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서에서는 러시아의 의결기구를 다룹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대 유적에 대한 내용은 두마툴잔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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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러시아
고대 그리스의 민회와 비슷한 고대 러시아 사람들의 의사 결정 기구였다. 마을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가장들이 모여 광장이나 시장터에서 함께 의논하곤 했다. 다수결 제도가 아니라 만장일치 제도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끝없이 토론을 벌였고,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할 때에는 결투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베체(Вече) 라고도 한다.[1]2. 중세와 근대 러시아의 국회 및 지방자치단체
루스 차르국 시대에 귀족의회인 보야르 두마(Боярская дума)가 있었다.러시아 제국 중기에는 지방자치단체인 시 두마(Городская дума)가 있었다.[2]
1905년,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 민중의 압박을 받자 10월 선언에서 국가두마 설치를 공언, 1906년 4월 개설해 1917년까지 운영된다. 이 불리긴 두마는 재산 수준을 기준으로 25세 이상의 남성에게 선거권을 지급하고 입헌군주제를 선언했으나, 차르에게 비상시 입법권이나 해산권이 있어 무늬만 입헌군주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설치 11년 후,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 이후, 두마 임시 위원회는 2월 임시정부로 전환되었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수립됨과 동시에 해산되었다.
3. 현대 러시아의 국회 및 지방의회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며 탄생한 이후 국가두마라는 이름이 1993년에 부활했다.러시아의 1급 행정구역 중 모스크바시, 모스크바주, 노브고로드주, 마가단주, 추코트카 자치구 등등 일부 지역의 지방의회도 두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하바롭스크주, 톰스크주 등의 의회는 입법두마(Законодательная дума)라고 한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