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0 14:09:05

무쓰 무네미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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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경 (1869년~1879년) · 외무사무총재 (18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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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 노부요시
2대
이와쿠라 도모미
3대
소에지마 다네오미
4대
데라시마 무네노리
5대
이노우에 가오루
전전 외무대신 (1885년~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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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이노우에 가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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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모토 다케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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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쓰 무네미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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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마 시게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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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오쿠마 시게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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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 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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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라 주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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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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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3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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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무라 노부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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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라 마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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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노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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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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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대
가미카와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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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제10대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
陸奧宗光 | Mutsu Munemitsu
파일:Mutsu_Munemitsu.jpg
<colbgcolor=#003366><colcolor=#FFF> 출생 1844년 8월 20일
기이국 나구사군
(現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사망 1897년 8월 24일 (향년 53세)
도쿄부 기타도시마군 다키노가와촌
(現 도쿄도 기타구)
재임기간 제4대 효고현지사
1869년 7월 28일 ~ 1869년 8월 24일
제3대 가나가와현지사
1871년 10월 5일 ~ 1872년 8월 17일
제6대 농상무대신
1890년 5월 17일 ~ 1892년 3월 14일
제10대 외무대신
1892년 8월 8일 ~ 1896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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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66><colcolor=#FFF> 통칭 요노스케(陽之助)
다테 고지로(伊達小次郎)
아명 우시마로(牛麿)
부모 부 다테 무네히로
모 마사코
배우자 전처 렌코 (? ~ 1872년)
후처 료코 (1872년 ~ 1897년)
자녀 장남 히로키치
차남 후루카와 준키치
장녀 기요코
차녀 후유코
학력 고베 해군조련소 (해체)[1]
작위 백작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지역구 舊 와카야마 제1구
의원 선수 1 (중)
의원 대수 1
위계 정2위(正二位)
약력 해원대 대원
외국사무국 어용계
제4대 효고현지사
제3대 가나가와현지사
지조개정국장
주미일본공사 겸 주멕시코일본공사
제6대 농상무대신
초대 중의원 의원
원로원 의관
제10대 외무대신
}}}}}}}}} ||

1. 개요2. 여담3.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기슈번(지금의 와카야마현)출신으로, 사카모토 료마의 해원대(海援隊)에 참가하여 행동을 함께 했다. 메이지 시대엔 이토 히로부미 등과 함께 내각의 중추로서 활동하였다. 불평등 조약의 개정에 힘을 쏟는 한편, 청일전쟁을 외무장관으로서 주도하였다. 삼국간섭이 터지자 만약 지금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게 개겼다간 요동은 고사하고 대만이고 뭐고 청일전쟁의 전리품들이 다 날아갈 수 있으니 군말없이 수용하여 분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일본에 의한 국권 피탈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병사한 인물이다보니 이토 히로부미에 비해 한국에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실제 일본에서 만든 역사물에서는 조선침략에 대해서 이토 히로부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다. 드라마 '언덕위의 구름'에선 당시 수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를 두려워하여 조선파병을 미루려하자, 그를 부추겨 조선파병을 하도록 한 인물로 등장하고, 만화 '왕도의 개'에서는 아예 청나라, 조선침략의 최종흑막으로 등장한다.(이토 히로부미는 1권에서 로쿠메이칸 외교로 까이는 쩌리.)

2. 여담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살해에 무쓰 무네미쓰와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 3명이 배후에서 개입했다는 증거가 공개되었다. 기사 링크 책 링크

또한, 일본 역사 월간지 역사독본(歴史読本)에 위 내용을 뒷받침하는 글이 실렸던 적이 있는데, 사카모토 료마의 스승이자 막부 해군경이기도 했던 카츠 카이슈(勝海舟)가 쓴 편지에 무쓰 무네미쓰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실려있다는 내용이다.[2]

원래 성은 다테(伊達)로, '무쓰'는 일본 동북 지방(정확히는 아오모리 현 전체와 이와테 현 북부)을 가리키는 말. 만화수라의 각》에서는 사카모토 료마가 무쓰 이즈미에 관해 해준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아 성을 무쓰로 고쳤다고 각색하였다. 시바 료타로소설 《료마가 간다》에서는 '다테'라는 성을 쓰면 자신의 출신이 드러나기 때문에 자신의 출신을 숨기기 위해 성을 고쳤다고 묘사되어 있다. 다테 가문의 분가인 스루가 다테 가문의 분가 기슈 다테 가문 출신으로, 다테 마사무네 등 다테 종가와는 12세기에 갈라진 아주 먼 친척이라 사실상 남남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의 부인인 무쓰 료코는 미인으로 유명했는데 남편과 함께 사교계에서 활약하면서 민간 외교관 노릇을 했다.

