당인 시드니 교구 소속 성모 마리아-성 마르코 콥트 정교회 성당이 세워졌으며, 2017년 현재, 전국적으로 일본인 신자를 포함한 80-100명의 신자가 있다.

개항 이후,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메이지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에도 막부보다 상대적으로 덜했을 뿐,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이 때문에 서구 열강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국 이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1873년종교의 자유를 허용해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중지되었지만, 신사참배는 종교활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등 그 자유의 수준에는 제한이 컸다. 종교적 신념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해 탄압당하는 사례는 당대 식민지배를 당하던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많았다. 또한 1939년의 종교단체법으로 외국인이 교단의 대표자가 되는 것을 금지하면서, 외국인 성직자가 대표자인 교단, 특히 가톨릭과 정교회의 주교들이 강제로 은퇴, 체포당하는 등 전시체제 하에서는 기독교 탄압도 재개되었다.

일본에서 기독교의 교세가 약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전통적인 종교관과 기독교의 종교관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가톨릭교회에서는 16세기 당시 원활했던 교세를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150년 일본 선교가 진행되어 오면서 일본의 문화와 교육, 의료, 도덕 윤리에 대해 기독교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측면도 있으나, 샤머니즘과 조상숭배 등에 대해서는 대결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기에 바꿀 수는 없다. 개신교인들이 제사 같은 행위를 하지 않는 이유이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등장하는 선교사 페레이라 신부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 민족은 인간과 아주 동떨어진 신을 생각할 능력은 갖고 있지 못하오. 이 민족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생각할 힘도 갖고 있지 않소. (중략) 이 민족은 인간을 미화하거나 확장시킨 어떤 것을 신이라 부르오.[33]" 결국 일본에는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34]

2.3.2. 침체기

2차대전 후로도 일본 기독교는 발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오히려 날이 갈수록 침체되고 있다. 물론 기독교인이 많은 재일 한국-조선인이나 가톨릭 문화권 출신인 일본 체류 필리핀인, 브라질인 등 외국인 신자들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의 교세는 유지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교회 구성 인구가 노년층 중심이며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잘 전수되지 않고 있어 성소(聖召) 지원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35] 이런 현상은 교회를 약하게 만들고 결국 자연 감소로 교회가 문을 닫도록 한다.

또한 일본 기독교는 선교 활동도 잘 하지 않는데, 이는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행위를 꺼리는 민족성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기 위해, 이들은 불문율 같이 조금이라도 부담될 말은 하지 않는다. 또한 대체로 고지식할 정도로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름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일본은 2차대전 패전 이후로 이제 더이상 제3세계 불교, 이슬람 국가들처럼 폭력으로 기독교를 박해하지는 않으나, 사회구조가 기독교로의 개종을 불편하게 하며, 여전히 가족, 마을, 국가의 조직은 문화적으로 은근슬쩍 압력을 행사하여 기독교인들이 사회에서 동떨어진 존재가 되도록 유도하곤 한다. 가족 내에서는 불단이나 신단을 모시고 마을은 개별 지역 신사의 부족신(현인신, 제신 등)을 모셨으며, 한 때는 국가 차원에서 덴노를 신으로 모셨다.[36] 그리고 회사 대부분이 저마다 회사 제사를 지내는데, 기독교 신자들은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남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일본인들의 집단주의는 기독교로 개종하기 어렵게 한다. 가령 한국에 와 있는 일부 일본인 기독교 신자들은 기독교로 개종하자 자기 집에서 거의 나도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심지어 아주 극단적인 경우 상속은 물론 호적에서도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37] 무엇보다 정치와 엮일 경우 더더욱 곤란해진다. 일본은 한국과 정반대로 불교와 신토가 우파 기믹이고, 기독교, 특히 일본기독교단으로 대표되는 개신교계가 좌파 기믹이다보니 아직도 일본회의를 위시한 극우파들 중에는 기독교인 자체를 잠재적 반국가 세력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은연 중에 존재한다.

