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2:05:00

아베 노부유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color: #C3C96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메이지 시대|
메이지 시대
]]
<rowcolor=#C3C965>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이토 히로부미 구로다 기요타카 야마가타 아리토모 마쓰카타 마사요시
<rowcolor=#c3c965>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이토 히로부미 마쓰카타 마사요시 이토 히로부미 오쿠마 시게노부
<rowcolor=#C3C965>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가쓰라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rowcolor=#C3C965> 제13대 제14대
가쓰라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다이쇼 시대|
다이쇼 시대
]]
<rowcolor=#C3C965> 제15대 제16대 제17대 제18대
가쓰라 다로 야마모토 곤노효에 오쿠마 시게노부 데라우치 마사타케
<rowcolor=#C3C965> 제19대 제20대 제21대 제22대
하라 다카시 다카하시 고레키요 가토 도모사부로 야마모토 곤노효에
<rowcolor=#C3C965> 제23대 제24대 제25대
기요우라 게이고 가토 다카아키 와카쓰키 레이지로
[[쇼와 시대|
쇼와 시대파일:1px 투명.svg전전
]]
<rowcolor=#C3C965>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다나카 기이치 하마구치 오사치 와카쓰키 레이지로 이누카이 쓰요시
<rowcolor=#C3C965> 제30대 제31대 제32대 제33대
사이토 마코토 오카다 게이스케 히로타 고키 하야시 센주로
<rowcolor=#C3C965> 제34대 제35대 제36대 제37대
고노에 후미마로 히라누마 기이치로 아베 노부유키 요나이 미쓰마사
<rowcolor=#C3C965> 제38·39대 제40대 제41대 제42대
고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고이소 구니아키 스즈키 간타로
[[쇼와 시대|
쇼와 시대파일:1px 투명.svg전후
]]
<rowcolor=#C3C965> 제43대 제44대 제45대 제46대
시데하라 기주로 요시다 시게루 가타야마 데쓰
<rowcolor=#C3C965> 제47대 제48-51대 제52-54대 제55대
아시다 히토시 요시다 시게루 하토야마 이치로 이시바시 단잔
<rowcolor=#C3C965> 제56·57대 제58-60대 제61-63대 제64·65대
기시 노부스케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 다나카 가쿠에이
<rowcolor=#C3C965> 제66대 제67대 제68·69대 제70대
미키 다케오 후쿠다 다케오 오히라 마사요시 스즈키 젠코
<rowcolor=#C3C965> 제71-73대 제74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다케시타 노보루
[[헤이세이 시대|
헤이세이 시대
]]
<rowcolor=#C3C965> 제75대 제76·77대 제78대 제79대
우노 소스케 가이후 도시키 미야자와 기이치 호소카와 모리히로
<rowcolor=#C3C965> 제80대 제81대 제82·83대 제84대
하타 쓰토무 무라야마 도미이치 하시모토 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rowcolor=#C3C965> 제85·86대 제87-89대 제90대 제91대
모리 요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rowcolor=#C3C965> 제92대 제93대 제94대 제95대
아소 다로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rowcolor=#C3C965> 제96-98대
아베 신조
[[레이와 시대|
레이와 시대
]]
<rowcolor=#C3C965> 제99대 제100·101대 제102·103대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 태정대신
섭관 · 원정 · 헤이케 · 가마쿠라 · 무로마치
오다 · 도요토미 · 에도 · 내무경 · 총리
}}}}}}}}}
아베 노부유키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
{{{#!wiki style="border-top: 0px none; border-left: 10px solid #00ff00; border-right: 10px solid #00ff00; text-align: center; margin: -6px -11px; padding: 7px; min-height: 34px"
{{{#!wiki style="margin: 0 -16px -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word-break: keep-all"
직위 명단
<colcolor=#fff> 외무대신 <colbgcolor=#ffffff,#1f2024> 시데하라 기주로
내무대신 아다치 겐조
대장대신 이노우에 준노스케
육군대신 우카기 가즈시게
해군대신 다카라베 다케시아보 기요카즈
사법대신 와타나베 치후유
문부대신 고바시 이치타다나카 류조
농림대신 마치다 추지
상공대신 다와라 마고이치
체신대신 고이즈미 마타지로
철도대신 에기 다스쿠
척무대신 마츠다 겐지
무임소대신 아베 노부유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61041, #062861 20%, #062861 80%, #061041)"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rowcolor=#fff> 초대 제2대 제3대 대행 제4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이토 마코토 우가키 가즈시게 야마나시 한조
