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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시대의 니시키노미하타. |
십육엽팔중표국이 정착된 가마쿠라 이후의 니시키노미하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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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시키노미하타([ruby(錦, ruby=にしき)]の[ruby(御,ruby=み)][ruby(旗,ruby=はた)]: 비단의 어기), 금어기錦御旗 또는 금지어기錦之御旗는 일본에서 천황을 상징하며 관군(官軍)·관백(關白)·태정관(太政官) 등에서 사용되었던 깃발이다. 가마쿠라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의 모체(母體)가 되었다.붉은 비단에 금실로 황실의 문장인 국화 문양을 수놓은 깃발이지만 과거에는 태양을 의미하는 원만 수놓았다.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를 상징하며 지금도 천황의 즉위식 등 황실 전통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1]
2. 형태
회화에서 묘사된 니시키노미하타의 모습. 시대와 상황에 따라 도안이 조금씩 다르다. |
위에 해를 수놓은 붉은 비단과 위에 달을 수놓은 붉은 비단을 하나의 짝으로 맞춘 니시키노미하타 |
글씨로는 '아마테라스스메오오미카미(天照皇太神)'란 글귀를 한자로 자주 적었는데, 니시키노미하타가 태양을 상징화했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서 에도 시대 초기에 이르러 은본위제가 본격화되고 외국 상선과의 교역이 증가하자, 네모 바탕에 원을 그려넣은 문장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그 중에는 현대 일장기처럼 붉은 원을 그린 깃발도 있었다.
3. 기원
천황을 상징하는 이 깃발의 기원은 일본의 유서 깊은 제도들이 그러하듯이 중국이다. 주례는 춘관(春官)에 깃발을 맡은 벼슬인 사상(司常)이 있다고 썼는데 사상이 맡은 깃발이 아홉 가지고[3] 가장 격이 높은 깃발을 상(常)이라고 하였다.日月爲常(해와 달을 상으로 삼는다.)
[ruby(王,ruby=왕)][ruby(建,ruby=건)][ruby(大,ruby=태)][ruby(常,ruby=상)](왕은 태상을 세운다.)[4]
알다시피 진시황 이전에 황제란 칭호는 없었고 왕이 천자의 칭호였기 때문에 주례에 나온 왕은 곧 천하를 다스리는 이란 뜻이다. 따라서 태상은 천자만이 쓸 수 있는 깃발이다.[5] 그리고 이 깃발은 해와 달을 그리거나 또는 수놓았다. 또한 정현은 아홉 깃발에 쓰는 비단(帛)은 모두 새빨강(絳)을 쓴다고 썼다. 이제 위에 금실과 은실로 해와 달을 수놓은 붉은 바탕의 니시키노미하타 그림을 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4. 유래
고토바 천황이 호조씨를 토벌하러 가는 관군을 이끄는 장수에게 내려준 일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니시키노미하타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태상이 본래 천자만이 세울 수 있는 깃발임을 생각하면 니시키노미하타는 천황이 있어야만 세울 수 있으니 니시키노미하타를 내세우려면 친정을 해야 했다. 끝내 고토바덴노는 호조씨에게 거꾸로 당했다.5. 기타
공식적으로 국기로 제정된 적은 없으므로 근대적 의미의 국기는 아니다. 일장기 역시 법적 근거 없이 관습적으로 일장기를 국기로 사용하다가 1999년에 와서야 국기로 지정하였다.일본어에서는 니시키노미하타(錦の御旗)라는 단어가 '거역할 수 없는 대의명분'을 의미하는 관용어로도 쓰인다. 보신전쟁에서 신정부군이 이걸 들고 출전하자 막부군이 전투 의지를 잃고 에도로 퇴각했던 사례에서 기원한다.
[1] 이 때는 홍색뿐만 아니라 녹색이나 황색 등 다양한 색의 비단을 바탕으로 하기도 한다.[2] 현 일본 정부 문장, 구 조선총독부 문장에 있는 도안이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 니시키노미하타와 함께 정부의 상징으로 쓰였다.[3] 단 둘은 수레에 꽂긴 하지만 가늘고 긴 막대기에 새깃을 치렁치렁 단 거라서 깃발이라기보다는 지휘봉에 가깝다.[4] 여기서 대(大)는 태로 읽어야 한다. 주나라의 문물에 붙은 이름인데 춘추시대까지는 大를 태로 읽는다. 천자만이 쓸 수 있는 깃발이라 大가 붙었다.[5] 구경의 하나인 봉상(奉常) 또는 태상(太常)이 이 깃발의 이름에서 나온 게 아닌가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