현재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서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나 세속적인 관점을 넘어서 거의 무지(無知)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가톨릭개신교를 구별하지 못 하거나, 가톨릭 성직자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식의(…) 정신 나간 작품들이 꽤 많다. 그런데 이런 무지함이 '판타지 장르 속의 가톨릭을 모델로 한 가상종교'에서만이 아니라 '나름 리얼을 추구하는 장르에서의 실제 가톨릭'에서도 벌어진다.[38]

이렇게 일본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입국심사장에서 직업을 묻을 때 "신부(사제)"라고 대답하면 "뭐하는 직업이냐"고 묻거나, 수녀원에 찾아와 "남편은 어디 갔느냐?"고 묻는(…) 공무원들이 있을 정도다. 또 야스쿠니 신사에 유족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우상숭배를 금기시하는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병사들을 합사하여 신령으로 받들도록 한 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가 법적 투쟁을 벌였으나, 일본 사법부는 "종교적 인격권은 법적 보호 대상 외"라면서 무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지로 인한 환상이 생기는 경우도 있어서, 일본 가톨릭 사립학교의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착하다는 인식도 있다.

2.3.3. 현황

그러나 적어도 전후에는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주도하여 기독교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역대 일본 총리들 중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생각보다 적지 않다. 가타야마 데쓰(장로회), 오히라 마사요시(성공회), 아소 다로, 요시다 시게루(가톨릭), 하토야마 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침례회) 등이다. 역대 일본 총리의 수가 100명이 조금 안 됨을 감안하면 인구대비로는 꽤 많이 배출한 셈이다. 아직 총리는 아니지만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전 간사장도 친척들 중 개신교 목사가 많고, 본인도 개신교 신자이다.

재계에서는 모리나가 제과 창업주 모리나가 다이치로가 감리회 교인이다. 구 파이오니아(Pioneer) 창업주인 마쓰모토 노조무(松本望)는 목사의 아들이었고, 창업 당시의 사명도 '복음상회전기제작소'(福音商會電機製作所)로 기독교색이 강했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크리스마스발렌타인 데이처럼 연중행사로서 혹은 기독교 교회에서의 결혼식(일명 채플 결혼식)과 기독교계 미션스쿨 인기 등의 형태로 순수 기독교 문화 행사가 국민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일본에서 흔히 행해지는 '교회(성당) 결혼식'은, 대개 진짜 교회에서의 결혼예배/혼인성사가 아니라 '교회처럼 생긴 예식장에서의 결혼식'이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39] 교회의 아름다운 건축과 성스러운 분위기가 좋아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데, 그렇다고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어 교회에 다닐 생각까지는 없다'는 일본인들의 욕구를 겨냥하여 만들어진 예식장이다. 종교인처럼 차려입고 주례를 봐주는 사람(대개 나이 든 백인 남성)도, 가운을 입고 노래를 불러주는 성가대원들도, 사실 진짜 목사/신부/성가대원이 아니라, 예식장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이다. 화물 신앙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정작 기독교 신자가 많은 한국의 예식장은 종교적 색채가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 이는 일본과 달리 종교 정체성을 철저히 구분하는 문화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기독교계 미션스쿨도 많다. 릿쿄대학(성공회), 도시샤대학&도시샤여자대학(회중교회), 아오야마가쿠인대학(감리회), 국제기독교대학(개신교), 조치대학(가톨릭 - 예수회), 세이신여자대학(가톨릭 - 성심수녀회), 시라유리여자대학(가톨릭 -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페리스여학원대학(개신교), 도쿄여자대학(개신교) 등등, 일본의 사립학교들 중에는 은근히 기독교계 미션스쿨이 많다. 특히 상류층 여성들이 다니는 세이신 여학원이나 후타바가쿠엔 등이 모두 가톨릭 미션스쿨이다.

만약 일본이 선교 자체가 힘든 기독교 박해 국가였다면, 기독교인이 총리가 되고 크리스마스 행사를 진행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인 기독교인을 꼽자면 빙점의 작가인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가 있다. 미우라의 소설들은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금지되던 시절에 이미 인기를 끌었는데, 기독교적 정서가 호감을 끌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위에 얘기한 엔도 슈사쿠도 생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기독교를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남겼다. 성우 쪽으로 넘어가면 오카모토 노부히코카키하라 테츠야가 가톨릭 신자로, 후루카와 토시오가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인 <슈퍼북(アニメ親子劇場, 2D 버전 한정)>과 <대모험(パソコントラベル探偵団)>은 미국과 일본에서 합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미국과의 합작이긴 하지만 기독교가 1%도 안 되는 나라에서 제작한건 생소한 일. 가톨릭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테즈카 오사무가 늘그막에 참여하던(하지만 도중에 사망) 26부작 애니메이션 <태초에(In the Beginning)>가 있으며,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일부 한국 개신교에서 2000년대 초에 행했던 어린이 주일학교 프로그램인 'MEBIG'(메빅)은 삿포로에 있는 아이린 채플(愛隣チャペル)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2004년을 전후로 메빅을 도입했던 한국 개신교 교회들이 일본 메빅과 결별하고 각기 독자적인 주일학교 프로그램으로 바꾸었다. 이후 한국에서 메빅 관련은 CCM 곡인 꽃들도 정도만 알려진 편이다.