<rowcolor=#fff>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사이토 마코토 우가키 가즈시게 미나미 지로 고이소 구니아키 아베 노부유키
한국통감 · 군정사령관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000,#e5e5e5
외무경 (1869년~1879년) · 외무사무총재 (1873년)
초대
사와 노부요시
2대
이와쿠라 도모미
3대
소에지마 다네오미
4대
데라시마 무네노리
5대
이노우에 가오루
전전 외무대신 (1885년~1945년)
{{{#!wiki style="margin: -16px -11px" }}}
5대
이노우에 가오루
6대
이토 히로부미
7대
오쿠마 시게노부
8대
아오키 슈조
9대
에노모토 다케아키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0대
무쓰 무네미쓰
11대
사이온지 긴모치
12대
오쿠마 시게노부
13대
니시 토쿠지로
14대
오쿠마 시게노부
15대
아오키 슈조
16대
가토 다카아키
17대
소네 아라스케
18대
코무라 주타로
19대
가토 다카아키
20대
사이온지 긴모치
21대
하야시 타다스
22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23대
코무라 주타로
24대
우치다 고사이
25대
가쓰라 다로
26대
가토 다카아키
27대
마키노 노부아키
28대
가토 다카아키
29대
오쿠마 시게노부
30대
이시이 키쿠지로
31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32대
모토노 이치로
33대
고토 신페이
34대
우치다 고사이
{{{#!wiki style="margin: -16px -11px" }}}
34대
우치다 고사이
35대
야마모토 곤노효에
36대
이주인 히코키치
37대
마츠이 케이시로
38대
시데하라 기주로
{{{#!wiki style="margin: -16px -11px" }}}
39대
다나카 기이치
40대
시데하라 기주로
41대
이누카이 쓰요시
42대
요시자와 겐키치
43대
사이토 마코토
{{{#!wiki style="margin: -16px -11px" }}}
44대
우치다 고사이
45대
히로타 고키
46대
아리타 하치로
47대
하야시 센주로
48대
사토 나오타케
{{{#!wiki style="margin: -16px -11px" }}}
49대
히로타 고키
50대
우가키 가즈시게
51대
고노에 후미마로
52대
아리타 하치로
53대
아베 노부유키
{{{#!wiki style="margin: -16px -11px" }}}
54대
노무라 기치사부로
55대
아리타 하치로
56대
마츠오카 요스케
57대
토요다 테이지로
58대
도고 시게노리
{{{#!wiki style="margin: -16px -11px" }}}
59대
도조 히데키
60대
타니 마사유키
61대
시게미쓰 마모루
62대
스즈키 간타로
63대
도고 시게노리
전후 외무대신 (1945년~현재)
{{{#!wiki style="margin: -16px -11px" }}}
64대
시게미쓰 마모루
65대
요시다 시게루
66대
가타야마 데쓰
67·68대
아시다 히토시
69·70·71대
요시다 시게루
{{{#!wiki style="margin: -16px -11px" }}}
72·73·74대
오카자키 카츠오
75·76·77대
시게미쓰 마모루
78대
이시바시 단잔
79·80대
기시 노부스케
81·82대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wiki style="margin: -16px -11px" }}}
83·84대
고사카 젠타로
85·86대
오히라 마사요시
87·88대
시이나 에쓰사부로
89·90대
미키 다케오
{{{#!wiki style="margin: -16px -11px" }}}
91대
사토 에이사쿠
92·93대
아이치 기이치
94대
후쿠다 다케오
95·96대
오히라 마사요시
97대
키무라 토시오
{{{#!wiki style="margin: -16px -11px" }}}
98대
미야자와 기이치
99대
고사카 젠타로
100대
하토야마 이이치로
101·102대
소노다 스나오
103대
오키타 사부로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04대
이토 마사요시
105대
소노다 스나오
106대
사쿠라우치 요시오
107·108대
아베 신타로
109대
쿠라나리 타다시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10대
우노 소스케
111대
미쓰즈카 히로시
112대
나카야마 타로
113·114대
와타나베 미치오
115대
무토 카분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16대
하타 쓰토무
117대
가키자와 고지
118대
고노 요헤이
119·120대
이케다 유키히코
121대
오부치 게이조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22대
고무라 마사히코
123·124·125대
고노 요헤이
126대
다나카 마키코
127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128·129대
카와구치 요리코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30·131대
마치무라 노부타카
132·133대
아소 다로
134대
마치무라 노부타카
135대
고무라 마사히코
136대
나카소네 히로후미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37·138대
오카다 가쓰야
139대
마에하라 세이지
140대
에다노 유키오
141대
마쓰모토 다케아키
142대
겐바 고이치로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43·144대
기시다 후미오
145·146대
고노 다로
147-149대
모테기 도시미쓰
150대
기시다 후미오
151대
하야시 요시마사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52대
가미카와 요코
153·154대
이와야 다케시
}}}}}}}}}}}}