3. 매체에서

만화 《은혼》의 등장인물 무츠의 원형이기도 하다. 속된 말로 일본 근현대사에서 유일하게 부끄럼 없이 자랑스러워 할수 있다고 일본인 스스로는 생각하는 시대를 이끈 인물인데다 그 사카모토 료마의 부하였다는 이유로 일본 내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 왕도의 개처럼 본질적인 문제부터 비판하고 들어가는 작품이 아니면 언제나 나름 괜찮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파일:external/www.kjclub.com/oudou02.jpg
허나 잊지 마라!
이 무쓰 한 사람을 벤다 한들, 이제 와서 일본이 갈 길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코무라[3]가! 하라가![4]
내가 가르친 이들이 계속해서 뒤를 이을 것이다! - 야스히코 요시카즈왕도의 개에서
야스히코 요시카즈왕도의 개에서는 꽤 부정적으로 나온다. 김옥균의 암살을 유도하여 청나라와의 전쟁 여론을 이끌어내고, 동학농민운동에 무기를 제공하고 청나라를 유인해 전쟁을 벌인다. 이때, 덴노를 무시하고 청일전쟁 이끌고 이모저모 활약하다가 메이지 덴노에게 "이게 짐의 전쟁이라고? 그대들의 전쟁이 아니던가?"라는 쓴소리(이것도 실화)를 듣는다. 이 만화에 나온 무쓰와 덴노의 갈등이라든지 여러 모로 나온게 실제 역사와 일치하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이르면 병으로 죽어가는데[5] 강한 일본을 만든다고 자부하지만 주인공 카노 슈스케는 너 같은 놈 때문에 우리 일본이 전쟁으로 미쳐돌아간다며[6] 그를 죽이려 하다가 되려 애증어린 친구인 카자마(그는 반대로 무츠를 따르고 있었기에 칼들고 싸우다가)가 죽고 만다.

이를 본 무쓰는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나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머지않아 죽는데 왜 앞길 쟁쟁한 젊은이를 죽였나..."라고 하는데 온갖 전쟁을 조종하고 기세좋던 그가 병으로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본 카노는 물러선다. 그리고 역사대로 얼마 안 가 병사한다.

KBS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배우 강태기[7]가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온건개화파의 거두였던 김홍집과 1인 2역을 맡았다.

NHK 드라마 료마전에서는 주인공 사카모토 료마 옆에서 돕는 훈훈한 청년으로 나온다. 작품 내내 이국(異國, 즉 다른 나라)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 바꿔야한다고 하는 료마의 말에 찬성하면서 그의 부하로서 열일한다.

[1] 이케다야 사건의 여파로 해체되었다. 사건 당시 존왕지사 측에 도사 번 출신 교육생이었던 모치즈키 가메야타가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여담으로 무쓰는 이곳에서 사카모토 료마를 처음 만났다.[2] 아이러니하게도 무쓰 무네미쓰는 사카모토 료마의 후배이자 부하였고, 카츠 카이슈는 사마모토 료마의 스승이다.[3] 코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 1855~1911)[4] 하지만 역사에서는 하라 타카시는 문민통제와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인해 무쓰 무네미쓰와 달리 정 반대로 행동했다.[5] 실제 무츠 본인도 폐결핵으로 사망.[6] 이게 바로 카노의 그 유명한 대사인 "삼국간섭은 그대와 그대의 망국적 외교가 불러온 것, 김옥균을 사지로 내몰고, 청나라를 상대로 의롭지 못한 전쟁을 벌였으며 과다한 영토를 요구하고, 독립 보호라는 미명하에 조선을 지배하에 둠으로써 일본에 대한 증오가 양국 민중 마음 속에 뿌리내리게 했으니, 그대가 가는 길은 왕도를 벗어났으며,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라 이 말이오!"이다.[7] 용의 눈물에서 야은 길재를 맡은 배우이다. 태조 왕건에서는 환각에 시달리던 궁예가 마신 약을 지은 도인과 견훤이 유폐되어 있을 당시의 금산사의 주지승으로 등장했다. 또한 1983년작 TV 문학관 벙어리 삼룡이의 인간 말종 주인집 아들과 연극 에쿠우스에서 1대 주연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3년 3월 12일에 향년 63세로 사망한 채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