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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박세영(朴世英) |
생몰 | 1910년 11월 11일 ~ 1943년 12월 28일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 양림리 |
사망지 | 전라남도 광주군 |
추서 | 간극흔징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세영은 1910년 11월 11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 양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8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하던 중 5학년생 이경채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고 학교 당국으로부터 퇴학당한 데 항거하면서 발발한 동맹휴교에 적극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당했다. 이후 그는 정동화·최규창·윤승현(尹昇鉉) 등과 함께 맹휴운동을 계속하기로 결의하고 광주 읍내에 맹휴 중앙본부를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7월 중순부터 8월초까지, 맹휴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학생 및 부형(父兄)의 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의 통고문을 작성해서 네 차례에 걸쳐 각 400여 통씩 등사하여 학생 및 부형과 전남 도내 각 공립보통학교장들에게 배포 또는 발송하였다.이로 인해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8년 10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보안법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동경(東京)에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조직에 관여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다 1932년 10월에 재차 피체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1935년 2월 27일 동경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지병으로 고생하다 1943년 12월 2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박세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 박나림이 박세영의 친손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