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22:11:56

국가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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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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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전쟁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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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 대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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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가키 세이시로 히로타 고키
복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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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겐료 스즈키 데이이치 시라토리 도시오 시마다 시게타로 시게미쓰 마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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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 순 배열
[1] 불기소 피의자, 재판 전 사망자 포함. 공식적으로는 이들은 무죄이다.
[2] 개별 사건의 중복 피고인까지 합계되었으며, 이 밖에 추축국 피점령지 내 부역자, 기소유예자가 포함된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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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國家神道, ruby=こつかしんたう)]
신자체·현대 가나 표기
[ruby(国家神道, ruby=こっかしんとう)]
한국어 독음
국가신도

1. 개요2. 관청3. 역사4. 종교성5. 일본 민족주의와의 연관성6. 여담

1. 개요

국가신토(國家神道)는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의 권위 향상을 위해 일본 제국 정부가 신토를 개량해 만든 사이비 종교 혹은 사상이다.

1945년일본 제국이 패전하면서 중단되고 연합군 최고사령부신도지령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소멸하였다. 그러나 국가신토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있는데, 일본 전역의 신사를 관리하는 신사본청이 그 중 하나이다.

2.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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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2월 10일
1868년 2월 25일
1868년 6월 11일
1869년 8월 15일
1871년 9월 22일
<rowcolor=#FF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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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6월 11일
1869년 8월 15일
1871년 9월 22일
1872년 4월 21일
-
-
(독립)
신기관
(神祇官)
신기성
(神祇省)
신기사무과
(神祇事務科)
신기사무국
(神祇事務局)
<rowcolor=#FFF>
1872년 4월 21일
1877년 1월 11일
1885년 12월 22일
1900년 4월 27일
1940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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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rowcolor=#FFF>
1877년 1월 11일
1885년 12월 22일
1900년 4월 27일
1940년 11월 9일
1946년 1월 31일
교부성
(敎部省)
사사국
(社寺局)
신사국
(神社局)
신기원
(神祇院)

3. 역사

파일:야스쿠니 신사.jpg
전범 합사 논란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
과거에는 국가신토적 행정 아래 면세와 보조금 등 혜택을 받았다.

신토가 '문화'의 개념으로 정착되면서 고대적 개념과 근대적 내용을 조합시켜 만들어졌다. 이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국가로의 이행을 꾀하면서도 근대적인 의미의 주권을 가진 시민 개념이 아닌 천황에게 충성하는 신하된 백성인 신민 개념을 제시하여 지배계층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국가신토를 제정하면서 신사의 관리체계가 만들어졌고, 전국의 신사를 관공서화하여 체계화된 서열 내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천황 조정에 저항하다 패배한 반역자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는 신격이 격하되거나 아예 폐지당했다. 그리고 국가신토에서는 전통적인 신토의 교리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심지어 천황 관련 예식에서도 종교적 논리를 무시하여 신토주의자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일본이 제국주의를 표방한 이후부터는 식민지 각지에 신사를 세우고 식민지인들에게도 국가신토 사상을 강요했다.

국가신토 사상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과 함께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해체되었다. 다만 신토 자체는 군국주의의 산물이 아닌 일본 토착 신앙이기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신토 자체가 일본의 근대 민족주의에 의해 개조된 것이니 어떻게 보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과 다름없다.

국가신토가 구축한 체계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국가신토가 해체 되었음에도 신사본청을 통해 상당부분 이어졌다.[1] 신사본청에 등록된 신사 또한 국가신토 설립시 등록된 신사들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국가신토 제정 당시 폐지당하거나 격하된 신사의 복권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소수의 신사본청 등록을 거부하는 신사들은 이런 전력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때문에 전후 복권된 신사의 신도들은 국가신토를 상당히 싫어한다. 관련 주제가 나오면 직접적으로 말을 못해도 '역사도 짧은 그 작자들과 우리는 다르다' 같은 뉘앙스로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4. 종교성

국가신토는 토착 애니미즘 신앙인 신토메이지 유신 이후 세워진 신정부에서 천황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할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그 특유의 종교성을 배제했다. 메이지 정부와 메이지 정부를 옹호했던 상당수의 일본 지식인들은 국가신토를 종교가 아닌 야마토의 전통 문화라고 주장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인식했다.