2.3.4. 교단별 문화

일본에서는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에서 세례명을 표기할 때 반드시 이름 앞에다 표기한다.[40]

일본 개신교의 주류인 일본기독교단(日本基督教団, UCCJ)[41]은 구 조합교회(組合教会)를 주축으로 장로회, 감리회 등과 1941년에 통합된 교단이다. 2차대전 당시만 해도 신사참배에 협력하는 등 철저하게 어용적인 면모를 보였으나,[42] 패전 이후 신학적 방향이 180도 선회하여 '진보적'인 이미지가 강해졌다. 이러한 역사적 경위 때문인지 장로제 교회정치를 선호하는 한국 개신교들과 달리 일본 개신교들은 회중제 교회정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일본의 개신교인들은 대개 입헌민주당, 일본공산당[43], 레이와 신센구미 등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며 헌법 9조 수호를 지지하는 호헌 성향도 강하다.

한국 개신교인들이 개역성경 문체인 고어체를 자주 쓰듯, 일본 개신교인들도 전근대 문어체로 된 주기도문과 찬송가를 사용하므로 일반적인 일본인들보다 문어체를 더 잘 알아듣는다. 일본 정교회 또한 문어체로 번역된 성경과 기도서를 사용하지만, 이쪽은 한학자 나카이 츠쿠마로가 번역에 참여하고 러시아인 대주교 니콜라이가 타종파의 번역을 참고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별개의 독단적인 용어체계를 사용하며, 메이지 시대의 번역(니콜라이역) 이후에도 개정하지 않아서 문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예배 외의 상황에서는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한다. 한편 가톨릭, 루터교, 성공회는 성경 뿐 아니라 성가와 전례문까지 모두 현대어로 된 것을 사용한다.

일본 가톨릭에는 한국의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비슷한 일본 가톨릭 중앙협의회가 있다.

2.4. 이슬람

이슬람20세기 초반에 일본에 넘어온 타타르인의 후손들과 재일 튀르키예인, 재일 인도네시아인, 재일 아랍인 위주로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일본 내 최대 무슬림 그룹은 인도네시아인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개종한 일본인 무슬림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이슬람의 발원지인 서아시아 지역이 일본과 역사적으로 거의 관련이 없었던 탓에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이질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악마의 시 번역자 피살사건[44]이나, 도시샤대학의 교수였던 나카타 고가 ISIL에 가담하려고 시도한 사건이 벌어진 뒤로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악화된 것도 한몫한다. 유명한 모스크로는 도쿄 자미, 고베 모스크가 있다.

2.5. 소수민족의 종교

류큐 지역의 류큐인들은 류큐 신토라고 하는 토착신앙을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토와 비슷한 점들도 많지만, 샤머니즘과 조상 숭배의 성격이 짙다는 특징도 있다. 단 이 지역은 예로부터 신토,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종교의 영향력 또한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홋카이도의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의 경우 자연의 신들인 카무이를 숭배하는 신앙문화를 지녀왔었고, 현재도 여러 고유한 제례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6. 사이비 문제

사이비 종교가 암암리에 발호한 예도 많다. 일본에서는 보통 카루토(カルト)라고 영어 표현 컬트(cult)를 들여와 표기한다.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야기했던 옴진리교도 현재 공식적으로는 해체되었지만 이름을 바꾸고 교도들을 분리시키는 형태로 여전히 존속 중이라 하며, 일부는 정계 진출도 노릴 정도의 세력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지금의 행복실현당 같은 경우. 이타미 주조[45]의 영화를 보면 야쿠자종교 단체들이 일본 사회에 상당히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물론 원체 종교가 세속화된 일본 사회인 만큼 사이비 종교 문제도 큰 사건이 한두 번 터진 적이 있어서 그렇지, 사실 세계 기준으로는 약한 편에 속한다.

