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6 12:31:15

백종원(1923)



1. 개요2. 생애3. 수훈4. 참고문헌

1. 개요

조총련의 정치인.

2. 생애

1923년 12월 14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하였다. 대부분의 조총련이 이남, 그것도 경상도 출신인데 이색적이게도 이북 출신이다. 이후 남만주로 이주하여 심양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으며 1941년 도일하여 가나자와의 구제 제4고등학교를 거쳐 교토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하였는데, 졸업은 1947년에 하였다. 해방 이후 재일본조선학생도맹 관서본부 부위원장을 거쳐 위원장을 맡는 등 재일 조선인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며, 이후 조련산업기술연구소 소원, 건설통신사 편집장을 거쳐 사장에 취임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공산당은 재일 조선인 청년들을 결집하기 위해 민족대책부 산하의 조국방위위원회를 조직하였는데, 백종원은 그 기관지의 책임자에 임명되었다.

총련 결성 이후 조선문제연구소 소원, 총련중앙학원 강사,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 학부장, 재일본조선과학자협회 회장 등 학술 분야에서 사업하였다. 1972년 4월, 북한의 교수학직을 수여받았다. 1973년 8월, 조선대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데리고 방북하여 처음으로 김일성을 만났다. # 이후로 주기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1977년 9월, 총련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는 한편 선전국장에 임명되면서 총련중앙에서 사업하였다.

이후 국제국장을 거쳐 1983년 6월, 13차 조총련 대회에서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국제국장 경력 때문에 한국에선 그가 대남공작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 1986년 재일본조선인체육련합회 회장에 임명, 1987년부터 북한 IOC 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였다. 1998년에 고문으로 물러났으며 IOC 부위원장에서도 물러났다. 1998년 8월 10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2000년 12월 5일, "일본군국주의의 형성과 흉악성,조선침략의 력사적죄악을 전면적으로 폭로함으로써 나라의 력사과학을 발전시키고 조국인민들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반일교양에 적극 이바지"한 공을 인정하여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2022년, 조총련 25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2023년에 100세를 맞이하면서 조총련에서 수차례 축하연을 열어서 기념하였다. 말년까지도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며 총 16권의 책을 냈는데 90세를 넘어서 낸 것이 9권이며 2023년 5월에 16번째 책을 출판했다. #

그러다가 2025년 2월 2일, 오전 10시 15분에 10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조선신보를 통해서 부고가 발표되었으며 부고는 "백종원동지는 한생동안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 김정은원수님께 충성을 다하여 주체적인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헌신적으로 투쟁한 총련의 명망높은 지도간부였다. (...) 백종원동지는 대원수님들의 교시와 김정은원수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총련조직내에 주체의 사상체계를 보다 철저히 세우는데 기여하였으며 총련의 조직사상건설과 민족교육사업, 체육사업에 온갖 정열을 다 바치였다. 백종원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진할줄 모르는 일욕심과 탐구심을 지니고 새세대 일군들과 동포들이 충성과 애족,단결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나가도록 하는 문필활동과 강연사업에 남다른 헌신성을 발휘하였다. (...) 백종원동지는 애석하게도 우리 곁을 떠났으나 그가 조국과 민족앞에 쌓은 업적은 주체적인 재일조선인운동의 력사와 더불어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에 길이 남아있을것이다."라고 칭송하였다. #

3. 수훈

  • 김일성훈장
  • 김일성 표창장.
  • 조국통일상(1998)
  • 국기훈장 1급 (5회)
  • 로력훈장 (2회)
  • 공화국창건기념훈장.

4. 참고문헌

  • 진희관. 1998. 「조총련연구」. 동국대학교 정치학과 박사학위 논문.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