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8 22:20:50

부에노스 존데 재공략전

부에노스 존데 재공략전
ブエノス・ゾンデ再攻略戦
날짜
2193년 7월 ??일 ~ 7월 20일
장소
부에노스 존데
교전 당사자 아퀼로니아, 검은 리본당 뉴 카멜롯, 나비넥타이당 프린스 해럴드 모블리지 주니어
지휘관 알마릭 아스발(AAA)
페르두르
케네스 길포드
로제비치
무라드
카렐 슈터밋
유리 크루건
찰스 콜린 모블리지 주니어
병력 아퀼로니아 군
장병 36,900명
검은 리본 군
불명
뉴 카멜롯 군
장병 34,600명
나비넥타이 군
불명
프린스 해럴드 군
장병 41,200명
공병대
80명
피해 규모 아퀼로니아 군
불명
검은 리본 군
궤멸
뉴 카멜롯 군
전사 400명 이상
나비넥타이 군
궤멸
없음[1] 모블리지 주니어 체포
결과
아퀼로니아, 뉴 카멜롯, 프린스 해럴드 군의 승리
1. 개요2. 주요 인물3. 배경4. 전개
4.1. 진군4.2. 프린스 해럴드의 개입4.3. 제안
5. 결과
일곱 도시 이야기의 에피소드
재스모드 전투 부에노스 존데 재공략전 귀환자 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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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나카 요시키의 장편소설 <일곱 도시 이야기>의 전투. 본작의 마지막 에피소드이다.

2. 주요 인물

  • 아퀼로니아
  • 뉴 카멜롯
    • 뉴 카멜롯 수륙양용군 사령관 케네스 길포드 중장
    • 뉴 카멜롯 군 막료 로제비지 중령

3. 배경

서기 2192년 귄터 노르트가 부에노스 존데의 독재자 에곤 라우드루프를 암살한 뒤, 부에노스 존데는 구심점을 잃고 30개의 정파로 나뉘어져 분열하였다. 이 정파들은 1년의 분열기 끝에 2개로 통합되었는데, 바로 검은 리본당과 나비넥타이당이다. 두 정파는 권력을 잡기 위해 사실상 내전 수준의 권력투쟁을 벌였다. 온갖 살인, 습격, 린치, 테러가 부에노스 존데에서 벌어져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2]

그때 북극해 전선에서 실종되었던 찰스 콜린 모블리지 주니어가 부에노스 존데로 망명하였다. 그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여 두 당파를 모두 싫어하던 사람들을 규합하여 세를 불렸다. 몇몇 사람들은 모블리지 주니어를 실체를 알고 비판했으나 그는 입 발린 말로 오히려 자신의 평가를 더욱 높였다.

모블리지 주니어의 세력이 팽창하자 검은 리본당과 나비넥타이당은 세력 확장을 방해받았다. 그들에게는 서로 무너뜨릴 힘이 없었고, 결국 외세를 끌어들이기로 결정하였다. 검은 리본당은 아퀼로니아, 나비넥타이당은 뉴 카멜롯에게 시의 이권을 대가로 도움을 요청했고, 두 도시는 이를 승낙했다. 특히 아퀼로니아 원수 니콜라스 블룸의 입장에서는 반역자이자 경쟁자 모블리지 주니어가 부에노스 존데에서 재기를 꿈꾸고 있었기에 어떻게서든 부에노스 존데에 개입하여 모블리지 주니어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두 도시는 개전 직전 몇 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이는 사실 협상이라기 보다는 협박과 말싸움에 가까웠다. 서로 자기 주장만 내세운 탓에 협상은 결렬되고 군사력이 동원되었다. 아퀼로니아는 알마릭 아스발 중장이 지휘하는 장갑야전군을 주축으로 한 장병 36,900명을, 뉴 카멜롯은 케네스 길포드 중장이 지휘하는 수륙양용군을 중심으로 한 34,600명이었다.

