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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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박영규 | |||||
부친 박성빈 (모친 백남의) | |||||
박정희 (처 김호남 → 육영수) | 형 박상희 | ||||
장녀 박재옥 | 차녀 박근혜 | 3녀 박근령 | 독자 박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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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의 白南儀 | |
<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 1872년 9월 22일[1] |
경상도 인동도호부 약목면 (現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 |
사망 | 1949년 8월 12일 (향년 76세) |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現 경상북도 구미시) | |
본관 | 수원 백씨[2] |
부모 | 아버지 백낙춘, 어머니 고성 이씨 |
형제자매 | 오빠: 백남조 언니: 이름 미상[3] 남동생: 백남훈 |
배우자 | 박성빈 |
자녀 | 아들: 박동희, 박무희, 박상희, 박한희, 박정희 딸: 박귀희, 박재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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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한말의 인물.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박정희의 어머니이고, 손녀가 박재옥, 박근혜, 박근령, 박영옥[4], 손자가 박지만, 박재홍, 박준홍이 있다.2. 생애
1872년 9월 22일 경상도 인동도호부 약목면(현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에서 농민 백낙춘(白樂春)과 고성 이씨(固城李氏) 사이의 딸로 태어났다.[5]본관은 수원으로 산음 현감 백효연의 15대손이며 이천부사와 경상좌수사를 지낸 백수일의 6대손, 그리고 낙안 군수와 내금위장을 지낸 백동신의 현손녀이다.
1살 연상의 고령 박씨 박성빈과 결혼하였으며 이후 8남매를 낳았는데 첫 사내아이는 2살 때 잃었으며, 넷째 사내아이는 13살 때 잃었다. 살아남은 남매는 총 4남 2녀, 그 중에 막내가 바로 박정희다.
남편 박성빈은 구한말 말단 관직에 올라 효력부위[6]를 지내고 동학농민운동에도 참여했으나 실패하고 이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은 백남의가 맡았다. 46세에 박정희를 임신했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아들 박정희와 함께.
박정희의 수기 <나의 어린시절>에 의하면 구미보통학교 설립 후 처음 3년간은 4년제로 운영하면서 학무관들이 구미면 내의 가정을 방문해 가며 아이들의 취학을 유도했다 하며, 이때 그는 아들 박상희를 이 무렵 학교를 다니게 했다 한다. 참고로 5남 2녀 중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자녀는 박상희, 박정희 단 둘이었다.
1949년 8월 12일, 76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이때 박정희는 남로당 활동으로 수감되어 있을 때였는데 정부 이현란이 떠나고, 어머니마저 죽고, 자신은 감옥에 갇힌 뒤 풀려났으나 군대에서 파면,형의 사망등 최악의 상황이 연달아 겹친 시기였다. 그래서 이 무렵 박정희는 상당한 우울함을 넘어 폐인이 된 상태였다.
3. 기타
- 먼 일족 중 한 명이 국민의힘 백승주 의원이다.
[1] 음력 1872년 8월 20일[2] 산음공파 28세 남(南) 항렬.[3] 일선 김씨 농암(籠岩) 김주(金澍)의 후손 김시진(金時振)의 아들 김정수(金貞洙)와 결혼하여 슬하에 장남 김의규(金義奎)와 차남 김의상(金義相)을 두고 있다.[4]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5] 출처: 수원백씨 족보.[6] 効力副尉:정9품 무관의 품계, 오늘날의 육군 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