상술했듯 일본에서 기독교에 대한 대접이 좋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사이비 종교가 거론된다. 미국에서 건너간 여호와의 증인과 한국에서 건너간 통일교, 그리고 일본 내에서 자체적으로 생긴 기독교계 이단 종파도 많다.[46] 이런 문제 때문에 일본의 기성 기독교 교회 주보나 웹사이트에는 "저희 교회는 이단 및 사이비(컬트)와 무관합니다"라는 안내를 꼭 달아둔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예수의 방주 사건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1960년대 처음 생긴 예수의 방주라는 신흥종교 집단에 빠져든 청년들이 1979-80년 무렵 가출하여 집단 동거를 하기 시작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급기야 호스티스로 일하게 되었는데, 딸이 가출해서 호스티스가 되었단 이야기에 가족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또 예수의 방주에서 내세우는 교리는 일반적인 기독교 교리와는 영 달랐고 신토의 색채가 녹아있었기 때문에 정통 기독교 입장에선 이단으로 볼 여지가 컸다. 좋은 먹잇감을 찾은 일본 언론은 너나할것 없이 앞다퉈 이 종교에 대해 자극적 보도를 일삼았다. 얼마나 보도가 많았는지 당시 한국 언론에도 소개되었을 정도(중앙일보 기사) 그러나 밀착취재 결과, 젊은 여성, 청년들이 가출을 한 것은 오히려 종교 때문이 아니라 기존에 겪던 가정불화 때문이었고, 호스티스로 일한 것도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었으며 사이비종교에서 흔히 드러나는 학대나 성추문도 실체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거의 반쯤 소설을 써내려간 선정적 일본 언론의 행태에 비판이 가해졌다. 이 때의 역풍으로 인해 일본 언론은 이후 옴진리교와 같은 다른 신흥 사이비종교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조심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이후 옴진리교가 장기간 행패를 부릴 수 있었던 데에 이 사건의 영향이 있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다만 현재의 일본인들은 사이비 종교나 신종교 하면 주로 불교 계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가장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 계열이나, 창가학회, 행복의 과학 등 현재 영향력있는 신흥종교/사이비종교들이 대부분 불교 계열이기도 하고, 일본 불교 특유의 개산조사를 중시하는 활동 때문에 불교 계열 신종교가 굉장히 많고 이에 비례해 사이비 종교도 불교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일본 내 기독교는 크게 세력이 늘거나 기독교계 신흥종교가 새로 생기거나 하지도 않고, 현상을 유지하면서 소수종교로 평범하게 남아있는 상황이다.

3. 기타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종교방송이 난립하는 한국에 반해, 일본에서는 포교를 목적으로 한 방송 채널의 소유나 개국은 방송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분카 방송가톨릭 색채를 희석시킬 수 밖에 없었으며 극동방송은 아예 송출 기능을 철수하기도 했다. 다만, 개별 종교 프로그램의 경우는 허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각 종교법인들이 제작해 각 방송국에 납품한다.

반면 이 때문인지 한국 지상파 방송에서는 특정 종교 홍보는 물론, 관련된 물품까지 광고를 모두 금지하는데 일본에서는 지상파 TV에서 불단과 등 불교용품 광고를 허용하고 있다.