이 사태를 지켜본 프린스 해럴드는 부에노스 존데와의 인연을 운운하며 탐욕스러운 두 도시로부터 부에노스 존데의 시민들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개입을 선언했다. 물론 그 속내는 원수 부에노스 존데의 세력을 줄일 뿐만 아니라 도시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였지만. 여기에는 페루 해협 공방전에서 활약한 귄터 노르트가 타데메카로 망명한 것과 이번에는 적 측이 분열되어 있어 이길 수 있으리라 믿은 것도 있었다. 이리하여 프린스 해럴드 군도 총사령관 카렐 슈터밋 중장과 부사령관 유리 크루건 중장이 지휘하는 장병 41,200명을 부에노스 존데로 파병했다.

4. 전개

4.1. 진군

2193년 7월, AAA가 이끄는 아퀼로니아 군이 부에노스 존데로부터 100km 떨어진 지점까지 진군했다. 그가 전략을 짜는 동안 검은 리본당 지도자 페르두르가 몰래 시를 빠져나와 아퀼로니아 군 사령부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페르두르는 자신이 집권하면 AAA에게 명예국방장관에 임명하겠다며 그에 관한 의정서를 교환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AAA는 페르두르를 믿을 수 없어 덜컥 의정서를 교환했다간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 지 몰라 겸손하게 거절했다. 그는 페르두르를 치켜세운 뒤 돌려보냈다.

아퀼로니아 군이 진군하자 부에노스 존데 군은 해협을 봉쇄하여 아퀼로니아 군의 진군을 막았다. 이렇게 되자 AAA는 이렇게 된 이상 뉴 카멜롯 군의 방해작전에 착수했다.

뉴 카멜롯 군의 지휘관 케네스 길포드 중장은 아퀼로니아 군이 아군과 부에노스 존데 시 사이로 들어가 도로를 봉쇄하자 움직였다. 뉴 카멜롯 군은 아퀼로니아 군에 밀려 해협부로 밀려나가는 듯 했으나 곧 경이적인 속력으로 카르데나스 언덕 배후로 우회하여 2시간의 격전 끝에 점령하였다.

카르데나스 언덕 함락 소식이 아퀼로니아 군 사령부에 전해지자 AAA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는 출발 직전 류 웨이로부터 '토마토 통신'이라는 명목으로 온 어떤 구상을 받은 뒤였다.

4.2. 프린스 해럴드의 개입

7월 9일, 프린스 해럴드 군이 페루 해협 서해안에 상륙했다. 프린스 해럴드 군 사령부는 양 군 사령부에 시가지에 선제공격하는 군이 있다면 프린스 해럴드는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테니 부디 자중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 속내는 아퀼로니아와 뉴 카멜롯이 개전하면 이를 구실로 한 쪽의 편을 들어 다른 한쪽을 치고, 더 나아가 양군이 치고받고 싸우면서 전력을 소모하면 그때쯤 온전한 전력으로 적군을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 서한을 받은 AAA는 유리 크루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통찰하며 그를 괴악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카르데나스 언덕을 탈취한 뉴 카멜롯 군이 시가지를 우회해서 아군의 뒤를 공격할 것이라 예상하고 모렐리아 고개에서 막기로 결정했다.

7월 18일 14시 20분, 뉴 카멜롯 군은 아군의 5%에 불과한 적군 전초부대와 조우했다. 적군은 진지로 철수해 본대와 합류했으며 14시 50분, 양군은 전투에 돌입했다.

16시, 뉴 카멜롯 군은 길포드 중장의 지휘 하에 맹공을 가해 적 화력의 8할을 궤멸시켰다. 검은 리본 군이 정상부까지 몰리자 길포드 중장은 곡사포 공격을 명했으나 로제비치 중령은 그 명령을 무시하고 15대의 장갑차와 2,400명의 장병을 데리고 강행 돌파했다. 하지만 검은 리본 군은 수도관을 터뜨려 비탈길에 물을 흘리고 급격 냉동장치로 얼려버려 뉴 카멜롯 군의 진격을 방해했고, 발이 묶인 뉴 카멜롯 군에게 포화를 퍼부었다. 400명 이상 전사자를 내고 중령은 사령관이 말하던 대로 곡사포 포격을 했더라면 이런 피해가 없었음을 알고 후회했다. 그때 길포드 중장이 탄막을 구성해 검은 리본 군의 진격을 막고 아군을 퇴각시켰다. 3km 쯤 퇴각했을 시점, 부근에 터진 포탄의 파편이 길포드 중장에게 박혔으나 다행히 경동맥까지 닿지 않아 그는 무사할 수 있었다. 뉴 카멜롯 군은 성공적으로 우회하여 아퀼로니아 군의 뒤를 잡았다.