{{{#!wiki style="border-top: 0px none; border-left: 10px solid #808080; border-right: 10px solid #808080; text-align: center; margin: -6px -11px; padding: 7px; min-height: 34px"
{{{#!wiki style="margin: 0 -16px -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word-break: keep-all"
직위 명단
<colcolor=#ffffff> 외무대신 <colbgcolor=#ffffff,#000000> 아베 노부유키노무라 기치사부로
내무대신 오하라 나오시
대장대신 아오키 카즈오
육군대신 하타 슌로쿠
해군대신 요시다 젠고
사법대신 미야기 초고로
문부대신 카와라다 카키치
농림대신 고도 타쿠오사카이 타다마사
상공대신 고도 타쿠오
후생대신 오하라 나오시아키타 키요시
체신대신 나가이 류타로
철도대신 나가이 류타로나가타 히데지로
척무대신 카네마츠 츠네오 }}}
}}}}}}}}}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군의 전쟁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A급 전범
평화에 대한 죄
사형수
기무라 헤이타로 도이하라 겐지 도조 히데키 마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이타가키 세이시로 히로타 고키
복역수
가야 오키노리 고이소 구니아키 기도 고이치 도고 시게노리 미나미 지로
사토 겐료 스즈키 데이이치 시라토리 도시오 시마다 시게타로 시게미쓰 마모루
아라키 사다오 오시마 히로시 오카 다카즈미 우메즈 요시지로 하시모토 긴고로
하타 슌로쿠 호시노 나오키 히라누마 기이치로
피의자[1]
히로히토 천황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 고노에 후미마로 코다마 요시오 고이즈미 치카히코
구즈 요시히사 기시 노부스케 나가노 오사미 니시오 도시조 다니 마사유키
다다 하야오 다카하시 산키치 데라시마 겐 도쿠토미 소호 마사키 진자부로
마츠오카 요스케 사사카와 료이치 사토미 하지메 쇼리키 마츠타로 스마 야키치로
아모 에이지 아베 겐키 아베 노부유키 아오키 카즈오 아카기 고헤이
안도 기사부로 오카와 슈메이 오타니 게이지로 이사하라 히로이치로 이와무라 미치요
하시다 구니히코 혼다 구마타로 혼조 시게루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B · C급 전범
일반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피의자 약 5,700여 명[2]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범죄 사건
학살 사건 난징 대학살(100인 참수 경쟁) | 마닐라 대학살 | 밀리환초 학살 | 바탄 학살 | 보르네오 학살 | 중국 북부 학살 | 치치지마 식인 사건 | 파푸아뉴기니 학살 | 팔라완 학살 | 베허호 사건 | 아라시함 포로 학살
생체 실험 731 부대 | 규슈대학 생체해부
전시 강간 일본군 위안부
강제 노역 정신대 | 죽음의 철도 | 하시마
정치적 추종 세력 및 사상
순국7사묘 · 신사본청 · 야스쿠니 신사 · 팔굉일우 · 일본의 우경화(넷 우익) · 일본의 역사왜곡 · 일본의 피해자 행세 · 일본회의 · 국가신토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 애국 비즈니스
가나다 순 배열
[1] 불기소 피의자, 재판 전 사망자 포함. 공식적으로는 이들은 무죄이다.
[2] 개별 사건의 중복 피고인까지 합계되었으며, 이 밖에 추축국 피점령지 내 부역자, 기소유예자가 포함된 수치이다.
}}}