[1] 후술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서구와의 마찰도 존재했다.[2] 출처(퓨 리서치 센터)[3] 일본의 부처님오신날은 기본적으로 양력 4월 8일이지만, 양력 4월 8일, 음력 4월 8일, 어린이날 등 다양한 날짜에 기념한다.[4] 오미야마이리(お宮参り)란 의식을 한다.[5] 정확히는 외견적으로만 교회의 모습을 한 채플 예식장.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신사나 절에서 전통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6] 물론 기독교 신자가 많은 미국에서 심슨 가족처럼 신을 좀 우스꽝스럽게 그린 작품도 있지만(성경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호머를 죽였다가 마지가 뭐라고 하자 플랜더스가 그런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악마가 커피를 바치라고 하자 진짜로 커피를 바친적도 있다...) 그래도 일본보다야 정도가 덜하다. 기독교 문화권 작품에서 종교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것은 사우스 파크처럼 성역 없는 풍자를 표방하는 작품에서 기득권층인 종교와 종교인들을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지, 일본처럼 종교 자체를 가볍게 생각해서 쉽게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7] 출처는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7권 일본문화편 230페이지.[8] 한국의 주지스님에 해당[9] 이러한 일본 불교의 모습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시귀가 있다.[10] 이와 반대로 독신으로 사는 승려를 비구승이라 한다. 남자는 비구, 여자는 비구니로 구분한다.[11] 일본에서는 승려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12] 일본에서 승적에 등록된 사람은 무려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13] 밑천 안 들이고 이득을 본다는 뜻으로, 일본의 승려들이 주로 장례식이나 제사 때 경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돈을 많이 벌었다는 데서 유래한다.#[14] 일정한 에 속하여 시주를 하며 절의 재정을 돕는 집, 또는 그러한 사람.[15] 토착종교와 외래종교가 융화되거나 영향을 주고 받는 건 고대부터 모든 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메이지정부가 국가신토를 위해 신불분리를 하기 전에는 신사 안에 절이 있는 곳이 많았다. 이걸 신궁사라고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의 토착신들은, 부처가 일본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습을 바꿔서 나타난 것"이라는 본적수적설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16] 반야심경당음으로 독송한다.[17] 닛토코마센산킨코류에서 알 수 있듯 불교계 대학들 중 가장 상위권에 위치한 대학이다.[18]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선봉장으로 매체에서 많이 나와서 한국인들도 이름을 아는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가 대표적인 가톨릭 신자 다이묘였다. 그의 외손자 고니시 만쇼예수회 신부가 되었고 순교까지 했다. 그 외에도 일본 사극을 보면 센코쿠 시대에 오히려 현대보다도 독실한 기독교도가 많이 나오는데 그만큼 센고쿠시대가 일본 기독교의 전성기였다.[19] 일본 제국은 서양 열강의 눈치를 봐서 에도 막부처럼 대대적인 기독교 탄압은 하지 못 했지만 기독교에 여러 가지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20] 아이누류큐인들은 일본인들의 차별과 박해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다.[21] 이 때문에 일본 전역에 3곳이 있는 대주교좌 중 하나가 나가사키에 있다.[22] 역사스페셜 100화 <임란포로 빈센트 권은 왜 화형 당했나?>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된 조선인인 권 빈센치오가 예수회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았으나 조선에 파견되기 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박해에 휘말려 순교했다.[23] 주민들이 거주지에서 가까운 절에 불자로 등록하도록 하고, 절에서 그 주민을 단카로 지정해서 키리시탄이 아님을 보증하도록 규정한 제도.[24] 데라우케에 따라 일정한 에 속하여 시주를 하며 절의 재정을 돕는 집, 또는 그러한 사람.[25] 당연히 카쿠레키리시탄이라도 경조사를 절에서 해결해야 했다.[26] 막말까지 일본과 외교 관계를 맺은 서양 국가인 네덜란드개신교 국가였다. 네덜란드는 종교개혁 당시 앞장 서서 성상파괴운동을 주도했고, 가톨릭 국가 스페인과 치열한 독립전쟁으로 반 가톨릭 정서가 심했다. 또한 일본과 무역 활동시 크게 종교색을 드러내지도 않았다.[27] 이탈리아인 선교사인 조반니 바티스타 시도티(1668~1714)가 밀입국한 일이 있었지만, 카쿠레키리시탄과 접촉하지 못한 채 막부에 투옥되어 옥사했고 쇄국정책 탓에 다른 선교사들이 올 수도 없었다.[28] 억압받은 기간으로만 치면 조선의 2~3배에 육박한다.[29] 지바시의 인구(2015년 기준)와 비슷하다.[30] 도쿄도 신주쿠구, 또는 홋카이도하코다테시 인구의 1.3배 가량이며 도쿄도의 시나가와구인구보다 약간 많다.[31] 이후 사도 대등자 성 니콜라이(亜使徒聖ニコライ)로 시성됨.[32] 하코다테의 부활성당, 도쿄의 부활대성당(니콜라이당) 등이 유명하다.[33] 신토의 '현인신' 개념을 지칭하는 듯 하다.