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5 17:21:00

역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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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보수주의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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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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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같이 보기

1. 개요

Reverse Course / 逆コース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GHQ를 비롯한 미국 중심 연합국 세력이 일본을 점령하면서 했던 개혁 및 재건 정책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정과 변화. 역코스가 진행된 시점은 1948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2. 상세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 된 일본소련이 빠진 미국 주도 연합국 필두로 GHQ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역코스 이전의 초기 GHQ가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는 사상적 원동력이 된 국수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사회 문화를 완전히 뿌리뽑기 위해 일본의 민주화와 비무장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일본공산당이 합법화되었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었으며 일본 제국 시절 탄압받었던 사회주의 정치 세력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GHQ는 1946년 공직추방령까지 제정해서 전범들을 추방하였고 공직에 고의적으로 좌익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였으며 군사조직의 존재가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며 군대 보유를 아예 금지하는 일본국 헌법까지 제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트루먼 독트린, 철의 장막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했던 GHQ는 반공주의화된 미국 정부의 입김 하에 점차 보수화되었다. 1947년 일본공산당이 준비하던 총파업을 중지시킴으로써 역코스의 조짐이 보이더니 1949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1950년에는 아예 6.25 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 확산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GHQ는 공직추방령으로 쫓아냈던 2차대전 전범을 포함한 보수 인사들을 정계에 다시 끌어들였고 민주화를 위해 이전까지는 장려하였던 일본 내 사회주의 세력의 움직임을 역으로 감시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보수화 정책은 요시다 시게루 내각 하에서 착착 진행되었다.[1]

냉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은 기존의 일본에 대한 비무장 정책을 포기하였고 준군사조직인 경찰예비대, 해상경비대를 신설하였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 점령을 끝낸 후에도 일본의 재무장에 관여하고 지원했다. 경찰예비대와 해상경비대는 각각 보안대경비대가 되었고 최종적으로 보안대와 경비대는 사실상 군대자위대로 개편되었다.

이후에도 미국은 CIA의 비밀 자금 지원을 통해 일부 전범을 포함한 보수파가 주축이 된 친미 정당인 자유민주당(일본)을 후원하여 친소 성향이 있는 일본사회당을 약화시킴으로써 보수 우위의 일본 정치 시스템을 건설하였다.[2]

오늘날까지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후 일본의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은 근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수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는데 그것이 현대 일본 국민의 일반적인 역사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3. 같이 보기


[1] 요시다 본인은 2차대전기 일본사에 대한 역사수정주의나 재무장에 큰 관심이 없는 보수본류에 가깝고 두드러지는 민족주의 성향은 아니었다. 다만 확고한 반공주의자였다.[2] 다만 상대적으로 자민당 쪽에 전범들이 훨씬 더 유입된 건 사실이지만, 사실 일본사회당도 전범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거물 정치인들을 예시로 들자면 가와카미 조타로는 전직 대정익찬회 총무였고 이로 인해 전후 GHQ의 공직추방령의 대상이 되었다. 아사누마 이네지로도 대정익찬회에 가입하고 중일전쟁에 찬성한 흑역사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그나마 일본사회당 인사들은 구 전범이라고 할 지라도 전후에 평화주의, 반성적 스탠스를 보이기도 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조타로는 과거 자신의 전범 부역행위에 대해 자아비판했고 자민당 내 전범출신 정치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