대일본제국 헌법정교분리종교의 자유를 명시했기 때문에, 만약 국가신토가 하나의 종교라면 그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게 된다. 따라서 종교가 아니라고 규정함으로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제는 국가신토는 종교가 아닌, 종교를 초월한 초종교(超宗敎)라고 선전했다. 이는 개개인의 종교와 상관없이 일본 본토와 식민지의 모든 신민들에게 국가신토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이론적인 기반이 되었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비국민이라는 낙인찍어 헌법상의 권리를 박탈하고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도쿄대학의 종교학자 야나가와 케이이치(柳川啓一) 등은 국가신토가 교리(dogma)적 형태를 표방하고 있다고 논증하였다.[출처] 실제로도 천황의 불가침과 신성을 강조한 일제 말기의 사회상과 전쟁 수행에 있어서 군종 프로파간다 역할을 수행한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하나의 정신적 지배체계로 작용했음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5. 일본 민족주의와의 연관성

원래 만세일계 개념은 '한 가문에서 나온다'는 혈통 문제만이 아니었다. 역대 천황들은 대대로 즉위식을 거행하고 몇 년 뒤 아마테라스 앞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같이 먹는 의식을 거행해 왔다. 이때 '역대 천황들에게 깃들여 왔고', '아마테라스에게서 유래한' 신적인 혼이 깃든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천황들은 여려 명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사고는 여러 문화권의 고대 사제왕 신화에서는 형태를 바꾸어 나타나는데, 야마토 왕권에 복속된 이즈모 국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만세일계의 이러한 고대적 개념을 무시하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부응하게 바꾸어 왔다. 하나의 혈통에서 내려오는 신성한 절대군주의 표상으로 간주한 것이다. 또한 일본서기의 일서에 기록된, 이른바 '천양무궁의 신칙'을 공교육으로 가르쳤다. 천양무궁의 신칙은 일본서기 편집 당시만 하더라도 뒤늦게 나타난 소수 전승이었다. 일본서기 본문이나 다른 일서를 보아도 그런 말이 없다. 일본서기 내용 중 일본의 근대 민족주의에 맞는 전승만 가져와 조합한 것이다.

6. 여담

지배자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의미에서는 스탈린주의와 비슷한 면이 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스탈린주의의 경우 중심이 되는 인물을 '만인의 모범'이자 '만인의 선생'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대체될 수도 있지만 국가신토는 문자 그대로 '천황이라는 절대신 아래의 여러 신들'이기에 중심이 되는 인물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이러한 독보적인 지위를 확립한 것에 대해 아돌프 히틀러가 부러워했다고 한다.[3]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2000년에 낸 저서 <새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1권에서 국가신토 몰락이 일본의 정신적 방향상실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는데, 패전 후 민주주의가 꽃피자 국민들이 각기 다른 지향점을 제시하면서 공동의 가치관이 결여되자 국가가 정신적으로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폐기된 사상이지만 극우 중 일부는 아직도 국가신토를 신봉하고 있다. 또한 패전 이전 일본의 공식 입장으로는 '국가신토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했고 원본인 신토도 현대에는 종교라기보다는 전통 문화의 하나라는 인식이 강하므로, 사라진 종교라는 표현 자체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1] 신사본청의 고위직 간부 몇몇은 일본 불교계 인사 몇 명과 더불어 극우단체인 일본회의에서 활동했고 새역모 찬동자이기도 하다.[출처] <戦後の宗教と世界>, circa 1976[3] 히틀러 본인은 '인간의 육신으로 나타난 민족의 의지'라는 민족주의적 우상화와, 가톨릭 교회와의 부분적 타협에서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