}}}}}}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군의 장성급 장교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b0313f> 대장
大將
파일:일본 제국 육군기.svg
육군
陸軍
시라카와 요시노리 | 우가키 가즈시게 | 미나미 지로 | 아베 노부유키 | 야마나시 한조 | 도조 히데키 | 고이소 구니아키 | 도이하라 겐지 | 마쓰이 이와네 | 야마시타 도모유키 | 이타가키 세이시로 | 이마무라 히토시 | 기무라 헤이타로 |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 오카무라 야스지 |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 다치바나 요시오 | 아나미 고레치카 | 가와베 마사카즈 |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 |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
파일:일본 제국 해군기.svg
해군
海軍
야마모토 곤노효에 | 스즈키 간타로 | 사이토 마코토 | 나구모 주이치 | 요나이 미쓰마사 | 이노우에 시게요시 | 오카다 게이스케 | 시마다 시게타로 | 이토 세이이치
중장
中將
파일:일본 제국 육군기.svg
육군
陸軍
창덕궁 이왕 은 | 홍사익 | 무토 아키라 | 이시이 시로 | 스즈키 데이이치 | 도미나가 교지 | 무타구치 렌야 | 이시와라 간지 | 사토 겐료 | 사토 고토쿠 | 미야자키 시게사부로 | 히구치 기이치로 | 이병무 | 조동윤 | 혼마 마사하루 | 오시마 히로시
파일:일본 제국 해군기.svg
해군
海軍
야마구치 다몬 | 오자와 지사부로 | 우가키 마토메 | 모리 쿠니조 | 기무라 마사토미
소장
少將
파일:일본 제국 육군기.svg
육군
陸軍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 | 이희두 | 조성근 | 왕유식 | 김응선 | 어담 | 이치키 기요나오
파일:일본 제국 해군기.svg
해군
海軍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윗 첨자 : 사후 추서
※ 둘러보기 | 파일:일본 황실.svg 일본군 원수
}}}}}}}}}
제9대 조선총독
파일:아베 노부유키 총리.jpg
<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출생 1875년 11월 24일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사망 1953년 9월 7일 (향년 77세)
도쿄도
재임기간 제36대 내각총리대신
1939년 8월 30일 ~ 1940년 1월 16일
제9대 조선총독
1944년 7월 22일 ~ 1945년 9월 12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배우자 아베 미츠
자녀 아베 노부히로
학력 도쿄도립 히비야 고등학교 (졸업)
육군대학교 (19기)
정당
약력 제16대 육군성 국무국장
제13대 육군차관[1]
무임소대신 (하마구치 내각)
제20대 제4사단
제10대 대만군 사령관
제59대 외무대신
제36대 내각총리대신
귀족원 의원
초대 익찬정치회 총재[2]
제9대 조선총독
군사 경력
임관 일본육군사관학교 (9기)
복무 일본 제국 육군
1898년 ~ 1936년
최종 계급 대장
참전 러일전쟁
러시아 내전
}}}}}}}}}
1. 개요2. 생애3. 여담
3.1.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4.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정치인이자 군인. 제36대 내각총리대신이자 마지막 조선 총독. 일본 제국의 패전과 조선의 해방까지 보게 된 총독이다.[3]

