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8:54:29

다이쇼 데모크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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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진행4. 입헌 양당정치와 몰락5. 의의 및 한계6. 이 시기를 다룬 미디어 창작물7. 기타

1. 개요

大正デモクラシー | Taisho Democracy

일본 제국에서 1910년대부터 1920년대 사이에 일어난 민주주의, 자유주의적 사조, 운동의 총칭.[1] 대체로 청나라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부터 치안유지법이 만들어진 1925년까지를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풍미했던 시절로 본다. 학자에 따라선 1905년 히비야 방화 사건부터 (비록 쇼와 덴노가 즉위한 뒤지만) 입헌정우회이누카이 쓰요시가 암살당한 1932년 5.15 사건까지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시기에 일본 리버럴, 좌파 등의 세력들이 기지개를 제법 켰기 때문에 일본 근대 사상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시대라고 평가받는다.

2. 배경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대외 정세가 안정을 찾고, 일본으로 망명해 있던 쑨원을 후원하는 자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2] 한편으로 일본이 근대 자본주의를 수용하면서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 획득을 주장하는 흐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1911년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중국의 정세가 혼란해지자 일본 군부에서는 이때를 중국 침략의 호기로 판단하고 육군대신 우에하라 유사쿠가 내각에 식민 통치 중이던 조선에 2개 사단을 증설하는 안을 건의했다. 그러나 사이온지 긴모치 내각은 러일전쟁 이후의 재정난이나 국제관계 등의 문제를 들어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우에하라는 '군부대신 현역무관제'를[3] 이용해 사이온지 내각을 실각시키려 했다.

그러다 결국 사이온지 내각이 실각하고, 새 내각으론 육군의 입김이 강한 가쓰라 다로[4] 내각이 출범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중들은 영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훗날 '헌정의 신'이라는 불리게 되는 중의원 오자키 유키오이누카이 쓰요시 등이 가쓰라 내각 출범을 번의 파벌정치[5]라고 주장하며 가쓰라 내각을 비판, 1912년 벌족타파, 헌정옹호를 외치며 호헌운동을 전개한다(제1차 호헌운동).

이에 가쓰라 내각은 당시 야당으로 반정우회의 기치를 세우고 있던 입헌국민당 의원들을 회유하여 입헌동지회라는 신당을 발족하는 등 정우회나 반정우회 세력으로부터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애썼으나, 결국 출범 53일만에 총사퇴하고(다이쇼 정변) 입헌 정우회를 여당으로 하는 야마모토 곤노효에 내각이 출범했다. 야마모토 내각은 '군부대신 현역무관제'를 폐지하여 군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했지만 그 와중에 지멘스사의 해군 뇌물공여 사건(지멘스 사건)이 터지면서 대중의 분노를 샀고 결국 야마모토 내각도 실각하고 만다.

3. 진행

이런 가운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야마모토 내각을 뒤이어 출범한 오쿠마 시게노부 내각은 영일동맹에 따라 독일 제국선전포고를 하고 참전했다. 이에 따라 일본 내에서는 국제협조의 흐름이 강화되면서 민주주의, 자유주의 운동이 더 활발해지게 되었다. 일본 내에서는 민본주의[6] 주창하는 학자, 저널리스트들의 활동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으로 미노베 다쓰키치는 국가가 통치의 주체이고 천황은 하나의 국가 기관에 불과하다는 이른바 천황기관설을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7]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초대 조선 총독으로도 유명한) 데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은 시베리아 출병을 선언했고 미곡상들이 을 사재기하면서 쌀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도야마현에서 쌀도매상과 주민들간에 쌀을 둘러싸고 소동이 벌어지면서(쌀 소동) 쌀도매상을 파괴하거나 불태우는 사태가 벌어졌다.[8] 데라우치 내각은 강경하게 맞섰지만 전 국민의 반발로 결국 사퇴하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 "평민 재상(平民宰相)"으로 불리며 신망이 높았던 하라 다카시가 수상에 임명되어 하라 내각이 출범했다.[9]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후인 1923년, 난바 다이스케가 당시 황태자였던 히로히토(훗날의 쇼와 덴노)를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제2차 야마모토 곤노효에 내각이 총사퇴하고 추밀원 의장이던 기요우라 게이고 내각이 출범했다. 하지만 기요우라 내각은 귀족원화족 의원들 중심으로 이뤄진 탓에 국민들에게서는 헌정 요구가 빗발쳤다.(제2차 호헌운동) 이때 입헌정우회 내에서 기요우라 게이고 내각을 지지하는 세력이 탈당하여 정우본당이라는 신당을 만들었고, 세력이 약화된 입헌정우회는 제1차 호헌운동을 불러일으켰던 가쓰라 다로 계열의 입헌동지회의 후신 정당인 헌정회와 입헌국민당의 후신 정당인 혁신클럽으로 구성된 이른바 '호헌3파' 연정을 발족하였고 총선에서 이들이 기요우라 내각 지지당인 정우본당을 누르고 과반수의 의석을 획득하면서 기요우라 내각은 퇴진하고 일제 역사에서 가장 민주적 내각이라는 가토 다카아키 내각이 출범했다.

