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배경
울부짖는 천둥이자 위대한 폭풍, 발히르, 파멸, 천 번 찔린 곰, 견디는 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전통을 따르는 대부분의 부족에 볼리베어로 알려져 있다. 파괴와 힘, 폭풍 그 자체인 볼리베어는 프렐요드의 불가항력적인 힘과 분노를 상징한다. 필멸자들이 나타나기 전, 다른 반신과 함께 '보리야르드'라는 땅을 만든 것도 바로 그였다. 발톱을 휘둘러 다섯 협만을 만들어냈다거나, 포악한 마그마뱀 론드와 전투를 벌이며 형성된 수많은 계곡과 골짜기의 전설은 여전히 전해진다. 마침내 볼리베어가 승리했을 때, 론드의 피는 프렐요드 최초의 강을 이루었고 거대한 시체는 뱀허리산맥이 되었다. 최초의 부족이 등장했을 때 야생의 마법이 만연했고, 생존을 위해 볼리베어의 막강한 힘이 필요했던 인간들은 그를 경외했다.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자, 볼리베어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섰다. 몸에는 대장간의 반신이자 자신의 형, 오른이 만들어 준 룬 갑옷을 입고 있었다. 당시에만 해도 형제의 우애는 돈독했다. 전투에 대한 갈망이 강하지 않던 오른조차도 동생 볼리베어와 함께 싸웠다. 볼리베어는 힘겹게 쟁취한 승리를 만끽했고, 점점 늘어나는 피의 제물을 통해 힘은 더욱 강력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형제는 각자의 목표에 집중하며 멀어졌지만, 완전히 갈라서지는 않았다. 새로운 이념이 옛 신념을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세 자매가 나타나 프렐요드를 지배하고 질서를 확립하려고 하자, 반신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뜻을 모으지 못했다. 애니비아 같은 소수의 반신들은 세 자매와 협력하려고 했지만, 볼리베어와 강철의 멧돼지는 폭력만을 원했다. 언젠가는 죽게 될 나약한 존재라며 그들을 무시하는 반신들도 있었다. 볼리베어는 가장 포악하고 야만적인 추종자, 어사인족과 함께 세 자매를 무찌르기로 했다. 그 전에 오른에게 어사인 전사들에게 줄 무기 제작을 부탁했다. 하지만 흉포한 어사인족의 방식을 용인할 수 없었던 오른은 볼리베어의 청을 거절했다. 결국 두 반신은 치열하게 싸웠고, 볼리베어는 형제를 저주하며 룬 문자가 새겨진 갑옷을 벗어 던졌다. 단지 이빨과 발톱, 순수한 힘과 천둥만 남게 된 볼리베어는 약해지기는커녕 진정한 힘이 분출되는 것을 느꼈다. 전에 없던 분노를 품게 된 볼리베어는 반신들의 힘을 빼앗으려고 하던 자매 중 하나와 맞붙었다. 적군이 보는 앞에서 볼리베어는 자매를 쓰러트리고 눈을 멀게 했지만, 그녀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는 없었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볼리베어는 힘겹게 싸웠지만, 부족들은 점점 세 자매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고대의 전통은 대부분 잊혔다. 부족들은 자연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돌벽을 쌓아 숨었고 논밭을 일구었다. 사냥보다는 가축을 돌보기를 원했다. 거대한 강들이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도록 쌓아 놓은 둑은 볼리베어를 분노케 했다. 이것은 자기가 원하던 프렐요드의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 볼리베어는 부족들이 야생의 혼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인간들은 유약해지고 순종적으로 변했으며, 옛 전통과 고대의 신들을 더는 숭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볼리베어의 가슴은 분노와 투지로 차올랐다. 그리고 문명을 흔적도 없이 파괴하고, 거칠었던 프렐요드의 옛 모습을 되찾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은 다시 강해질 것이며, 모두가 자신을 숭배하고 두려워할 터였다. 볼리베어의 포효가 북방의 평원과 산맥에 울려 퍼지자, 많은 프렐요드인들이 응답했다. 그리고 서서히 고대의 전통이 되살아났고, 추종자가 늘어나면서 볼리베어의 힘도 강해졌다. 앞으로 다가올 피의 심판을 위해 볼리베어는 멈추지 않는다. |
2. 폭풍을 부르는 자
"발히르!" 잠들어 있던 곰의 신은 움찔하기만 할 뿐 눈은 뜨지 않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불리지 않은 옛 이름이었다. 아마 꿈이거나 과거로부터 들려온 메아리가 분명했다. 곰의 신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깊은 눈 속에 머리를 파묻은 다음, 길고 긴 잠을 청했다. "발히르, 당신의 이름과 이 피로 도움을 청합니다!" 반신의 눈이 떠졌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또렷하고 가깝게 들렸다. 거대한 곰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지축이 흔들리고 몸을 덮고 있던 눈은 눈사태가 되어 쏟아졌다.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털과 머리에 묻은 눈을 흔들어 털어 냈다. 공기 중에 피의 제물 냄새가 났다. 곰의 신은 전율을 느꼈다. 어딘가에서 돌로 그의 룬을 완성하고 제물을 바친 듯했다. 자신을 숭배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그는 네 다리에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발히르! 