4.3. 제안

한편 AAA는 전황을 파악하며 류 웨이의 구상을 실현하려 했다. 그때 고향도시에서 블룸 원수가 와서 그를 질책하자 속으로는 블룸 원수를 까대면서 겉으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답하고 곧 뉴 카멜롯 군의 지휘관 길포드 중장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서로 싸우지 말고 협력하여 두 당파를 몰아내자 꼬드겼다. 길포드는 이리저리 태클을 걸긴 했으나 곧 그 제안을 수락했다.

한편 모블리지 주니어는 아퀼로니아군이 아스프로몬테 댐 하류에 장기 주둔을 위한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댐을 터뜨려 침공군을 모조리 수장시키려 했다. 그런데 이 정보가 AAA의 귀에 들어가 그는 댐의 탈취와 진지를 고지대로 옮길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뉴 카멜롯 군에게도 이 사실을 전달하였다. 7월 17일, 모블리지 주니어가 지휘하는 공병대 80명이 폭약을 설치하고 18일 0시 45분 댐을 폭파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적군이 나타나 모블리지 주니어를 공격했다. 양군은 댐이 폭파된 이후 행동을 개시하여 나비넥타이 군-검은 리본 군과 고향도시의 연결을 차단하였다.

7월 19일 10시 15분, 부에노스 존데 시가지를 포위한 3군 사령관들이 산 라파엘의 언덕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AAA는 도시를 3분할하자고 제안했고 다른 군 사령관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7월 20일 5시 8분, 3군은 세 방향에서 시가지로 돌입했다. 나비넥타이당은 5천 명의 비무장 시민을 앞세워 뉴 카멜롯 군의 진격을 저지하려 했으나 길포드는 방향을 트는 것으로 간단히 무력화해 버렸다.

3군은 순조롭게 시가지의 거점을 점령하였다. 중앙 방송국을 제압하는 데 3군이 서로 아웅다웅하긴 했지만 카렐 슈터밋의 중재로 총격전으로 번지지 않았다.[3][4] 두 당파의 본부는 점거되었고 당수는 체포되었다. 그리고 모블리지 주니어는 도시가 점령될 때쯤 지하 하수도로 숨었으나 머지 않아 뉴 카멜롯 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5. 결과

3군 분할 점령으로 부에노스 존데 시는 형식적인 주권만 남은 채 세 도시의 점령지로 전락했다. 블룸 원수는 이 사태에 길길이 날뛰었으나 명예를 중시하는 그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고든 AAA의 말에 결국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모블리지 주니어는 아퀼로니아 시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3군 사령관은 형식적으로라도 부에노스 존데 시를 통치할 통치자로 안켈 라우드루프의 아내 텔레지아를 임명하려 했으나 텔레지아는 라우드루프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외세의 후견을 얻어 통치자의 자리에 앉으면 남편의 죽음과 남편의 이상이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결국 법학자 출신의 정치범 스필하우스라는 사람이 부에노스 존데의 통치자가 되었다.
[1] 교전 자체를 하지 않았다.[2] 두 정파의 명칭 또한 그들이 사회활동가를 교수형 할 때 쓴 끈에서 유래했다. 검은 리본으로 교살해서 '검은 리본당', 나비넥타이 매듭을 묶어 교살해서 '나비넥타이당'이라 불리는 것이다.[3] 유리 크루건이 부에노스 존데 방송국을 폭파하고 방송차 석 대를 전부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열받은 AAA와 길포드는 프린스 헤럴드 군을 공격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그래도 다른 세 사람보다 더 어른스러운카렐 슈터밋이 방송차를 한 대씩 나눠주기로 했기 때문에 간신히 타협할 수 있었다.[4] 이 점만 봐도 괜히 유리 크루건 단독으로 작전을 맡기는 것보다 카렐 슈터밋과 함께 가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리 크루건은 극도의 효율주의자이자 어떤 면에서는 소시오패스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 그래서 이를 중재할 사람이 필요할 수밖에.