게다가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타고 일본의 사회주의 단체와 좌파 정당, 무산정당이라 불리는 합법 사회주의 정당의 건설도 활기를 띄게 된다. 1907년 일본사회당이 해산된 이후 일명 "겨울의 시대"라고 불리는 오랜 폭정이 지속되었는데, 러시아 혁명 성공 후,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일본 사회주의자 동맹이 결성된다. 결국 이 흐름은 1925년 노동농민당 결성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이 시기에 심지어 지하에서는 일본공산당도 결성된다.[10]

1925년 가토 다카아키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보통선거법'을 제정하여 기존 '1년 이상 일본 본토에 거주하고 15엔 이상의 직접 국세를 내는 25세 이상의 성인 남자'에서 '재산과 관계없이 25세 이상의 성인남자'로 확대하여 선거권을 부여했다. (좁은 의미의 보통 선거 실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토 다카아키는 치안유지법을 통해 다이쇼 데모크라시에 대한 사망선고를 내린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다만 이에 대해선 반론도 있는데, 요는 치안유지법이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고 노동운동과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을 탄압하기 위한 법률이긴 했지만[11], 해당 법률의 조항은 다소 모호한데다가 처벌 규정도 군국주의 시절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하여 치안유지법과 그 법률을 통과시킨 가토 다카아키가 만악의 근원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치안유지법 통과 이후에도 일본에서 무산계급 정당들이 여전히 존재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실제 가토가 사망한 이후 1930년대에 이 법률을 적용하려 했던 일본 정부는 '일부러 모호하게 만든 법률 때문에 탄압하고 싶은 세력을 제대로 탄압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기도 한다.

허나 치안유지법과 별개로 1926년 1월12월에 각각 가토 다카아키다이쇼 덴노가 세상을 뜨면서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4. 입헌 양당정치와 몰락

다이쇼 시대 이후 몇년 동안이나마 보수격인 입헌정우회와 리버럴격인 입헌민정당의 양당제가 실시될 거라는 희망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1928년 선거는 양당의 의석이 고작 2석 차이(총 466석 중 218:216)가 나면서 정권이 요동쳤으며, 민정당으로 정권이 넘어온 뒤 하마구치 오사치의 사망과[12] 제2차 와카쓰키 내각의 도각[13]으로 민정당 정권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최후의 보루격으로 정우회의 이누카이 쓰요시가 군을 통제하려고 했으나, 결국 그도 암살당했다.

이런 참극 끝에 일본의 민주주의문민통제는 완전히 무너졌고,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는 알다시피 폭주한 군부에 의해 군국주의 행보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천황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언행을 했다가는 즉시 치안유지법이 적용되어 끌려가 사상검증을 받아야 하는 등 광기의 전시 체제가 열려버린다. 그리고 군부는 폭주를 거듭하다가 심지어는 승산이 완전히 없어져 항복을 결정천황의 말까지 거부하며 쿠데타를 벌일 정도로 엇나가버리고 만다.

5. 의의 및 한계

일본에서는 전후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고 높이 평가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일본에 민주주의가 빨리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패전 이후 미국의 반강제적인 압력 덕분도 있었지만 그 전에 잠시나마 민주주의 경험을 했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일본에서 의회 정치인 내각의 집권과 식민지 민족자결 바람(3.1 운동 등)이 맞물려 식민지에 대한 통치도 온건해졌다. (이른바 조선의 문화통치, 대만의 내지연장주의 등) 당시 주요 양당 중 하나였던 리버럴 성향의 입헌민정당동화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흥미를 끄는 부분.

하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이 시기 보통선거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본 본토에 살던 남성에 한해서였고, 여성들이나 조선인을 비롯한 식민지 주민들에겐 여전히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던 시대였다. 정확하겐 이 시기 조선에도 지방선거는 치러졌지만, 정권을 선출하는 선거도 아닐 뿐더러 일본과 달리 국세 5원 이상을 낼 수 있는 25세 이상의 남자에게만 투표권을 주었기 때문에, 성인 인구의 절대다수는 돈이 없어서 투표를 할 수가 없었다.[14][15] 그래서 이 당시 지방선거는 일본인들과 일제에 영합한 소수 기득권층의 잔치 수준이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흐름 속에서 여러 일본 지식인들이 사상을 전파하고 식민통치를 받던 조선인들의 상황을 돕기도 했으나, 국가주의와 제국주의를 고수하던 일본 제국의 한계 속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다이쇼 데모크라시에 참여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조선인들에게 무조건 호의적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일례로 경제학자 겸 역사학자인 '후쿠다 도쿠조(福田徳三)'같은 경우 일본 국내에서는 계몽 조직인 여명회(黎明會)를 조직, 빈민층의 생존권과 복지국가론을 주장한 사회자유주의자였지만 동시에 '한반도 정체성론'을 확립한 사람이기도 했다.