1930년대 말 총리를 지냈다가 물러난 육군대장 출신으로, 1944년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사임한 고이소 구니아키의 후임으로 9대이자 마지막 조선총독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하고 조선이 광복하면서 그 해 9월 미군서울 진주 때 미 육군 중장 존 하지 장군에게 항복을 공식 인정하여 미군정청 앞으로 조선의 행정권을 위임하고 총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귀국해서 1953년 9월 7일에 사망했다.

2. 생애

아베 노부유키는 1875년 11월 24일,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육군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 계엄사령부 참모장으로 부임했으며 이후 육군차관과 육군대신 사무대리를 거쳐[4] 사단장으로 부임하였고 1933년 육군대장으로 승진하였다가 1936년 군부에서 전역신고를 하였다.
파일:external/www.kantei.go.jp/souri36.jpg
36대 총리 취임 후
1939년 히라누마 기이치로 전 총리의 후임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의회주의를 표방하던 입헌민정당/입헌정우회 양당의 협력을 구하여 전쟁으로 치닫는 정세에 대응하고자 했으나, 군국주의적 분위기로 치닫던 의회가 도리어 총리에게 내각불신임결의안을 던져버려서 물러나야했다.

총리 사임 직후, 중국으로 파견되어 일화신관계조정요강의 체결에 참여했고, 1940년까지 왕징웨이 정권 대사를 지내다가 귀국, 1942년 귀족원 의원으로 칙임되었고 명예직인 익찬정치회(翼賛政治会) 회장에 선출된다. 그러다가 1944년 전임 조선총독인 고이소 구니아키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9대이자 마지막 최후의 조선총독으로 부임하였다.

재임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았던 데다가 마지막 조선 총독이긴 하였지만, 전임자 못지않은 온갖 강경책와 폭정책으로 조선에서 온갖 물자와 인력의 수탈 및 징집을 무자비하게 강행했으며 국민의용대를 제창하여 조선의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색출에 총력을 벌이기도 하여 마지막까지 식민통치의 철권을 휘두르고 다녔다.

1945년 8월 소련의 침공으로 한반도 북부 일부(함경도 청진 등)를 실질적으로 상실하였고 이후 여운형 등과 협의하여 건국준비 위원회를 완전히 설립하도록 하였지만, 군권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8월 15일 천황의 항복 선언과 함께 한반도는 해방되었다. 그러나 총독부가 곧바로 해산되지는 않았다. 한반도의 북반부는 소련군에 의해서 점령과 일본군의 무장해제가 진행되었지만 남반부에서는 조선 치안 유지를 위해 미군이 도착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조선총독부 및 산하 행정기관을 유지했다. 패전 이후에도 총독 직위를 유지하고 있던 아베는 9월 미군서울에 진주하게 되자 최후의 수단으로 할복을 시도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9월 9일 결국 존 리드 하지 중장이 주도하였던 항복 조인식장에 나와서 항복 문서에 조인하게 되었다.

