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46:37

부사령관 마르코스

1. 개요2. 활동3.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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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ubcomandante Marcos.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ZLN)의 대변인. 멕시코 원주민 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 저 이름은 당연히 본명이 아니며 실제 신원은 후술.

2.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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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마르코스는 게이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게이이며, 남아공흑인이며, 유럽아시아인이며, 샌 이스드로의 멕시코인이며, 스페인아나키스트이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이며, 산 크리스토발 거리의 마야인이며, 독일유대인이며, 폴란드집시이며, 퀘벡의 모하크인이며, 보스니아평화주의자이며, 밤 10시 지하철싱글 여성이며, 무전 농민이며, 슬럼이며, 실업자이며, 불행한 학생이며, 그리고 특히, 산의 사파티스타이다. 마르코스는 저항하고, "더는 그만"이라 말하는 모든 착취받고, 소외받고, 억압받는 소수자이다. 마르코스는 말하기 시작한 모든 소수자이며, 조용히 들어줘야 하는 모든 다수자이다. 그는 발언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관용받지 못하는 모든 소수자이다. 권력과 권력자들의 양심을 불편하게 만드는 모든 것은 마르코스이다.
멕시코 정부가 퍼뜨린 마르코스 게이설에 대한 논평

항상 검은 복면을 쓰고 있으며,[1] 그렇기에 누구나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검은 복면'과 '별 세개가 박힌 낡은 군모,' '파이프 담배'가 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인물처럼 서술되곤 하지만 멕시코 정부의 수사 결과 본명은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비센테(Rafael Sebastián Guillén Vicente)로 1957년 생이며 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게릴라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

그의 말에 따르면, 1983년에 원주민들을 근대화시키고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맞게 변화시키고자 치아파스에 갔지만 원주민들의 지난 500년간 투쟁 역사를 듣고 자기가 그들로부터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94년 1월 1일 사파티스타의 무장투쟁을 주도하며 주 대변인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그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권력을 장악하고 혁명군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우리(사파티스타)에게는 실패이다"라고 말하며, 무력 보다는 언어와 인터넷의 힘으로 사파티스타의 투쟁을 주도하였다.[2]

그는 이에 대하여 "나의 말이 나의 무기"[3]라고 말하였으며, 사파티스타의 생각과 활동을 시나 편지, 에세이 등의 형식으로 인터넷 등에 올렸다. 그의 글은 전세계적으로 많은 진보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냈으며, 멕시코 정부가 사파티스타를 함부로 무력진압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편 2001년에는 원주민 권익보호 법률의 입법을 촉구하며, 멕시코 시티까지 평화행진을 주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말 그대로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사실을 보여 주면서 '이 시대의 체 게바라,' '20세기 마지막 낭만적인 혁명가'라고 불리며 주목받았다. 또한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반대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는 항상 원주민들을 제치고 나서지 않으며 항상 원주민들이 전면에 나서도록 했다. "마르코스는 사령관이 아니고 부사령관이다. 원주민들이 사령관이다."라고 말하며, '부사령관'을 자처했다.[4] 그렇기에 2001년 멕시코 국회에서의 연설도 직접 나서지 않고, 원주민 여성 사령관[5]인 에스테르가 연설을 했다. 관련 기사

2006년에는 '부사령관'이라는 직함을 버리고, '0 대표(Delegado Cero)'라는 이름의 한 시민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모든 것은 무(0)에서 시작된다.'라는 의미로, 무장투쟁보다는 시민들과 연계하여 보다 본격적으로 정치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오토바이로 전국 투어를 벌였다.

2014년 5월에는 자신의 이미지가 너무 비대해져 운동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며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죽었다'라고 말한 뒤 자취를 감췄다. 이때 별명도 ‘부사령관 갈레아노(Subcomandante Galeano)’라고 바꾸어 버렸다.[6]

이후 한동안 공식적인 활동이 없다가 2016년 원주민 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3. 사상

우리는 무력으로 우리 해결책을 강제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민주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는 이전의 게릴라 방식의 고전적인 무장투쟁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군사적인 대립이 아니라 정치이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켜 죽거나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듣기 위해 싸운다.
인류 역사에서 좌파의 사유는 권력에 맞설 때는 가장 풍요로운 것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때는 가장 빈곤한 것 가운데 하나였다.
민중이 질서를 만들고, 정부는 이를 따른다.

그의 사상은 아나키즘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일체의 권력을 반대하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렇기에 멕시코 대통령에게 "여러분이 정의하고 보호하는 세계에 우리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는 대통령 당신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치아파스 주에서 사파티스타가 자치를 실시하는 5개 지역에서는 일체의 정부 지원을 거부하고 공동체 생활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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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면을 언제 벗을 거라는 질문에 그는 "멕시코가 복면을 벗는 날."이라고 답하였다.[2] 물론 처음 12일 간은 무력투쟁을 전개하긴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정부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3] 그의 말과 인터뷰를 엮은 동명의 책이 출간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2002)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4] 이 뜻에 동조하는 영주권 등 체류비자 소지 외국인들과 비원주민들은 부사령관이 되는 모양이다.[5] 이 사령관은 지휘관의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편이다. 앞서 언급한 바 처럼, '원주민들'이면 모두 사령관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름이 알려진 사파티스타 '사령관'이 많다.[6] 이 선언 직전 우파 조직에게 살해당한 루이스 로페즈 갈레아노의 이름을 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