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04 19:15:39

봉성


1. 봉성을 이름으로 쓰는 것2. 봉성을 이름으로 쓰는 사람3. 逢盛

1. 봉성을 이름으로 쓰는 것

2. 봉성을 이름으로 쓰는 사람

3. 逢盛

(168 ~ 179)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백미(伯彌).

고조부는 박령, 증조부는 수성군, 조부는 안평군, 아버지는 오관연을 지냈다고 하며, 오관연의 장남이다.

비석이나 묘실 안의 화상석에 유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는 시도가 건녕 연간부터 광화 연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봉성의 죽음을 기리는 것은 그 중 하나이다. 이후에는 금비령 이후에 조식이 지은 금호애사, 행녀애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유아의 죽음을 주제로 기념하는 글을 새기는 것은 40년에 가까운 공백 기간을 걸쳐 나오지 않았다.

한나라의 제도에서는 지방관이 임지에서 속관을 채용하며, 속관이 되면 지방관의 천거를 받아 출세길로 나아갈 수 있었고, 지방의 호족은 지방 군현의 속관이 되어 효렴제를 통해 중앙으로 진출한다. 그 과정에서 장관과 속관 사이에는 고리라는 관계가 형성되는데, 봉성을 기리는 것은 관료 문하의 이웃 군에서 온 4명의 가문의 문생이 요절한 손자를 기린 것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