여기서 아베 노부유키는 점령군 사령관이던 존 리드 하지 중장에게 온갖 감언이설과 모략으로 조선 인민의 봉건적인 노예근성과 무지함을 역설하였고, 지배 통치의 간편함을 위한 부정적 조사 자료를 넘기기도 하였다. 이런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하지 중장은 조선에 "미군에 절대 복종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독립은 늦어질 것이며, 이를 어기고 경거망동 할 시에는 엄히 처벌을 하겠다"는 무서운 경고성 포고문까지 발표하기도 한다.
1945년 9월 9일, 미군에 항복하는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

이후 총독직을 사임하고 초대 미군정청장인 미 육군소장 아널드 장군에게 조선의 행정권 등을 모두 이양하고는 일본으로 철수한다. 패전국 총독으로서 100만 명의 일본인을 무사히 귀국시킬 책임이 있었던 아베는,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기 혼자 가족만 데리고 도망치다가 마침 폭풍을 맞아 부산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걸려 버린다. 이 해프닝으로 조선 거류 일본인들의 반감까지 샀다.

그는 철수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조선을 쥐어짰다. 철수하던 총독부 관리들과 한국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비용을 마련하려고 엄청난 수의 조선은행권을 찍어낸 것이다. 이들이 인쇄한 구권 화폐는 해방후 인플레이션을 초래했고, 당시 돈을 가진 조선인들은 막대한 손해를 봤다.

이 자를 마지막으로 조선총독부는 마침내 공식 해산되었다.[5]

일본으로 귀국한 이후 1953년 9월 7일에 사망하였다.

3. 여담

  • 한때 일본 전 총리 아베 신조가 아베 노부유키의 손자라는 설이 인터넷에 나돌았지만 아베 노부유키와 아베 신조는 완전 남남이다. 성이 발음은 똑같이 아베여도 한자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도 정(鄭)씨와 정(丁)씨는 완전히 남남인 것과 같다. 아베 노부유키는 阿部信行이고 아베 신조는 安倍晋三로 성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전자는 아부, 후자는 안배. 아베 신조의 친할아버지는 야마구치현 소속 중의원을 지낸 아베 간(安倍 寛, 1895-1946)이다.[6] 아베의 연이은 혐한 행보로 국민적 감정이 안 좋아진 상태에서 그저 성의 발음이 똑같다고 확인도 하지 않고 잘못된 소문이 퍼졌던 듯하다. 한편 아베 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일본의 56~57대 총리를 역임하면서 '55년 체제'라 불리는 자민당의 장기 집권 구도를 만들어냈다. 기시 노부스케는 전범 용의로 구속 수사를 받다가 재판이 끝난 뒤에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기시 노부스케의 동생이자 아베 신조의 작은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는 61~63대 총리를 역임하고 197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외무대신을 지냈다.
  • 일본 극우 언론인 구로다 가쓰히로는 1990년대에 한국에 출판한 <좋은 일본인 나쁜 일본인>에서 아베 총독이 한국에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느니 유감이라는 사과 방송을 하려다가 여러 사정으로 못 하고 나갔다느니 같은 후빨을 하기도 했다. 위에 나오듯이 그런 말을 했을 인간이 아니다.
  • 무사히 귀국한 아베 노부유키와 달리 마지막 대만총독인 안도 리키치는 아베 총독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아베 노부유키가 별다른 처벌을 받지는 않은 반면, 안도 리키치는 국민혁명군에 항복한 다음 곧바로 체포되어 전범 혐의로 중국으로 압송되 상하이에서 수감된 채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3.1.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日本は敗れたが、朝鮮が勝利したわけではない。大言壮語ハゴンデ朝鮮が第我に返ってきらびやかで偉大な昔の朝鮮の栄光を取り戻すには、100年という歳月がはるかにかかるだろう。私たち日本は、朝鮮国民に銃と大砲よりも恐ろしいの植民地教育を植えて置いた。結局、朝鮮人たちはお互いに仲違いし、奴隷的な生活を送るのだ。見よ!実に朝鮮は偉大した絢爛だったが、現在の朝鮮は結局日本の植民地教育の奴隷に転落した。そして、私の阿部は再度もどって来る
일본은 무너졌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여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를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아라! 실로 옛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으며 찬영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들의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인터넷에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또는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소름끼치는 언행' 등의 이름으로 아베 노부유키가 위와 같은 말을 했다는 루머가 퍼져 있으나 아베 노부유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일단 위의 말을 인용한 논문이나 전문 서적도 없고 인터넷에 나돌고 있는 일본어 원문도 사실상 한국어를 바탕으로 한 기계 번역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장담하건대’가 ‘大言壮語ハゴンデ’로 되어 있는데 ‘ハゴンデ’는 한국어 ‘하건대’를 발음 그대로 가타카나로 표기한 것이기 때문. 조금만 생각해봐도 조선총독이라는 사람이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이라거나 '실로 옛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으며 찬영했다'는 식으로 조선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할 이유가 전혀 없다. 위의 내용은 <1910년, 그들이 왔다>라는 책의 내용에서 일부 내용을 첨가해 인터넷에 퍼진 말로 알려졌으나 # 그마저도 2년 전 2008년 5월 11일 디시인사이드 역사 갤러리에 일부 내용만 빠져있을 뿐 글 내용이 완전히 똑같이 먼저 올라와 있어서 맞는 정보가 아니다.# 혹은 한일회담 당시 일본 대표로 보내졌던 구보타 간이치로의 "일본한국에 은혜를 베풀었다", "만일 일본이 당시에(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한국을 정복 안했더라면 한국은 타국에 의하여 정복[7]당했을 것이며 그 때 한국은 더욱 비참한 입장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등의 이른바 구보타(久保田) 망언이 와전된 것일 수도 있다. 결론은 아베 노부유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누군가가 올린 괴담이 사실인 것마냥 인터넷에 유포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대중매체에서