결국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당시 일본 제국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며 성인 남성 투표권을 얻어내는 등 실제 성과도 보였지만, 제국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 역시 표출한 시대였다.

6. 이 시기를 다룬 미디어 창작물

상세한 내용은 다이쇼 로망 문서 참조.

이준익 감독의 2017년 영화 '박열'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일제라고 하면 좀 더 강압적이고 절차도 무시할 것 같은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총리가 군인이 아니며, 행정부와 입법부가 서로를 견제하고, 언론이 정부를 비판하는 등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천본앵 노래의 제작자가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배경으로 곡을 제작했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7. 기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용어는 역사학자 시노부 세이사부로(信夫清三郎)가 1954년 자신의 저서에서 이 시대를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명명해서 이후 이 시기를 가리키는 용어로 고착되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붐이 일어난 것엔 언론의 역할도 한 몫 했는데, 특히 아사히 신문이 이 붐을 주도하기도 했다.


[1] 다이쇼(大正)는 당시 천황 요시히토(嘉仁) 재위(1912년 7월 30일~1926년 12월 25일) 시기의 연호이다.[2] 당시 청 왕조 타도를 외치며 수천년 왕정 시대를 끝내고 공화국을 이룩하겠다던 쑨원과 중국동맹회를 비롯한 정파 초월적 단체에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협력했는데, 1910년대 들어 기어코 중국인들이 전제왕정을 무너트리고 삼민주의라는 그럴듯한 모토까지 갖춘 공화국을 만들자, 탈아입구를 먼저 이루겠다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3] 육군대신이나 해군대신은 현역 군인만이 보임될 수 있도록 규정한 제도. 문관이나 퇴역 군인, 예비역 군인 등도 보임 자격이 없게 된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마음에 들지 않는 내각이 있으면 군부가 대신 후보자를 내보내지 않아 수립 단계에서 무산시킬 수 있기 때문. 내각이 사실상 군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기형적인 제도로, 이것은 이후 일본 민주주의의 붕괴와 군국주의의 발호로 이어진다.[4]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5] 가쓰라 다로는 조슈 번 출신이고 육군은 조슈 번 출신들이 장악했기 때문에 조슈 번의 파벌 정치라는 비판이 나왔다.[6] Democracy의 번역어이다. 민주주의가 아닌 이유는 '국민이 주인이면 천황은 뭐가 되는가?'라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7] 이후 미노베는 군부와 우익인사들의 압력으로 인해 귀족원을 사퇴할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폭탄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8] 이 쌀소동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게 바로 국사시간에 배우는 산미증식계획이다. 본토에 쌀이 없으면, 식민지에서 키우면 된다는 발상.[9] 일반적으로 하라 내각이 일본 역사 최초의 정당 내각으로 인정되며, 하라 내각 시절에 조선반도에 대한 문화통치가 입안된다.[10] 물론 이들은 1945년이 되어서야 합법정당으로 인정받는다.[11] 당시 일제 식민지던 조선에선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이 치안유지법이 이용되었다. 당시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은 아나키스트사회주의자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12] 군축정책을 바탕으로 1930년 선거에서 승리(민정 273 : 정우 174)했으나 런던 해군 군축조약 체결로 군부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세계 대공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발생한 경제 위기 도중 우익에게 총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으나 국난 극복을 위해 병상을 나와 제국의회에 출석하는 등 무리를 하다가 끝내 병환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13] 군부의 통제를 위해 정우회와의 대연정을 추진했다가 도리어 민정당 내에서 결사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와카쓰키는 연정 포기로 돌아섰으나 이번에는 내각 안에 있던 '찬성파' 아다치 겐조 내무대신이 '파업'을 하는 바람에 내각을 사직해야했다.[14] 1943년 조선의 소득세 납부인원이 총 576,311명이었다. 당시 조선의 남자 성인 인구를 약 700만 정도로만 잡아도 무려 90% 이상이 소득세 납부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소득세 5원 이상 납부자는 약 40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경기도에 10만 가까이가 몰려있는 등 편차도 심해서 지방 부, 읍, 면회 선거에서는 그야말로 잘해야 몇십~몇백명 정도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15] 참고로 일본에서 완전한 의미의 보통선거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치러진 마지막 제국의회 선거부터 일본 여성들이 선거권을 부여받으며 실시된다. 식민지였던 조선의 경우 희망고문 1946년에 선거권을 부여하려고 했으나 일제의 패망으로 취소되었고, 1948년 38선 이남 지역의 경우에 한하여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선거권이 처음 부여되면서 보통선거권도 동시에 부여된다(이미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헌장에서 남녀 모두에 대한 보통선거권을 명시하고 있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