[34] 다신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에서는 유일신 기독교 교세 확장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사도 토마스 이래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공을 들이고 있음에도 인도의 기독교 신자 비율은 미미한데, 실컷 선교해 놓으니 그냥 힌두교식으로 자기가 믿는 여러 신들 중 하나로 편입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35] 일본 가톨릭의 경우, 각 교구수도회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국, 베트남, 필리핀, 브라질, 페루 등지에서 성직자·수도자 지원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현재 도쿄 가톨릭 신학원에 재학 중인 신학생 가운데 외국인은 전체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일본 가톨릭 교구의 요청으로 한국 가톨릭 교구에서 사제나 사제수품 전 신학생을 선교사로 파견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성공회도 사정은 비슷하다.[36]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정교분리 및 인간선언 때문에 덴노를 신이 아닌 상징적인 입헌군주로 모시고 있긴 하다.[37] 한국도 기독교 집안이라면 제사 따위 별 신경 쓰지 않지만, 한 집안에 여러 종교가 섞여있으면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개신교 신자들이 제사 거부 등으로 인해 비개신교인과 마찰을 겪기도 한다.[38] 대표적으로 Fate 시리즈에 나오는 신부 코토미네 키레이나 수녀 카렌 오르텐시아. 말만 신부지 코토미네는 아내도 있고 살인도 하며, 카렌은 수녀이면서 버젓이 신체를 노출하고 성관계도 맺는다. 실제 가톨릭 사제수도자가 저러면 파면은 물론 매장당한다. 후에 밝혀지기를 이들은 진짜 가톨릭이 아니라 성당교회라는 가톨릭을 모델로 한 가상의 기관의 대행자 소속이다. 이들은 정식 신부는 아니며 마물들과 상대하기 위한 전투집단이라서 살생과 혼인이 허용된다. 하지만 이런 배경설정을 모르고 보면 복장부터가 신부, 수녀와 비슷한데다가 키레이나 카렌은 본인 입으로 신부나 수녀라고 밝히니 더욱 헷갈리기 쉽다. 이는 페이트 자체가 시간이 지나 설정이 바뀌거나 덧붙여진 작품이라 설정충돌이 심하고, 코토미네 일가는 후유키 시에 위치한 성당을 대대로 관리하는 점에서 나스 작가가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 일본 불교가 가진 이미지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진다.[39] 진짜 교회에서는 신자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교회에서의 결혼식은 단순히 '아름답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예쁘게 치르는 결혼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가정생활을 꾸려나가겠다'고 서약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40] 실제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전 총리 아소 다로를 예로 들면, 세례명인 프란치스코를 이름에 붙일 때 フランシスコ 麻生太郎라고 쓰는 식이다.[41] United Church of Christ in Japan. 일본어 한문 표기와 달리 영어에는 '연합'이란 표현이 들어간다.[42]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말썽을 일으킨 게 바로 조합교회였다. 결국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 회중교회는 완전히 사라졌다.[43] 일본은 인도처럼 공산당이 기독교에 관대한 편이다.[44] 악마의 시를 집필한 영국인 소설가인 살만 루시디와 악마의 시의 번역자를 상대로 이란독재자이자 종교 지도자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파트와를 선포한 바 있는데, 이 사건은 일본에 거주하던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인 범인이 이에 호응하여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피해자인 이가라시 히토시방글라데시인 조수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이 조수가 행방불명되면서 2023년 현재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45] 1933~1997/영화감독. 담뽀뽀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영화에서 야쿠자와 우익단체를 매우 부정적으로 그리면서 결국 그 자신도 야쿠자들을 비난한 영화로 인하여 야쿠자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1992년에는 야마구치구미 조직원 5명으로 부터 습격당하기도 했다. 1997년 주간지 플래시에 사생활 및 불륜이 공개되면서 투신자살로 삶을 끝내고 만다. 그런데 이 자살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가지가(유서가 자필로 쓰이지 않았다든가 이타미가 평소 자살할 성격이 아니라든가) 아니라서 일본에서는 반쯤은 타살 취급하고 실제로 타살됐다는 내용의 논픽션도 있다.[46] 특히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언급된 적 있는, 예수가 사실 일본을 방문했다는 사이비 종교의 사례가 유명하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는 십자가형을 피해 닮은 사람을 죽게 하고 일본으로 도망쳐온 뒤에, 현지에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아 여생을 살다 죽었다고 한다. 물론, 그 증거를 대라 하면 다 없어져 버렸다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