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03:26:58

전국 3영걸

전국 3영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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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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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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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徳川家康(덕천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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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織田がつき (오다가 찧고)
羽柴がこねし (하시바가 반죽한)
天下餅 (천하라는 떡)
座りしままに (앉은 채로 먹은 건)
食うは徳川 (도쿠가와로구나)
御代の若餅[1]
3영걸(三英傑) 또는 향토삼영걸(郷土三英傑)은 현재의 일본 아이치현(당시 오와리 국, 미카와 국) 출신으로 나고야에 연고가 있고, 전국시대천하통일을 이끌었던 3명의 센고쿠 다이묘(戰國大名)에 대해 주로 아이치 현과 나고야 시에서 표창하는 호칭. 나고야 축제는 매년 3명을 기념하기 위해서 향토 영걸 행렬이 진행되고 있다.

3명 다 일본 천하를 통일(혹은 그 직전)에 이르렀단 의미로 천하인이라는 호칭으로도 불리며 셋 다 일장일단이 있다.[2]

파일:대망2.jpg
한국인에게 친숙할 <먼나라 이웃나라>의 전국 3영걸 평가. "오다가 쌀을 찧어 하시바[3]가 반죽한 '천하라는 떡'을 힘들이지 않고 먹은 것은 도쿠가와"라는 싯구절과도 상통하는 평가이지만, 도쿠가와의 치세의 명군주로서의 업적을 높게 평가한다.

2. 목록

2.1. 오다 노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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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다 노부나가.jpg
오와리의 다이묘에서 시작해 일본 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 파천황적인 생애랑 천하통일의 끝에 다다렀다가 부하배신으로 죽은 비극적인 최후로 말미암아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높은 인기를 방증하듯 그는 전국시대를 소재로 하는 역사물에 꼭 등장한다. 제육천마왕의 별명 때문인지, 정말로 마왕이나 터무니 없는 대악당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코에이의 전국무쌍 시리즈, 캡콤의 전국 바사라 시리즈를 필두로 많은 대중매체가 이 사람에게 마왕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서는 마왕이라 불릴 정도의 잔혹함 속에 의외로 따뜻한 정이나 인간미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각색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4]

한국의 경우 오다 노부나가는 구한말 이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전국시대 당시 일본에서 조선과 교류한 지역은 규슈가 유일한데, 오다는 생전에 규슈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 그리고 오다 이외의 다른 삼영걸들은 임진왜란이나 조선통신사든 역사적인 접점이 있는데 오다는 일생을 전국시대의 전란 속에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접점이 생기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임진왜란 시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떤 자인지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오다가 히데요시의 전임 관백[5]이라고 언급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얽힌 오다의 행적들이 간략히 언급되긴 한다.

2.2. 도요토미 히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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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oyotomi_hideyoshi.jpg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다가 노부나가 사후 정권을 장악해 일본을 통일한 인물. 평민[6]에서부터 출발해서 오다 노부나가 사후 일본 통일을 완성하고 통일 일본의 지배자가 된 입지적인 업적을 세운 인물이라, 특히 본진으로 삼았던 오사카 지역에서는 아주 평가가 좋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평가가 급격하게 나빠져서 통일 이후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말년에는 임진왜란이랑 히데츠구 숙청 등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음흉한 너구리라며 까이는 것조차 칭찬일 지경으로 노욕 노망이 들었다고 영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데 딴 건 되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앞지를 수도 있을 만한 치적이 있기도 하건만[7] 말년의 실수 때문에 전국 3영걸 중 제일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당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다는 점 때문에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시기를 다루는 사극 등의 매체에서도 작지 않은 비중으로 등장한다.

2.3. 도쿠가와 이에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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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Tokugawa_Ieyasu2.jpg
미카와의 다이묘에서 시작해 히데요시 사후 에도 막부를 창건하여 일본을 재통일한 인물. 일본에서는 권모술수에 능하고 토사구팽도 심한 '음흉한 너구리'라고 불린다.[8] 또한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평가되며 몇몇 미디어 매체에서는 악당에 준하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보다 훨씬 평판이 좋다.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았으며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켰고, 왜란을 뒷수습하면서 조선과의 국교를 잘 회복했기 때문이다.[9]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고 급하게 일을 도모하지 않고 천천히 다이묘들을 자기 세력으로 포섭하고, 도요토미 쪽 세력을 최대한 방심시키고 분열시켜서 10년에 걸쳐 거사를 도모한 것이 특징이라 창작물에서는 "오래 참고 기다릴줄 아는 점"이 부각된다. 다시 전국시대로 떨어질 뻔했던 일본을 다시 도쿠가와 막부 휘하에 통일시켜 전국시대를 완전히 종식시킨 수완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수 많은 다이묘들이 난립했던 군웅할거의 일본 전국시대의 최후의 승자로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3. 관련 문서


[1] 원문은 일본 전통의 와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다가츠키(5) · 하시바가코네시(7) · 텐카모찌(5) · 스와리시마마니(7) · 쿠우와도쿠가와(7)[2] 다만 천하인은 이 3인 외의 인물들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주로 오우치 요시오키미요시 나가요시가 포함된다.[3]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옛 성(姓).[4] 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 라노벨 같은 장르에서 그렇게 다뤄진다.[5] 실제론 오다 노부나가는 관백 관직을 받은적이 없지만, 관백이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임자라기에 당연히 오다도 관백인줄 알았던 듯 하다. 에도 막부가 세워지고 나서도 쇼군을 관백이라 칭하기도 했다.[6] 아시가루 출신인데, 보기에 따라 최하급 무사계급으로 보기도 한다.[7] 정치력으로만 따지면 3영걸중에서도 최고라고 평가하는 학자들이 많다.[8] 다만 권모술수라면 모를까, 토사구팽의 경우는 정도로 따지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자세한 건 도요토미 히데츠구 문서 참고.[9] 게다가 도쿠가와의 에도 막부가 끝나고 들어선 메이지 정부부터 바로 다시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했기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