당신의 분노로 저희에게 힘을 보태 주십시오! 모든 죽음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전투와 학살, 복종을 약속하는 그 말에 발히르의 심장이 땅을 울리는 군악대의 북소리와 함께 뛰었다. 발을 구르는 소리, 칼날이 맞부딪치는 굉음, 죽어 가는 자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는 발히르의 육신을 부르고 있었다. 볼리베어는 뒷다리로 서서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 소리는 동토 전역에 퍼졌고, 프렐요드의 모든 생명의 영혼을 울렸다. 해가 뜨지 않는 아득히 먼 어느 곳에서 정령 주술사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얼굴을 감싸 쥔 손에는 거대한 발톱이 나 있었다. 유빙이 떠다니는 바다를 건너자 서리송곳니 무리가 고개를 젖히고 반신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멀리 떨어진 또 다른 곳에서는 부족민들이 모닥불 주위로 둘러앉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모두 입을 다물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고,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살육이 시작되었다. 볼리베어는 네 발로 서서 앞으로 달려갔다. 거대한 발톱이 얼어붙은 땅을 갈기갈기 찢었고, 눈 덮인 바위들과 나무들은 사방으로 날아갔다. 속도를 올리자 뻣뻣한 털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멈춰서 냄새를 맡았다.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분노의 먹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물들였다. "발히르!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죽고 죽입니다!" 땅이 꺼질 듯한 충격과 함께 곰의 신이 등장했다. 높이 솟은 얼음덩어리 위에 우뚝 선 그의 몸에서는 번개가 일었다. 볼리베어는 전장을 둘러보았다. 피로 흠뻑 젖은 땅 위에서 두 군대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죽거나 죽어 가는 자들은 눈밭 위에 널브러졌다. 두 세력의 병력은 수적으로 크게 차이가 났다. 열세에 있는 쪽의 패배가 자명해 보였다. 볼리베어는 코웃음을 쳤다. 숫자가 많은 쪽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들은 검은 갑옷을 입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싸웠다. 볼리베어는 분노했다. 그들은 프렐요드 출신이 아니었다. 눈이 사라져 버린 땅에서 온 나약한 인간들이었다. 곰의 신이 이빨을 드러내자 번개가 전장 한가운데를 때렸다. 귀가 먹을 듯한 굉음과 함께 양측 병사들은 새카맣게 타서 날아갔다. "발히르! 발히르!" 볼리베어는 분노로 붉게 변한 눈을 돌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인간을 바라봤다. 털가죽 옷을 입은 여자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더니, 양손에 든 도끼 두 자루를 들어 보이며 경의를 표했다. 얼굴에는 사나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병사들 대부분이 싸움을 멈추고 반신을 경외하며 바라봤지만, 볼리베어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여자의 심장이 폭풍을 불러냈다. "발히르!" 여자가 붉게 물든 도끼를 치켜올리며 외쳤다. "이들의 죽음으로 당신을 경배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의를 표한 다음, 그녀는 힘을 되찾은 듯이 적들과의 전투를 계속했다. 볼리베어는 그 여자와 맞서고 있는 외지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적이었다. 사나운 포효와 함께, 그는 돌진했다. "볼 쿠 페라!"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크게 볼리베어가 울부짖었다. 그는 마치 살아 있는 공성추처럼 적들을 날려 버렸다.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분노한 곰의 신 앞에서 적군은 전투 의지를 상실했고, 결국 도망치기 시작했다. 볼리베어의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힌 프렐요드인들은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눈밭 위에서 후퇴하는 적들을 추격했다. 볼리베어는 붉게 물든 입을 벌린 채로 만족스럽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때 볼리베어를 불렀던 여자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위대한 발히르시여! 저는 전쟁의 어머니, 피 묻은 손 라에타입니다. 발히르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마을을 지켰습니다!" 그제야 볼리베어의 전투에 대한 갈망이 사그라들었고, 주변의 농장과 석조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인상을 쓰며 무릎을 꿇은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볼리베어는 그녀보다 키가 네 배나 컸다. 