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30 12:10:53

보통기념(이상)



1. 개요2. 전문3. 해설

1. 개요

이상의 시. 1934년 월간매신 7월호에 발표되었다.

2. 전문

보통기념
이상

시가에 전화[1]가일어나기전
역시나는 '뉴턴'[2]이 가르치는 물리학에는 퍽무지하였다

나는 거리를 걸었고 점두에 평과 산을[3]보면은매일같이 물리학에 낙제하는 뇌수에피가묻은것처럼자그마하다

계집에 신용치않는나를 계집은 절대로 신용하려들지 않는다 [4]나의말이 계집에게 낙체운동[5]으로 영향되는일이없었다

계집은 늘내말을 눈으로들었다[6] 내말한마디가 계집의눈자위에 떨어져 본적이없다[7]

기어코 시가에는 전화가 일어났다 나는 오래 계집을 잊었다 내가 나를 버렸던까닭이었다

주제도 더러웠다 때끼인 손톱은 길었다
무위한일월을 피난소에서 이런일 저런일
'우리가에시' 재봉[8]에 골몰하였느니라[9]

종이로 만든 푸른솔잎가지에 또한 종이로 만든흰학동체한개가 서있다 쓸쓸하다[10]

화로가햇볏같이 밝은데는 열대의 봄처럼 부드럽다 그한구석에서 나는지구의 공전일주[11]를 기념할줄을 다알았더라

3. 해설

이 작품의 텍스트는 8연으로 구분되어 있다. 시적 화자인 '나'를 중심으로 그 상대역에 해당하는 여성을 '계집'이라는 말로 지칭한다. 텍스트 전체를 통해 두 남녀의 불화 상태를 복잡한 역학 관계로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연과 둘째 연은 '나'와 '계집' 사이의 관계를 간단히 예시한다. 여기에서 근거로 내세워진 것이 뉴턴의 만유인력이다.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물체 사이에는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하지만 시적 화자인 '나'는 '계집'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형태의 끌림도 느끼지 못한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무지'했다는 것이 이를 의미한다.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사과가 쌓여 있는 것을 뷰고 이 같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고심한다.

셋째 연과 넷째 연은 '나'와 '계집' 사이의 불화 관계를 진술한다. 둘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불신이 커지고, 상대에 대한 사랑이나 상대를 존중하는 뜻이 모두 사라진다. 그 결과 둘 사이에 생겨난 파탄의 과정은 다섯째 연에서 "전화가 일어났다"라는 말로 우회적으로 서술된다. 여섯째 연에서는 다시 돌아온 '계집'의 추레한 모습과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며 거짓으로 꾸머 대는 모습을 묘사한다.

결말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계집'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관계가 일상적인 관계로 회복되면서 일 년의 세월을 보애게 되었음을 술회한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실체가 없는 삶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이 시에서 그려 내고 있는 불화 속 남녀 관계는 소설 『봉별기』를 비롯한 여러 소설을 통해 서사화되기도 한다.
[1] 시정에서 일어나는 싸움. 여기에서는 '나'와 '계집'의 개인적인 불화와 싸움을 암시한다.[2] 아이작 뉴턴(Issac Newton, 1642~1727).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했다.[3] 평과 산. 가게에 산처럼 쌓인 사과를 말한다.[4] '나'와 '계집'(여기에서는 나의 아내) 사이의 불화 또는 신뢰의 상실을 말한다.[5] 낙체운동. 중력에 의해 물체가 땅에 떨어지는 운동을 말한다.[6] 다소곳이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빤히 쳐다보면서 하는 말에 응대한다는 뜻이다.[7] 한 번도 제대로 내 말을 들은 체를 하지 않는다. 눈도 껌벅거리지 않는다는 뜻이다.[8] '우리가에시 재봉'은 일본어로, 변색되거나 낡은 옷의 겉감을 뒤집어 속부분이 겉으로 드러나도록 하여 다시 옷을 깁는 일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저질러진 일을 감추기 위해 말을 돌려대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9] '주제도~골몰하였느니라'까지는 모두 '계집'이 '나'를 떠난 후의 피폐한 상황을 묘사한 대목이다.[10] 실체와는 거리가 있는 꾸며낸 모습이나 사실을 보고 스스로 비애감을 느끼고 있다.[11] 일년의 기간이 경과되었음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