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12 15:13:07

박두원

<colbgcolor=#000><colcolor=#fff> 박두원
朴斗元
출생 1926년 7월 5일
경상북도 경주시
사망 1952년 8월 2일
강원도 속초시 인근 해상
복무 대한민국 공군
최종계급 대위
복무 기간 1950~1952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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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두원(朴斗元, 1926년 7월 5일 ~ 1952년 8월 2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윤길병은 1926년 7월 5일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출생하였다.
1934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조국을 위해 자원입대하여 재일학도의용군 제5진의 일원으로 1950년 10월 18일 부산에 도착했다. 이후 국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헌병대로 배속되었으나, 공군 조종사 부족 소식을 듣고 대구 공군본부를 직접 찾아가 조종사 지원을 요청했다.

1951년 4월 1일, 박두원은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하여 조종하사관(일등중사) 신분으로 기초 조종 교육을 받았다. 그해 10월 F-51D 전투기 조종 훈련을 수료한 후 1952년 2월 1일 준위로 임관,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 강릉전진부대에 배속되어 2월 3일 첫 전투 출격을 수행했다. 같은 해 3월 공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박두원은 F-51D 전투기를 조종하며 적 후방 폭격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1952년 3월~4월 진행된 황해북도 송림제철소 폭격작전은 대한민국 공군이 처음으로 수행한 적 산업시설에 대한 전략 폭격 작전으로, 박두원은 80회 이상의 출격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1952년 8월 2일, 89번째 출격에서 박두원은 강원도 간성 일대의 적 보급품 집적소를 공격하기 위해 출격했다. 편대는 전봉희 소령을 편대장으로 한 F-51D 전투기 4대로 구성되었다. 강릉전진기지에서 이륙해 경포대, 주문진을 지나 속초 상공에서 갑작스러운 기체 폭발로 인해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으나, 동해바다에 추락한 후 주변 민간 어선들에 의해 구조되었으나 이미 전사한 상태였다.

박두원은 6·25전쟁에서 자원한 재일학도의용군 중 유일한 공군 조종사이자, 대한민국 공군 F-51D 전투기 조종사로서 전사한 17명 가운데 가장 많은 전투 출격 기록을 보유한 조종사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대위)과 을지무공훈장(1952년)을 추서하였다. 그의 유해는 195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또한 2024년, 대한민국 국가보훈부는 그를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을지무공훈장(1952년 10월 24일, 사후 추서)
국가보훈부 이달의 6.25전쟁영웅(2024년 8월)

4. 참고 자료

『공군사』, 공군본부
『호국의 별』, 국방부(1979)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6.25 전쟁영웅 박두원 공군 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