게다가 분노가 되살아날수록 몸집은 더욱 커졌다. 위압감을 주는 몸에는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옛 흉터와 새로운 상처가 가득했다. 거대한 발톱은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살육을 향한 욕구는 여전히 들끓었다. 볼리베어는 전쟁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볼트 스바아그 다크 스콜." 그러자 여자는 당황한 듯이 올려다보았다. 옛 언어는 이미 잊힌 게 분명했다. "일어나라." 그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조악한 언어로 다시 말했다. "전사는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다." 그때 볼리베어의 시선이 계곡 끝자락에 닿았다. 무시무시한 울림이 그의 몸속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폭력을 예고하는 그 소리에 라에타는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저건 뭐지?" 볼리베어의 분노가 깊어지면서 공기 중에 번개가 일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둑...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볼리베어는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그 강은 볼리베어의 것이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 자유롭게 흐르던 그 강을 겁도 없이 막아 그 힘을 억제하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볼리베어는 라에타를 지나쳐 성큼성큼 걸었다.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마침내 그 상스러운 구조물 앞에 서자 노여움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그의 주변에서는 가공할 만한 힘이 소용돌이쳤다. 전쟁의 어머니 라에타와 다른 부족민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볼리베어는 둑 아래로 내려갔다. 물은 발을 겨우 덮을 정도로 얕았다.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흘러야 할 강의 초라한 모습에 그는 격노했다. 엄청난 포효와 함께 볼리베어는 물을 막고 있던 둑을 파괴했다. 그제야 강은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강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 강물이 범람원을 휩쓸자 비명이 들렸다. 프렐요드인들의 집이 무너지고, 목재가 휩쓸리고, 석조 구조물이 파괴되는 모습을 볼리베어는 흐뭇하게 지켜봤다. 강물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는 동안 인간들은 아이들을 안고 도망쳤다. 문명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뒤에야 볼리베어는 충격에 빠진 프렐요드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 너희는 자유다!" 그는 필멸자들의 공포를 감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경외심과 존경도 느껴졌다. "자유롭게 살고 사냥하고 죽여라! 그리고 전통을 따르라. 그럼 전통도 너희에게 영광을 베풀지니!" 전쟁의 어머니 라에타는 우뚝 선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볼리베어는 그녀에게서 진정한 전사의 혼을 보았다. 분명 대부분의 필멸자들도 그녀를 따를 터였다. 그는 라에타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지평선을 바라봤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
3. 구 배경
3.1. 유니버스 이전
프렐요드 북부는 발로란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혹독한 지방이지만, 어사인 종족은 수백 년 동안이나 시시때때로 폭풍우가 몰아치고 풀 뿌리 하나 자라기 힘든 이 툰드라 지대에서 살아왔다. 그런 어사인 족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용맹하고 우직한 전사 볼리베어는 일생을 바쳐 동족을 보호하고 부족장인 형에게 충성을 다해 왔다. 툰드라로 사냥을 떠났던 형이 죽고 나자 부족에서는 볼리베어를 그 후계자로 지목했다. 볼리베어 본인으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영광이자 그만큼의 부담이었으나, 그는 명예롭게 이 짐을 짊어지기로 했다. 어사인 족 전통에 따라, 볼리베어가 부족의 지도자로 인정 받으려면 1년 내내 천둥 치는 폭풍우에 감싸여 있는 신성한 산 꼭대기로 순례를 다녀와야만 했다. 어사인 부족의 족장은 이 곳에서 폭풍과 홀로 대화하며 부족을 이끌 총기와 지혜를 얻는다 했다. 볼리베어는 대대로 내려오는 부족장의 갑옷과 마법이 깃든 건틀렛을 걸치고서 멀고도 험한 산길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 그는 번개 치는 소용돌이 너머로 프렐요드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는 환영을 보았다. 피로 얼룩진 전장 한 가운데 어사인 족이 죽어 쓰러져 있었다. 뭔가 손을 쓰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직감한 볼리베어는 곧바로 프렐요드의 수도로 향했다. 어사인 족은 수 세기 동안이나 남쪽 산 밑으로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불안에 찬 눈길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애쉬 여왕은 볼리베어를 지혜롭고 강력한 아군으로 인정했다. 다가올 전쟁을 막기 위해 볼리베어가 제안한 대로 둘은 우선 동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볼리베어는 조약의 내용대로 프렐요드 연합의 기치 아래 리그 오브 레전드에 참전해 원초적인 힘을 정의의 전장에 선보이게 되었다. "볼리베어의 포효 앞에 휘몰아치는 폭풍을 견뎌낼 이는 드물지." – 서리 궁수 애쉬 |