  • 1961년 개봉영화 <8.15 전야>에서는 배우 최삼이 연기했다.
  • 1982년작 KBS1 8.15 특집드라마 <그 여름의 이틀>에서는 배우 박병호가 연기했다.
  •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는 심우창이 분했다.
  • 2006년작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에서는 일제강점기 후반부 조선총독으로 등장하는데, 배우 임병기가 연기했다.[8] 21회에서 일제가 패망하고 총독부에서 철수 등의 대책을 논의한다.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에게는 정말 무서운 것은 군경의 총칼이 가진 힘이 아니라 성난 군중의 분노라는 말을 하고 마사키 남작에게는 "친일한 조선인들은 우리에게 충성했다지만 제 민족을 배신한 배신자들이고 지조 없으니 동정할 가치가 없다"는 말을 한다.

[1] 차관은 2001년 중앙성청 개편 때 부대신으로 개칭된다. 흔히 차관으로 해석되는 대신정무관이나 사무차관은 한국식으로는 차관보에 해당한다.[2] 전시 일본의 중의원-귀족원 합동 정치교섭단체. 일명 익정회라고 부른다.[3] 조선총독부는 천황의 직할 기관으로, 의전서열상 총리 바로 다음이었다. 반면 대만총독은 대략 내무대신에 상응하는 지위였다.[4] 이 시절 잠깐 무임소대신 직을 맡았다.[5] 1945년 9월 미군서울에 진주하였을 때까지 만 35년, 1905년 을사조약으로 설치되었던 전신기관인 한국통감부 기간까지 포함하면 40년 동안 존속했다.[6] 아베 간의 장남이 아베 신타로(安倍 晋太郎)이고 아베 신타로의 차남이 아베 신조다. 집안의 먼 조상은 아베노 무네토. 정작 아베 간-신타로 부자는 아베 신조와는 정반대로 반전 평화주의자로 유명했다. 아베 신조가 친가 쪽과 반대 성향이었던 건 외가였던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7] 구보타는 정복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며 대신 '일본이 한국에 갔다'라고 말하였다고 했다.[8] 비슷한 시기를 다룬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박헌영을 연기했던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