3.2. 유니버스 이후
"우리 어사인에게 평화란 전쟁을 통한 것뿐이다." 프렐요드 내에서도 가장 혹독한 환경으로 손꼽히는 북부 변방은 수천 년에 걸쳐 이 척박한 툰드라를 지켜온 어사인 전사들의 땅이다. 이 호전적인 부족의 지도자인 볼리베어는 번개의 힘을 소환하여 감히 대적하려 드는 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한다. 용맹하고 우직한 전사이자 탁월한 혜안을 지닌 주술사이기도 한 볼리베어는 어사인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사의 혼을 지켜내는 대들보의 역할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한 때 전장을 휩쓸었던 어사인족의 기록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남아있다. 부족을 보살피는 3명의 장로가 외부와의 교류를 일절 끊고 평화의 길을 선택한 이후로 어사인족은 오랜 세월 동안 존재감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 기나긴 평화 속에서 볼리베어의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풍요와 번영 속에서 전사들은 안이하고 나약해졌으며, 많은 이들이 신성한 전쟁의 기술을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어사인 족은 용맹한 전사의 기상을 완전히 잃는 것은 물론 존망의 위기에 처할지도 몰랐다. 장로들은 깊은 통찰력으로 칭송받는 현자 볼리베어의 신탁을 따르고 있었지만, 그가 예언하는 암울한 미래에 대해서만은 매번 외면할 뿐 아니라 경고까지 하는 실정이었다. 볼리베어는 이런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 1년 내내 번개가 내리치고 폭풍우에 둘러싸인 신성한 산꼭대기를 향해 험난한 순례를 떠났다. 이곳에 오르면 폭풍의 눈이 앞날의 전조를 보여주고, 어사인 족의 다음 족장을 폭풍이 점지해준다는 전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을 오르던 볼리베어를 향해 느닷없이 강렬한 번개 줄기가 내리꽂혔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린 그의 눈앞으로 어둠의 기운이 프렐요드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끔찍한 환영이 펼쳐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냉기의 존재들이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나태하게 살아오던 어사인의 부대를 끔찍하게 학살하는 장면도 뒤이어 나타난 것이었다. 하루빨리 전쟁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부족이 전멸하고 말 것이라는 예감에 볼리베어는 다급하게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세 장로는 볼리베어를 기다렸다는 듯 마을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오랜 평화가 깨질 것이 두려웠던 이들은 볼리베어의 말은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겠노라 맹세하지 않는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볼리베어는 그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어사인의 존망은 무기력한 평화의 유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신탁에 달려 있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고, 끝내 볼리베어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게 된 그 순간, 그가 우렁차게 포효하더니 폭풍우의 힘을 불러냈다. 그리고 순수한 번개의 힘으로 세 장로를 우레와 같이 내리쳤다. 어사인 부족장의 징표인 신성한 폭풍우의 힘을 목도한 그들은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세 장로는 신성한 예언을 받들어 폭풍이 택한 자 볼리베어를 어사인의 새로운 족장으로 인정했다. 볼리베어는 빠르고 과단성 있는 지도력을 발휘해 그간 안이했던 생활을 단번에 청산했다. 또 전쟁에 대비해 단련하는 전통을 되살리고는 다가올 악의 세력에 함께 맞설 전사 세주아니와 동맹을 맺었다. 어사인족은 이내 날렵하고 강력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전설 속의 용맹한 전사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볼리베어와 어사인족은 이제 얼어붙은 지평선 너머로 다가오고 있는 어둠에 맞설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